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1)
너희들은 변호됐다-21화(21/641)
강민재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부리나케 베란다를 빠져나갔다.
나 역시 담배를 비벼 끄며 빠르게 움직였다.
“밤샘 작업이 많다고 했으니까, 아마 편집실에 지금 스태프가 있을 거야.”
“그 영상 찾으려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그날 촬영분을 싹 다 뒤져야 하니까.”
무작정 방송국에 도착한 우리는, 조연출에게 연락을 취해 편집실로 올라갔다.
컵라면과 커피 캔이 가득 쌓인 편집실 안에는, 퀭한 얼굴의 조연출과 편집기사가 앉아 있었다.
“이렇게 일찍부터 무슨 일이세요?”
“바쁘신 줄 알지만, 부탁 한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뭔데요?”
“김철환 여희숙 씨 편 촬영하실 때. 감독님이 조감독님한테 험한 말 하신 적 있습니까?”
조연출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뭘 그런 새삼스러운 것을 묻느냐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방송국이 다 그래요.”
“그러니까, 촬영 당일에 현장에서도 그러셨냐는 말입니다.”
“당연하죠.”
“그 시각이 언제인지 기억나십니 까?”
“뭐, 평소에 씨발 씨발 거리는 거까지 다요? 그럼 계속인데요.”
“그거 말고, 제가 처음 이것저것 여쭤보러 왔던 날. 그날처럼 일방적으로 그러신 적 있냐는 뜻입니다.”
편집기사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조감독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 침음 했다.
그런 일이 그의 말마따나 한두 번은 아닌 듯했다.
“있어요. 끊을 때마다 여희숙 씨가 그거 확인하려고 하시니까. 저 불러서 그거 못하게 해야지 왜 계속 받아 주냐면서 뭐라고 하셨거든요.”
“그때가 언젠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안 나죠. 뭐, 밤이었던 것만 기억나네요.”
“그럼 밤에 설치했던 카메라 전부 확인 좀 하게 해 주시죠.”
“엥? 그걸 다요?”
“재판에 꼭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미편집본 말씀하시는 거죠? 촬영본 전부.”
“네.”
“몇 시간은 확인하셔야 할 건데.”
“상관없습니다.”
편집 기사는 우리에게 간단히 영상을 정지하고, 되감기 하고, 빨리 감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나와 강민재는 편집실 구석에 앉아, 서로 구간을 반씩 나누어 감독이 조연출에게 험한 말을 하는 장면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방송국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했고, 정장을 차려입은 채 편집실에 앉아 있는 우리를 창문 너머로 구경하며 지나갔다.
“변호사님. 9시 48분. 9시 48분입니다. 감독이 조연출 머리 밀고 어깨 밀치고 있는데요?”
뒤에서 듣는 조연출은 기분 나쁜 듯 우리를 휙 돌아보았다.
나는 강민재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9시 48분부터 안방하고 거실에 설치한 카메라 촬영 화면 좀 보여주시죠.”
벌써 시각은 오전 8시 반.
10시에 재판이 시작하므로, 30분 뒤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다급해진 마음으로 조연출이 재생해 주는 동영상을 확인하던 나는, 조용히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여기다.”
화면 안에서 여희숙은, 감독의 욕설이 섞인 고함 소리에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그리고 책장으로 다가가 책 사이사이를 뒤졌다.
그녀는 커다란 백과사전 같은 것을 꺼내 펼쳤다.
두꺼운 책 내지가 카메라가 들어갈 만큼 파여 있었고, 그 안에서 카메라가 나왔다.
책 등을 향해 렌즈만 겨우 보일 정도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저 카메라를 숨기기 위해 얼마나 그녀가 고심했을지 느껴졌다.
“이러니까 못 찾지. 와…….”
여희숙은 카메라를 켜 다시 책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안방을 나섰다.
복도에 설치된 카메라 화면 안에서, 그녀는 안방에서 나오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벽을 짚고 섰다.
깊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몇 번 심호흡했다.
그러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책장을 뒤졌고, 카메라를 꼈다.
“영상 잘 봤습니다.”
“아, 예. 원하는 거 찾으셨나요?”
“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유, 다행이네요.”
짐을 챙겨 편집실을 나서려던 나는, 잠시 멈추며 덧붙였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험한 말을 하는 경우 모욕죄가 성립되고, 대화 내에 포함된 내용에 따라 명예 훼손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형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민사로 한 번 더 걸어서 금전적 보상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전에 드린 명함 연락처로 전화 주세요.”
“아, 뭐 하시는 겁니까! 빨리 오세요!”
강민재가 나를 끌어당겼다.
조감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를 뒤로한 채 강민재와 함께 복도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사건 현장으로 가서 카메라 입수해. 카메라에 사건 당시 장면 녹화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두 달 동안 김형준이 폭행하는 장면도 담겨 있으면 세이브 해. 내가 재판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영상 찾으면 문자 남기고, 증거 제출용으로 편집 완성되면 법원 도착해서 바로 전화해. 증거물 입수 경로도 서면 준비하고. 아, 동영상 편집할 줄은 알아?”
“도와 달라고 할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 계속 끌 수 있으시겠어요?”
“나 재판 잘해.”
15년 동안 내가 들어간 재판만 몇 건인데, 라고 덧붙이려다 입을 다물었다.
2008년 기준으로, 내 경력은 5년에 불과하니까.
“예, 뭐 그러시긴 하지만…….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재수 없으십니다?”
강민재가 웃으며 내게 자신의 차 키를 건넸다.
“이거 타고 가세요. 전 택시 타고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강민재와 나는 헤어졌고, 정확히 11시 31분.
강민재는 영상이 든 USB를 내게 넘겼다.
그리고 지금 시각 12시 23분.
“조작이야! 저거 다 조작이라고!”
침묵을 뚫고 김형준이 소리 질렀다.
그는 방청석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오려는 듯 출입문을 밀고 나오려 했다.
법정 경위가 그를 막아섰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보신 증거에 의해,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증거물의 입수 경로를 서면으로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준비된 서류를 법무관에게 넘기자, 재판장은 서류를 우배석과 좌배석에게 공유했다.
“검사.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재판을 계속 진행할 겁니까?”
상의 끝에, 고일국 판사가 양 검사를 향해 물었다.
양 검사는 심란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는 흘긋 방청석 끝자락에 앉아있는 황영찬을 바라보았다.
황영찬은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법정에서 나가 버렸다.
“……재판장님, 피고인 김연준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겠습니다.”
“재판장의 직권으로, 김형준을 법정 구속합니다.”
고일국 판사의 말과 함께, 법정 경위들이 김형준에게 달려들어 구속했다.
“놔! 이거 놔!”
김형준은 저항이 거셌지만, 경위들의 통제하에 수갑이 채워져 법정 바깥으로 끌려 나갔다.
한바탕 난리가 휩쓸고 지나간 법정은 마치 폐허 같은 분위기였다.
“피고인 측, 하실 말씀 있으면 하세요.”
나는 김연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물이 낭자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김연준 씨, 하고 싶은 말 전부 다하세요.”
그는 정말 그래도 되느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포승줄에 속박된 두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한 번 무겁게 끄덕였다.
“……저는.”
김연준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저는, 부모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흑, 흐흑, 흐으윽.”
김연준은 그 말을 끝으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간 그가 감내해 왔던 숱한 오해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피부로 느껴졌다.
“본 변호인은, 피고인 김연준의 변호를 준비하면서 검찰의 졸속 수사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여희숙 씨를 담당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 윤태영 씨의 말에 따르면, 검찰에게서 단 한 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보험으로 진행한 진료였다고 해도, 이는 검찰이 기본적인 수사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또한, 김형준이 피해자 부부의 앞으로 다수의 생명보험을 들어 놨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 역시 검찰의 수사가 미흡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양 검사는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본인도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고작 지문 하나, 경찰 출동 당시의 모습 하나만으로 검찰은 피고인을 용의자로 낙점하고 다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인면수심의 살인범을 사회에서 날뛰게 놔두고, 죄 없는 청년은 살인자로 몰려 인생을 망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검찰은 사건을 접하고 지문이 나온 현행범이 체포되자, 이를 바로 언론에 알렸다.
다른 용의자가 없는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고, 엠바고를 걸어 놓지도 않았다.
이를 접한 여론이 당연히 현행범 쪽으로 기우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검찰은 자신들의 부주의와 영웅 심리로 조성된 여론에 질질 끌려다녔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조진태 살인 사건>으로 한번 여론의 찬양을 받은 형사부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바보 같은 실수를 한 것이다.
“다시는 무고한 사람이 검찰의 졸속 수사에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변론 마치겠습니다.”
* * *
법원 앞은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법원을 나서는 나와 강민재의 앞을 가로막으며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차주한 변호사님, 재판에 대해 한 말씀만 해 주시죠!”
“김연준 씨의 무죄를 처음부터 믿으셨습니까?”
“사직하시고 처음 맡은 사건이 친정과의 정면 승부였는데, 의도된 것입니까?”
어찌나 단단히 막아섰는지,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다.
아무 말이라도 해 주지 않으면 도저히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
“무죄를 처음부터 믿었고, 일부러 형사 3부 배당 사건을 겨냥한 것은 아닙니다. 우연입니다.”
우연.
언론에서 결코 믿어 주지 않는 말 중 하나다.
일부러 형사 3부를 저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은 없었다.
대놓고 검찰에 밉보이는 변호사가 얼마나 갈 길이 험한지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게 무섭지는 않았다.
나는 대한민국을 틀어쥐고 있는 재벌에게 밉보여 죽다 살아나지 않았던가?
“이제 그만 하시고 비켜 주시죠!”
강민재는 기자들을 물리며 소리쳤다.
잠시의 틈이 생긴 사이, 나와 그는 기자들을 뚫고 법원 주차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변호사님.”
“왜.”
“승소 기념으로 저녁에 술 한잔 어떠십니까? 콜?”
술 넘기는 제스처를 취하는 강민재에게, 나는 못 이기는 척 대답했다.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