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10)
너희들은 변호됐다-210화(210/641)
“주한아, 여기야!”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동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하자, 동진이 픽 웃었다.
“일이 많아서 그렇지. 밥부터 먹자. 뭐 먹을래?”
“맛있는 거 아무거나 추천해 줘.”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고, 이곳에 온 목적도 밥은 아니었으니까 뭐든 상관없다.
음식이 나오자, 동진은 그릇에 코를 박을 기세로 열심히 먹었다.
나는 내 그릇에 있던 고기 몇 점을 앞접시에 덜어 동진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뭐야, 인마. 너 먹지.”
“너 많이 먹어라. 너 살 빠진 거 보면서 제수씨 마음 아프겠어.”
“우리 와이프는 마른 남자가 좋단다.”
“다 그냥 하는 소리지.”
“요즘엔 배우 누구더라? 하여간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한테 빠져서 나한테 타박하더라. 사랑이 식었나.”
그럴 리가 없다.
동진의 와이프는, 동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를 따라갈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다.
아이들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만일 그녀까지 떠났다면,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나에게 힘을 써 달라 했던 동진을 외면한 내 자신을 영원히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렇게 동진의 얼굴을 맞댈 때마다 이전 삶에서 동진을 구하지 않았던 나를 원망하곤 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뭘 알아, 인마. 아, 안 그래도 와이프가 너랑 밥이나 먹자던데?”
“그래, 그렇게 하자. 애들도 많이 컸을 텐데, 삼촌이 장난감이라도 사줘야지.”
“그래, 너 돈 많이 벌었잖아. 사줘.”
나는 실 없는 웃음을 흘리며 다시 식사를 이어가는 동진을 바라보다, 문득 휴대폰을 확인했다.
지금은 2010년 8월.
그리고, 동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날은 정확히 2011년 5월 2일이다.
“저번에 원장 아들이 너 견제한다고 했었잖아. 그건 좀 어때. 지금도 그래?”
“지금도 개지랄이지. 야, 그 새끼 얘기는 하지도 마. 열 받으니까.”
“너 견제한답시고 모함하고 이럴 스타일이야?”
“모함? 뭐, 그러고도 남을 새끼지.”
동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얘기해.”
“무슨 일? 뭔 일?”
“그냥, 아무거나. 법 관련된 거 아니라도,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 같은 거 있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
“참 나. 너야말로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고 그래? 나야 당연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너한테 콜하지. 변호사 친구 덕 좀 봐야 하지 않겠냐.”
그런 놈이, 나한테 그런 일을 끝까지 숨기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찾아왔었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식사가 끝난 뒤, 커피를 사서 병원을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병원 관계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나저나, 나한테 물어볼 게 뭐야?”
화단 앞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동진이 물었다.
“별건 아니고. 이정찬 아들 있잖아. 이세형.”
“아, 이세형? 우리 병원 다니는데?”
“맞아. 이세형이 척수에 문제가 생겨서 하반신 마비가 왔다고 했었지?”
“그렇지. 아마 우리 병원으로 재활다니고 있을걸? 우리 과랑 협진하잖아.”
동진이 커피를 쭉쭉 빨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근데 왜?”
“혹시 이세형 차트 본 적 있어?”
“나는 없어. 과장이 직접 맡거든.”
“그래?”
“아무래도 거물 정치인 아들이기도 하고, 이세형 자체가 유명하니까. 보안이 좀 빡세.”
“그럼 재활도 재활의학과 과장이 직접?”
“그렇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세형의 두 다리는 멀쩡한 상태.
그럼에도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건, 신경외과 과장과 재활의학과 과장도 짜고 치는 중이라는 뜻이다.
“신경외과 과장하고 재활의학과 과장. 어떤 사람들이야?”
“재활의학과 과장은 잘 모르고, 우리 과장은 정말…….”
동진은 주변을 살피며 아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출세지향적이야.”
“출세지향적?”
“지금 원장이 원장 자리가 간당간당 하다는 말이 있거든. 그래서 정치 쪽으로 줄을 대고 싶어 해. 지금 병원 요양센터 설립인가 문제 때문에 골머리 앓고 있어서, 그것만 잘 해결하면 당연히 원장 연임할 테니까.”
“그런데?”
“그래서 원장이 지금 자기 자리 유지하는 데 도움 주는 사람을 승진시켜 줄 거라는 얘기가 있거든?”
“그걸 노리는 게 너희 과장이다?”
“그렇지.”
동진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장 아들이 지금 우리 과잖아. 그래서 정말 전생에 애인 사이였나 싶을 정도로 챙긴다니까.”
“얼마 전에 과장이 너한테 VIP 소개해 줬다고 하지 않았어?”
내 물음에, 동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처음에 과장이 VIP한테 나 인사시켜 주고 나서, 수술할 때도 내가 OR 들어갔었거든? 근데 중간에 문이 열리더니 원장 아들이 슥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뭔가 했더니, 손이 모자라서 불렀대. 손 하나도 안 모자란데.”
“그래서?”
“그 뒤로 OR에 그 새끼가 들어가던데?”
“……그렇구만.”
“뭐, 됐어. 내가 뭐 언제부터 그런 VIP 잡아 봤다고.”
“그럼 너희 과장, VIP들한테 거짓 진단서도 써 주고 그러겠네.”
동진은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당연하지. 야, 우리 과장 업자야, 업자.”
“무슨 업자?”
“정재계 인사 자녀 군 면제, 검찰출두할 때 진단서 등등. 온갖 거 다 끊어 주는 업자.”
여기서 이미 답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세형 역시도 그 과장의 덕택으로 지금까지 장애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의료계를 떠나는 날이 오면, 그 새끼 업자인 거 폭로하고 나간다. 두고 봐.”
굳이 동진이 의료계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폭로할 필요는 없다.
그건 내가 해 줄 작정이니까.
어차피 이세형의 사기극이 터지면, 그 뒤를 봐줬던 병원 관계자들도 전부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특히 거짓 진단서를 끊어 줬던 신경외과 과장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신경외과 과장을 털기 시작하면, 그가 거짓으로 진단서를 끊어 준 정치인 자녀들이 누구인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선생님! 여기 계셨네요?”
그때, 젊은 의사 한 사람이 우리 앞으로 달려왔다.
“어, 이 선생. 왜, 무슨 일 있어? 콜 없던데?”
“아, 그건 아니고요. 방금 과장님 출장 갔다 돌아오셨는데, 선물 사오셨다는데요?”
“그래? 그럼 내 건 내 자리에 둬.”
“……직접 받으러 오라는데요.”
“에휴, 알았다.”
동진은 구시렁거리며 일어났다.
“들어가야 해?”
“엉. 아, 주한아. 나 부탁 있는데.”
“부탁? 뭔데.”
“일단 같이 올라가자.”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를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동 앞 휴게 장소에서 잠시 기다리라 하기에, 나는 입원 환자들 사이에 섞여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동진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20분쯤 지났을까.
다시 나온 동진은 한 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주한아.”
“어, 왔어? 그런데 너희 과장은 무슨 선물을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해?”
“그러게나 말이다. 고작 초콜릿 쪼가리. 초콜릿 박물관에서 사 왔단다. 처놀러 갔나, 아오. 확, 진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나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나 쪼꼬렛 싫은데, 너 먹어라.”
“됐어.”
“아, 너 먹어. 부탁할 것도 있으니까 뇌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억지로 나에게 초콜릿 상자를 건네더니, 손에 들고 있던 큰 쇼핑백을 나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내 양말이랑 속옷. 집에 가는 길에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 맡기고 가줄래? 하하. 어차피 지금 와이프 집에 없어서.”
“제수씨 집에 없는데 빨래는 왜 갖다주는데?”
“애들 데리고 친정 갔다가 밤늦게 온다더라고. 당장 모레부터 입을 게 없는데 와이프가 가지러 올 수가 없는 상황이야. 나도 원래 오늘 집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네가 갑자기 부탁할 게 있다고 찾아와서 못 간 거잖아. 부탁할게?”
“야 이,”
“간다! 미리 고맙다!”
그는 어느덧 손을 흔들며 저 멀리 의국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쇼핑백을 들어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동진의 집은 우리 집에 가는 길도 아니고, 반대 방향이다.
동진이 부탁한 대로 경비실에 그의 속옷과 양말을 맡긴 뒤, 나는 다시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습관적으로 그냥 내렸다가, 문득 그가 나에게 억지로 넘겨주었던 초콜릿이 생각나 다시 꺼내 왔다.
독일어가 잔뜩 쓰여 있는 초콜릿은, 직접 와서 받아 가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선물도 아니었다.
초콜릿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씻고 나와 소파로 가 앉았다.
무감한 눈으로 TV 채널을 돌리고 있을 무렵.
‘잠깐.’
이세형이 척수 수술을 받으러 갔던 곳이 독일 아니었던가?
아직 선거일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이세형이 선거일에 맞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 척하려면 슬슬 수술받은 시기도 이쯤으로 맞춰야 한다.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서류도 떼놓아야 할 테고.
그 준비를 하기 위해 과장이 독일에 다녀온 것이라면?
“…….”
나는 초콜릿 상자를 바라보았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영어와 비슷한 면이 많으니 한 번 훑어보았다.
[Schokoladenmuseum Köln]쾰른 초콜릿 박물관이라고 적혀 있다.
과장이 이것을 초콜릿 박물관에서 사 왔다는 얘기는 이미 동진에게 들었고.
과장이 출장이랍시고 다녀온 곳이 쾰른이라는 건데.
나는 포털 사이트에 단어를 몇 개넣어 검색했다.
[Köln Rückenmark]쾰른, 척수.
두 가지 단어를 넣었을 뿐인데, 바로 가장 위에 뜬 검색 결과는 병원이었다.
그리고 그 병원의 영문 이름을 다시 검색창에 넣자, 영문 페이지가 주르륵 떴다.
쾰른에 위치한 세계 제일의 척수 전문 병원에 대한 웹 문서들이었다.
척수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에 걸린 환자들이 이곳에서 수술을 받고 다시 걷게 되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나는 바로 동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주한아. 내 양말하고 속옷은 잘 놓고 갔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희 과장 말이야.”
우리 과장? 왜?
“독일에 출장 갔던 목적이 뭐였어?”
-출장 목적? 학회 참석하러 간 거라고 들었는데? 나도 잘은 몰라.
“흐음, 알았어.”
신경외과 과장이 참석할 만한 학회라면, 당연히 그쪽 계열 학회겠지.
나는 다시 한번 포털에 영어로 [쾰른, 신경학회]라고 입력했다.
‘역시, 신경학회는 무슨, 다른 학회도 그 시기에 열린 적은 없었어.’
그렇다면 이제 답은 하나다.
이세형은 여기서 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수술을 받으러 가는 척하기 위해 극비리에 준비 중인 게 분명하다.
이세형은 분명 출입국 기록을 확실하게 남겨 두기 위해 정말로 쾰른으로 출국할 것이다.
이정찬이 그 정도 증거도 남겨 두지 않고 거짓말을 할 바보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전에 이세형의 거짓말을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