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17)
너희들은 변호됐다-217화(217/641)
[정확히 어제저녁 8시 30분이었죠? 이정찬 민우당 대표의 아들인 이세형 씨가 복지사로 근무하던 빛과 소금 장애인 복지 재단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었죠. 네, 하반신 마비였던 이세형 씨가 두 다리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 편이다.
마침 아침 시간에 듣기 좋은 목소리로 시사 이슈를 짚어 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어, 보통 라디오 채널은 이쪽으로 맞춰 둔다.
역시 오늘 가장 먼저 다룬 이슈는 이세형에 대한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세형 이야기를 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서도, 아침 뉴스에서도, 라디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이세화 자유정의당 대표는 이정찬 대표에게 즉각 해명하라는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민우당 게시판은 이세형 씨에 대해 해명하라는 글로 마비가 된 상태라고 하는데요. 아직 민우당 측에서는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않은 상태입니다.]처음부터 이정찬이 해명을 빠르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섣불리 아니라고 대답했다가는 또 어떤 증거가 나와 그들을 곤란하게 할지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정찬의 대국민 사기극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정치 스캔들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어, 강 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출근했어?”
사무실에 도착하니, 강민재가 상담 테이블에 오 사무장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진 않았을지 궁금해서 눈이 일찍 떠지더라고요.”
“할아버님한텐 잘 말씀드렸어?”
“네. 바로 자유정의당 입장 뜬 거 보셨잖아요.”
“그게 할아버님 입김이었어?”
“하하. 네.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 거시던데요.”
자유정의당의 대응이 빠르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강관웅의 압력인 줄은 몰랐다.
퇴임 이후 정치와는 담쌓고 사는줄 알았더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계속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민우당에 적을 두고 있는 현 대통령 밑에서, 박영기 차장을 바로 중앙지검 3차장으로 꽂을 때도 내심 놀랐었는데.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현 대통령이 레임덕으로 고생하는 상황이니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방송 보니까 최 기자 경찰서 간 것 같던데, 그건 괜찮은 거예요?”
이야기를 듣던 오 사무장이 물었다.
“오면서 통화했습니다. 제보받고 움직인 거라고 계속 부인했고, 우선은 풀려났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수사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하니, 그쪽도 준비해야죠. 최종현 기자 수사 쪽은 강 변이 맡아서 해.”
“제가요? 제가 그런 걸 맡아도 되는 거예요?”
강민재는 상당히 감동받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려운 일 아니잖아. 어차피 수사 단계에서 혐의없음 나올 텐데. 증거 제출이랑 절차들 도와주란 얘기야.”
“넵! 알겠습니다!”
강민재는 신난 듯이 벌떡 일어나 바로 최종현에게 전화를 걸며 베란다로 나갔다.
저렇게 좋은 걸까.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오 사무장도 그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강 변하고 함께 하길 잘한 것 같죠?”
오 사무장은 아닌 체하지만 내심 강 변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그가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두고 봐야 알죠.”
“변호사님도 참, 변호사님이십니다.”
“제가 왜요?”
“변호사님도 웃고 계시잖아요.”
“제가요?”
“네. 지금 입꼬리 올라갔는데요.”
내가 그랬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 그만 내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오전은 달리 새로운 이슈 없이 평탄하게 지나갔다.
여의도 민우당사 앞에 이정찬의 해명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운집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그리 수는 많지 않았다.
아직 화력이 모일 타이밍은 아니었다.
이정찬이 이대로 도망치기 위해 출국한다든지 하는 악수를 두지 않는 한, 시위가 대규모로 불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정찬이 그런 악수를 둘리도 없다.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가, 스캔들 하나 때문에 모든 정치 인생을 버리는 선택을 할 리는 없다.
사람은 욕망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며, 그중 정치인이라는 작자들은 그러한 속성이 더욱 확대된 종족들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 영화를 누리면서도 자신의 권력의 원천인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정찬의 경우, 그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지지자들이 남아 있는 한 그 어떤 스캔들이 터지더라도 계속 이 바닥에 하이에나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어차피 국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을 것이고, 다시 자신을 찍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빛과 소금 장애인 복지 재단을 수색한 결과 화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행사장 내부에서 공연용 드라이아이스 한 무더기와 함께 무언가를 태운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화재를 가장하기 위하여 건물을 정전시킨 뒤, 연기와 타는 냄새를 연출하기 위하여 장치한 것이 같다는 의견입니다.]점심 무렵, 빛과 소금 장애인 복지재단에 정말 화재가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설마 이세형이 두 다리로 걷는 것을 포착하겠답시고, 인명 피해가 따를지도 모르는데 진짜로 불을 낼 리가 없지 않은가.
[bkl*** : 공연용 드라이아이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쳤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100*** : 근데 진짜 머리 좋은 듯ㅋㅋㅋㅋ전체 정전시켜서 껌껌한데 드라이아이스 때문에 연기는 엄청 나고 탄내까지 진동하면 당연히 불난 것 같지
ㄴmou*** : 근데 그것도 범죄 아님? 인터넷에서 보니까 그 인터넷 방송하는 기자 걔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됐다던데
ㄴ100*** : 최종현 기자는 제보받고 현장에 가 있었다고 방송에서 증거 댔음ㅋ 그리고 솔직히 정의구현한 건데 범죄여도 아닌 걸로 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인간적으로 저 사건 아니었으면 계속 이정찬이랑 이세형한테 전국민이 놀아났을 거 아님
ㄴkil*** : 아무리 그래도 범죄는 범죄죠; CCTV 확인하면 누군지 나오겟죠. 그리고 아직 이정찬 입장 안 떴는데 벌써부터 이세형 사기극이라고 단정짓는 건 좀…
ㄴdaw*** : ㅋㅋ세형이 왔능가]
소방당국의 발표 직후, 이 사건은 더욱 인터넷에 크게 퍼졌다.
물론 이세형이 두 다리로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급력은 컸지만, 이렇게 되면 누군가가 이세형의 사기극을 입증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 알려진 셈이다.
사람들은 대결 구도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의를 구현하려는 누군가와 이정찬의 대결 구도라니.
마치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이 아닌가.
“정전시켜 놓고 드라이아이스하고 탄내 풍기는 건 정말 대박 아이디어긴 했죠.”
오 사무장도 인터넷 반응을 살피며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엔 정말로 불을 내야 하나 아주 잠깐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재경보기가 울린다고 해서 대피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선을 넘는 것 같아, 곧 생각을 접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빛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정전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휴대폰을 광원 삼아 주변을 확인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드라이아이스였다.
하지만 단순한 연기 하나만 가지고서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후각적인 효과도 필요했고 말이다.
준상은 내가 지시한 타이밍에 맞춰 건물 전체를 정전시켰고, 화재경보기를 누른 뒤 ‘불이야!’ 소리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잠시 뒤, 정혁이 어둠을 틈타 곧바로 행사장으로 잠입하여 공연용 드라이아이스로 연기를 내고 행사장 주변에서 종이를 태웠다.
사람들이 동요하자, 정혁은 바로 이정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이정찬의 지시를 받아, 이세형을 구하러 간 것이다.
두 사람이 내 지시를 칼 같이 지키며 빠릿하게 움직여 주지 않았거나 조금이라도 합이 맞지 않았더라면 들통났을 것이다.
“이 사건, 어떻게 될 거라고 전망 하십니까?”
“우선 이정찬 측 입장문이 나와 봐야 압니다. 제대로 된 해명이 나오지 않으면, 곧 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정찬은 대통령 후보로 나오지 못하겠죠. 당 대표도 교체될 겁니다. 그럼 그때 명화제약 건까지 엮으면 됩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세형이 걸을 수 있었던 설득력 있는 이유를 내놓는다면…….”
“저희도 한 방 더 쳐야겠군요.”
“맞습니다.”
그때,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최종현이었다.
[오늘 저녁 7시 민우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 소집했음.]드디어 입장 발표인가.
굉장히 기대되는데.
* * *
민우당사 앞은 유례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해명을 촉구하는 사람들과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기자들.
그리고 방송국 차량까지.
당 대표실 창가에 서서 블라인드를 조금 벌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찬은 불편한 헛기침을 하며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대표님, 물 한 잔 드릴까요.”
연신 헛기침을 해 대는 이정찬을 살피던 비서가 물었다.
이정찬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하게 팔걸이를 두드렸다.
비서가 잠시 나간 사이, 팔걸이를 두드리던 이정찬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참의 전화 연결음 끝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안 청장. 날세.”
-예, 대표님.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릴까 하고 있었는데, 좀 어떠십니까?
“어떻긴. 당사 앞에 기자 새끼들 우글거리지. 시원하게 물대포라도 쏴서 다 치워 버리고 싶을 지경이야.”
이정찬이 혀를 쯧쯧 차며 말하자, 안 청장이 작게 웃었다.
“어떻게 된 게 아직도 연락이 없나. 어떤 새끼가 그따위 짓 했는지, 그거 하나 알아보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어?”
-죄송합니다. 계속 담당 경찰서에 압박은 넣고 있는데, CCTV 확인이 조금 원활하지가 않아서…….
“자네. 어떤 놈이 이따위 짓 벌였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할 거야.”
그때, 시계의 시침이 정확히 정각을 가리켰다.
물을 준비하러 나갔던 비서가 들어와, 에게 약속된 회견 시간이 되었다고 귓속말을 해 주었다.
“이만 끊겠네.”
-예. 보중하십시오, 대표님.
이정찬은 전화를 끊은 뒤, 비서가 가져온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동안, 비서는 기자회견실과 연결된 텔레비전 화면을 켰다.
아직 대변인이 나타나지 않은 기자회견장에, 기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장현 민우당 대변인이 앞문을 열며 등장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저, 저, 미친놈들. 그저 사건 생기면 좋다고 모여서는. 기자라는 것들이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 뭔지도 모르고 말이야.”
이정찬은 언짢은 얼굴로 팔걸이를 내리쳤다.
화면 속 마이크 앞에 도착한 오장현이, 준비된 원고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지난 25일 저녁, 빛과 소금 복지재단에서 발생한 사건에서, 저희 민우당 대표 이정찬 의원의 아들인 이세형 씨가 걷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이에, 이정찬 대표와 이세형 씨는 국민께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저희 민우당이 이세형 씨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 했다는 낭설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세형 씨의 장애 사실 역시 전부 꾸며낸 것이라는, 악의적 여론 또한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민우당은, 사실을 바로잡으려 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이세형 씨는 지난달 척수 손상 수술을 받았으며,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지금은 재활 중에 있지만, 아직은 걷는 것이 미숙하여 훨체어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처럼 온전히 걸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재활을 조금 더 받아 보아야 아는 상황이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세형 씨는 혹시나 같은 장애를 앓고 계셨던 분들께서 수술 성공으로 희망을 얻었다가, 또다시 실망하실지도 모르니 재활이 끝날 때까지 수술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 왔고, 저희 민우당 역시 이에 공감하여 비밀에 부치고 있었습니다.
현재 이세형 씨는 똑바로 서는 것이 가능하며, 도움을 받으며 걷는 것이 가능합니다. 자유롭게 혼자서 운신할 수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제의 사건에서도, 동영상을 확인하시면 수행원의 손을 잡고 나오는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 민우당은 단 한 번도 거짓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끝으로, 일부 음해 세력이 저희 민우당과 국민 여러분의 결속력을 흩트리기 위해 프레임화하는 현 상황에 대하여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