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2)
너희들은 변호됐다-22화(22/641)
양한석 검사는 부장실 앞에 서서 이를 딱딱 부딪쳤다.
재판의 결과가 극명하게 갈리던 순간, 방청석에 있던 황영찬이 몹시 분개하여 법정을 떠났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을 호출했다.
어마어마하게 깨질 것이다.
이번 재판이 끝나면 높으신 분들과 자리를 마련할 테니 같이 나가자고 했는데, 그 약속은 유효한 것일까.
복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을 흘긋 쳐다보고 지나갔다.
더러는 수군 거리기도 했다.
직접 들리지는 않았으나, 아마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양 검사 재판에서 차주한한테 개망신당했다며?’
양한석 검사는 주먹 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부장실 문을 열었다.
“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사무관에게 묻자, 그들은 조용히 방 문을 가리켰다.
양한석은 한숨을 내쉬며 느릿느릿 그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부장실로 들어오면서 마음의 준비를 다 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다.
문고리에 손을 뻗긴 했지만, 선뜻 잡지 못하겠다.
-뭘 꾸물대고 있어! 들어오지 않고!
방 안에서 황영찬의 호령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양한석 검사가 잽싸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황영찬은 그를 등 진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고작 중년 남자의 뒷모습에 양한석 검사는 위축됐다.
“자신 있다고 했었지?”
“…….”
“아무리 차주한이어도 무조건이라고. 자네 입으로 말했지?”
“면목 없습니다!”
양한석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소리쳤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죄송합니다.”
“애매한 것도 아니고,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가 있었는데! 그걸 검찰이 못 찾아서 이 개망신을 당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그것도 첫 사건부터 친정 저격하는 미친놈한테!”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황영찬은 양한석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양한석은 폴더처럼 접혀 있었다.
“조진태 살인 사건 얘기까지 다시 올라오고 있어! 그거 차주한이로 배당 옮긴 다음에 그놈이 해결했다고, 그 과정에서 차주한이 검찰에 환멸 느끼고 사표 쓴 거 아니냐고! 그래서 일부러 저격한 거 아니냐고! 검찰이 언론에서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황영찬이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그때마다 양한석은 움찔거렸다.
“차주한이 재판을 그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는데. 고작 5년 차가…….”
황영찬이 중얼거리자, 양한석이 끼어들 틈을 찾았는지 고개를 불쑥 들어 올렸다.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차 선배 재판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무슨 20년 차 보는 줄 알았습니다. 특히 김형준 사업 걸고 넘어지면서 범행 동기 만들려는 수작인 게 분명해서, 일부러 김형준한테 선수 치라고 했는데……. 그때도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심문을 하더군요. 게다가 분위기 가져가는 것도 정말,”
“입 다물어.”
양한석은 나름대로 자신이 질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황영찬에게는 그렇게 들릴 리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차주한 칭찬이라도 하는 것 같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차주한, 일부러 증거 목록에 그 비디오 안 올리고 쇼한 거야. 아니, 처음부터 그 비디오를 갖고 왔으면 당연히 재판 전에 공소 취소됐을 거고. 그럼 재판에서 개망신당할 일도 없었어.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그 말을 들으니 양한석도 생각나는 구석이 있었다.
갑자기 증거가 생겼다며 비디오를 들고 나왔을 때, 한 번 의심하기는 했지만…….
“차 선배가 위임장 받아서 부검 결과 가지러 왔을 때……. 그때 저한테 무죄 입증이 아니라 감형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부장님도, 저도 차 선배가 뻥카 칠 줄은 생각도 못 하지 않았습니까. 차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군. 갑자기 180도 달라진 것도 그렇고. 어디 뒤 봐주는 사람이라도 생긴 건가…….”
무슨 검찰 짬 20년은 먹은 것처럼 재판에서 날아다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원래부터 능력이 출중한 놈이었던 것은 인정한다.
연수원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놈이다.
그래서 황영찬이 키우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이런저런 실수도 했었고, FM 로봇이라는 별명처럼 우직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짓말까지 슬슬 치면서, 재판에서 쇼까지 벌였다.
고작 30대 중반밖에 안 되는 놈이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것처럼 이렇게 갑자기 변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강민재. 그놈은 뭐야?”
황영찬이 불쑥 생각난 듯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한심하군. 제대로 아는 게 없어.”
“죄송합니다. 김형준이 운영하는 공장에 차 선배 사무실 사람이 다녀갔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게 강민재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휴정 때 갑자기 차 선배하고 접촉하는 거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차주한이 법정을 나가기가 무섭게 양 검사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법정 바깥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강민재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무언가를 건네는 걸 보기는 했는데, 그게 재판의 결정적 증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는 것은 강민재가 차주한과 움직였다는 뜻인데.
‘대체 왜?’라는 의문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는 지금 태광에 몸담고 있지 않던가?
심지어 태광에서 가장 몸값 높기로 유명한 시니어 밑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몇 년만 지나면 성적과 상관없이 어쏘 변호사 탈출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갓 개업한 차주한의 밑에 있단 말인가?
“혹시 차 선배 뒤 봐주는 사람이 강민재 할아버지.”
“입 다물어! 어디서 함부로 그런 말을 입에 올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황영찬의 호령에 양한석이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양한석과 같은 생각을 한 듯,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한석은 그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자네, 김형준이 기소하고 재판 제대로 마무리지어.”
한참 뒤, 황영찬이 다소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양한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배당하겠다는 소리는 않는 것을 보면, 기회가 완전히 날아간 것은 아닌 듯했다.
“시말서도 써서 가져오고.”
“……예.”
“자네가 차주한이를 대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 그때 다시 부르지. 그전까지는 검사실에 처박혀서 자네 할 일이나 똑바로 해.”
그 말에 양한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황영찬이 이번 재판이 끝나면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모든 것이 눈앞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만 나가 봐.”
황영찬의 쌀쌀맞은 목소리에, 양한석은 다시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부장실을 나갔다.
“도대체 써먹을 만한 놈이 없어.”
황영찬은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키워 줄 만한 싹이 보이는 사람을, 차주한을 대신할 사람을 하루 속히 찾아야 했다.
* * *
김연준은 구속에서 풀려나고 바로 연락을 취해 왔지만, 나는 그에게 충분히 쉬고 찾아오라고 말했다.
마음고생도 심했을 것이고, 만날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테니 한동안 전화기는 꺼 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큰 사건 하나를 마무리 지었으니 나도 조금 쉬어야 했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상태라, 나와 강민재는 충분히 잠을 잔 후 저녁에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변호사님, 오셨습니까?”
해가 진 후, 사무실로 들어가자 강민재가 미리 한쪽에 안줏거리가 든 봉투를 놓아둔 상태였다.
인근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사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차려 놓은 것을 보니 나가자고 하기는 글렀다.
“술도 가져왔습니다. 승소 기념 선물입니다.”
그가 포장도 뜯지 않은 위스키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술이다.
조금 부담스럽다.
“소주 마시면 되지, 무슨 위스키야.”
“주류 마트에서 사면 별로 안 비쌉니다. 얼음 없을까 봐 얼음도 사 왔어요.”
위스키에 어울리는 안주들과 얼음통에 집게까지.
준비 한번 제대로다.
“저녁 식사하셨습니까?”
“강 변이랑 먹으려고 안 먹고 왔는데. 나는 인근 식당에나 갈까 했거든.”
“그러실 것 같아서 피자도 시켰습니다. 피자 괜찮으시죠?”
검사실에서 꽤 자주 먹던 메뉴다.
먹으면서 일하기도 편하고, 잔반도 남지 않아서 처리도 용이했으니.
그가 내 검사실에서 시보를 지냈으니, 내가 선호하는 메뉴라는 것을 알았을 터였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왔더니, 그새 피자가 도착해 있었다.
나와 강민재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검사 시보 때 생각나네요. 변호사님은 생각 안 나시겠지만 말입니다.”
둘이서 한 판을 해치우고, 내가 박스를 접는 동안 그가 얼음통에 얼음을 담아 왔다.
온더락 잔도 두 잔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전화가 안 오니까 평화롭네요.”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 때문에 전화선도 뽑아 놓고, 휴대폰도 다 꺼 놓은 상태였다.
사무실로 오는 동안 확인한 바로는, 나를 둘러싼 온갖 추측들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 목적은 이름을 알리고, 좋은 이미지를 쌓는 것이었으니.
검찰의 졸속 수사를 비판한 전 검사.
마치 내부 고발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김철환, 여희숙 부부 살인 사건의 진범이 너무나도 극악무도했기에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아마 꽤 내 이름이 알려졌을 것이다.
“건배 어떠십니까?”
강민재가 나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검찰에서 회식할 때는 각종 낯뜨거운 건배사를 외쳐야 했는데, 그런 게 없는 것도 편하다.
챙!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동시에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전 삶에서 절대 입에 대지 않던 술을, 10년 전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벌써 두 번째 마시고 있다.
물론, 취할 정도로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변호사님.”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겪었던 갖은 에피소드를 신나게 떠들던 강민재가, 문득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저 고용해 주십시오. 잘할 자신 있습니다.”
분명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이번 사건만 끼워 주겠다고 말을 해 두었으니, 이제는 그와 볼일이 없는 셈이니까.
“강 변.”
“네?”
“강 변은 왜 김형준이 진범이라고 생각했지?”
내 물음에 강민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저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그 추론 과정.”
“그게 전부야?”
“네.”
강민재의 머리 위에 떠오른 글자는 [거짓]이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그에게서 본 적 없는 글자였다.
“아니잖아.”
“네?”
“그렇게 생각한 이유. 또 있잖아.”
내 말에 경계심이 실린 것을 눈치챘는지, 강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막무가내로 끼워 달라며 덤벼들기에 한 번은 못 이긴 체 넘어가 줬다.
마침 너무 타이트한 일정이라 조력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또, 강민재가 이 사건만큼은 진실되게 김연준이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고.
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태도를 바꿨다.
처음에는 ‘이 사건에 끼워 달라’고 했다가, 점점 고용해 달라고 장난 섞인 압박을 넣기 시작했다.
아무리 10년 전 기억이라지만, 강민재는 내 인생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시보가 끝난 후에는 마주친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변호사님. 제가 수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내가 아무런 목적 없이, 평범하게 개업한 변호사였다면 강민재를 반겼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부족한 서글서글한 면도 있고, 눈치도 빠르고, 열심히 하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하지만 내 상황은 다르다.
나는 최종 목적이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아무도 쉬이 믿어서는 안 된다.
같이 일할 사람 하나 잘못 골랐다가, 후에 어떤 약점을 제공할지 알 수 없다.
“글쎄.”
“선배님이 개업하시고 처음 맡는 사건이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감형이 목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지켜봤고요.”
강민재는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발표된 2차 부검 결과를 들으니, 김형준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처음이 사건 맡으신 이유가…… 어쩌면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확신하는 거지, 강 변한테는 그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을 뿐이야. 강 변이 확신할 이유는 없을 텐데.”
“……네. 사실 전 김연준의 무죄를 확신하는 게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