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20)
너희들은 변호됐다-220화(220/641)
“아직도 누구 짓인지 못 찾아냈어?!”
이정찬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비서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여태까지 대국민 사기극을 벌여오신 거라면, 깨끗하게 인정하시고 사죄하세요. 만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신다면……. 공개하지 않은 다른 증거가 하나 더 있는데. 이것까지 공개할 생각입니다. 이게 공개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회 드릴 때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시길 바랍니다.]화면 속 조봉준이 실실 웃으며 던진 말과 함께 방송은 그대로 끝이 났다.
인터넷 방송이나 하는 BJ 나부랭이가 감히 여당 대표를 향해 하는 말꼬라지를 보라지.
이정찬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저, 저 최종현이라는 놈이 제보받았다던 사람, 그거 조사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어떻게 됐어. 그거 추적해서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대체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이정찬은 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엎을 기세로 소리쳤다.
그러자 비서진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그중 한 명이 조심스립게 입을 열었다.
“방금 전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긴 했습니다만……. 전화를 걸었던 용의자가 대포폰을 사용해서, 추적하기가 어렵다고…….”
“뭐?”
비서진들은 더는 말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어떤 놈이 그따위 짓을 벌였는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야, 지금?”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대표님.”
이정찬은 괴성을 지르며 책상 위에 있던 책들을 집어 던졌다.
목과 관자놀이에 핏대가 뻣뻣하게 섰다.
이럴 때 이정찬의 곁에 있는 것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라, 비서진들은 다시 한번 눈치 싸움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더 조사할 게 없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고개를 숙여 보이고 방을 나서려는데, 문득 이정찬이 입을 열었다.
“이강진이. 이강진이 지금 당장 오라고 해.”
“빛과 소금 재단의 이강진 목사 말씀이십니까?”
“그럼 이강진이 그 목사 새끼 말고 더 있나?!”
“죄송합니다, 대표님. 바로 연락 넣겠습니다.”
이정찬이 다시 한번 소리치자, 비서진들이 빠릿하게 대답하고는 방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홀로 남은 이정찬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들이 가진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라는 게 뭐지? 대체 뭐길래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아무리 생각해도 틈은 없었다.
물론 저번 달에 수술을 받았다는 사람이 출근은 어떻게 했냐는 의혹이 더러 제기되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민우당에서 입장을 발표하기 전부터 빛과 소금 재단 측과 말을 잘 맞춰서 출근기록부터 조작했다.
CCTV도 전부 삭제 조치했고, 그와 함께 있었던 재단 직원들에게도 섭섭지 않게 챙겨주고 함구시켰다.
다행히 지난달에는 눈에 띄는 행사에 참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신원을 확실하게 확보한 몇 사람만 잘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 뭐란 말인가.
뭐 때문에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입증할 수 있다고 떠드는 것인가.
세상이 좋아져서 그렇지, 20년 전만 됐었어도 저런 놈들은 당장 잡혀갔을 것이다.
이것은 여당 대표에 대한 도전이고,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호출을 받은 이강진 목사가 헐레벌떡 이정찬의 자택에 도착했다.
이정찬과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왔지만, 이렇게 집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여당 대표의 집답게 호화로웠지만, 구경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정찬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비서진의 충고를 들으며, 이강진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그의 방에 노크했다.
“장로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방 안에 들어선 이강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이정찬은, 그 목소리에 홱 뒤를 돌아보았다.
“목사님, 아직입니까.”
“…….”
“벌써 며칠이나 시간을 드렸는데, 아직도 그따위 짓을 벌인 사람이 누군지 못 찾아낸 거예요?”
“장로님, 그게 시간이 좀…….”
“들어보니 그날 행사에 참석했던 차주한이라는 변호사. 그 사람이 그 인터넷 방송인지 뭔지 하는 기자 나부랭이들하고 친분이 있다면서요. 게다가 그 변호사는 교인도 아니고, 심지어는 행사 일주일 전에 갑자기 기부해서 그 행사에 참석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연락 한번 해 보지 않은 겁니까?”
이정찬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려 노력했지만,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강진 역시 언제나 웃는 얼굴로 자신을 대하던 이정찬 장로의 변해버린 모습에 어쩔 줄을 모르고 눈을 굴렸다.
“차주한 변호사와 만나보긴 했습니다, 장로님. 하지만…….”
“하지만, 뭡니까.”
“아시잖습니까. 모든 후원자분들은 저희 재단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사안이 긴급하다고 해도, 아무 잘못 없을 수도 있는 사람을 몰아붙이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이 많은 자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때까지 고통받으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께서도 때가 이르기 전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어둠에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라 했으니, 정말 차 변호사 소행이라면 곧 증거가 드러날 겁니다. 무엇보다 저희 입장도 있고…….”
“재단 입장? 하, 목사님…….”
이런 상황에 일장 연설이나 늘어놓는 이강진을 보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자신들의 입장이 있으니 섣불리 차주한을 몰아세울 수는 없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정찬은 가까스로 인내하며 천천히 이강진에게 다가갔다.
“빛과 소금 재단이 지금 위치에 오르기까지, 저와 세형이 그리고 민우당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한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위기는 빛과 소금 재단의 위기입니다. 저 마귀 같은 작자들이 지금, 주님의 은혜를 입어 걷게 된 세형이를 의심하고 음해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걸 그냥 두고만 보시겠다는 겁니까?”
“두고만 보겠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차주한 변호사를 몰아붙일 수 없는 저희 입장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는 중이니까,”
“목사님. 피아식별 똑바로 하세요. 지금 차주한 변호사를 싸고돌 때가 아닙니다. 이 일이 잘못되면 끝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더는 재단을 돕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신뢰를 저버린 재단과 어떻게 큰일을 도모하겠습니까?”
이정찬이 단호하게 말하자, 이강진 목사가 떨리는 손을 다잡았다.
이강진은 이 순간 느꼈다.
어쩌면, 이정찬과는 여기서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장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저희 재단도 충분히 장로님 편의 봐 드렸습니다. 저희한테 주신 후원금, 전부가 저희가 썼습니까? 민우당에 당적 두신 후원자분들께서도 다 아실 겁니다. 저희 재단으로 들어온 후원금 대부분이 이정찬 장로님 정치 자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요. 저희 재단을 이정찬 장로님 이미지 제고하는 데에 이용하셨고, 저희가 각종 세금 관련 편의까지 봐 드렸습니다.”
“뭐요? 목사님.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저희도 이세형 복지사와 오랜 시간 연 맺어 왔고, 이세형 복지사와 이정찬 장로님께서 평화롭게 사건 마무리 지으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요. CCTV에 붙은 이물질 때문에 당일 아무것도 잡힌 게 없었고, 내빈 전부 대조해 보았지만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
“막말로, 저희야말로 이세형 복지사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습니다. 장로님 말씀대로 정말로 수술을 받아서 걸을 수 있게 된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건지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장로님께서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언제 장로님께 원망 섞인 말을 단 한 번이라도 했었습니까? 장로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세형 복지사 출근기록도 삭제해 드렸고, 최선을 다해서 협조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재단에까지 불똥이 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대한 상황이 잘 마무리돼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 것은 다름 아닌 이강진이었다.
그럼에도, 재단장을 맡고 있는 입장에선 미래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쪼록 상황이 잘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장로님도, 이세형 복지사도 다치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저희 모두 기도하겠습니다. 무언가 증거가 될 만한 게 나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강진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이정찬의 방을 나섰다.
닫힌 방문 앞에 선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단 한 번도 이정찬에게 이런 소리를 해 본 적은 없었다.
평소에도 이정찬이 재단을 마치 자신의 개인 소유 단체라고 생각한다고 여겼고, 이에 불만이 많았지만 한 번도 티를 낸 적은 없었다.
이강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만일 지금이 지는 해를 목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재단을 위해 이정찬과는 끊어 내야 한다.
“배은망덕한 새끼!”
이강진이 떠난 방 안에, 얼이 빠진 채로 서 있던 이정찬이 소리를 질렀다.
빛과 소금 재단은 이 이정찬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운영조차 되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재단을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복지 재단으로 키운 것이 누구인가.
그런데 감히 누구 앞에서…….
이정찬은 이강진이 머물렀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차주한을 의심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의심했던 어리석은 자들의 일화를 든단 말인가.
이건 대놓고 차주한의 편을 들겠다고 나선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이강진은 자신을 버리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설마…….’
그 인터넷 방송하는 기자놈들이 추가로 폭로하겠다는 게, 설마 저 이강진 목사 저 자식의 제보는 아닐까.
한 번 의심이 생기자,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믿을 사람이 단 한 놈도 없었다.
마음이 초조해져서 어쩔 줄을 모르던 차에,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이정찬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대답하자, 이윽고 문이 열렸다.
“……세형아.”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휠체어에 탄 이세형이었다.
이강진 목사가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휠체어에 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휠체어를 밀고 이정찬의 책상 앞까지 다가온 그는 말없이 떨어진 책들을 주워 정리했다.
이정찬은 그런 아들을 눈으로 좇았다.
“아버지, 많이 힘드시죠?”
“…….”
“저 때문에 아버지가 너무 많은 짐을 지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아들의 말에, 이정찬은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세형아. 마음 굳게 먹어야 한다.”
“……저보다는 아버지가 더 걱정이에요. 죄송해요, 아버지.”
“네가 뭘 잘못했다고. 다 내가 하자고 한 일인데, 네가 뭘 잘못했어. 왜 네가 죄송하다고 해? 잘못한 놈들은 따로 있는데!”
이정찬의 말에, 이세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는 아버지 뜻에 따를게요. 아버지가 인정하고 사과하신다고 하면, 저도 옆에 있을 거고요. 끝까지 아니라고 하실 거면, 저도 따를게요.”
이정찬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자신의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따위 놈들은 우리 적수가 되지 못해. 아무것도 없는데도 우리 반응 끌어내려고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부화뇌동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뜻을 밀어붙이자. 알겠지?”
“예, 아버지…….”
* * *
그리고 같은 시각, 도청기 앞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이정찬, 이세형 부자의 감동적인 대화를 엿듣고 있던 최상길이었다.
“지랄 육갑을 떠네, 미친놈들. 사기꾼 새끼들이 어디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