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23)
너희들은 변호됐다-223화(223/641)
박 차장이 말한 약속 장소는 여의도에 위치한 어느 한정식집이었다.
구한말에 지어진 한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이 한정식집은, 종업원들까지도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개량 한복을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식 맛은 말할 것도 없다.
정재계 인사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아무 약속 없이 와도 꼭 아는 사람 한둘은 만난다고 했던가.
이곳이라면 나도 온 기억이 있다.
물론, 이전 삶에서지만.
“이쪽입니다.”
내 이름을 대자, 종업원이 명단을 확인하고는 나를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방음도 잘 되는지, 여러 방을 지나왔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통로 가장 안쪽에 도착하자, 종업원은 미닫이문을 열어 주었다.
“어, 차 변. 왔어?”
나에게 약속 시간을 조금 늦게 알려준 모양이다.
이미 박영기 차장과 자유정의당 이세화 대표는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차주한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자, 이세화 대표가 빙긋 웃으며 나에게 박영기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뉴스에서 봤을 때도 인물 좋다고 생각했는데, 실물이 훨씬 낫네요. 방송국 고소해야겠어요, 차 변.”
“과찬이십니다.”
“반가워요. 이세화예요.”
그녀는 짧게 자른 단발을 귀 뒤로 넘기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선생님 예쁨받는 변호사가 누구인지 참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선생님은 당연히 강관웅을 말하는 것일 테고.
일전에 이세형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이 방송에 나갔을 때, 곧바로 강관웅이 이세화에게 연락을 넣어 해명을 촉구하는 성명문을 내게 했었다니 친분이 꽤 깊은 모양이었다.
강관웅과는 연배 차이가 많이 나니 선후배 관계는 아닐 테고.
그녀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박영기보다 더 위 기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관웅보다는 훨씬 아래.
나에게는 까마득한 선배다.
“법조계 동문회에서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요?”
“이 친구가 사모임 다니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그래요?”
이세화는 묘한 표정으로 계속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탐색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풍기는 인상으로,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다.
지금의 이세화는 대권 주자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민우당에 이정찬이라는 강력한 카드가 있어 유력한 후보라는 말은 듣지 못하지만, 자유정의당 지지자들에게는 꽤 인정받는 당대표였다.
이번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지만, 그다음 대선에는 출마한다.
그리고 당당히 당선되었다.
즉, 나는 미래의 대통령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박 차장한테는 얘기 들었어요. 이번 사건, 차 변 솜씨라고.”
오늘 만남이 있기 전, 박영기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이세화에게 알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강관웅은 그녀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나 역시 이견은 없었다.
한배를 탄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모든 것을 다 까서 보여 주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오픈해야 하는.
“그림이 재미있더라고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금은 악당 같기도 한 의문의 제보자가 정식 언론이라고는 결단코 말할 수 없는 인터넷 방송기자에게 엄청난 소스를 제보했다는 게요.”
처음부터 이정찬과 이세형의 사기극을 밝혀낸 이 사건에서, 내가 나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수단이 온전히 합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직 내 이름에 때가 타도 되는 때가 아니다.
“누구일까 참 궁금했는데, 그게 차 변이었을 줄은.”
무엇보다, 여태까지 나를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은 나와 내 동료들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세화는 지금 그 누구보다 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세화를 통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고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세화에게 내 실체를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 기자들이 명화제약 사건 밝혀냈던 사람이죠? 차 변이 사건 맡았던 것도 알고 있었는데 연관 지을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나는 그냥 차 변이 정말 들어오는 사건을 수임하는 평범한……. 아니, 평범하진 않지. 능력 있는 변호사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무슨 일을 주도해서 벌일 캐릭터일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이세화는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짧은 말이었지만, 나를 전부터 주시해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대표님께서는 저를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어요. 강민재 변호사가 태광을 박차고 나와서 차 변 밑으로 들어갔다고 했을 때부터 궁금했었거든요. 그리고 선생님은 왜 그런 강 변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셨는지도 궁금했고. 능력 있는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죠. 잊을 만하면 눈에 띄고, 또 잊을 만하면 눈에 띄더라고요.”
내가 맡은 사건들 중, 굵직굵직한 것들이 많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데, 전에 그 왜, 장명고 사건. 그것도 차 변 작품이에요? 사실 그런 소문을 들어 본 것 같긴 하거든요.”
“맞습니다.”
“하하하. 재밌네, 이 친구?”
이세화는 즐겁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왜요? 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물었다.
60대의 중년 여성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반짝였다.
나는 정점에 오르는 정치인들은 저마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관웅에게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했다.
게다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나는 찾지 못했지만, 이정찬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세화 역시 마찬가지다.
작당 모의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그녀는 묘하게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정의구현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해두면 안 되겠습니까.”
“정의구현? 검사 출신 다운 대답이네요. 정의구현 좋죠.”
이세화는 찻잔 끝을 손끝으로 둥글게 문지르며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기를 죽였다.
“그럼 베일에 싸여 있던 ‘제보자’ 차 변이 나를 만나 준 것도, 정의구현 목적이겠죠?”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인데?”
거물급 정치인들을,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만난 것은 이번 삶이 처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시험하려 한다.
강관웅이 그랬고, 이세화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나를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대표님. 저와 대표님은 서로 니즈가 맞아 만난 사람들입니다. 대표님은 대선에서 자유정의당이 승리하는 그림을 원하시고, 저는 이정찬의 몰락을 원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플랜을 짜는 것입니다.”
강관웅의 경우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림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그녀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어느정도 사정이 바뀌긴 했지만, 이세화는 내가 보고 온 미래에서는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딱히 이세화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다.
한 마디로, 그녀가 나를 시험하려 드는 건 나에게는 감사하기보다는 무례로 읽힌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차장님, 이 친구 좀 세네요?”
이세화는 박영기에게 시선을 주며 농담을 던졌다.
“이 친구는 누른다고 눌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대표님, 너무 물렁하게 보셨네요.”
박영기가 거들자, 이세화가 항복한다며 두 손을 들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안해요. 내가 차 변 같은 친구가 처음이라서 나도 모르게 인재 찾는 당대표 모드가 되어 버렸네. 알잖아요. 정계는 언제나 젊은 피를 수혈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젊은 사람하고 대화할 일이 생기면 자꾸 탐색하게 돼요. 아, 일단 식사하면서 얘기 나눌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찬이 차려졌다.
식사하는 동안에는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녀는 주로 질문했고, 나는 대답했다.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로펌에서 오퍼가 많이 왔을 텐데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녀는 탐색을 그만두겠다고 했으면서도, 끝까지 나를 향한 호기심의 방향을 틀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화제를 넘겼다.
“이정찬 부자의 사기극을 국민이 알게 되긴 했지만, 이대로 놔두면 소강될 겁니다.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조금 더 해 줘야 제대로 타오를 텐데요. 아마 3대 신문사에서는 확실히 노선이 정해질 때까지 이 사건을 다루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방송국도 아마 눈치를 볼 거고요.”
“언론 쪽은 우리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어요.”
이세화는 상세하게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한 그녀의 태도는 아무리 내가 소스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할 일을 일일이 나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자유정의당 대표인 그녀가, 일개 변호사인 나에게 그런 것을 일일이 보고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내가 차 변을 만나고 싶다고 한 건, 함께 플랜을 짜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아직 내보이지 않은 패가 있다면 나에게 넘겨 달라는 말을 하려고 보자고 했어요.”
생글생글 웃던 방금 전까지의 모습과 달리, 이세화는 매우 진중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하, 이제 보니 플랜을 짜야 한다는 내 말이 그녀의 귀에는 꽤 건방지게 들렸던 모양이다.
“방송에서, 최종현 기자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그걸로 본인들이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고, 그 이후는 국가 기관에 맡기겠다고. 그 말이 맞아요. 차 변은 충분히 엄청난 일을 해 냈고, 차 변이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어요. 그다음은, 우리에게 맡겨요.”
일견 그녀의 말은 옳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해도, 나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신분이다.
여기서 만족하고,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넘기고 얌전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도의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대표님. 제가 오늘 대표님을 뵙겠다고 한 이유는, 대표님께서 그 누구보다 이 사건의 핸들을 잡고 싶어 하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요?”
“제가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대표님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제1야당인 자유정의당의 위치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국민을 속여 왔던 이정찬의 몰락을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서 계신 대표님과 자유정의당의 지지자는 아닙니다.”
내 대답에 이세화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
“제가 가진 게 더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소스가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날 못 믿겠다는 건가요?”
이세화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대표님의 플랜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대표님을 만난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요.”
“계획을 공유해 달라는 뜻이군요.”
정확히는, 내가 생각해 놓은 플랜과 그녀의 플랜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다.
이세화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차장님, 이 친구 물렁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맹랑한 구석이 있는데요?”
그녀는 조금은 불쾌하다는 듯 박영기 차장을 보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박영기는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여기서 이세화가 내 무례함에 역정을 내고 그대로 나가 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큰 두 줄기의 당 중 하나인 자유정의당의 대표라는 위치에 오른 사람이 아니던가.
진취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그녀지만, 그럼에도 까마득한 후배 따위가 패 하나 더 들었다며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고.
어느 쪽이든 각오는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차 변은 지금 내 플랜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본인의 플랜을 말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요. 그림을 크게 그려 놓은 듯한데, 말해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