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3)
너희들은 변호됐다-23화(23/641)
“그러면?”
“선배님의 결론을 확신한 거죠.”
의외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왜 내 결론을 확신하지?”
“존경하니까요. 법조인으로서.”
“……뭐?”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전, 연수원 때 판사 지망이었어요. 성적도 좋았고요. 그런데 선배님 밑에서 시보 하는 동안 선배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고, 그래서 검사 지망한 겁니다. 선배님처럼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검사라는 직업이 저와 맞진 않았어요. 선배님하고 같이 일했으면 계속 검사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형사 3부에는 죽어도 배정이 안 나더라고요.”
강민재는 위스키를 마시며 덤덤히 말을 이었다.
“선배님 재판은 제 재판하고 겹치지 않는 이상 늘 방청했습니다. 선배님은 모르시겠지만. 그리고 제 성격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 아무나 존경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법조인 보는 눈이 좀 높아서.”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는 듯하자, 강민재가 농담을 섞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선배님이 변호사로 새 출발하신다고 해서,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업하신 뒤에 사무장 없이 혼자 하신다고 들어서, 이번 기회에 잘 어떻게 해 보면 선배님하고 같이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더 배우고 싶거든요, 선배님한테.”
그의 머리 위에 시종일관 떠 있는 [진실]이라는 글자.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우신 그룹을 겨냥하는 수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생긴 것은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
나는 숱한 배신을 겪었고, 점점 내 주변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쓴 입맛을 다셔 왔다.
많은 비밀을 갖게 되었고, 그 비밀이 흘러나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때가 많았다.
“강 변이 나한테 배울 게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무엇보다, 나보다도 태광에서 더 배울 게 많을 거야. 거긴 거대 로펌이니까 다양한 케이스를 접할 수 있을 거고. 또, 사람이 수입을 무시할 순 없어.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태광 같은 연봉을 보장해 줄 수 없어.”
강민재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배울 게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 같이하면서, 전 더 확신을 가졌습니다. 변호사님한테 배울 게 참 많다고요. 태광은 저한테 별로 배울 게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돈은, 정말 말씀드렸다시피 필요 없어요. 저희 집 돈 엄청 많습니다. 만에 하나 변호사님 사무실이 잘 안 되면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투자해 드릴 수도 있고요.”
강민재는 자신이 고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온갖 것을 다 갖다 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내 목표에 대해 말하면, 그가 마음을 돌릴까.
아니,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불타오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직 그를 완전히 믿을 수 없기에 내 목표를 얘기할 수도 없다.
“변호사님. 저 폐 안 끼치고, 변호사님한테 도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하, 물론 제가 큰 도움 못 드린 건 압니다. 아는데, 사무실에 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잖아요.”
“아니, 도움 됐어.”
“네?”
“도움 됐다고.”
그가 아니었다면 꽤나 고생했을 거란 사실은 인정한다.
시간도, 인력도 무척이나 부족했으니까.
“급여 문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솔직히 돈 안 받아도 상관없지만, 고용법이 있으니까. 수임료 받으시는 거에서 일정한 부분만 떼어 주시든지. 그런 식으로 하면 되잖습니까.”
이렇게까지 나를 존경한다던 그가, 왜 이전 생에서는 내 눈에 띄지 않았을까?
내가 검사였고, 그는 변호사였기 때문에?
내가 우신의 비리를 파기 시작하면서, 나와 같은 목적을 가졌던 사람들은 내게 은밀하게 접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동료를 꾸려 나갔다.
물론, 그중에 강민재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나와 일하고 싶었다면 연락했을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우신을 친다는 게 두려워서?
‘그렇다면, 내가 본격적으로 우신 잡는 시동을 걸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부모님이 좋아하시진 않을 거다. 태광에서 일하다가 이런 조그만 사무실 들어가는 거.”
“저희 집안 어른들은 제가 하고 싶은 일 하길 바라십니다.”
“금수저가 대단하긴 하네.”
돈이 얼마나 많으면 저런 소리를 하나 싶기까지 하다.
“저 고용해 주시는 거죠?”
“마음에 안 들면 자를 거야.”
“……네?”
“그리고 강 변도, 나한테 더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나가도 좋아. 또, 내가 하는 일이 강 변하고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나가. 억지로 하지 말고.”
강민재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왜. 불만 있어?”
“아뇨! 없어요! 없습니다.”
“출근은 매일 9시. 사건이 뭐 얼마나 들어올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건 없어서 노는 날도 많을 거야. 그렇게 노는 게 지겨우면 바로 사표 쓰고 나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민재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는 그만하고.”
신난 듯이 웃는 그를 보며,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위험한 일이 시작되면, 강민재가 더 붙어 있겠다고 하더라도 구실을 붙여 자르면 된다.
어차피 한동안은 변호사로서 유명해지는 것에만 신경 쓰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그 정도면 상관없겠지.
* * *
올라갔다.
웬만한 얘기라면 거실에서 보자고 했을 텐데, 굳이 2층 서재까지 올라오라고 한 것을 보면 퍽 진지한 내용인 듯했다.
“흠!”
서재 앞에 서서 옷맵시를 가다듬은 강민재는 한 번 헛기침했다.
그리고 두 번 노크했다.
-들어와라.
조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재 안의 조부는 담배를 태우며 책을 읽고 있었다.
“저 왔습니다, 할아버지.”
“앉아라.”
“예.”
맞은편에 착석하자, 그제야 책을 덮은 조부는 안경을 조금 밑으로 내리며 강민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자니 영 어색해져서, 강민재가 억지로 웃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새삼 손자가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태광에 사표 내고 간 데가, 차주한이라는 풋내기 변호사 밑이냐?”
강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태광에 사표를 낸 것은 며칠 전이었다.
차주한이 받아 주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든 매달릴 생각으로 배수진을 친 것이다.
태광에서는 수리를 하지 않고 버티다가, 오늘 아침 법정에 자신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드디어 처리한 모양이었다.
퇴사 소식은 윤원형 대표에게 전해졌을 테고, 그것이 할아버지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은 몹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네.”
“그래, 차주한이 널 받아 주더냐?”
조부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깊게 기대앉았다.
어쩐지 요근래 신나 보이더니, 차주한과 함께 일하느라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입꼬리가 씰룩씰룩 하는 것이, 결국 차주한에게 거둬주겠다는 말을 듣고 온 눈치였다.
그런 손자에게 초 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처음엔 절대 안 받아 줄 것 같았는데, 이 손자가 워낙 일을 잘하니까 결국 받아 주셨어요.”
“이놈, 잘난 척은 그만하고.”
“장난인 거 아시면서요.”
“개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5년 차 검사가 네 월급이나 잘 챙겨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모아 놓은 걸로 생활하면 되죠. 그리고 아마 장사 잘될 겁니다. 이번 사건도, 조진태 사건도 워낙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잖아요. 이름 하나는 엄청 유명해졌을 테니까요.”
싱글벙글 웃는 그를 보며, 조부는 한숨을 쉬었다.
다시 태광으로 돌아가라고 혼낼 생각으로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차주한에 대해 나쁜 말이라도 한 마디 했다가는 금세 토라질 눈치다.
“그리고 고작 1년 차인 제가 태광에 들어간 것도, 그것도 김윤희 변호사님 밑도 배정된 것도 할아버지 후광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 선배와 일하게 된 건, 아무런 배경 없이 저, 강민재가 해낸 거고요.”
차주한과 일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손자는 그걸 ‘해냈다’고 표현하고 있다.
조부는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조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일궈 보겠다는 건 좋은 태도였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아직 손자는 젊으니 얼마든지 다시 일으켜 세워 줄 수도 있었다.
“차 선배는 제가 할아버지 손자인 것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눈치를 보던 강민재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것은 차주한이 권력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법조계에 떠도는 풍문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타입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게 청렴의 잣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할아버지에게 어필하기 좋은 일면들이다.
“그래. 잘해 보거라. 할아비가 실망하지 않게.”
“네, 그럼요. 잘해 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조부는 꾸벅 인사하고 나가는 손자의 뒷모습을 끈질기게 바라보았다.
“차주한이가 물건이라고 생각하긴 했었지.”
문이 닫히자 그는 홀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좋은 환경을 내던지고 함께할 가치가 있는 놈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법조인은 연수원 모든 기수는 아니더라도 꽤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그렇게 짚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 휘둘리고 마모되어, 종내에는 법조계를 이루는 똑같은 부품이 되고 말았으니.
“잠깐 들어와라.”
그는 인터폰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거의 동시에, 서재 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비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강형찬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차주한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볼 수 있는 만큼이라면, 단순히 법조인 차주한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다.
인간 차주한.
그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또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에 대한 예측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예, 알겠습니다. 급한 일이십니까?”
“내 손주가 저렇게 환장하는데, 아무렴 급하지. 하지만 놓치는 것 없도록 자세히 알아봐.”
“예.”
“아, 그리고 태광 김윤희한테 성의 표시라도 해라. 하는 김에 윤원형 대표한테도.”
“그러지 않아도, 윤원형 대표가 어르신을 한번 찾아뵙고 싶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럴 것까진 없지.”
“음,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더 지시하실 일 없으시면 나가 보겠습니다.”
강형찬이 나간 뒤, 그는 책상 한편에 프린트된 기사를 흘긋 바라보았다.
[법정에서 검찰의 졸속 수사를 비판한 검사 출신 변호사]그는 다시 한번 기사를 곱씹어 읽었다.
차주한이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