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30)
너희들은 변호됐다-230화(230/641)
박영기는 중앙지검 3차장이 되기가 무섭게 바쁘게 움직였다.
박영기는 이른바 특수통 검사로, 서부지검 차장검사가 되기 전에는 중앙지검 특수부장 자리에 있었다.
그가 서부지검에서 지휘하던 명화제약 건은 이정찬의 비위 사실과 결합되어 자연스럽게 중앙지검 특수부로 넘어왔다.
본래 사령관이 넘어오더라도 분리된 사건이라면 따로 수사할 수 있지만, 명화제약 건이 이정찬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 병합한 모양이었다.
서부지검장의 반발이 컸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강관웅과 박영기가 알아서 잘 처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내 알 바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사건은 규모가 꽤 커서, 특수 1, 2부가 전부 동원되었다.
검찰은 소환장을 하루에도 몇 장씩 날려 댔다.
명화제약 대표를 위시한 임원들, 식약청 관계자들, 명운 대학 병원 관계자들, 그리고 이정찬과 이세형까지.
모든 채널의 뉴스가 이번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박영기 차장검사는 오늘 오전 11시경 있었던 브리핑에서, 명화제약 김형중 대표가 오진식 전 식약청장과 이정찬 민우당 대표에게 안트로졸 알파가 식약청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통과 될 수 있도록 불법 로비한 정황을 포착하여, 추가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명운 대학 병원 진수용 신경외과 과장이 이세형 씨뿐만 아니라 유력인사들의 군 면제를 위하여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 났습니다.]“환장하것네.”
식당, 찜질방 등 손님들이 내부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업소들은 전부 뉴스 채널로 채널을 고정했다.
어디를 가든, 목소리 큰 사람들이 지금 이 시국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목소리가 인파를 뚫고 들려온다.
지금처럼 말이다.
“요즘엔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다니까?”
“그니까 환장하겠다는 거 아니야.”
흥미로운 점은,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람들의 말이 정말로 지표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와 예능 시청률이 다른 변수없이 하락하고, 뉴스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이세화는 노났네, 노났어. 대선 앞두고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가 이렇게 미끄러져 줬으니. 다음 대통령은 뭐, 자유정의당에서 나오게 생겼구만.”
“자유정의당 정치인들 신나서 인터뷰하고 방송 나오고 난리 났던데, 뭐.”
식당에서 혀를 차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왠지 이럴까 봐 이세화에게 적당히 나대는 게 좋겠다고 말해 두었는데.
물론 더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그녀가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세화 역시도 자중하도록 주의를 줬지만, 자유정의당에 당적을 둔 의원들이 입을 가만히 못 두는 것이겠지.
이해 못 해 줄 것은 없었다.
최대 적수였던 민우당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데, 신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정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너무 재미있다니까요.”
윤세연이 국물에 밥을 말며 말했다.
“세상에,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 이세형이 두 다리 멀쩡했다는 걸. 어제 민우당 의원 한 명하고 통화했는데, 정말 1시간 내내 울분을 토하더라니까요.”
“어떤 울분 말입니까?”
“본인은 이정찬 부자가 그런 사기를 치는 것도 몰랐는데, 그 인간 때문에 당 이미지가 개박살이 났다고요. 본인이 뭘 잘못했냐, 이거죠. 당 분위기가 개판 오 분 전이라면서, 목소리가 툭 건드리면 울 것 같더라니까요. 뭘 잘못하긴, 뭘 잘못해요. 정치판은 줄 서는 게 전부인데, 본인이 줄 잘못 선 게 잘못이죠. 제 말이 틀렸나요, 차 변호사님?”
“맞는 말이죠.”
“아주 난리도 아닌가 봐요. 강종명 쪽 인사들이 이정찬 쪽 인사들까지 포섭하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이정찬이 좆된 거지, 당신들까지 좇된 건 아니니까 포기하지 말고 강종명 쪽으로 붙으라고 설득하고 다니느라요. 이대로 계속 이정찬 밑에 있으면 함께 좆될 거다, 이거죠.”
다소 언사가 과격하긴 했지만, ‘좇됐다’는 말 외에 지금의 이정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침몰했다, 망했다, 끝났다,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어쩐지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지들은 다른 당에서 이런 일 터지면 신나서 까대고, 그 사건이랑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난리 피울 땐 언제고.”
윤세연은 쌤통이라는 듯 낄낄 웃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2회차가 아니고서야, 본래 인생은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남을 비웃어 대도,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민우당 내부 분위기는 지금 말도 아니겠군요. 강종명이 이정찬 계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공작을 펼치고 있다면, 가뜩이나 안 좋은 분위기 더 안 좋아졌겠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웃긴 건, 아직도 민우당 내부에는 이정찬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돌아와서 본인들을 이끌어 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아니, 대체 무슨 수로 이걸 극복해? 진짜 이정찬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런 예수님도 결국엔 오해 못 풀고 십자가행이었잖아요? 예수님도 못 한 걸 이정찬이 어떻게 하겠어요. 흐흐.”
“그렇네요.”
“차라리 이정찬 본인이 마약하다 걸리는 게 더 나았을까 싶을 수준인데 말이에요.”
윤세연의 표현은 단순히 수사법이겠지만, 그녀의 말이 맞다.
이전 삶에서도 프로포폴 투약 의혹으로 거론된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이 수두룩했다.
그들에게 다른 하자가 있지 않는 이상, 프로포폴 투약 하나로는 잠깐 욕먹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등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어지간히 큰 건이 아니고서야, 사건 하나로 거물급 인사를 무너트리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나도 이정찬과 명화제약을 엮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정찬과 명화제약은 서로에게 추가적인 하자가 되어 줄 묘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사실 이정찬은 끝까지 대표직에서 사퇴하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에요. 민우당하고 그 지지자들을 자기 고기 방패로 쓸 생각이었던 거죠.”
“이정찬이 사퇴합니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다.
강종명이 일을 똑바로 한다면 이정찬의 대표직 사퇴는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강종명이 바보일 경우를 생각해서, 당장 자신에게 모인 사람이 많으니 이걸로 됐다는 생각에 민우당 타이틀을 버리고 바로 신당을 창당하러 가 버리는 경우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물론 대선을 코앞에 둔, 누구보다 급할 강종명이 둘 수 있는 악수 중의 악수라 큰 가능성은 없긴 했지만 말이다.
“네. 공식 발표는 그렇게 나갈 거예요.”
“공식 발표는, 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이정찬은 끝까지 거부했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근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강종명이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하면서 사퇴 의사를 받아낸 모양이에요.”
이후 상황이 잠잠해지면 다시 큰일을 도모해 보자고 달랬을 것이다.
또, 사퇴하지 않으면 당장 민우당 또한 피해가 크니 본인도 이정찬에 대해 알고 있는 ‘이것저것’을 공개하는 수밖에 없다며 협박했을 터다.
“이렇게 된 마당에도 끝까지 거부하는 건 너무 뻔뻔하군요.”
“근데 본인도 알았을 거예요. 고기 방패들 중 일부가 강종명 쪽으로 이탈하기도 했고요. 당장은 방법도 없고, 후일을 도모하려면 본인에게도 민우당 타이틀이 필요할 테니까요.”
만일 이정찬이 정말 후일을 도모할 생각으로, 강종명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며 숨죽인 채 민우당에 남아 있는다면…….
음, 그건 조금 꼴 보기 싫다.
강종명이 맹목적인 이정찬의 콘크리트 표까지 가져가 대선에서 괜찮은 결과를 얻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현 여당인 민우당이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도록 놔두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미래를 멀리 보았을 때나 역시 언제까지 암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 5년 내로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표면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런 내 뒷배가 되어 주는 강관웅의 입김이 세질수록 나에게 유리하다.
그러니, 강관웅이 가장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정의당이 다음 정권을 잡는 것이 나에게도 편하다.
이런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프로세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자유정의당 지지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이득으로 다가올 날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음 대선 때 강종명 당선 확률 얼마나 보세요?”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윤세연이 물었다.
나는 짧은 침음을 흘리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말할 수 없겠지만, 크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정찬 콘크리트 흡수하고, 맹목적으로 민우당 찍어 주는 사람까지 보태면 강종명도 꽤 유력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그러지 못하게 해야지.
“이정찬 사퇴 보도는 언제 나갑니까?”
“엠바고 걸렸어요. 모레 오전 11시까지는 보도 금지. 민우당이 10시에 발표한다고 했으니, 미리 입 털지 말라 이거죠.”
“그렇군요.”
적당히 아름다운 그림으로 갈 생각인가 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안일하다.
강력하게 규탄해도 민우당에 등 돌릴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정찬 콘크리트가 아까운 걸까.
“이만 일어납시다.”
“네. 잘 먹었어요, 변호사님. 이 집 잘하네.”
윤세연이 가방을 챙기며 기분 좋게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왜 밥을 사냐며 반발할 것이 걱정됐는지, 빠르게 덧붙였다.
“제가 재미있는 얘기도 해드렸으니까, 변호사님이 사는 거죠? 최종현 선배가 변호사님한테 재미있는 얘기해드리라고 해서 해드린 건데, 그래도 대가 없이 해드리는 건 좀 저도 아깝다 싶어서.”
그녀가 익살맞게 웃으며 말했다.
“최 기자님이 저에게 얘기해 주라고 하셨다고요?”
“네. 원래는 고작 국밥 한 그릇으론 절대 말 안 할 정보인데, 제가 최 기자님한테 개인적으로 고마운 게 있어서요. 기자님이 그걸 변호사님한테 갚으라지 뭐예요. 본인도 변호사님한테 갚을 게 많다면서요.”
윤세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카운터에 놓인 박하사탕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 권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식점 박하사탕은 개별 포장이 아니고서야 이 사람 저 사람이 손으로 집어댔을 것 같아서 안 먹는다.
“전 바로 가 볼 데가 있어서, 변호사님한테 커피는 못 얻어 마시네요. 아쉬워라.”
윤세연이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들을 건 다 들어서 함께 커피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착각하도록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사건 마무리까지 파이팅입니다.”
“제가 파이팅할 건 없죠.”
“또 그러신다. 어쨌든 파이팅!”
윤세연은 창 너머로 주먹을 흔들어 보이고는, 도로를 향해 빠져나갔다.
왠지 윤세연이 먼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겠다며 보자고 하는 게 이상하다 했더니, 최종현 덕분이라니.
그 덕분에 절대 공짜로 움직이는 일 없는 윤세연에게 고급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후우.”
차를 빼기 전, 안에서 담배를 한대 피웠다.
히터를 올린 차 안에, 따뜻한 오후 햇살이 번져 들어와 나른해졌다.
얼마만의 여유인가.
한동안 바쁘게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는는데, 최종현과 조봉준이 부르짖은 대로 국가 기관이 나서니 이렇게 심신이 편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국가 기관이 진행하는 수사 총책이 내 편이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겠지만 말이다.
“이 인간들 아직도 자나.”
아무래도 최종현에게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정찬 건으로 한동안 쉬지 못하고 일에 매달렸던 최종현과 조봉준은, 요즘 겨울잠에 빠진 곰처럼 하루종일 잠만 잤다.
그전에는 일어나기가 무섭게 ‘차변 뭐해?’ 하며 실없는 연락을 해오기 일쑤였는데.
뭐,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긴 하지만, 최종현에게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
지이이잉-
잠시 안심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통화 버튼을 눌렸다.
“차주한입니다.”
-차 변, 나 이세화예요. 지금 통화돼요?
“아, 대표님. 안녕하셨습니까.”
이세화가 내 명함을 받아 가긴 했지만, 이렇게 일찍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지금은 민우당 쪽 불구경도 하고, 불 난 집에 부채질도 하고, 아주 바쁠 줄 알았는데.
-오늘 좀 봤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오늘 말씀이십니까?”
-얼굴 보고 할 얘기도 있고 해서. 내가 성격이 좀 급해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박영기 차장님도 함께 뵙는 겁니까?”
-박 차장님은 지금 바쁘시잖아요. 우리가 방해하면 안 되죠.
이세화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방해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따로 보고 싶다는 게 그녀의 본심일 것이다.
박영기는 내가 이세화와 어느 정도 알고 지내면 좋을 거라고 말한 적이있다.
강관웅 역시 이세화와 친밀한 사이기도 하니, 어느 정도는 나도 박영기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잖아도, 나도 오늘 박영기를 통해 그녀에게 연락해 볼 생각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모레 오전 10시까지가 아닌가.
“시간과 장소 문자로 보내주십시오.”
-좋습니다. 이따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