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31)
너희들은 변호됐다-231화(231/641)
“어서 와요, 차 변호사.”
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짧게 묵례한 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세화는 전에 봤을 때보다 한결 인상이 환해져 있었다.
오늘 점심에 식당에서 들은, 이세화만 노났다는 누군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편히 있습니다. 박영기 차장님께서 영전하신 이후로는,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박 차장님이 영전하셔서가 아니라, 차 변이 워낙 상황을 아름답게 메이드해 놔서 그런 거죠.”
이세화가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자리에 없는 사람이라 그를 낮추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높이기 위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물로 목을 축였다.
“이정찬이 민우당 대표직에서 내려온다네요.”
“들었습니다. 모레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다고.”
“우리 차 변은 역시 정보가 참 빨라요. 제 1야당 대표인 나도 오늘 안 사실인데.”
“그 일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이세화는 나를 향해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차 변,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이만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요.”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대상이 이세화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크게 웃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정찬 대표와 강종명의 거래가 어쨌든,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아요. 그 과정 속에 잡음은 있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식기를 새로 정렬하며 말했다.
“민우당을 쪼개는 게 차 변의 플랜 아니었습니까? 안타깝게도 쪼개지진 않을 것 같은데. 이를 어쩌죠?”
이세화는 다시 한번 면접관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 사건은 이세화에게 협력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녀의 책사가 아니다.
상황이 네가 말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건 곤란하다.
“안타깝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강종명이 수완가였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수완가인 참모를 데리고 있든지.”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그러자 이세화는 나를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싸늘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외의 다른 감정은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난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닌데?’ 정도의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다.
“하하, 아하하하.”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이세화는 곧 표정을 풀며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 변. 차 변 너무 내숭 9단이다.”
이세화는 노크하고 들어온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요리를 세팅할 때까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차 변은 내가 차 변을 탐내는 게 부담스러운가 봐요. 그러니까 내가 뭔가를 기대할 때마다 그렇게 기대하지 말란 식으로 대답하는 거겠죠?”
종업원이 나가자, 이세화가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귀찮다는 말이 조금 더 어울리지만 말이다.
“아니면, 차 변은 이제 내가 깔아 줄 만큼 깔아 줬으니 그 뒤는 당신이 알아서 해라, 난 어떻게 대처하는지 한번 보겠다. 나도 당신을 한번 시험해 보겠다, 이런 마인드인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민우당의 완전한 몰락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그래서 이정찬을 자르고, 민우당을 반으로 쪼개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세화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마치 선심을 쓰듯 명화제약 건에 이정찬이 긴밀히 얽혀 있음을 알리며 패를 내보였다.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민우당을 쪼개는 것만 실패했다.
애초에 나는 민우당이 아닌 이정찬의 몰락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이 상황만 놓고 보아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러니 더는 그녀에게 협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에 나온 까닭은 하나였다.
이정찬이 재기도 할 수 없을 만큼 밟아 두어야 하는데, 강종명이 이정찬을 잘 달래 버리는 바람에 이정찬에게 회생할 구멍이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상황에서 더 급한 것은 누구일까?
당연히 이세화다.
나야 이정찬의 재기 타이밍에 또 훼방을 놓을 수 있지만, 대선을 목전에 둔 이세화는 민우당이 하나로 뭉쳐버리는 것이 곤란할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그녀가 나를 테스트했듯이, 나도 그녀를 테스트할 수 있는 입장 아닌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너무 건방지게 구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하지만 이왕 떤 내숭, 조금 더 떨어보기로 한다.
“사실, 맞아요. 차 변이라면 또 다른 패를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에 보자고 한 거예요. 지금 내 발등에 불똥 떨어진 거 맞고요.”
하지만 이세화는 생각보다 순순히 시인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애초에 이 판은 내가 짰고, 이세화는 내가 그 판에 끼워 줬을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녀가 이번 사건에서 한 역할은 확성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차 변한테 뭘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요.”
이세화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
그런 건 없다.
정계에 진출할 생각이, 적어도 지금으로써는 없는 내게 야당 대표가 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정계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야당 대표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강관웅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꺼낼 말을 기대하며 차로 목을 축였다.
“근데, 없어요.”
그녀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고민해 봤는데, 없어. 청와대 대변인 시켜주겠다고 할까 생각도 해 봤죠. 근데 대변인을 하려면 어쨌든 우리 당에 입당해서 커리어를 조금 더 쌓긴 해야 하니까, 그것도 텄고.”
청와대 대변인이라.
검사 경력도, 변호사 경력도 일천한 내게 그런 자리를 약속해 줄 생각까지 하다니.
청와대 대변인은 얼굴 마담이기도하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인물이 주로 얻는 자리다.
주로 많이 알려진 아나운서나, 언론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많이 기용되는 추세다.
사람들이 언론인들은 중립성을 지킬거라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는 나에게 대변인 제안이라니.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청와대 대변인씩이나 생각해 주셨다니, 이거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차 변이 당장은 정당에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에요. 다들 그랬거든요. 이정찬도, 나도, 강종명도, 심지어는 선생님도. 처음부터 정치하려고 사법계로 들어온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렇군요.”
“언젠가 차 변이 정계로 들어오고 싶어질 때, 내가 도와줄게요. 음, 도와준다고 하는 건 조금 표현이 부족하네요. 밀어준다고 하는 게 좀 더 맞는 표현이겠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치 앞의 미래조차 예상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 앞으로 뭘 해야 하지…….
많은 사람들이 평생 그런 고민을 하다 죽는다.
그 미래를 담보로 거래하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전략이다.
어중간한 인사도 아니고, 야당 대표이자 미래의 대통령이 보장해 주는 자리니까.
당장은 전혀 관심 없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 자리라면 약속 정도는 받아 두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내가 인생 2회차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겪을 만큼 겪었다.
그것을 토대로 우신을 잡기 위한 플랜을 짰다.
그 플랜 속에 내가 정계에 입문하는 것은 없었다.
우신을 잡은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정치에 입문하고 싶진 않다.
나는 이미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유유자적하게 남은 삶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차 변이 아직 젊어서 그런 것 같은데,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몰라요.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단칼에 거절한 거?”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세화 같은 경우에, 그것은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였다.
그 지위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수많은 자리들과 미래를 담보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세화든, 이정찬이든, 고상준 마저도 그것을 무기로 손쉽게 원하는 것을 가져왔을 것이다.
물론 그 자리는 한정적이기도 하고 이세화도 사람을 가려 쓰는 타입이라 자주 남발할 수는 없겠지만, 결정적일 때에 큰 도움이 되어 왔을 터.
사람들이 자리를 원하는 까닭은 하나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래.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
그 흐릿한 그림을 보다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이세화가 그런 무기로도 나를 설득할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다.
이세화가 사회적 지위를 가졌듯, 나는 미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흐릿한 그림을 확실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내 그림은 처음부터 화질이 아주 좋았으니까.
나는 내 목표를 이루고 싶지, 이세화의 목표를 이뤄 주고 싶진 않다.
“정계에 나아가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세화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눈치였다.
내가 강관웅과 긴밀하게 지내는 것을 어느 정도 정계에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여태 내가 그녀의 에두른 러브콜들에 반응하지 않은 것도 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해한다.
절대 정계에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던 사람들도, 나이를 먹으면 꼭 한 자리씩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 이 바닥 순리다.
나도 이전 삶에서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보았고.
“하지만, 대표님과의 인연은 저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세화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자리뿐만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고, 최대한 많은 아군을 보유해야 한다.
강관웅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강관웅의 권위는 드높지만, 그의 권력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현역인 이세화는 다르다.
미래의 대통령을 아군으로 둘 수 있다면, 내가 가진 패쯤이야 몇 개 더 내어 줘도 상관없다.
“차 변. 차 변은 정말…….”
이세화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끝을 늘였다.
“좀 밥맛 없는 타입이에요. 본인도 알고 있죠?”
“……네, 아무래도.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래도 밉진 않아요. 그게 차 변 매력이에요.”
“감사합니다.”
“당장 내가 차 변에게 약속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난 아직도 가능한 한 차 변을 영입하고 싶다는 입장이에요. 그러니 우리의 인연은 계속 유효할 겁니다.”
이세화가 유쾌하게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제갈량의 패를 한 번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