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32)
너희들은 변호됐다-232화(232/641)
오전 9시 반, 민우당사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리 고지한 대로, 오늘은 민우당에서 이정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한 발짝 성큼 다가온 추위에, 윤세연은 기자들 틈에 섞여 손을 비볐다.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당사 앞에서 아침 이른 시간부터 진을 쳤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 버렸다.
윤세연은 그제야 아는 얼굴들을 찾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윤 기자!”
각종 신문사와 방송사의 기자들이 윤세연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들은 보온병에 준비해 온 따뜻한 코코아를 따라 윤세연에게 건넸다.
“요즘처럼 바쁜 때가 없다니까, 정말. 윤 기자도 많이 바쁘지?”
“바쁘긴 한데, 실속은 없어요. 뭐 정보가 들어오는 게 있어야 실속 있게 바쁘지. 어디를 찔러야 뭐가 나올까 고민하면서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는데, 막상 건지는 건 별로 없어요.”
“웃기시네!”
윤세연의 말에, 담배를 피우던 중년의 기자가 실실 웃으며 소리쳤다.
“윤 기자 그 변호사랑 친하잖아. 그 변호사가 이번 사건에 긴밀하게 연루돼 있다는 소식 확 퍼졌는데, 뭐.”
“그 변호사요? 그게 누군데요?”
“에이, 또 이러신다. 윤 기자님, 그렇게 너무 모른 체 하시면 얄미워요.”
선배를 따라온 수습기자 한 사람이 윤세연을 향해 눈을 흘겼다.
물론 그녀 역시도 차주한 변호사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대로, 이번 사건에 그가 긴히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는가.
이제 최종현 기자가 방송을 시작하면서, 특종이란 특종은 다 그쪽으로 먼저 간다.
손가락만 쪽쪽 빨며 오히려 자신이 차주한에게 정보를 물어다 주는 신세란 말이다!
“이세화 대표가 차주한 변호사 만나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던데?”
윤세연에게 코코아를 건넸던 기자가 슬쩍 운을 됐다.
자신도 그 이야기는 들은 적 있다.
하지만 차주한에게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는 의뭉스럽기 짝이 없어서, 묻는다고 해도 말해 줄 사람도 아니었다.
처음 그 소문을 접했을 땐,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의외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차주한은 딱히 정치에 욕심이 없어 보였다.
만일 공명심이 큰 사람이라면 여태까지 자신이 드라마틱하게 쟁취했던 모든 사건의 전말을 멋지게 기사화해 달라고 했을 테니까.
윤세연이 그런 부탁을 거절할 리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간에 도는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세화와 차주한.
두 사람만 놓고 보면 다소 생뚱맞지만, 그들은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수 있는 사이였다.
차주한을 금붕어 똥처럼 쫓아다니는 강민재의 친조부가 강관웅 전 대통령이 아닌가.
게다가 강관웅의 애제자 중 하나였던 박영기 서부지검 차장이 중앙지검 3차장으로 영전한 것도 타이밍이 수상했다.
아직 매스컴에서는 강관웅의 이름 석 자도 찾아볼 수 없고, 박영기 차장 역시도 의외의 인선이라고 표현하긴 한다.
하지만 잔뼈 굵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짐작 정도로 도는 썰들이 있었다.
“윤 기자는 몰라?”
“몰라요, 저도 잘. 그냥 선배님들처럼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만 줍줍했을 뿐이네요.”
사실 팩트인지 확인해 보려고 최종현을 몇 번이나 들쑤셨는데, 최종현도 정말 모르는 건지 알기는 아는데 말을 하지 않는 건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기자들 잘 안 만나주기로 유명한 차주한이 유일하게 사석에서 보는 기자가 윤 기자잖아.”
“아, 정말. 모른다니까요. 저도 알고싶다구요! 지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세화가 차주한과 만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돈 것도, 이세화 쪽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일 공산이 크다.
지금 차주한은 여러모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장은 유능한 변호사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벌써부터 곳곳에서 차주한의 기획력을 탐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 바닥에서 차주한의 얼굴은 모르더라도 이름 석 자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의 기획력이 빛을 발하는 분야는, 정계에서 필요로 하는 언론 플레이다.
그는 사람들이 특정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귀신같이 아는 사람이고,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로 주도할 줄안다.
정치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자, 가장 갖추지 못한 덕목이기도 하다.
즉, 이세화가 먼저 침 발라 놨으니 눈독 들이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흘린 것이 분명하다.
“윤 기자, 차주한 만나는 사람 있어?”
“만나는 사람이요? 어떤 의미로?”
“남녀 간의 뭐 그런 거 말이야.”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윤세연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차주한이 어떤 여자와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다.
그 상상만 해도 어색한 장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윤세연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윤 기자가 슬쩍 꼬셔서 얘기 좀 털어 봐. 남자는 다 똑같다? 아무리 철벽같은 남자여도, 예쁜 여자가 들이대면 쪽도 못 써.”
“엥? 제가요?”
“그래, 윤 기자 예쁘잖아.”
“칭찬은 감사하긴 한데…….”
“자신감을 가져요!”
“차 변호사님은 제 타입 아니에요. 전 다정한 남자가 좋단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너무 막 과하게 잘생기고 잘난 사람은 좀 별로…….”
“누가 진심으로 사귀래? 그냥 털어먹으라고!”
열변을 토하는 기자들을 바라보던 윤세연은, 문득 머릿속에 익숙한 얼굴을 떠올렸다.
“……차 변호사님 마누라 있어요.”
“엉? 마누라가 있다고? 뭐야, 결혼했어?”
“그건 아닌데…….”
“뭔 소리야, 대체?”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들어는 보셨나. 차주한 껌딱지 강민재라고…….
“곧 1층 제3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당사 문이 열리고 입장을 알리는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세연은 빠르게 입장 줄에 달라붙었다.
“저기요, 제가 먼저 왔거든요?!”
[……저희 민우당 윤리위원회에서는 이정찬 전 대표에게 대표직 사퇴와 더불어 탈당을 권유하였습니다. 이에 이정찬 전 대표는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탈당을 거부하였습니다. 따라서, 저희 민우당에서는 이정찬 전 대표를 최종적으로 제명하는 것으로 의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저희 민우당은 대한민국의 태동과 함께 성장한, 국민의 벗입니다……]툭.
사무실 안에 울리는 강종명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강민재는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을 떨어트렸다.
그 소리를 들은 오 사무장이 반응하고 대신 주워 줄 만도 하건만, 그 역시 텔레비전에 고정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토씨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기세인 그들을 대신하여 나는 강민재가 떨어트린 컵을 주웠다.
아주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도로 컵으로 뱉지 그랬냐 싶다.
“이, 이정찬 제명이요? 갑자기?”
강민재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 공유해 준 이야기는 이정찬이 대표직을 사퇴하기로 강종명과 합의를 봤다는 내용까지였으니까.
숨기려고 숨긴 것은 아니었다.
윤세연에게 그 소식을 듣고 나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그날 기준으로 모레 아침인 오늘까지였다.
만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 안에, 이정찬이 이대로 민우당에서 회생의 기회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변호사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민우당이 이정찬 제명하는 거?”
오 사무장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강종명이 이런 결정을 확실히 내렸다는 건 저도 방송 보고 알았습니다.”
“그럼 다른 건 알고 계셨다는 거예요? 왜 저희한테 말씀 안 하셨어요?”
강민재의 물음에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렇다기보단, 강종명이 이정찬을 제명하게 하려고 수를 써 놨는데, 그 수가 먹혔는지는 이제 확인했어. 그래서 나도 미리 말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시간도 없었고.”
“무슨 수를 쓰셨는데요?”
“별거 아니긴 한데…….”
* * *
“제갈량은 과하십니다. 아마 들으시면 김샌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이세화는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기다렸지만, 사실 정말 대단한 수는 아니었다.
“조만간 이정찬에게 새로운 이슈가 또 생길 겁니다.”
“새로운 이슈? 아직 터질 게 더 남았나요? 그 집 둘째 거짓말은 이미 터졌고, 장남은 저번에 조현석 사건때 성 상납 받았다는 얘기도 이미 터진 거고. 난 들은 거 없는데?”
이세화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엄청나게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국민의 공분을 살 일이기는 합니다.”
“그게 더 무섭죠. 우리 같은 정치인들 입장에선.”
그녀의 말이 맞다.
차라리 과하지만 않다면 불법이 나을 수도 있다.
언젠가는 잊히기 마련이고, 처벌 역시도 적당히 사법부와 짜고 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번 국민에게 찍히는 건 되돌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고, 그렇기에 이정찬은 아들을 이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뭔데요?”
“이정찬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입니다. 한국인들은 유전자부터 멍청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금방 잊힐 거라고, 다음을 도모하면서 기다리면 된다고, 또 속아 줄 거라고 비웃는 내용입니다.”
“그 양반 평소 입버릇이네요. 나도 직접 들은 적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긴 하다.
이미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박힌 이 사회에서, 이정찬이 저런 말을 했다는 게 새삼 놀랍지도 않을테고.
하지만 저 내용을 음성으로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르다.
명화제약 사건과 이세형의 일만 아니었더라면, 저 음성을 틀어 줄 방송국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추악한 과거가 까발려져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지금, 방송국이 저런 화제성을 놓치고 싶어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특히 이미 밝혀진 이정찬의 비리 사실만 앵무새처럼 똑같이 읊고 있는 상황에서, 이정찬에 대한 새로운 이슈에 목마른 것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이미 대선은 물 건너간 정치인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 곳은 없다.
“흐음. 이 상황에서라면 파장이 있겠네요.”
“이정찬을 안고 가면, 민우당 역시도 국민을 저런 시각으로 보고 있는 거라고 싸잡힐 겁니다. 안 그래도 민우당 표가 떠나갈까 무서운 강종명이, 어디 그런 꼴을 가만두고 보겠습니까? 지금 언론에서 저 녹취 터트릴 타이밍 재고 있다고 하면, 강종명은 꼬리를 자르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리고 강종명이 꼬리를 자를 수 있는 타이밍은 내일모레가 마지막이기도 하다.
이미 민우당 지지자들에게서 이정찬을 제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 이정찬의 대표직 사퇴만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면, 분명 내일모레 있을 기자회견에서는 다소 온건한 내용의 입장문이 낭독될 것이다.
이정찬을 제명하지 않으려는 까닭은 대선 때 이정찬 지지자들의 표까지 흡수하기 위함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정찬을 공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하지만, 이 녹취가 터지면 남아 있던 이정찬의 지지자들의 일부도 떠날 것이다.
그때 가서 이정찬을 제명해 봤자, 민우당은 이미 한차례 이정찬을 감싸준 전적이 있으니 어느 진영에서든 욕먹을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 * *
“이정찬이 한국인들은 유전자부터 멍청하다고 했다고요? 지도 한국인이면서? 어이없네요.”
이야기를 들은 강민재는 기가 막힌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강민재는 미국에서 좀 살아서 그런지, 제스처가 참 풍부하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참 어이없다고 생각해.”
“그 녹취는 또 어디서 나셨대요? 도청하셨어요?”
“설마. 그냥 어디서 나도 들은 거야.”
“그럼 이건 언제 터지는 거예요? 기대된다. 요즘 뉴스 너무 재밌다니까요. 드라마 기다리는 기분으로 뉴스 기다려요. 녹취 터지는 날 뉴스 챙겨봐야지.”
“안 터질 거야.”
나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강민재는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왜 안 터져요? 그걸로 강종명 협박한 거잖아요.”
“애초에 그 녹취가 없거든.”
“예에?”
이번엔 가만 듣고 있던 오 사무장도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럼 강종명은 있지도 않은 녹취에 속은 겁니까?”
“그렇지. 이세화도 마찬가지고.”
“왜 속았대요? 녹취를 직접 들은 것도 아니면 속을 이유가 없잖아요.”
“이정찬 평소 입버릇이거든, 그게. 한국인들은 유전자부터 멍청하다, 다음을 도모하며 기다리면 또 속아 줄거다. 강종명도 직접 들은 적이 있으니까, 그 양반 입 막 놀리더니 결국엔 녹취 당했구나 싶었겠지.”
먼 미래에 최종현이 어디선가 입수하여 나에게 들려줬던 녹취 파일 속 이정찬의 목소리가, 왜인지 생생하게 귓가에서 재생되는 듯했다.
정말 녹취가 있었더라면 함께 뿌렸을 텐데, 아쉽다.
뭐, 그게 있든 없든, 내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서는 이정찬이 대통령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