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35)
너희들은 변호됐다-235화(235/641)
이전 삶의, 단조로웠던 2011년의 어느 날.
“어떻게 오셨어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재판 때문에 어젯밤을 꼬박 새운 나는, 검사실 안쪽의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냐는 오 계장의 목소리에 희미하게 눈을 뜨자, 익숙한 음성이 대답했다.
“차주한 검사 만나러 왔는데…… 혹시 안에 있나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 개인적인 일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오 계장과 방문객의 대화가 이어지자, 점점 상대방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양동진?”
부스스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나가자, 동진이 박카스 상자를 내려놓으며 머쓱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바빠서 오래전부터 시간을 맞춰야만 볼 수 있었던 그가 별일이다 싶었다.
“계장님, 혹시 시간 좀 있을까요?”
하루에도 많게는 열 명이 넘는 피의자가 왔다 갔다 하는지라, 나는 몰라보게 초췌해진 동진을 실피기보다 먼저 시계를 확인했다.
어색하게 내 옆에 서서 쭈뻣거리는 동진은 눈에 띄게 미안한 기색이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동진에게 커피를 타 주고, 그와 마주 보고 앉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처음 보자마자 느꼈듯이, 그는 몰라보게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동진도 서로 사는 게 바빠 만나지 못한 지 한참이었다.
새해가 되고도 안부 전화 한 통으로 생사를 확인한 게 고작이라, 이렇게 불쑥 찾아온 동진이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동진은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찾아오고.”
“전화를 몇 번 했는데 안 받더라고. 그래서 찾아왔는데…… 괜히 온 건가?”
“그런 뜻은 아니지, 인마. 잠깐 눈붙이고 있었어. 어제 밤을 샜거든. 그래서 전화를 못 받았나 보다.”
나는 책상에 높이 쌓인 서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수씨는 잘 있지?”
“당연하지. 요즘 애 때문에 잠 못 자서 다크써클 생긴 것만 빼면. 하하. ……. 근데, 너 피곤한데 괜히 바쁜 날에 불쑥 왔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
동진은 전에는 보지 않던 내 눈치를 봤다.
‘괜히 왔다’, ‘괜히 방해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나를 만나러 오기로 결심하기까지 오랜 고민이 뒤따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니, 무슨 일까진 아닌데…….”
“어쨌든 뭐가 있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얘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걱정하지 말고 얘기부터 해 봐.”
몇 번 채근한 다음에야 동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 그 사건 알지? 그 우리 병원에서 한영그룹 둘째 사망한 거.”
“아, 기사로 봤어. 요즘 바빠서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원래 과장이 담당하는 환자인데, 과장이 잠시 자리비운 사이에 다른 의사가 VIP 잡을 욕심에 무리하게 수술 들어가서 문제된 건이었나?”
내 대답에 동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맞아. 하긴, 알았으면 네가 연락했을 텐데. 그거 우리 과에서 일어난 일이거든.”
당시 나는 정신이 없었다.
부친상을 치른 뒤로는 업무를 볼 때가 아니면 명화제약 사건을 캐고 다니느라 바빴다.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명화제약과 관련된 일화를 수집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상준이 고작 ‘삔또’ 상한 아들의 계열사 몸집을 불려주기 위해 안트로졸 알파를 출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신 그룹을 잡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연초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승진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조금씩 눈에 띄는 성과에 집착하게 되었고 미제에 매달렸다.
우신을 잡으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동진에게 연락을 해볼 틈이 나지 않았다.
“너희 과? 그럼, 너도 연관된 일이야?”
“사실은…….”
“……사실은?”
“그 집도의가 나야.”
“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 사건이 명대병원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동진과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동진은 VIP를 잡고 싶은 욕심에 과장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무리하게 집도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뭐가 잘못된 거지?”
해당 사건에 대해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미 그 사건은 일어난 지 3개월도 더 된 시점이었다.
이미 송치되어 중앙지검으로 사건배당되었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다.
이는 집도의인 동진에게 혐의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체 왜?
“……맞아, 잘못됐어. 그러니까 주한아, 네가 좀 도와줘. 응?”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대체 어떻게 된 건데? 언론에서 말한 그대로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내가 막무가내로 과장 허락 없이 들어간 게 아니라, 과장이 나한테 대리 수술을 강요한 거야. 어려운 수술이라 자신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난 억지로 과장 대신 수술에 들어간 거고.”
“그런데?”
“……수술이 잘 안 됐어. 그래서 환자는 사망했고. 그랬더니 과장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이 수술 본인이 한 거 아니라고, 내가 한 거라고 하면서 난리가 난 건데…….”
일반적으로 대리 수술은, 수술 청약상 집도의로 표기된 그 의사가 집도한 것으로 처리된다.
즉, 동진이 집도했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과장이 집도한 것으로 알린다는 뜻이다.
동진의 말을 들어 보니 이 경우에는, 수술이 잘못되자 과장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 듯했다.
‘어차피 집도한 건 너 아니냐’ 식으로 동진을 앞세운 것이다.
게다가 대리 수술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본인이 대리 수술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동진이 마음대로 수술에 들어갔다고 거짓 주장을 펼치는 상황인 듯했다.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
“내가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송치되기 전에 뭐라고 해 봤을 거 아니야. 이걸 왜 이제 와서 말해!”
“너한테 어떻게 말해! 너도 지금 힘들잖아. 근데 어떻게 너한테 염치없이 부탁을 하냐! 그리고…… 너까지 곤란해지게 어떻게 그래…….”
동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병환까지 겪으며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가장 잘 알기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변호사는 뭐래?”
“과장 거짓말을 밝힐 방법이 없다고, 그리고 내가 강요가 됐든, 아니든, 정말 대리 수술 들어간 게 맞다면 그것도 의료법 위반이니까 그냥 형랑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자고 하지…….”
“둘 다 의료법 위반이라고 해도 사안이 다른데, 그걸 그냥 형량 줄이기로 가자고 했다고?”
“그래서……. 그래서 너한테 찾아온 거야. 정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과장이 너한테 대리 수술 강요했다는 증거가 없는 거야?”
동진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기소된다면, 과장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동진만 혼자 과장의 부재를 틈타 동의 없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된다.
그리고 사망한 환자가 한영그룹의 둘째 아들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전방위로 가할 압박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커리어는 끝난다고 봐야 하고, 법적인 책임도 크게 지게 될 것이다.
동진은 본인이 잘못한 만큼만, 강요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대리 수술을 한 것에 대해서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담당 검사 이름이 뭐야?”
“……신은혜.”
“일단, 내가 좀 알아볼게. 이따가 밤에 시간 돼?”
“……되지, 나는.”
“그럼 이따가 밤에 연락할게. 그때 보든지, 통화를 하든지 하자.”
“고맙다, 주한아. 그리고 미안해…….”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 이따가 보자.”
상태가 나쁜 동진을 오래 잡아 두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우선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동진의 사건을 맡았다는 신은혜 검사에 대해 조금 찾아보았다.
해당 사건은 형사 2부로 배당되었고, 그녀 역시 형사 2부 검사.
연수원 기수는 나보다 2기수 위.
이예진 검사와 동기인 듯했다.
나는 이예진이 지금 검사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신 프로? 알지, 나랑 동긴데. 근데 왜?”
“신 검사님이 맡으신 사건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차 프로가 안 하던 짓을 하네? 흐음……. 급한 건이야?”
내 말에, 이예진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네.”
“흐음, 그래도 나는 조금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 신 프로 성격이, 그런 거 좀 싫어해서.”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무슨 건인데?”
“명대병원 의료법 위반 사건입니다.”
“한영그룹 둘째 아들 건?”
“네.”
“왜, 차 프로 아는 사람이랑 엮여 있어?”
“……네.”
“아오, 그럼 같이 가자. 내가 말 좀 잘해 줄게.”
이예진은 그 자리에서 신은혜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잠시 시간이 된다고 대답했다.
신은혜를 만나러 가기 전, 나는 상황을 궁금해하는 이예진에게 동진의 사정을 전달했다.
그녀는 처음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계속 유심히 지켜보았던 모양이었다.
알려진 사실과 너무 다르다며, 몇 번이나 동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동진과 까막눈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서로 사는 게 바빠 연락은 뜸해졌어도,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동진과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공부도 함께 했고, 놀 때도 함께 했고, 나쁜 짓도 함께 했다.
나에게는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동진이 그랬을 리가 없다고.
“……음, 그 건은 아마 기소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렇게 만난 신은혜는 내가 명대병원 의료법 위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대답을 내놓았다.
“너무 명확해요. 피의자가 본래 집도의 부재 사실을 알고 본인이 집도하겠다며 우기는 걸 봤다는 증인만 셋이거든요. 그리고 피의자가 브랜치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VIP를 잡는 데 혈안이 되었을 거란 정황도 있고……. 피의자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거든요.”
“……그렇군요.”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 달라는 말도, 동진이 그랬을 리가 없다는 말도, 결국은 청탁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 검사님은 무슨 일로 그럼게 급하게 이 사건에 대해서 확인 하시는 거예요?”
“그냥 차 프로가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던 게 있었나 보더라고. 빨리 확인해야 하는 거라. 그치?”
이예진이 끼어들며 말하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절망적인 기분이라, 뭐라고 말을 덧붙일 기분이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신 검사님.”
“네. 들어가세요.”
그리고 그날, 나는 동진을 만나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동진은 과장이 증인을 매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진과 경쟁 중인 원장 아들 역시도, 동진의 몰락을 바라고 함께 말을 얹고 있다고.
나는 우선 과장이 동진에게 대리 수술을 강요한 것을 입증할 만한 방법은 없는지 조금 더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동진은 기소되었다.
물론 그사이 진척된 것은 없었다.
나 역시 본격적으로 나설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 프로, 잠깐 나 좀 보지.”
검사실에 상당히 어두운 표정을 한 황영찬이 찾아왔다.
나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블라인드까지 꼼꼼히 내린 황영찬은, 조금 성난 목소리로 나에게 소리쳤다.
“차 프로, 너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