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4)
너희들은 변호됐다-24화(24/641)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김연준 씨?”
출근하기 전 들른 카페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그는 예에 그랬던 것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으시죠?”
“맞습니다. 대신 이번엔 두 잔입니다.”
“넵, 바로 옆에서 준비해 드릴게요.”
내가 카드를 내밀자, 김연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장님이 앞으로 변호사님한테는 커피값 받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건 별개의 일이죠.”
“아닙니다. 진짜 사장님 엄명이에요. 카드 다시 넣으세요. 얼른요.”
마지막 법정에서 보았을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안색이 좋아졌다.
그나저나, 풀려난 지 겨우 이틀째인데 벌써 아르바이트를 나올 줄은 몰랐다.
부모님 돌아가신 것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고, 처리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여기요, 두 잔.”
“고맙습니다.”
“저 알바 1시에 끝나는데, 끝나고 사무실로 올라가 봐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소개해 줄 사람도 있고.”
나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오늘부터 강민재가 정식으로 출근하는 날인데, 아직 책상도 들여놓지 않았다.
들어가서 책상부터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변호사님. 좋은 아침이네요.”
상담 테이블 위에 커피 두 잔이 담긴 캐리어가 놓여 있다.
내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제가 커피도 사 놨……. 어? 혹시 하나는 제 겁니까?”
강민재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날 집요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둘 다 내 거야.”
“제 거잖아요.”
“내 거야.”
“아, 예. 예.”
그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자신의 커피 캐리어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내 손에 들린 것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1층에 카페 알바, 김연준 씨 맞죠?”
“맞아.”
“이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김연준 씨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사장이 그 증인으로 섰던 이영호 씨고요? 여기 건물주. 맞죠?”
“등기부 등본도 떼 봤어?”
“이 건물 제가 매입할까 하고 알아봤죠.”
“뭐?”
“농담입니다.”
방금 거짓 판별 능력을 썼어야 했는데, 타이밍이 늦었다.
나는 실없는 소리나 늘어놓는 그를 지나쳐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젯밤 뽑아 놓았던 전화선을 다시 연결하고 컴퓨터를 켰다.
따르르릉!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무섭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차주한 변호사 사무,”
-변호사님! 이거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잠시 떼어 내었다.
내가 다짜고짜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한 적이 있었던가, 아주 잠시 생각했다.
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들렸는지, 강민재도 불쑥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내게 무슨 일이냐는 사인을 보냈다.
“거신 분은 누구시죠?”
-윤세연 기잡니다. 휴대폰으로 전화 한 100통은 건 것 같은데, 하나~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아. 윤세연 기자님. 어젠 좀 바빴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니, 그래도 전화를 그렇게 걸었으면 문자 하나쯤은 남겨 주실 수 있잖아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어휴, 됐어요. 내가 차라리 벽이랑 싸우고 말지. 어쨌든. 우리 정산할 거 남아 있죠?
강민재가 내게 조간신문을 건넸다.
모든 신문의 1면이 김철환 여희숙 부부 살해 사건 결론으로 가득했다.
그중, 일중 일보의 끄트머리를 보자기자의 이름이 윤세연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후속 기사를 예고하는 마무리와 함께.
“기사 잘 봤습니다.”
-네. 그럼 후속 기사 예고도 보셨겠네요?
“봤습니다.”
-좋은 소스 주시겠다고 하셨죠? 그 약속, 이제 지키시죠.
김형준이 입원한 병실과 여희숙의 매니저 연락처를 조달해 준 대가로 그런 약속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안 주면 고소하겠다는 협박 문자도 떠올랐다.
-재판 결과는 이미 모든 신문사에서 다 털었고. 그럼 좋은 소스란 게 뭐겠어요?
“글쎄요.”
-뭐가 글쎄요예요. 저 변호사님 인터뷰 따러 갑니다.
“나보단 김연준 씨 인터뷰를 따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김연준 씨는 인터뷰 안 하겠다고 이미 입장 밝혔어요.
“그럼 저도 인터뷰 안 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변호사님은 열외죠. 저하고 약속하신 게 있는데. 당연히, 일중일보, 아니, 윤세연 독점 인터뷰 가셔야죠. 흐흐흐.
윤세연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미리 질문지 보내 주면, 확인하고 연락드리죠.”
-까아! 나이스! 나이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강민재 변호사님도 같이 인터뷰 따도 되나요?
강민재가 USB를 들고 법정에 나타난 것이 재판을 뒤집는 분수령이 되기는 했지만, 강민재가 그렇게 유명했던가?
“강 변. 이리 와 봐.”
“예, 무슨 일이십니까?”
“일중 일보 윤세연 기자인데. 내 인터뷰 따면서 강 변 인터뷰도 같이 따고 싶다는데.”
“변호사님 하시면 저도 하죠, 뭐. 근데 변호사님 이런 거 안 하시잖아요?”
나에 대해서 무척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눈치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 2008년의 차주한이었다면 절대 이런 인터뷰를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10년 전으로 돌아온 나는 다르다.
잘난 체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지 않을 선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내 커리어에 꽤 도움이 된다.
“이번에 윤 기자님한테 도움을 좀 받아서. 해야 할 것 같아.”
“그럼 저도 할게요.”
“윤 기자님, 강 변도,”
-들었어요! 까아! 예스! 저 그럼 바로 메일로 질문지 쏘겠습니다. 메일 주소 좀 문자로 보내 주세요.
“아, 잠깐만요. 변호사님.”
윤 기자와 강 변이 양쪽에서 시끄럽게 구니 정신이 없다.
나는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둘이 알아서 얘기해.”
“윤 기자님. 저 강민재입니다.”
-아이고, 알죠, 알죠. 우리 강관,
“아, 예! 그러니까, 제 질문지는 따로 보내 주셨으면 좋겠어서요.”
-아, 아하~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윤세연이 무언가를 눈치 챈 듯 미묘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의자를 뒤로 물리며 알아서 얘기 끝내라고 대답한 뒤 베란다로 나갔다.
강민재는 아예 내 의자에 앉아서 다시 수화기로 전환하고 윤세연과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전화를 끊고 내 옆으로 다가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 변.”
“예?”
“나한테 숨기는 거 뭐 없나?”
“숨기는 거요? 없는데요.”
[거짓]강민재는 자신의 머리 위에 뜬 글자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뻔뻔하게 날씨 타령을 했다.
날씨가 너무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이 높다는 둥 상투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강 변, 거짓말이 많이 늘었네.”
내가 담배를 끄며 말하자, 그가 갑자기 애타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베란다로 나서는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혹시 저 고용하시기로 한 거 취소하시거나 그런 건 아니죠?”
“아니야.”
“나중에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그냥 말씀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진짜 별거 아닌 거라서.”
[진실]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 법이다.
그건 나도 다르지 않았다.
강민재가 나에게 숨기는 게 있다고 해도, 그게 나에게까지 큰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해.”
“변호사님, 혹시 화나셨습니까?”
“아니, 안 났어. 계약서나 좀 쓰지.”
나는 집에서 작성한 고용 계약서 초안을 2부 인쇄했다.
“읽어 보고 고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그리고 태광에 사표는 썼나?”
“당연하죠. 수리됐습니다, 어제.”
“어제?”
내가 안 받아 주면 드러누울 생각하고 아주 사표까지 미리 써 놓은 모양이었다.
“네. 제가 또 행동력 하나는 끝내 주죠.”
“사무실 안정될 때까지는 프리랜서 계약으로 가자고. 수임료에서 일정 비율 지급 하는 거로 하고, 사무실 안정되면 정직원으로 고용할게. 4대 보험도 해 주고.”
“안 해 주셔도 돼요. 근데, 이렇게 가면 변호사님이 손해 아니겠습니까?”
“왜 내가 손해야?”
“앞으로 수임료 엄청 많이 버실 텐데, 저한테 이렇게 떼 주시면 완전 손해죠. 제가 최저 시급만 맞춰 주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태광 다녔던 변호사한테 어떻게 최저 시급만 맞춰 줘.”
“그럼 비율만 조금 바꾸죠. 건 당 10퍼센트만 떼 주세요.”
“수임료 처참한 사건 맡으면, 강 변 10만 원도 못 가져갈 수도 있어.”
그 말에 강민재가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태광은 시니어 변호사한테도 30% 밖에 안 줘요. 저는 어쏘였는데, 10% 정도가 적당하죠. 사무실도 굴려야 하고. 변호사님도 가져가셔야 하고.”
강민재는 비율 항목에 취소선을 긋고 10퍼센트로 고친 후, 그 위에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져와 도장을 찍으라고 들이밀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더 달라는 사람은 봤어도, 조금 달라는 사람은 역시 강민재가 처음이다.
급여를 두고 어제 술 마시며 계속 실랑이했고, 오늘도 얘기했으니 나도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위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다른 거 고치고 싶은 건 없어요. 비율만 수정하고 이대로 가시죠.”
“서류마다 서명하고. 저기 밑에 주민번호하고 인적사항 적어서 서명해.”
강민재의 고용 계약서까지 처리를 마치고 나니, 그의 책상을 주문하기로 한 게 떠오른다.
“네 책상 주문해야지?”
“제가 주문했는데요? 사무실 디자인하고 맞춰서. 위치도 다 봐 뒀어요.”
“……거참. 영수증 갖고 와. 비용 처리하게.”
“괜찮아요. 프리랜서 계약인데, 필요한 집기는 제가, ”
“강 변.”
싱글벙글 웃음기 가득한 채로 계약서 1부를 자신의 서류 가방에 넣던 강민재가 나를 바라보았다.
“강 변 집 돈 많은 건 알겠는데, 사무실 재산이니까 영수증 가져와. 알았어?”
“……아, 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전 그냥,”
“나중에 강 변 퇴사하면 사무장 쓰라고 줄 거야.”
“저 안 그만둘 건데요?”
“그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
“안 그만둔다니까요?”
한창 새로운 실랑이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저기요.”
사무실 문이 열리고, 완충재로 포장된 책상을 든 남자가 들어왔다.
“책상 주문하셨죠? 어디 두면 됩니까?”
* * *
강민재는 사무실의 비어 있는 한 켠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했다.
심지어는, 명패까지 파 뒀는지 가방에서 명패를 꺼내 올려 두었다.
어지간히도 신나 보였다.
콘센트를 꽂고, 노트북을 올려 두고, 서류를 꽂을 디바이더를 설치하고, 법전과 서류를 꽂고 나니 자신의 할 일을 끝냈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나는 그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윤세연 기자가 보내온 질문지를 확인했다.
한글 문서 6페이지에 달하는 수많은 질문 목록 중에서 이것저것 취소선을 긋고 나니 정작 남은 것은 2페이지 정도였다.
따르르릉!
이제 좀 쉴까 했더니, 또 전화가 울린다.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오, 드디어 받으시네요. 안녕하세요. 저희 SBC 9시 뉴스 팀입니다.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신지…….
“아뇨, 시간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남으시는 시간에 저희가 찾아뵙겠습니다. 언제가 돼도 상관 없,
“죄송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다시 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윤세연이 통화에 성공한 뒤, 어디서 이야기가 새서 다시 전화 러시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강 변. 전화선 좀 뽑아.”
“에휴, 또 시작입니까?”
그는 전화선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의뢰 전화는 언제 받아야 하는지, 원.”
“찾아오겠지.”
사실 이번 김연준 사건은 거의 프로보노 식으로 진행한 것이라, 사무실을 굴리려면 새 사건을 맡기는 해야 한다.
그래도 전화선을 열어 둔다고 해서 의뢰인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인터뷰 요청 전화에 묻혀 회선이 꼬이면 꼬였지.
“변호사님, 점심 식사 언제 하실래요?”
“지금 몇 시지?”
“12시 55분입니다.”
“1시에 김연준 씨 오기로 했어. 만나고 먹든지 해야겠는데.”
“그럼 메뉴나 고르고 있을까요? 뭐 좋아하세요?”
인근에 무슨 식당이 있는지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김연준과 이영호가 함께 들어왔다.
“어, 변호사님. 김연준 씨 오셨는데요.”
강민재가 튕기듯 일어나 그들을 상담 테이블로 안내했다.
“아침에 뵙고 또 뵙네요, 변호사님.”
“차 변호사, 나도 같이 왔어.”
건물주 이영호가 머쓱하게 웃으며 김연준 옆에 자리했다.
김연준은 내 옆에 앉은 강민재를 보며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까 아침에 카페 오셨던 손님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강민재 변호삽니다.”
“아, 차주한 변호사님하고 같이 일하시는 분이신가 봐요. 처음 뵙네요.”
강민재가 청한 악수에 화답하며 김연준이 웃었다.
“김연준 씨 사건 해결하는 데 이 친구가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됐고요.”
“그러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휴정 시간에 그 동영상 들고 나타난 그놈입니다. 하하.”
“아, 정말요? 이제야 알아 봬서 죄송해요.”
아까도 느꼈지만, 김연준은 구치소에서 봤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도 세상의 질타를 받다가, 이제는 억울했던 심정이 어떠냐며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것이다.
세상에 환멸을 느꼈을 법도 한데.
긍정적인 사람 같다.
“차 변호사 덕분에 우리 연준이가 억울함도 풀고……. 정말 고마워. 그때 만나 본다고 했을 때 당연히 변호 안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맡아 준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다고.”
“김연준 씨는 잘못이 없었으니까요.”
“저, 변호사님.”
흐뭇하게 이영호와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연준이 문득 끼어들었다.
“저, 일단……. 원래 의뢰할 때 수임료 얘기부터 해야 한다더라고요. 원래는 착수금 먼저 드리고 성공 보수 드리는 게 통상적이라고. 그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김연준이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여기, 수임료 먼저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