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40)
너희들은 변호됐다-240화(240/641)
“네 말 대로 간호사가 본인이 실수한 거 책임지기 싫어서 너한테 돌리는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거 말곤 뭐, 나한테 이럴 이유가 없으니까.”
“아니, 의심해 볼 만한 건 더 있어.”
“더 있다고?”
동진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동진 역시도 이 일이 일어나고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간호사가 대체 본인에게 왜 이러는 것인지.
하지만 이전 삶의 정보가 없는 그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이전 삶의 사건과 이번 삶의 사건을 모두 고려해 보면 결론은 하나다.
“너 원한 산 사람은 없어?”
“원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너한테 문제 생기게 하려고 작정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동진은 내 말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상황이 본인에게 큰 악의가 있는 사람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스스로를 지키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에 일어났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너한테 오더받고 세팔로스포린 주사했다던 간호사 이름이 뭐야?”
“구소정.”
처음 듣는 이름인 것을 보면, 이전 삶에서 이 사건에 연관되었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원한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추측한 이유는 위험 인자를 제거했는데도 또다시 이 시기에, 설형석을 이용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공범이나 정범은 아직 남아 있어야 내 가설이 성립되는 것데.
“……흐음. 일단 너한테 악의를 가질 만한 사람을 생각해 봐.”
악의라는 말에 동진은 당황한 듯했지만, 곧 생각에 잠겼다.
동진은 성격이 좋은 편이라 웬만해서는 원한을 살 타입은 아니다.
그 역시도 감이 잘 오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원한까지는 잘 모르겠어. 날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거야 사회생활 하다 보면 누군가 한명한테는 미움받기 마련이잖아.”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 악의가 아니어도, 너의 몰락으로 이득을 볼만한 사람은 없는지.”
“내 몰락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
내 말을 곰곰이 되씹던 그는, 결국 머릿속에 어떤 얼굴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잔상이 있었다.
“원장 아들.”
그리고 동진의 입에서 나온 말 역시, 내가 떠올린 그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장 아들이 이득을 보지. 나랑 승진 때문에 경쟁하는 중이고, 지금 과장이 오고 나서는 전임 과장처럼 자길 팍팍 밀어주지 않으니까 내가 없으면 본인한테 모든 게 몰리잖아.”
“맞아. 원장 아들이 가뜩이나 널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었잖아. 에이스 견제라고 했나?”
“그거야 그냥 농담 삼아 한 말이긴 한데……. 아무리 그 자식이 재수없게 군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나를 수렁에 빠트리려고 했을 것 같진 않은데……. 이건 너무 큰일이잖아.”
동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작은 욕망으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게다가 원장 아들은 이전 삶에서도 동진을 귀찮게 하는 존재였다.
그때도 원장 아들과 동진은 경쟁하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전임 과장이 원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원장 아들을 편애했었다는 동진의 말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아귀가 맞는다.
“환자가 식물인간이 됐고, 나는 소송까지 당하게 생겼어! 근데 겨우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까지 상황을 만든다고? 그건, 그건……. 말이 안 돼.”
내가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동진 역시도 부지런히 우리가 특정한 용의자에 대해 생각해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달리 생각을 거듭할수록 원장 아들이 의심스러웠다.
처음엔 이전 삶에서 전임 과장이 고작 원장 아들을 밀어주기 위해 대리 수술까지 강요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임과장이 동진에게 대리 수술을 시킨 것은 단순히 그 이유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설형석의 수술을 제대로 집도할 자신도 없었고, VIP도 잃고 싶지않았기에 사건을 저질렀다.
수술이 잘되지 않았을 경우 그 책임도 남에게 전가하고, 동시에 원장 아들에게 눈엣가시 같았던 동진까지 처리하고.
일석이조의 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미처 제거하지 못한 위험 인자는 바로 원장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 일어나고 나서, 원장 아들 반응은 어땠어?”
“나도 잘은 모르겠어. 정신이 조금없어서 그쪽을 살피진 못했거든. 나한테 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했냐고 지나가면서 말한 적은 있는데…….”
결정적으로 설형석에게 세팔로스포린을 주사한 것은 간호사다.
즉, 간호사가 원장 아들에게 사주를 받았을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전 삶에서 일어난 사건에, 구소정이라는 간호사의 존재감이 없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이전 삶에선 동진이 집도한 결과가 나빴고, 이에 따라 과장이 직접 음해했기 때문에 굳이 간호사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임 과장이 사라졌으니, 원장 아들은 또 다른 공범이 필요했던 것이다.
“너는 원장 아들이 구소정 간호사를 사주해서 세팔로스포린을 놓게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나한테 오더받은 걸로 거짓말하게 한 거라고?”
“맞아.”
“미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 말도 안 돼…….”
동진은 여전히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동진의 생각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원장 아들이나 구소정 간호사 병동에 있어?”
내가 직접 만나서 확인하면 되니까.
“……둘 다 지금 있을 거야.”
“일단 좀 만나 보자.”
“지금? 구소정하고는 이미 충분히 많이 얘기했어. 이미 아니라고 잡아떼고 있는 상황이라니까?”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내 뒤로, 동진이 다급하게 따라붙으며 말했다.
“알아. 혹시 모르잖아. 그래도 내가 변호산데, 대화해 보면 뭔가 알아낼 만한 게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원장 아들하고도 얘기해 보면 좋고.”
동진은 결국 날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넓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동진은 발끝만 바라보고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야, 차주한.”
“왜.”
“고맙다.”
“뭐가?”
“……이렇게 나서 줘서.”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너도 내가 어디 아프면 어떻게든 도와줄거잖아.”
“당연하지, 인마. 그래도…….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이렇게 나에게 의지하는 동진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어야 할 텐데.
이전 삶과는 다르게 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동진은 나를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 * *
“누구 먼저 불러?”
“일단 구소정부터.”
내 말에 동진은 구소정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 바로 병동 안에 구소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녀가 어디 있냐고 묻는 것은 남들에게 가십거리를 던져줄 뿐이다.
“근데 구소정 만나서 뭐라고 하려고? 그러니까, 너는 외부인이잖아. 근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면 놀랄 것 같아서.”
“사실대로 말해야지. 네 친구가 변호사라서 상담했다고. 어차피 환자 가족들이 너한테 소송 걸겠다고 했다며. 그럼 이쪽도 대비하는 게 맞는 거니까.”
내가 대꾸하자, 동진은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변호사를 벌써 선임했냐고 말이 나오진 않을까 싶어서…….”
“어차피 너 누명 벗으면 이런 거 가지고 욕할 사람 아무도 없어. 오히려 초반부터 대비해서 좋은 결과 있었던 거라고 하겠지.”
“그건 그렇지.”
구소정은 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부러 전화를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환자를 보는 중이라 받지 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진은 한숨을 쉬며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양동진 선생?”
그때, 등 뒤에서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조하게 전화가 연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동진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한 무리의 의사들이 서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중견급 의사 두 명이 동진과 또래거나 그보다 어린 의사들을 대동한 채였다.
그중 시선이 가는 것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을 한 중견 의사였다.
나이가 아주 많은 것 같진 않고,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인다.
명찰에는 신경외과 과장 백찬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사람 역시, 명찰을 확인하니 신경외과 교수였다.
“과장님, 교수님.”
동진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백찬근이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이 와 있었나 보네.”
“……아, 네.”
“안녕하십니까.”
내가 인사를 건네자, 백찬근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백찬근 옆에 서 있던 교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데 이분은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저는 교수님을 처음 뵙습니다.”
“아, TV에서 본 것 같네요. 변호사 맞죠? 아주 유명한 변호사 아니에요?”
교수의 입에서 변호사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뒤에 서 있던 젊은 의사들이 동요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들끼리 입을 가리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찬근이 굳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의사들은 눈치를 보고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변호사가 맞긴 한데, 변호사 신분이 아니라 친구로 지나가는 길에 만나러 온 겁니다. 동진이하고는 죽마고우라서요.”
“그렇군요. 양 선생은 유명한 친구가 있어서 좋겠어?”
교수가 빙글거리며 말했다.
동진은 여기서 과장과 교수를 맞닥트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의사 친구가 있어서 제가 더 든든합니다.”
“살면서 의사 친구 하나 있으면 좋죠. 친구 덕 볼 일이 한 번은 생기니까. 그러려면 양 선생이 계속 의사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교수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진은 그 말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어쩌다 그런 실수를 해서 말이야…….”
교수는 동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혀를 차며 입방정을 떨었다.
동진이 병동에서 받는 눈초리가 어떨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경솔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실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만 가시죠, 교수님.”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던 백찬근이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전히 빙글거리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변호사니까 친구 좀 잘 도와줘요.”
그리고 그는 의사 무리를 이끌고 가려 했다.
“김성우 선생님.”
나는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교수와 과장 뒤에 서 있던 젊은 의사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갑자기 이름을 불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 김성우가 눈을 크게 떴다.
물론 그것은 동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원장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사실, 동진이 원장 아들의 이름을 말한 적은 없다.
그래서 나중에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고민되긴 했지만, 나는 이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사건의 중심으로 몰려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는 동진이 지금 변호사와 함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때에 김성우에게 용건이 있다며 잠깐 보자고 한다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김성우도 사건에 연관이 있는 것 같다며 입방아를 찧어 댈 것이다.
직장 내에서 동진만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할 순 없지 않은가.
김성우도 눈칫밥 좀 먹어야지.
만에 하나 사건과 상관이 없더라도, 여태 동진에게 재수 없게 군 전적이 있으니 이 정도 응징은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