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5)
너희들은 변호됐다-25화(25/641)
강민재는 얼른 확인해 보라는 듯 눈짓했다.
“확인해 보시고 혹시 제가 너무 적게 넣은 거면 말씀해 주세요. 나름대로 검사 출신 변호사님들 수임료 같은 거 알아본 건데……. 또 변호사님 워낙 유명하신 분이었더라고요. 그래서 그것까지 감안하긴 했는데…….”
김연준과 이영호까지도 얼른 확인해 보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봉투를 열었다.
“김연준 씨, 이건…….”
수표 세 장.
3억 원이다.
강민재 역시도 예상외였던 듯 놀란 기색이었다.
“김연준 씨,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김연준 씨 사건 맡은 건 아닙니다.”
“아뇨, 제 사건 자체가 워낙 유명하고 난이도가 높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흉악 범죄라고……. 원래 난이도 높을수록 수임료도 비싸지는 거라고 들었어요. 저는 변호사님 아니었으면 분명히 유죄 나왔을 거고, 살인자가 됐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저 부모님한테 받은 유산이 많아요. 그러니까 무리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변호사님은 정말,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솔직히 부족하다고 하셔도 상관없을 정도로, 저 정말 변호사님한테 감사드리고 있어요.”
김연준의 말을 곰곰이 듣던 강민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원래 태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수임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시니어 변호사님이 최근에 맡은 사건 중에, 상표법 위반으로 기소된 경제사범 사건 있었는데. 1심에서 집행유예 나오는 거로 4억 받았었어요.”
“아, 그러시면 저는 더 드려야 하는 건가요? 상표법 위반 같은 거는 소소한 건이지만, 저는 살인이었으니까…….”
“아뇨. 아닙니다, 김연준 씨. 강 변, 입 다물고 있어.”
“……네.”
강민재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가 말하는 케이스는 태광이라는 이름값도 있었을 것이고, 태광에서 시니어 변호사 정도 됐다면 최소 부장 검사 출신이었을 터였다.
그게 아니어도 경력이 아주 긴 변호사였든지.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
“변호사님, 제가 너무 조금 드린 거 맞죠? 제가 조금 더…….”
“아닙니다. 김연준 씨. 충분합니다.”
“그럼 받아 주시는 거죠? 제 마음이니까 너무 거절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김연준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놈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됐는데도 알바 계속한다고 그럽니다. 무슨 이런 놈이 다 있는지.”
“헤헤.”
이영호의 말에 김연준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김연준 씨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 예정이십니까?”
“……음, 일단 학교 마저 다니고요. 평범하게 살려고요. 그리고 부모님이 후원하시던 기관에 계속 후원할 생각이에요. 제가 받아야 할 돈이 아니었던 게 생긴 거니까…….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김연준은 부모님을 떠올렸는지 잠시 울음을 삼켰다.
살인 혐의를 벗은 것은 그에게는 경사였지만, 결과적으로 부모님을 잃었으니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음 잘 추스르세요. 김연준 씨는 앞으로 잘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김연준 씨가 하시는 일 다 잘되길 기원하겠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던 강민재가 슬쩍 끼어들었다.
김연준이 눈물 어린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만 우세요, 연준 씨.”
강민재가 그에게 티슈 몇 장을 뽑아 건넸다.
김연준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런데 변호사님.”
“네.”
“그때, 구치소에 처음 접견 오셨을 때요.”
어느 정도 진정된 김연준이 말문을 열었다.
“왜 제 말을 믿어 주셨어요?”
나는 그날을 가만히 회상해 보았다.
이영호에게 등 떠밀려 어차피 미래에 용의자였던 김연준을 만나러 갔고, 나는 그곳에서 김연준의 자백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능력을 사용했고, 거짓임을 알아차렸다.
만일 내게 능력이 없었다면?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하며 그를 외면했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이 있어서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나도 차 변이 변호 안 맡아 줄 줄 알았어.”
이영호가 거들었다.
이번엔 강민재도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김연준 씨가 무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요?”
“네.”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
“……생각.”
“이야, 차 변이 혜안이 있네. 응? 진실을 꿰뚫어 보는 혜안. 하하하.”
이영호가 파안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이 분위기에 살짝 묻어가야겠다.
“감사합니다.”
“혜안, 하면 또 우리 차주한 변호사님이시죠. 검사 시절부터 얼마나 대단했는데요. 크, 저도 그래서 태광 때려치우고 여기 온 거잖아요.”
“아, 그랬어? 이야, 역시 차주한 변호사야. 앞으로 대성하겠어!”
“맞아요. 이런 변호사님이 대성 안 하시면 누가 대성하겠어요?”
성공이다.
* * *
“변호사님, 여기 물.”
강민재는 식당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수저와 물부터 정렬했다.
문득 그에게서 검사 1년 차 시절 부장과 부부장, 그리고 선배들에게 수저를 놓아주던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머슴처럼 굴어서 겨우겨우 차장검사까지 올라갔는데, 드럼통에 담겨 죽어야 했던 내 신세라니.
“강 변 계약서에 계좌번호 적었지?”
“네. 적었죠.”
“이따가 삼천만 원에서 3.3% 떼고 입금할게.”
“왜요?”
“왜라니?”
3.3%가 원천징수라는 걸 설마 모르지는 않을 테고.
“계약서는 오늘 작성했고, 김연준 사건은 어제 끝났어요. 그리고 전 어제까지 태광 소속이었고, 겸업 금지였죠. 저한테 수임료 주시는 건 다음 사건부터예요.”
“그래도,”
“와, 김치찌개 맛있겠다. 제가 떠드리겠습니다. 그쪽에 국자 좀 주십시오.”
때맞춰 나온 김치찌개에 오버스럽게 반응하며 강민재가 화제를 돌렸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얼른 드시죠. 고기 많이 들어 있고 좋네요.”
이래서야, 정작 자신이 주장하던 그 10%를 입금해도 도로 돌려 줄 기세다.
“요즘 저 드라마 난리라면서요?”
이제 막 수저를 내려놓으려던 참이었다.
강민재는 가게 안에 빼곡히 앉아있는 모든 손님의 시선이 향한 텔레비전을 턱짓했다.
“저게 뭔데?”
“<당신과 나의 거리>라는 드라마요. 밤 10시에 하는 건데, 저희 집 가정부 아주머니도 저거 할 시간만 되면 올스톱하고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세요.”
밤 10시까지 집에 가정부가 있다는 건, 입주 가정부라는 뜻이다.
금수저가 맞긴 한가 보네.
“저게 그렇게 재밌나?”
“전 본 적 없지만, 인터넷도 난리예요. 짤방도 돌아다니고, 시청률도 난리고요.”
“그래?”
화면 속의 여주인공이 높은 달동네에 우두커니 서서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비추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무슨 드라마 하나가 대박 나서 텔레비전만 틀면 저 드라마 얘기였던 것은 기억난다.
가난한 여자 주인공과 부자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통속 드라마였던가.
직접 보진 않았지만, 배우를 보니 대충 알겠다.
이후로도 명작으로 꼽히며 내가 살았던 2018년까지 언급되곤 했다.
“갈까?”
“네.”
계산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강민재는 저 드라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얘기했다.
정작 자신도 직접 제대로 본 적은 없다면서, 내용은 줄줄이 꿰고 있다.
“어?”
사무실이 있는 2층 복도에 접어들자, 우리 사무실 앞에 누군가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민재는 그 모습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그쪽으로 매섭게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사무실 찾아오셨나요?”
코트를 입고 머플러로 입을 가린 젊은 여성이었다.
2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나를 알아본 듯 목도리를 헤치고 얼굴을 드러냈다.
유명인이라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건가,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매우 주눅 들고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차주한 변호사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저, 상담을 드리고 싶어서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강민재가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자리 비움 팻말을 돌려놓았다.
그는 능숙하게 그녀를 상담 테이블로 안내했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차나 주스도 있어요.”
차나 주스가 우리 사무실에 있었나?
“주스로 부탁드릴게요.”
“무슨 주스요?”
“뭐, 뭐가 있는데요?”
“대부분 다 있어요. 말씀하세요.”
“어, 그럼 알로에……?”
“넵, 알로에 주스 드리겠습니다.”
강민재가 신난 듯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빼곡히 차 있는 각종 주스와 음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저건 대체 언제 저렇게 준비해 둔 거지?
“변호사님은 커피요?”
“응.”
그녀는 부피가 큰 머플러와 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맞은편에 자리한 나를 바라보았다.
강민재가 건넨 알로에 주스를 마시고 나니 조금 긴장이 풀린 듯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아, 나는 노트와 펜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편히 말씀하세요.”
“……저작권이요. 저작권 소송을 하고 싶어요.”
“저작권이라면, 어떤……?”
강민재가 묻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드라마 <당신과 나의 거리>가 제 시나리오를 표절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