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51)
너희들은 변호됐다-251화(251/641)
배 실장은 내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내가 그의 동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차 변호사님은 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는군요.”
[거짓]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그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하지만 실장님은 한영에서 청춘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한영의 세세한 집안일까지 전부 다 아시는 분이죠. 저는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 회장의 측근이긴 하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활동은 하지 않았다.
이세화에게 배 실장의 연락처를 받은 직후 검색해 본 바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기사로 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기껏해야 설 회장이 공식석상에 나타났을 때 찍힌 사진, 그 구석에 초점이 어긋난 채로 얼굴이 조금 나온 정도였다.
그는 오랫동안 설 회장의 그림자로 살았다.
그리고 그림자로 사는 시간은 공명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고로 버티는 시간일 뿐이다.
무엇보다 배 실장이 진정 양지로 나가려 한다면, 이 정도의 기회는 잡기 어렵다.
“게다가, 응접실에 도청기도 있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곳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실장님께서 설형석 전무에게 힘을 싣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면 설효석 대표가 전부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설효석 대표에게 실장님이 어떤 존재일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조차도 뻔하다고 생각됩니다만…….”
배 실장은 대답이 없었다.
그 역시도 도청기를 발견한 순간, 그곳에서 설 회장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대번에 떠올렸을 것이다.
그도 사람이니 당연히 불안했을 테고, 그 불안감을 자극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영 전체를 생각하시는 실장님의 마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싶진 않습니다. 생각하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실 듯한데, 저는 실장님 연락 기다리며 제 차원의 조사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대충 정리 멘트를 던졌다.
배 실장의 마음은 많이 기운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바로 알겠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그의 자존심을 배려한 것이다.
“실장님께서 저와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설효석 대표를 단죄받게 만들 겁니다. 설효석 대표가 살인 교사범이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하지만 배 실장님께서 함께해 주시면, 조금 더 빠르게 일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린 겁니다. 무례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내 말에, 배 실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 변도 친한 친구가 인생을 망칠지도 모르는 일이니 공격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겠죠. 오늘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그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차에서 내렸다.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갈까 싶어 담배를 꺼냈는데, 그사이 배 실장에게 연락을 받은 것인지 사라졌던 기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사무실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던 기사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택시를 부르려면 한참 걸어 나가야해서, 굳이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을 꺼내 동진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에게 지금 어느 정도 조사가 진행됐는지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문자를 몇 자 입력하다, 나는 입력 내용을 전부 지웠다.
아직 상황을 공유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대로 된 현물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먼저 말을 꺼냈다가 후에 상황이 지지부진해지면 동진의 마음만 더 복잡해질 것이 뻔했다.
나는 대신, 계속 조사하고 있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 * *
[잠입일지 ….며칠째더라?;;입원한 지 존나 오래됐다.
이제 사복보다 환자복이 더 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다.
솔직히 이 병실에서 나만큼 환자복 잘 받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ㅋ
이제 병원에서 나를 진상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간호사를 너무 안 바꿔 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궁극기를 썼기 때문인 듯한데…
그 궁극기가 뭐냐면… 간호사에게 직접 내 구여친을 너무 닮아서 볼 때마다 힘들다며 보는 앞에서 존나 오열했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해냈다!
내 담당 간호사를 구소정으로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
대신 병원 사람들이 나를 존나 진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긴 하다.
솔직히 좀 가슴 아프지만 상관 없다… 일만 끝나면 다신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니까ㅋㅋ
일부러 구소정이 오면 말도 엄청 걸고, 주변을 대놓고 존나 알짱거렸다.
음료수도 사비로 털어서 바쳤다…
(활동비로 청구할 예정)
뒤를 캐다가 혹시라도 마주치면 구소정을 짝사랑한 나머지 스토킹을 한 미친 새끼인 척할 생각으로…
그래서인지 구소정이 나를 존나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긴 하는데…
하… 이 병원에서 내 이미지는 끝이라고 봐야겠지…
나중에 아파도 절대 명대 병원은 안 올 거다.]
상길은 휴대폰을 덮고 병상에서 일어났다.
차주한이 퇴원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계속 병원에 눌러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아픈 척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는 이제 다 나았다.
가끔 후유증처럼 두통이 와서 문제긴 하지만, 지식인에 물어보니 회사 측에 산재 처리를 해 달라고 드러누우라고 해서 일단 그렇게 해 볼 심산이었다.
어쨌든, 그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병실 바깥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구소정을 찾아 병동을 어슬렁거리면서,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네 보기도 했다.
간호사는 인사를 받아주긴 했지만, 상길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곧 똥 씹은 얼굴로 바뀌어 버렸다.
이쯤 되면, 구소정이 자신에 대해서 온 병동의 의료진들에게 험담을 늘어놓은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어디 갔냐, 진짜.”
오늘은 병동을 한 차례 순회했는데도 구소정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구소정의 오프 날이 언제인지, 심지어는 데이 근무인지 나이트 근무인지까지 꿰고 있으니 그녀가 오늘 병원에 출근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데.
수술이라도 들어갔나.
상길은 입맛을 다시며 슬쩍 비상구 문을 열었다.
구소정은 전화가 오거나, 간호사들끼리 뒷담화를 깔 때 비상구를 이용하곤 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면, 구소정이 비상구에서 다른 간호사한테 자신의 욕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씨발, 이거 눈물인가?’
상길은 어쩐지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
-어쩌라는 건데, 그래서!
누군가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김성우 같은데?’
상길은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그 소리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누군 안 힘든 줄 알아?
-알아요, 아는데! 이럴 때일수록 연락이 잘 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건 구소정?’
이런 월척이 있나.
차주한이 가장 신경 써서 알아보라고 한 것이 바로 구소정과 김성우가 접촉하는지의 여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뒤를 쫓아다녔는데도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는 장면이다.
드디어 뭐라도 건질 수 있게 된 것일까.
상길은 재빠르게 녹음기 버튼을 눌렸다.
전방의 벽에 그림자가 지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은 바로 위 계단에 서 있는 것 같다.
더 다가가지 말고 여기 있는 게 좋겠다.
-내가 연락을 피했다고 생각하는거야?
-아니에요? 저 진짜 불안해 죽겠어요. 얼른 상황 종료시켜 준다고 했잖아요. 근데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뭐라도 결정이 나야 불안감이라도 덜지, 이게 뭐냐고요!
-이런 일이 금세 해결이 되겠어?
-너무 오래 끌잖아요!
-내가 일부러 그러겠어? 나도 구 간한테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해. 그래서 누구보다도 빨리 해결해 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좀 더 기다려 줘.
짜증을 내던 김성우는 순식간에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구소정을 달래기 시작했다.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묘하게 주어를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엿들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뭘 어떻게 더 기다려요? 그렇게 엄청난 일을,
-구 간. 내가 병원에서 자꾸 이 일로 말 걸지 말라고 했지. 누가 엿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김성우는 구소정의 말을 중간에 가로채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구소정이 한숨을 쉬며 조금은 사그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연락을 잘 받았어야죠. 사람 불안하게 한 게 누군데요.
-토요일 날 다시 얘기하자. 어쨌든 병원에선 이 일로 불러내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상길은 녹음을 종료하고 후다닥 비상구를 빠져나왔다.
‘이번 주 토요일이라고 했지. 그날 구소정 오프 날인데, 밖에서 따로 만날 모양이네. 뒤졌다, 니들.’
* * *
배 실장의 연락을 기다린 지 사흘째.
배 실장으로서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이니 당연히 오래 걸리리라 생각해서, 나 역시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명대 병원에서는 한영그룹 측에서 동진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기 전까지는 동진에게 딱히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영그룹 측은 배 실장이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다른 움직임은 없을 테고.
물론 그사이 동진이 병원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고생을 좀 하긴 하겠지만, 그의 말로는 일이 줄어들어서 모처럼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차라리 동진에게도 그게 나을 듯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여태 못 쉰 것을 몰아 쉰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당장 동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이 괴로운 시기를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오래 잔 것 같은데 피곤하네.’
동진의 사건을 접한 이후로, 나 역시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실마리가 풀려 가는 상황이라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평소보다 3시간이나 더 잤다.
커피를 내리며 지난밤 동안 연락온 곳은 없었는지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3건]“뭐야.”
상길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오전 10시, 10시 5분, 그리고 10시 30분에.
한창 자고 있었을 시간이긴 했지만, 이렇게 전화가 왔는데 듣지 못했다니.
뭐라도 알아낸 것일까.
나는 지체 없이 상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변호사님. 왜 전화를 안받으세요?
“자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대박입니다. 제가 보낸 메일 보셨어요?
“메일?”
나는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놓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메일함에 들어가자, 과연 그에게 첨부 파일이 가득 든 메일이 도착해있었다.
-보셨어요?
“이게 대체…….”
상길이 보낸 메일에는 족히 서른 장은 될 것 같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모두, 구소정과 김성우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다섯 군데의 웨딩드레스 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