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53)
너희들은 변호됐다-253화(253/641)
그 뒤로, 배 실장이 건넨 사진에서는 조금 더 다각도로 김성우와 해당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을 잡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깨와 허리를 감싸거나 귓속말을 하는등, 섹슈얼한 관계가 아니라면 보이기 힘든 스킨십들이 담겨 있었다.
구소정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이 사진 속 여성이 누군지도 알아보셨습니까?”
내가 건넨 구소정과 김성우의 사진을 확인하던 배 실장은,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애초에 알아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친구는 저희 회장님의 친조카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회장님의 동생인 한영 자동차 설정호 회장님의 딸, 설예지 양입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김성우의 외도 상대가 설 회장의 친조카, 그러니까 설효석의 사촌 동생이라는 뜻이다.
“설예지 씨와 김성우가 어느 정도의 사이인지는 확인되신 바가 있습니까?”
“혼담이 오가고 있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김성우 선생이 예지 양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고 하더군요.”
출세 지향적인 김성우가 한영 자동차라는 혼처를 물리고 구소정과 결혼한다?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상황을 반대로 뒤집으면 보다 매끄러워진다.
김성우는 설예지와 결혼할 예정이고, 구소정은 외도 상대인 것이다.
누굴 먼저 사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효석 대표, 그리고 설예지 씨와 같이 있는 이 자리는 어디입니까? 셋이 만남을 가진 겁니까?”
“아뇨. 사모임입니다. 설 대표가 주관하는 기업 오너 일가 자제들이 나오는 모임이에요. 알아보니, 이날 김성우 선생을 설예지 양의 약혼자로 소개한 것 같더군요.”
김성우는 설 회장의 입장에선 조카 사위가 되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멀다고도 할 수 있는 사이다.
하지만 한영그룹이라는 큰 틀에서보면, 한영에 사람을 들이는 셈이니 설 회장에게도 어느 정도 보고가 들어갔을 터.
이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배 실장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만났는지도 확인해 보셨습니까?”
“의사 사위를 맞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하필이면 명대 병원 신경외과의인 게 거슬려서 알아보긴 했습니다. 명대 병원 원장과 설정호 회장 사이에서 서로 자식들을 결혼시키자고 말이 나온 모양이더군요. 결혼을 전제로 만난 것이니, 사실상 둘이 교제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두 달 정도 되었을까요. 올해 초부터 만난 것 같았습니다.”
설형석의 수술은 작년 12월 31일에 끝났다.
동진이 그 수술에서 나오면서 나에게 신년 인사를 했으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설효석은 동생이 수술대에서 죽지않고 살아 돌아오자, 김성우에게 마수를 뻗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처음 마수를 뻗친 대상은 김성우가 아닌 그의 아버지인 원장일지도 모른다.
“한영 자동차 설정호 회장과 설효석 대표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돈독한 편입니다. 설정호 회장에게 아들이 없어서, 설효석 대표가 아들처럼 살뜰하게 잘 챙겼거든요.”
“그렇다면 설정호 회장은 설효석 대표와 설형석 전무 중, 어느 쪽과 더 친분이 깊었습니까?”
“설효석 대표였죠.”
배 실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설정호 회장이 설효석 대표를 밀어줄 만큼이겠습니까?”
“그럴 겁니다. 회장님께서 설 전무에게 한영을 승계하기로 결심하셨을 때부터 설 대표는 본인을 지지해 줄 세력을 규합하려는 시도를 해 왔습니다. 설정호 회장도 그중 한 명이고요.”
배 실장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충 알겠군요. 처음엔 김성우 선생의 외도 사실이 뭐가 중요해서 저에게 사진을 보여 주시는가 했더니만…….”
배 실장은 처음 설효석이 설예지와 김성우를 함께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듯하다.
그가 명대 병원 신경외과 의사라는 점만 제외하면, 김성우에게 겉보기에 이상한 점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구소정 간호사와 김성우 선생이 이렇게 긴밀한 사이라면, 차 변호사님은 설 대표와 김성우 선생, 그리고 구소정이 공범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설대표가 김성우 선생에게 거래를 제안했고, 김성우가 자신의 연인인 구소정 간호사에게 세팔로스포린을 주사하게 만들고 이를 동진이에게 뒤집어씌운 것 같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군요.”
배 실장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관계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려는 듯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저는 김성우가 설효석 대표에게 뭘 약속받고 이런 어마어마한 짓을 벌인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예지 양을 소개해 주고, 김성우 선생을 한영의 사위로 받아 주기로 한 것 같군요.”
이렇게 되면 김성우는 설효석이 원장의 연임을 도와주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을 약속받는 셈이다.
사위가 되면, 한영 차원에서 원장의 연임을 돕는 건 당연히 따라오는 것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구소정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김성우가 설예지를 두고 구소정과 결혼할 이유는 없다.
상길이 나에게 보내 주었던 녹취파일 속 두 사람의 대화만 보더라도, 김성우는 연인을 대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구소정에게 너무도 차갑기만 했으니까.
“대충 설 전무를 둘러싼 음모와 관계까지는 다 파악이 된 것 같군요.”
배 실장은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비록 배 실장에게 영욕이 있다고 해도, 한영에 젊음을 바쳤던 그의 마음만은 진짜다.
그런 한영에 설효석이 만들어 낸 거대한 비극은, 결과적으로 배 실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해도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배 실장을 만나 얻은 소득은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다.
애초에 새로운 카드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 * *
“어, 차 변. 어서 와.”
박영기의 연락을 받고, 중앙 지검에 그를 만나러 왔다.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없었지. 차 변 때문에 아주 바빠졌다는 거 빼면, 똑같아.”
박영기가 너스레를 떨며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나도, 박영기도, 굳이 무의미한 인사말로 시간을 죽이는 타입은 아니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차 변 말대로, 진수용과 설효석 사이에 거래가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아. 근데 그게 불발된 것 같던데? 들어왔던 돈이 고스란히 다시 나갔더라고.”
박영기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말했다.
거래가 불발된 것으로 보이는 건이라면, 설효석과 관련된 증거가 맞을 것이다.
진수용이 구속되면서 두 사람의 거래는 파기되었으니, 당연히 미리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을 돌려주어야 했을 테니까.
“수사 자료라서 안타깝게도 차 변한테 보여 줄 순 없겠지만.”
“물론입니다.”
“지금 진수용의 수사는 명대 병원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 중에 유력인사들의 군 면제와 관련한 거래 내역을 찾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어. 애초에 진수용 건 자체가 차 변이 물어다 준 거니까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보도 자료도 다 군 면제 관련한 것으로 뽑아서 돌렸고.”
“음, 설효석과 거래한 내역이 군 면제 이슈는 아니지만, 그래도 불법거래를 통해 의료법을 위반한 건으로 묶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설효석 건이 세상에 알려지면 엄청난 이슈가 될 겁니다. 거기에도 진수용이 끼어 있고, 그 진수용은 이미 다른 죄목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죠. 그 조사를 하다가 설효석의 살인 교사 사실을 찾아낸 것으로 하면, 검찰의 신뢰도가 상당히 올라갈 겁니다.”
검찰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든, 받지 않든 사실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나를 돕고 있는 박영기가 새로운 리더로서 부임한 이상, 그에게 신뢰도가 쌓이는 것은 나에게도 도움 되는 일이다.
“그렇지.”
“뭐, 그런 게 아니어도 진수용을 구속한 이상, 털 수 있는 것은 다 털어 내는 게 검찰로서도 좋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여죄가 드러나는 것보다는.”
박영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차 변 자네가 나에게 설효석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이 오간 정황이 있었어. 진수용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는데, 차 변의 말을 듣고 그쪽으로 조사해 보니 아귀가 맞더라고.”
“진수용이 설효석과 접촉이 잦았습니까?”
“아주 많이. 설효석의 개인 비서와 통화 기록이 아주 많이 잡혀 있었어. 그래서 지금 진수용을 구치소에서 불러서 다시 조사하고 있어.”
이미 진수용의 휴대폰 거래 내역, 통장 내역을 포함한 모든 자료가 검찰의 손아귀에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대상을 설효석으로 특정하고 찾으면 수상한 점들은 금방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도 그렇고, 검찰 상황도 그렇고 관건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황 증거는 충분하지만, 피해 가려면 전부 피해 갈 수 있는 상황.
증거들을 통하여 범인을 산출한 것이 아니라, 범인을 미리 특정하고 증거를 찾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쁘게 말하면 표적 수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설효석을 범인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조력자 이상의 역할은 했을 터.
어차피 설효석이 단죄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진수용이 설효석과의 거래 사실을 인정하면 바로 설효석을 소환해서 조사할 수 있어.”
박영기의 말대로만 된다면, 그 이후는 식은 죽 먹기다.
설효석이 소환되면 김성우와 구소정도 불안이 극에 달할 테니까.
“진수용이 시인하겠습니까?”
“할 거야, 아마.”
박영기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살인 교사인데도 말입니까?”
“어쨌든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잖아. 하지만 설효석은 현재 진행형이야. 설형석 전무가 지금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잖아. 진수용이 진술하기만 하면 설효석이라는 배후를 끄집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안 그래도 온갖 유력 인사 자제들 군 면제시켜 주느라 죄목이 나날이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어차피 진수용은 돈도 돌려줬고, 설형석 건과는 전혀 무관하게 되었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다.
검찰이 도와준다면 더더욱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진수용을 압박하는 데 필요하실 것 같아서 한 가지 정보를 공유해 드리자면, 한영그룹에선 설효석이 동생의 살인 교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설효석을 버릴 겁니다.”
혹시라도 진수용이 설효석을 두려워해서 입을 다물 가능성을 생각해 한 가지 더 도움을 주기로 했다.
이 사건으로 설효석이 범죄자가 되면, 어차피 그는 한영의 힘을 쓸 수없게 된다.
그런 설효석을 위해 진수용이 입을 다문다고 해서, 훗날 도움받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사실을 진수용이 알면, 진수용도 굳이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차 변이 어떻게 알아?”
박영기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차 변 정보력은 정말 못 당하겠구만. 하하.”
“과찬이십니다.”
“다시 검찰로 돌아오는 거 어때? 아무리 생각해도 차 변의 사표를 수리한 건 검찰청의 큰 실수 같단 말이지. 경력 검사로 지원할 생각 없어?”
“없습니다.”
박영기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만일 검사였다면, 이렇게 온갖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것도 다 흠잡힐 일이 된다.
내가 쓰는 방법들도 부당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제약 많은 검찰로 돌아가겠는가?
무엇보다 월급도 적은데.
* * *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박영기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진수용의 입에서 설효석의 이름이 나왔고, 이에 따라 설효석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드디어 내가 쥔 카드를 제대로 쓸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