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58)
너희들은 변호됐다-258화(258/641)
“크윽, 윽, 흐윽.”
눈에서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울고 있다기보다는 생리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저 고통에 시달리며, 잠시라도 정신을 놓았다가는 축 늘어질 것만같은 무거운 육신을 버둥거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김성우는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저 위협이나 감정에 휘둘려 목을 조른 것이 아니라, 정말 그녀를 죽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그냥 죽어, 죽어, 이 씨발…….”
구소정이 자수하면, 김성우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김성우는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수할 수 없도록 시답잖은 소꿉놀이에 어울려 주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했던 것이다.
구소정이야 남에게 빌붙지 않으면 평생 남의 발만 보고 살아야 하는 싸구려 인생이니 범죄자가 되어도 상관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 원장의 아들이고, 앞길 창창한 신경외과 의사이며, 이제 곧 한영그룹의 일원이 될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따위 여자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차피 자신은 의사고, 어떻게 처리해야 이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더라도 자신에게 아무 문제 없을지 알고 있다.
이미 설형석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는데, 한 사람 더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들키지 않으면 상관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끄윽, 허윽, 윽.”
구소정의 눈이 반쯤 풀렸다.
이제 구소정은 곧 숨이 넘어갈 것이다.
그때부터 자신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손에는 힘을 주면서, 김성우는 계속 머릿속에서 구소정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해서 죽였을 텐데, 왜 하필 오늘 이렇게 되어서는.
저도 모르게 감정에 휘둘려 그녀의 목줄기를 틀어쥔 것이 조금은 후회 되었지만, 이제는 크게 의미 없었다.
어차피 이러지 않았다면, 자신은 내일쯤 구속되었을 테니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 내 말 잘 들었어야지, 소정아. 왜 오빠 화나게,”
그때였다.
명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반쯤 풀려 있던 그녀의 눈이 빠르게 초점을 찾았다.
몸에 힘이 다 빠진 줄 알았더니,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생겨났는지 다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저 초인종 소리에서 희망을 본 모양이다.
김성우는 한 손으로 구소정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으읍! 읍!”
[경찰입니다. 김성우 씨, 문 여세요!]경찰이라고?
김성우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구소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성우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기로 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척 하는 게 낫겠지.
어차피 경찰이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해도, 특공대가 출동한 게 아닌 이상 소방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문을 억지로 열 때까지 최소 10분 이상은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구소정은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목을 그만 졸라야 하는 건가.
아니면 계속 졸라서 일단 죽여야 하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일단 죽이는 게 좋겠다.
구소정을 죽이는 데 10분 이상 걸릴 리는 없으니까.
5분 이상 목이 졸리면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그다음에는,
띠, 띠, 띠, 띠, 띠.
‘이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소리였다.
경찰들이 도어락을 누르고 있었다.
그냥 아무 번호나 눌러 보는 거겠지.
소방 지원을 기다리면서.
‘씨발, 왜 이렇게 안 죽는 거지.’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사람을 목졸라 죽여 본 적은 없으니, 어느 정도 힘으로 얼마큼 압박해야 사람이 죽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김성우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리고……
띠리리-
놀랍게도, 단 한 번의 시도에 도어락이 열리며 다수의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구소정 씨!
어떤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변호사다.
양동진의 친구라고 했던 그 변호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구소정은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김성우의 손을 손톱으로 마구 할퀴며 더 크게 몸부림쳤다.
“읍! 으읍!”
하지만 이 소리가 밖에까진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후, 탄내 뭐야?
-가스 불을 올려놨는데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이 방을 그냥 지나쳐 바로 거실 쪽으로 가 본 모양인지, 경찰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 왔다.
김성우는 반사적으로 방문을 바라보았다.
구소정이 열고 나가지 못하게 의자 따위로 막아 두었다.
덜컹덜컹.
‘씨발…….’
경찰들이 이 집에 들어온 이상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역시나 누군가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 문이 잠겨 있습니다!
문이 덜컹거릴 때마다 세워둔 의자가 점점 뒤로 밀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통 5분 정도 목이 졸리면 죽는다.
체감상 30분은 조르고 있었던 것같은데, 벽 시계를 바라보니 30분은커녕 5분도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방에 구소정이 있다는 것은 저들도 눈치챘을 텐데, 그럼 이제라도 도망쳐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어떻게!
“구소정 씨!”
하지만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던 그 때, 방문이열렸다.
장정 두 명이 순식간의 김성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경찰이었다.
그들은 김성우의 양어깨를 뒤로 밀쳐 순식간에 그를 바닥에 쓰러트리고 단숨에 제압했다.
“어흐윽, 끅, 큭! 컥!”
김성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구소정은, 붉어지다 못해 검게 물든 얼굴로 무너져 괴로운 소리를 내며 숨을 몰아쉬고 기침을 토했다.
“구소정 씨, 괜찮으십니까?”
“허윽, 윽, 윽!”
“구급차 불러! 얼른!”
“제가 불렀습니다. 구소정 씨, 괜찮아요?”
그리고 그때, 차주한이 구소정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바닥에 여전히 제압당한 채로 짓눌려 있던 김성우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저 새끼 때문에 모든 게 망했다.
저 새끼가 모든 것을 망쳤다!
“김성우 씨, 당신을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그 순간에도, 김성우의 눈은 구소정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가는 차주한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 * *
“……변호사님.”
간병인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던 나는, 앞에서 들려오는 힘 없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구소정이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좀 괜찮습니까?”
“……네.”
“다행입니다.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검사 결과에도 큰 이상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어디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건 의사 선생님한테 직접 들으세요.”
“저도 알아요……. 저도 의료인이잖아요.”
병 든 환자에게 고의적으로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킨 사람도 의료인으로 봐야 하는 걸까.
순간 드는 의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성우는요?”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그랬겠네요.”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 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하고, 보호자는 필요하니까.”
“보호자는 괜찮아요. 부모님께 알리고 싶진 않아서……. 저 때문에 바쁘신데 계속 여기 계셨던 건가요? 죄송해서 어떡하죠.”
“그렇게 오래 있진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깨어났으면 강민재를 불러서 나 대신 구소정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을 것이다.
사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도, 강민재에게 지금 여기로 오라고 전화할 생각으로 그가 보낸 밀린 카톡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고.
“아……. 제가 경황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감사해요. 구해 주셔서.”
구소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구소정이 걱정되어서 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었고.
나는 단지 증인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고, 그녀가 자신이 잘못한 만큼의 죗값을 치르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김성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녀가 마땅히 당해도 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큰일이 나기 전에 막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구소정 씨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요.”
“녹음기는 김성우에게 뺏겼어요. 경찰분들이 현장에서 가져오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성우가 녹음파일을 지우는 건 못 봤거든요. 남아 있을 수도 있어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구소정 씨와 통화 녹음한 것도 남아 있어서, 설사 그게 소실되었다고 하더라도 입증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변호사님한테 문자 드리고 나서, 변호사님이 통화 상태로 두자고 하시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내가 그녀를 구할 수 있었던 까닭은, 김성우의 집에서 그녀가 나에게 보냈던 문자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김성우를 만나러 가기 전날이었던 어제, 그녀가 나에게 걸어온 전화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김성우가 제가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걸 염려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녹음을 확실하게 할 수 있을지 좀 걱정되네요.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김성우에게 내일 설효석에게 직접 지시받았다고 거짓 진술을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김성우가 잽싸게 말을 가로챘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만일 구소정 씨가 자백한다는 사실을 알면, 김성우가 구소정 씨에게 무언가 해코지를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내 물음에,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곧 짧게 대답했다.
-네.
-그게 많이 두렵다면 내일 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 증거는…….
-그건 감수해야겠죠.
내 대답에, 그녀는 다시 한번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곧, 결심이 선 듯 대답했다.
-아니에요. 할게요. 그렇게라도 해야 양 선생님한테 제대로 속죄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설형석 환자한테도요…….
그녀의 말은 교과서적이었지만, 그게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와 대면 중인 상황이 아니었고, 능력을 확인할 수도 없었으니까.
만일 저것이 진심이 아니라면, 아마 내가 약속했던 본인의 집행유예와 처벌불원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반성하든, 아니면 계산한 행동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진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이고,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을 받는 것이었으니까.
개인의 마음가짐까지 내가 좌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걸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아마 김성우 앞에서 제대로 말도 안 나올 겁니다. 그러면 들킬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일단 김성우 자택 주소 알려 주시고, 현관은 도어락입니까? 아니면 열쇠?
-도어락이에요.
-비밀번호는 알고 계십니까?
-네.
-문자로 알려 주세요. 만일의 상황이 생기면 제가 김성우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무렵, 구소정에게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김성우 집에 와 있는데 김성우가 만지기만 해도 제가 자꾸 동요해서요. 자꾸 실수할까 봐 걱정돼요. 그냥 지금 얘기 꺼내고 급한 일이 있다면서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김성우의 낌새는 어떻습니까? 눈치챈 것 같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아직 본격적으로 얘기하진 않아서요.. 근데 눈치가 빨라서 제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건 알 것 같아요…] [그럼 제가 전화를 걸 테니까 통화 상태로 두고 김성우와 대화 나누세요. 녹음기가 발각되는 상황이 오면 제가 통화 녹음해 두면 되니까 상관없고, 또 만일 그렇게 돼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저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 김성우 오피스텔 근처에 있습니다.] [네. 알겠어요.]나는 김성우가 사는 오피스텔 근처에 차를 대놓고 그녀에게 전화를 건 상태로 대기했다.
구소정이 동요한 탓인지, 본격적으로 말을 꺼내는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중분히 눈치챌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는데,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핸드폰이 왜 이렇게 뜨거워?
통화 중인 게 발각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불안해졌을 무렵,
-……뭐야, 핸드폰 아니네? 녹음? 하하, 씨발. 녹음하고 있었어?
다행히 휴대폰이 아닌 녹음기가 들킨 것이었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곧이어 구소정의 비명이 들려왔으므로.
-아악! 놔! 이거 놓으라고!
김성우가 그녀를 폭행하려 든다는 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나는 김성우의 오피스텔로 향하며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 문득 꽤 괜찮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성우를 구소정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집어넣으면, 보다 더 상황이 쉽게 돌아가겠다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오늘 일을 회상하던 나는, 구소정의 목소리에 다시 상념에서 벗어 났다.
“저 때문에 너무 오래 계셨네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아닌 게 아니라, 그녀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짧게 인사하고, 응급실 바깥으로 나왔다.
굳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구소정이 내가 본인을 걱정했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아니라고 말해 줄 이유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