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59)
너희들은 변호됐다-259화(259/641)
[……한영 전자 설효석 대표는 교모세포종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동생인 설형석 전무를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은 M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 씨와 담당 간호사 구씨. 설형석 전무가 가지고 있는 항균제 알레르기를 이용하여 급성 쇼크를 일으키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들의 계획이었습니다. 간호사 구씨는 전문의 김 씨의 지시에 따라, 설형석 전무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항균제를 주사하였고, 설형석 전무는 한 시간 이내에 급성 쇼크가 발생하였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안타깝게도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설형석 사건은 결국 시사 프로그램에서까지 다루게 되었다.
성우의 브리핑 배경은 명운대학교 병원 앞.
물론 ‘명운대학교’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게 앵글을 맞춰 놓았지만, 명운대학교 병원 앞에는 시그니처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아는 사람들은 보자마자 M 대학병원이 어디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조형물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M이라는 글자로 시작하는 대학병원은 명대 병원뿐이기도 하고.
[이들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설형석 전무 담당의에게 항균제를 잘못 처방했다며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나 몰라라 한 것입니다. 저희는 피해를 입은 담당의 양동진 씨를 만나 보았습니다.]화면은 다시 한번 바뀌어, 의사 가운을 입은 동진의 모습을 비추었다.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웠죠.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는데 제가 자꾸 그렇게 처방해서 세팔로스포린을 놓았다고 주장하니까요. 자꾸 저를 몰아가니까 심지어는 저 스스로도 저를 의심하기도 했고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병원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도 없었어요. 여러모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변호사인 친구가 저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면 전 정말 의사 가운 벗어야 했을 겁니다.]처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 시사 프로그램 측에서는 동진에게 얼굴이 나가도 되는지 물었다.
원치 않는다면 이름과 얼굴을 모두 가려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진은 얼굴과 이름을 전부 공개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간 누명을 쓰고 의료계에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을 텐데,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이 잃어버린 신용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영전자 설효석 대표와 전문의 김 씨, 간호사 구 씨의 인면수심의 살인 계획이 밝혀진 데에는, 항균제를 잘못 처방했다는 누명을 썼던 담당의 양동진 씨를 돕기 위해 나선 차주한 변호사의 노력이 있었습니다.]“어, 변호사님 나온다!”
그리고, 나 역시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를 했다.
검찰 측에 문의하라고 몇 번이나 고사했지만, 계속 나에게 압력이 들어왔다.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 캠프에 합류시키기 전에 인기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내 이미지를 조금 더 격상시키려는 이세화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그만 꺼.”
왠지 텔레비전에 나온 내 모습을 보며 온갖 주접을 다 떨어 댈 강민재의 모습이 선해서, 나는 테이블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려 했다.
하지만 강민재는 이미 예상했던 것인지, 그보다 먼저 리모컨을 사수해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아, 왜요. 변호사님 멋있게 나왔을텐데.”
“맞습니다, 변호사님. 같이 보시죠. TV에 자주 나오시지도 않는데, 가끔 이렇게 보면 좋잖아요.”
오 사무장까지 거들고 나섰다.
[해당 사건은 설효석 한영전자 대표와 신경외과 전문의 김 씨의 공모로 시작되었습니다. M 대학병원 원장의 장남인 전문의 김 씨는 설형석 대표의 살인 의뢰를 받아들이는 대신, 설효석 대표로부터 원장의 연임과 더불어 한영그룹과의 혼맥을 약속받았습니다. 전문의 김 씨는 당시 교제하던 간호사 구 씨에게 결혼을 약속하며 설형석 전무에게 잘못된 항균제를 주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전문의 김 씨는 간호사 구 씨가 자수 의사를 보이자 간호사 구 씨를 살해하려다 현행범으로 붙잡혔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건의 증거를 명백하게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내 말을 끝으로, 다시 화면이 돌아갔다.
[한영그룹 관계자는, 다행히 설형석 한영전자 전무가 사망하지는 않았으나 식물인간 상태로 치료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설효석 대표의 범행은 다른 한영그룹 구성원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한영 전자 측에서는 동생인 설형석 전무를 살해하려했던 설효석 대표를 주주총회 의결을 통하여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였습니다.]“아, 뭐야. 변호사님 분량 끝난 거예요?”
“뭐가 더 남았어?”
“이것저것 더하신 말씀 있잖아요. 진짜 괘씸하네? 왜 자르고 난리래요?”
강민재가 씩씩거리며 괜히 텔레비전을 툭툭 때렸다.
텔레비전이 망가진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화가 나 보였다.
당시 프로그램 작가가 찾아왔을 때 했던 말 중에 중요한 말은 다 들어갔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강민재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다른 말들은, 작가가 발언을 조금 더 길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억지로 쥐어짜서 한 말인데 말이다.
“적당한 데서 끊겼는데 왜.”
[현재, 전문의 김 씨와 간호사 구씨는 범행을 인정한 데 반해, 설효석 전 한영전자 대표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설효석 전 한영전자 대표의 범행 증거가 명확하고, 동기도 뚜렷하다는 이유로 기소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의 참극. 그 끝은 잔혹하기만 할 뿐입니다.]어쨌든, 웬만한 증거는 검찰에 다갖다 바친 데다, 박영기 차장의 도움도 있었기에 사건 진행은 더디지 않았다.
설효석이 끝까지 버티는 게 좀 마음에 안 들지만, 김성우는 순순히 시인했다.
자수하려던 구소정을 죽이려다 현행범으로 붙잡힌 데다, 내가 했던 통화 녹음에 범행을 인정한 사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지는 없었다.
“난 이만 퇴근.”
나는 재킷을 걸치며 말했다.
“두 분도 퇴근하시죠.”
내가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를 하자, 강민재가 업무를 끝내고 사무실에 남아 함께 보자며 우겨 대서 이 시간까지 퇴근이 밀린 것이다.
나는 가겠다고 했는데도 같이 봐야한다며 붙잡아서 나까지도 가지 못했고.
벌써 시간은 8시를 지나쳤는데 말이다.
“변호사님, 내일 회식 안 잊으셨죠? 내일은 차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알았어.”
“흐흐.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가 동진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이제는 사무실에 관심을 가져 달라며 눈을 흘기던 강민재는, 회식하자는 말에 금방 기분을 풀었다.
나는 강민재의 콧노래를 뒤로 한채,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기 전에 휴대폰을 확인하자, 이제 막 도착한 동진의 문자가 팝업되어 있었다.
비싼 걸 사 주겠다며 성화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한 번 봐줘야지.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틀었지만, 다시 끄고 음악을 틀었다.
지금 설효석 이야기로 난리인데, 굳이 들을 필요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제 나도 이 일에 대해서는 마음 놓기로 했다.
이 이후의 일은 검찰과 한영그룹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본래부터 내 목적은 동진을 구하는 것이었고, 달성되었으니까.
“예약자분 성함 말씀해 주세요.”
“양동진입니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도착한 곳은 정말로 대단히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처음 오는 곳이긴 하지만, 인테리어부터가 예사롭지 않아서 동진의 출혈이 너무 클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확인해 보고, 정말로 동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면 슬쩍 나가서 내가 계산하는 게 좋겠다.
“어, 왔어?”
“여긴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네?”
동진도 일정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만난 시간은 8시 반.
그런데도 오면서 보니 룸들이 가득찬 것 같았다.
“여기 엄청 유명한 데래. 병동 VIP환자가 알려 주더라? 시사 프로그램 보더니 너한테 크게 한턱내야 하는거 아니냐면서. 그래서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고 하니까, 여길 알려주더라고. 예약하기도 되게 힘들어서 그 환자 연줄로 한 거야.”
“야, 그런 데면 너무 비싼 거 아니냐?”
“됐어. 나 의사다? 나도 사자 직업이야. 너만 돈 잘 버는 줄 아냐?”
“그래도 넌 딸린 식구가 있잖아.”
“됐어. 너 아니었으면 어차피 나 평생 이런데 오지도 못하게 됐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이 정도는 싸다, 싸. 코스는 대충 내가 제일 맛있다는 걸로 주문했어.”
“왜 메뉴판도 못 보게 하고 마음대로 주문하고 그래?”
“괜히 메뉴판 보고 비싼 것 같으면 네가 계산하러 갈 것 같아서 그렇지.”
날 너무 잘 아는데?
좀 당황스러워지려고 한다.
“오늘 시사 프로그램 나온 거 보고, 아는 사람들이 너 소개해 달라고 난리야.”
“소개는 무슨.”
“너 같은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냐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친구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심성까지 좋다고 얼마나 난린지 모르겠다. 우리 와이프한테도 너 소개해 달라는 연락 들어왔다던데?”
“비행기 그만 태워.”
“진짜 생각 없어? 내 후배 중에 괜찮은 애 있는데. 진짜로.”
“됐다니까.”
나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부정도 아니고 이중으로 부정하고 나서니 동진도 어쩔 도리가 없다 생각했는지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잠자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룸 안으로 들어 왔다.
“변호사님. 이세화 대표님이 잠깐 인사라도 하자고 하시는데요.”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종업원이 나를 변호사라고 부른 것은 둘째치고, 이세화가 나를 봤다는 게 놀라웠다.
“이세화 대표님이 여기 계십니까?”
“네. 바로 옆방에 계세요. 잠깐 나오셨다가 변호사님이 들어오실 때 보셨다고 하셔서요.”
종업원의 말에, 동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세화? 내가 아는 그 이세화?”
“……어.”
“너 이세화하고 아는 사이야?”
내가 이세화보다 늦게 왔다고 하니 나를 쫓아온 것은 아니겠지만, 껄끄러웠다.
이세화는 조력자와 비슷한 위치지만, 분명히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인지 편하게 느껴지는 상대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조금 노골적인 강관웅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야, 인사하러 갈 거면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냐? 나 총선 때도 자유정의당 찍었는데.”
“어머, 그랬어요?”
그때 열린 문 사이로 이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사하자기에 자신이 있는 방으로 오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올 줄은 몰랐다.
“계셨으면 제가 갔을 텐데요.”
“요즘에 사람 오라 가라 하면 꼰대 소리 들어요. 차 변이 뭘 모르네.”
이세화는 능글맞게 웃으며 동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양동진 선생님이시죠? 이세화예요. 자유정의당 찍어줘서 고마워요.”
픽 장난기 어린 듯한 말투는 중년 여성인 그녀를 더욱 센스 있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것이 이세화의 장점이다.
무겁지만은 않은, 그럼에도 가볍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모습.
동진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대표님이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대표님 지지 하세요. 하하.”
“이렇게 고마울 데가.”
“아! 혹시 사진 한 번…….”
“아유, 그럼요. 물론이죠.”
신이 난 동진과 기분 좋아 보이는 이세화는 함께 사진을 네 번이나 찍었다.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양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친구 일에 발 벗고 나서는 변호사 친구도 있어서.”
“물론입니다. 제가 얼마나 많이 도움을 받는지 몰라요.”
“이번 일 때문에 차 변이 얼마나 애썼는데요. 양 선생님이 알아주셔서 제가 다 기분이 좋은데요?”
마치 내 보호자처럼 구는 그녀는 ‘이제 넌 내 선거 캠프에 들어올 거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경선에서 승리하셨다는 뉴스는 봤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꼭 당선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차 변이 도와주는데 뭐가 걱정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이세화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물음표가 가득한 동진의 얼굴을 보니, 왠지 그녀가 떠나고 나면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견뎌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