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64)
너희들은 변호됐다-264화(264/641)
이정찬이 죽었고, 그 이정찬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게 나라고?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떻게 된 거라고요?”
-이정찬 살해 용의자가 차 변이라고, 지금.
“사실이 아닙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우선 중앙지검 차장검사인 그에게는 최소한의 소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명료하게 대답하자, 박영기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강 변도 지금 아니라고 길길이 날뛰다가 차 변 데리러 갔어. 지금 도착했을 거야. 그러니까 얼른 나와. 구속은 피해야 해. 무조건.
나는 이세화를 바라보았다.
이세화 역시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이리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 서류 가방을 챙기며 일어났다.
이세화는 복잡한 눈으로 그런 나를 시선으로 좇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나가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아직도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세화에게 말했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식사는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차 변.”
“그래도 절 믿어 주셨던 대표님께서 혼란스러워 하실 것 같아서 말씀을 보태겠습니다. 지금 들으신 게 무엇이든, 사실이 아닙니다.”
“차 변, 잠깐만요.”
이세화는 그제야 무언가를 바로잡으려는 듯 나를 따라 일어났다.
자신이 나를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였다면 미안하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생각했든 상관없었다.
그녀가 통화한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정찬과 관련된 내 소식과 함께, 나를 선거캠프에 합류시키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백번 이해한다.
내가 그녀의 참모였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선거캠프에 들일 수는 없다고 했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세화가 남아 달라고 해도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억지로 잔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조사받고 구속될 위기에 처한 것 같은데 한가롭게 남의 인생 잘되라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짬이 어디 나기나 하겠는가.
“어, 차 변호사!”
이세화와 함께 있던 룸에서 빠져나와 바깥으로 나가는데, 오늘 만나기로 했던 자유정의당 인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어디 가요? 같이 들어가야지.”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나는 그들 사이를 가르며 스쳐 지나갔다.
뒤통수에 여러 쌍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변호사님!”
바깥으로 나오자, 강민재가 서 있었다.
그의 옆에 놓인 것은 언제나 그가 타고 다니던 외제차가 아닌, 다른 차였다.
“수일이 형 차예요. 혹시 몰라서. 얼른 타세요.”
나는 조수석에 올랐고, 마찬가지로 운전석에 오른 강민재는 기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어딘가에 가기 위해 차에 탄 것이 아니다.
밖에서 대화하기에는 부적절할 듯하여 일단은 밀페된 공간을 찾았을 뿐이다.
나는 기어 위에 얹은 그의 손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강 변.”
“변호사님, 많이 놀라셨죠? 좀 괜찮으신 거예요?”
“난 괜찮아. 그런데 지금 내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강 변하고 같이 다니면 강 변도 위험해질 거야. 박 차장님이 전화하셔서 하도 다급하게 말씀하시니까 일단은 차에 타긴 했는데. 여기서 흩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이정찬을 살해한 범인으로 의심받을 만한 상황들을 생각해 봤다.
음식점을 빠져나오면서 잠시 확인했던 인터넷 포털에는, 아직 이정찬의 죽음이 기사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정확한 사인이나 죽은 시각은 알 수 없지만, 그가 화군 저수지에 나타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린다.
집에서 칩거하던 이정찬이 재판을 앞두고 갑자기 약속을 잡아 만난 것이 바로 내가 아닌가.
만일 국과수가 죽은 때를 그때로 판단했다면, 아마 화군 저수지에서 접촉하여 내가 이정찬을 죽인 것으로 추측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그때 나와 같이 있었던 강민재도 위험하다.
“그럼 변호사님은 어디에 계실 건데요?”
“내 집에 있어야지.”
“거기 있다가 구속당하시면 어떡하실 건데요? 차장님이 말씀 안 하셨어요? 구속은 반드시 피하셔야 한다고?”
그런 말은 분명히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정찬을 죽이지 않았다.
그날 저수지에 머물렀던 시간과 더불어 여러 가지를 증명할 수 있다.
그때 강 변 차를 타고 움직였으니 톨비 계산 영수증도 있고, 국밥집과 매점을 들렀으니 그곳 영수증도 있다.
내가 그곳에 머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이정찬은 거기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는 그날 이후 이정찬에게 주기적으로 그날 만남이 불발되었으니 다시 약속을 잡자는 문자까지 여러 번 발송했다.
그런 증거들이 있는데 내가 그를 죽였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그것들을 내보이면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더라도 구속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작전 같대요.”
“뭐?”
“박 차장님은 우신 쪽에서 작정하고 지금 변호사님 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하세요. 그래서 한번 구속되면 어떻게든 변호사님을 살인자로 만들려고 할 거예요.”
박영기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 그 역시 추측성 발언을 한 것이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속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숨으면,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괘씸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또, 그러다가 나중에 구속되기라도 하면,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풀어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도망가라고?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여기서 내릴 테니까 강 변도,”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강민재는 빠르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아직 안전벨트를 하지 못한 나는 몸이 뒤로 쏠려 의자 등받이에 납작하게 붙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아직 변호사님한테 연락 온 건 없으시죠?”
“그래, 없어.”
“그럼 적어도 지금은 제 차 타고 움직이셔도 될 거예요. 변호사님은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냥 같은 사무실 쓰는 변호사하고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지금은 도주 단계 아닌 거고.”
강 변의 말은 일리 있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법조인이라는 점, 박영기와 친분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내가 용의자로 몰렸다는 정보를 미리 들었을 가능성을 수사기관이 생각지 않을 리가 없다.
아마 이정찬이 죽은 이후 내 동선을 전부 체크할 텐데, 그렇게 되면 당장 강민재뿐만이 아니라 박영기와 강관웅에게도 영향이 갈지도 모른다.
“할아버지하고 차장님도 일단 들어 와서 같이 얘기해 보자고 하세요.”
강민재는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덧붙였다.
어차피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생각은 없었다.
“저기 앞에서 차를 바꿔 타고 갈 거예요.”
강민재가 대로변의 고급 빌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긴 어딘데?”
“수일이 형네 집이요. 저기에서 제 차랑 바꿔 타고 갈 거예요.”
강민재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마치 다른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바꿔 탈 때, 내리면서 도망가실 생각은 마세요. 어차피 주차장 셔터 내리고 바꿔 탈 거고, 빌라 내부로는 카드 키 없으면 못 들어가요. 어차피 주차장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나는 결국 강민재의 말 대로, 도망치지 않고 그 빌라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민재의 차에 올랐다.
“강 변은 뭐 자세히 들은 거 없어?”
강민재의 집으로 가면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계속해서 휴대폰으로 포털 사이트를 확인하고 있긴 하지만, 이정찬의 사망 소식은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강민재는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정찬 시신이 화군 저수지에서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화군 저수지였다.
“내가 이정찬하고 접촉한 걸로 추정되는 게 화군 저수지에서 뿐이니 그렇겠지.”
“진짜 어이없지 않아요? 어떻게 이렇게 엮을 생각을…….”
강민재가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만일 우신이 짠 거라면, 이정찬을 죽인 것도 우신일 가능성이 크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이정찬이 변호사님한테 우신에 대해 넘길 자료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것도 막을 겸, 걸리적거리는 변호사님도 치울 겸 이렇게 상황을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제대로 성공하기만 하면 우신 입장에서는 이정찬 하나를 죽였을 뿐인데 눈엣가시 둘을 처리하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 아닌가.
“저번에 변호사님을 무슨 탈세범에 투기범으로 몰아서 조지려다가, 그게 실패하니까 이런 수를 쓴 거라고요.”
강민재는 이를 뿌득 갈며 읊조렸다.
살인범으로 몰린 상황, 심지어는 한때 유력한 대선 후보로 일컬어지던 이정찬을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이 상황이 억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상황이었다.
이전 삶에서도 우신은 날 어떻게든 없애려고 했고, 차장검사가 될 때도 자질 문제를 대두시켜 영전하지 못할 뻔한 적도 있었다.
물론 흉악범으로 몰린 건 처음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한테 이를 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여태까지 내가 좀 나댔어야 말이지.”
고상준만 봐도, 금지옥엽 막내아들을 감방에 집어넣었고 유상증자와 카드 점유율 1위의 꿈을 좌절시켰다.
그리고 명화제약은 상장폐지까지 시키지 않았던가.
정부 인사들도 몇 갈아치웠다.
교육감과 식약청장,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대통령까지도.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나 내가 갈아치운 것이지, 전부 다 본인이 한 짓에 본인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그게 사실이잖아.”
어쨌든, 우신이 이 사건을 디자인 했다면 어떻게든 나를 이정찬 살인범으로 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나 역시도 반박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우신이 가진 카드가 무엇인지 아직은 알 길이 없어서,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우선은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자료들은 준비해야지.
“우리 화군 저수지 갔을 때 톨비랑 매점, 음식점 영수증 가지고 있어?”
“네. 지출 증빙하신다고 하셔서 다 받았죠.”
“그거 잘 갖고 있어.”
“네.”
“그때 우리가 저수지에서 이정찬 찾는다고 한 시간 정도 머물렀지?”
“그랬죠.”
“낚시하는 사람들 중에 목격자가 있었을 테니까, 그쪽도 좀 알아봐야할 것 같고.”
강민재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점이나 낚시용품 판매점에 CCTV 있는지 확인하고, 그 시간에 낚시했던 사람들 중에서 나하고 이정찬 봤다는 사람들을 좀 수배해 봐. 직접 움직이진 말고, 태식이나 사무장님이나, 최 기자님 쪽에다가 부탁해.”
“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
“……일단은, 강 변은 안전한지 그것부터 제대로 확인되면 그때부터 움직여.”
아무리 우신이라고 하더라도, 지금도 법조계 인사들의 존경을 받는 전 대통령 손자를 건드렸을 것 같진 않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내리세요, 변호사님.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을 텐데 일단 올라가서 저녁도 좀 드시고요.”
어느덧 강관웅의 사저에 도착하여, 강민재가 차고로 들어섰다.
차에 시동이 꺼지고, 나는 카시트에 기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또 미친 듯이 피곤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