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66)
너희들은 변호됐다-266화(266/641)
강관웅이 방에 들어간 뒤, 강 실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일단 지내실 방부터 안내해 드려야죠.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그의 뒤를 따라 2층 복도로 접어들었다.
이 집에 처음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2층까지 출입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1층부터 이어진 중정을 가운데 두고 이어진 복도는 ‘ㅁ’자로 구성되어, 같은 층에 있어도 서로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것 같았다.
“저택이 참 멋지죠?”
“그러네요.”
“여기까지 올라온 손님은 거의 십년 동안 차 변호사님치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실례를 저지릅니다.”
“실례는요.”
앞서 걷는 강 실장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 아직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영기의 말을 생각하면, 지금 우신이 검경에 얼마나 약을 쳤는지는 알겠다.
우신도 나에게 물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같은 수법엔 당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준비했겠지.
하지만 정말로 이대로 일단 구속은 피하고 보는 것이 맞는지, 그런다고 해도 강관웅의 사저에 숨는 게 맞는지.
이에 대한 확신이 없다.
만일 강관웅까지 엮이면, 나 혼자만의 문제로 끝날 것이 정치권 문제로 이어져 여야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이정찬이 지금은 여당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결국엔 여당 대표였고, 강관웅은 지금의 야당 출신 대통령이었으니까.
퇴임 후 조용히 지내며 존경받던 강관웅이 이 사건에 휘말리는 순간, 이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따 놓은 당상이던 이세화의 당선도 물 건너갈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는 나는 이세화의 당선에 도움을 주기로 해놓고,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손자가 귀여우셔도 그렇지, 민재가 억지 부린다고 어르신께서 생각해 두신 것 없이 그냥 차 변호사님을 숨겨 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니지만, 위험성을 최대한 통제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어떻게 모든 변수를 통제합니까.”
강 실장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차 변호사님은 민재가 말한 그대로 같네요.”
“강 변의 말이요?”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는 강박증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신도 아닌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하겠냐고요. 아, 뒷담화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태까지 그게 가능했던 차 변호사님이 신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 거거든요.”
……정말 가지가지 했구나.
“여태까지 파죽지세였잖습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쉬었다 가는 거라고 생각하시죠. 여태까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건도 멋지게 해결한 차 변호사님이 아닙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겁니다.”
내가 인생 2회차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나를 향한 사람들의 평가는 날이 갈수록 과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태까진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찬이 죽는 것도, 그리고 이정찬의 살해 용의자로 몰리는 것도 이전 삶에선 없던 시나리오였다.
그러니 어디서 나를 살릴 증거가 튀어나올지, 반대로 나를 죽일 증거가 튀어나올지, 혹은 그러한 상황들이 만들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떠오르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최대한 정치권과 상관없도록 상황을 컨트롤하며 몇 달 동안 여기 잘 숨어 있다가 이세화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를 노리는 것이다.
당선 초반은 다른 변수가 없다면 가장 대통령의 입김이 강하고, 다른 이슈들로 시끌벅적한 때다.
우신도 그때는 잠깐이라도 이세화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때 상황을 잘 만들면 내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세화가 나를 도와줄 때의 이야기겠지만.
“엇.”
어느덧 강 실장이 걸음을 멈춘 모양이다.
생각에 잠긴 채 걷던 나는, 강 실장과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시네요.”
강 실장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문고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단 오늘은 좀 쉬시죠. 오면서 확인하셨겠지만, 지금 엠바고가 걸린 상황이라 보도 나간 건 없습니다. 당분간은 경찰이 은밀하게 움직일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마음 놓고 쉬는 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그가 문을 열어주자, 방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큰 방이었다.
킹사이즈 침대가 벽 가운데 놓여있고, 저택 뒤쪽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 앞에는 책상이 있었다.
방 안에 화장실도 딸려 있어서, 밖에 나가지 않아도 웬만한 것은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손님 방치고는 크네요.”
“예전에 살던 사람이 있던 방이라서요. 손님 방도 있긴 하지만, 오래 지내실 거니까 거기는 좀 불편하실 것 같다고 해서요.”
“누가요?”
“누구겠습니까?”
못 말린다는 듯한 강 실장의 표정에, 나는 결국 한숨 같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르신 모셔다드리고 나오는데 민재한테 문자가 왔더라고요. 참 골 때리는 놈이에요. 아, 방은 갑작스럽게 내드리게 된 거라 아직 청소는 안 되어 있습니다. 식사하시고 올라오시면 그 사이에 여사님이 청소하실 것 같은데. 식사부터 하시죠.”
“괜찮습니다. 충분히 깔끔해 보이는데요. 입맛도 없어서.”
“안 됩니다. 아까 보셨죠? 민재가 변호사님 식사 챙겨드리라고 한 거. 안 드신 거 알면 아주 난동을 부릴 겁니다.”
“…….”
강민재가 나를 이곳에 머물라고 한 이유는, 내 안전을 위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자고 가는 느낌을 매일매일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어쨌든, 강민재의 강요에 의해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가사도우미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식탁 위에 그릇을 놓았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음식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처한 상황이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거물 정치인의 살인 용의자가 되었고, 지금은 구속을 피해 숨어지내게 된 말도 안 되는 이 상황 말이다.
“민재는 차가 밀려서 좀 늦는다네요.”
강 실장이 다이닝룸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시죠.”
“민재가 뺏어 먹지 말라던데요.”
“어떻게 이걸 혼자 다 먹습니까.”
결국 강 실장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는 아무 대화도 없이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쯤 흘렀을까.
“민재는 요즘 좀 어떻습니까.”
“어떤 점 말입니까?”
“그냥, 상사로서 평가하기에 어떻냐는 말입니다.”
이럴 때마다 강관웅도 그렇고, 강실장도 그렇고 강민재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것이 느껴진다.
미국에서 학교 폭력을 당하고, 부모님을 잃은 과거를 지닌 그가 밝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강 변이 왜 자꾸 제 사무실에 있으려고 하는지 의문일 정도입니다.”
“칭찬이시죠?”
“물론입니다.”
내쫓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그가 조부의 후광 없이도 어느 로펌에서든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내 계획에 합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서 결국은 받아 줬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그가 자신의 안정을 좇아 퇴사하겠다고 하면 기쁘게 받아 줄 생각이다.
이전 삶에서, 나는 수많은 동료와 헤어졌다.
그 까닭은 죽음도 있었지만, 갈등 또한 존재했다.
이번 삶에서 그 멤버들을 하나둘씩 다시 찾을 생각이고, 일부는 이미 그렇게 했다.
이별은 언제나 상실감을 주지만, 한 번 겪은 것이 있으니 어느 정도 면역과 각오는 되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강민재는 이전 삶에서 겪은 인물이 아니기에, 그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면 아쉬울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가 내 밑에 서 떠나길 바랐던 것이고.
“민재가 왜 변호사님을 그렇게 따르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나? 싶기도 하고.”
“…….”
“농담입니다. 민재는 변호사님처럼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나는 오히려 강민재가 부러울 때가 있었다.
처음엔 구김살 없는 면이 부러웠다.
나는 너무 많이 지쳐 있었고, 또다시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스스로를 가시 달린 채찍으로 치면서까지 추구해야 하는 사명 의식이 없는 게 부러웠다.
우신에 대한 원망과 적대 의식이 너무 커서, 그 감정들을 갖게 된 계기가 전부 사라졌음에도 놓지 못하는 스스로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는, 충분히 우울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밝을 수 있는 강인함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를 수 있는 조금의 순수함,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부러웠다.
그렇게 가진 게 많은 강 변이, 나처럼 되고 싶다는 것은 오히려 열화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강 변은 저처럼 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장점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에게 만족하지 못하죠. 하지만 저는 민재가 그렇게 따르는 대상이 생겼다는 게 싫진 않더군요. 예전에 태광 다닐 때까진 보지 못했던 활력이 생겼거든요. 별로 열심히 안 살았어요, 그때는.”
강 실장은 분주히 젓가락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맨날 클럽 다니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느라 바빴죠. 영양가도 없는 애들 있잖습니까. 집에 안 들어오기도 하고, 들어와도 잔뜩 취해서 들어왔었죠. 집엔 언제나 숙취해소제가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숙취 때문에 회사에는 늘 지각하고. 그래서 어르신도 아침마다 강제로 해장국을 드셔야 했을 정도니까요. 하하.”
지금은 나보다 먼저 나와 있을 때도 있어서, 오히려 가끔 내가 지각하면 핀잔을 주기까지 하는 그가 아니던가.
회식하자고 조르는 걸 보면 술자리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숙취 가득한 채로 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회사도 그렇게 대충 다니는데, 성격은 좋아서 사람들하곤 잘 지내서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내가 알던 강민재와는 전혀 딴판이다.
“놀랍죠?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입니다. 지금 아침 일찍 일어나서 회사 다녀온다고 나가는 거 보면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변호사님 덕분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어르신은 민재가 변한 걸 보면서 아주 좋아하세요. 말씀은 안 하셨겠지만.”
강 실장이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 집에 계시는 동안, 괜히 빚을 진 기분이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르신한테는, 그리고 저한테는 변호사님이 민재 사람 만들어 주신 분이니까요.”
강 실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이닝룸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저 리듬감 있는 발소리만 봐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양손에 무언가 잔뜩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든 강민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식탁을 확인하고는 강 실장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형, 왜 변호사님 거 뺏어 먹어요?”
“야, 너 웃긴다. 좀 먹으면 안 되냐? 밥만 놓으면 되는데. 차 변호사님도 혼자 다 못 먹는다잖아.”
“아, 진짜. 형이 더 많이 먹은 것 같은데?”
강민재는 강 실장의 앞에 놓인 앞접시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건 됐고, 뭘 그렇게 사 왔어?”
“변호사님 쓰실 칫솔이랑, 치약이랑, 잠옷이랑, 실내복이랑, 양말이랑, 뭐, 그런 것들이요.”
“집에도 여분 있어.”
“혹시 안 맞으실 수도 있잖아요. 치약 같은 건 얼마나 맛을 타는데요. 그래서 종류별로 싹 사 왔죠.”
그는 가사 도우미에게 비닐봉지들을 건넨 뒤, 다시 식탁 앞으로 돌아왔다.
“근데 무슨 얘기하고 계셨어요?”
“아, 별거 아니야.”
강 실장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좋아할 것 같진 않다.
“변호사님, 형이 무슨 얘기했어요?”
“강 변 콧구멍 두 개 있다고 하던데.”
“……그건 당연하고요!”
“귀도 두 개라던데.”
“그것도 당연하잖아요!”
“아, 입은 한 개라더라. 아예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덜 시끄럽잖아.”
“아이씨! 형, 변호사님한테 무슨 얘기 했어요! 네? 무슨 얘기 했어요!”
강민재의 억울한 고함 소리만이 다이닝룸에 가득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