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67)
너희들은 변호됐다-267화(267/641)
방에 들어오니, 강 실장의 말대로 청소를 했는지 좋은 냄새가 났다.
침구도 새로 간 것 같았고, 여분의 옷들도 붙박이장 안에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아까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욕실은 조금 가관이었는데, 강민재의 말처럼 여러 가지의 치약들이 놓여 있었다.
스킨과 로션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조금 웃음이 났다.
다 씻고 나와, 책상 앞에 앉아 포털 사이트를 몇 군데 확인했다.
카더라처럼 도는 소문으로도 이정찬의 사망 소식이 게시된 곳은 없나 대형 포털에 검색도 해 봤는데, 역시나 없다.
“……흐음.”
아까 강 실장에게 듣기로는 엠바고는 사흘 후 오전 5시에 풀린다고 했다.
아마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을 염려하여, 철저한 준비를 끝낸 뒤에 발표할 생각인 듯했다.
장례식도 그때부터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고, 상주가 될 자식들이 전부 교도소에 있기 때문에 장례식은 엠바고가 풀린 이후로 미뤄졌다고 한다.
두 아들 모두 흉악범이 아니기에 외출이 허가될 테니, 그쪽은 크게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뭐, 지금 내가 남의 걱정 해 줄 때는 아니지만 말이다.
-변호사님,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강 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강민재는 낯선 휴대폰과 모양 좋게 깎인 과일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수일이 형이 준비해 준 대포폰 드리려고 오는 길에, 여사님이 변호사님 과일 갖다주신다길래 제가 가져왔어요.”
그는 침대에 앉으며 책상 위에 과일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 휴대폰은 걱정 없이 쓰셔도 된대요.”
“고마워.”
“뭘요. 얼른 과일 드세요.”
강 변이 가면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는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포크로 사과를 찍어 나에게 건넨 뒤, 자신도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아아삭, 아사삭, 강 변이 사과를 씹는 소리만 조용한 가운데, 내가 입을 열었다.
“안 가?”
“……저 가요?”
“다른 용건 있어?”
“아뇨?”
“그런데 뭐.”
“아니, 그냥, 뭐…….”
강 변이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나는 다시금 느꼈다.
강민재가 이 집에 머물게 한 것은 역시, 친구가 자고 가는 기분을 매일 느끼고 싶어서가 맞는 것 같다고.
“앞으로 계획을 좀 듣고 싶어서요.”
“무슨 계획.”
“여기서 이대로 포기하실 건 아니잖아요. 누명 벗으셔야죠.”
“그렇지.”
“거기에 대한 계획이 있으실 거 아니에요.”
“없는데?”
내 대답에, 강민재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이정찬이 죽었다는 것, 그 증거라는 것이 마지막으로 연락하고 만난 사람이 나라는 것, 그리고 그 만난 장소가 이정찬이 시신으로 발견된 장소이며, 사람 죽이기 딱 좋은 곳이라는 것 정도다.
이것으로 용의자를 나로 특정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는 아니다.
물론, 내가 용의자라는 크리티컬한 증거는 되지 못하므로 소명할 게 없는 건 아니다.
그건 강 변에게 아까 이 집으로 오면서 말해 뒀고.
“없다고요?”
강민재는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이런 마당에까지 저한테 안 알려주시는 거예요? 진짜 너무하시네.”
“안 알려 주려는 게 아니라, 정말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변호사님은 사건 접하면 바로 계획부터 나오는 사람인데!”
그야, 이전 삶에서 알고 있던 사건들이었으니까.
또, 남의 일이니까.
나는 나를 찾아온 사람이 정말 무고한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지 판단할 수 있었고, 거기서 바로 어떤 식으로 소명하면 될지 계획을 짜는 것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오는 사건들은 대개 이미 어느 정도 발생한 지 시일이 조금 지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저것 수상한 점들이 있었고, 나는 진실만을 말하는 의뢰인들의 말과 다른 점들을 우선적으로 조사하면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든 사건이었으니 당연히 계획이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아직 사건은 제대로 전개되지도 않았다.
나는 정면으로 부딪치길 바랐으나, 박영기가 흥분하면서까지 말리는 것을 보면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차다.
그런 상황에, 계획이 어디 있겠는가?
이전 삶에선 일어나지도 않았던 사건이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모른다.
“이번엔 진짜 없어.”
어쩌면 이것이 이번 삶이 시작된지 3년 만에 찾아온 검증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만일 정말로 절대자가 존재해서 나에게 이런 능력을 부여하고 과거로 돌려보낸 거라면 어떨까.
여태까지 그 능력과 미래 지식들로 충분히 나대고 다녔으니, 어디 한번 이것도 잘 넘길 수 있는지 보겠다는 심산이라면?
물론 나의 망상이나 다름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사건이 어떠한 것의 분수령이 될 거라는 사실이다.
“사건이 아직 제대로 무르익지도 않았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여드름처럼요?”
“……과일이라는 비유도 있는데, 굳이 그런 비유를 해야 하는 거야?”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하하. 그래도 재밌잖아요. 태식 씨 같죠?”
“너무 자주 어울리지 마. 옮는 것 같다.”
“왜요, 태식 씨 귀여운데.”
다들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나는 태식이 나에게 앙탈을 부릴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같은 의미로, 강민재가 그럴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네. 기다리는 수밖에.”
“변호사님이 그런 말씀 하시니까 어색하네요. 언제나 사건 접하면 바로바로 할 일부터 배분해 주셨는데.”
강민재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런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묶여 있는 처지라서 배분해 주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면요?”
“강 변이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아, 물론 강 변이 나를 도와줄 때의 이야기지만.”
“저야 당연히 변호사님 도와 드리죠!”
“일단 주변 모두가 은신해 있으라고 하는 상황이니까,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일 거야. 그러니까 증거를 찾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 보는 것도 강 변이 해야 해.”
이렇게 말하면 강민재는 신나서 자신의 망상들을 펼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 긴장돼요.”
“뭐가?”
“제가 잘 할 수 있을지요.”
“여태 잘해 왔잖아.”
“그야 이 정도 규모 사건은 거의 변호사님 오더받으면서 했잖아요. 제가 단독으로 처리하는 사건은 작은 것들이고.”
“해 봐야 늘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변호사님은 처음부터 잘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검사 시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리던 FM 로봇이라는 별명만 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나도 시보 시절 겪었고, 이런저런 실수 했었어. 나도 사람이잖아.”
“아니신 줄 알았지 뭐예요.”
“내가 사람 아니면 뭔데.”
“로봇이죠.”
당연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렵지 않을 거야. 사건 자체가 크다, 작다 판단하지 마. 괜히 긴장되니까. 우리가 하던 대로 하면 돼. 상황을 접하고, 수상한 게 있으면 파 보고, 관련자가 있으면 만나보고, 그 사람들 뒤도 조사해 보고. 그렇게 아귀를 맞추다 보면 뭐가 나오게 돼 있어. 어차피 내가 이 집에 있으니까 집에 와서 나한테 보여주고, 또 물어보면 되잖아. 할 수 있어, 충분히. 늘 내가 나서니까 강 변이 직접 해 볼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진심으로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
내 대답에, 강민재는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이대로 나를 끌어안을 것 같은 불안감과 나를 또 ‘주한이 형’이라고 부를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했다.
나는 의자를 뒤로 당겨 앉으며 그와 조금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강민재가 ‘아, 아무 짓도 안 해요!’라며 억울한 듯 소리쳤다.
“이 사건 잘 마무리되면, 그래도 변호사님은 우신 잡는 거 목표로 하실 거예요?”
마지막 사과를 입에 넣으며 강민재가 물었다.
진심으로 걱정되어 하는 말처럼 들렸다.
지금 이 상황은 단순히 보면 우신에 의해 살인범으로 몰린 것이지만, 우신이 나까지 이정찬과 함께 물고기 밥으로 줄 계획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즉, 내가 혐의를 벗은 다음에도 우신을 잡으려 한다면 그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는 뜻이 된다.
“그래야지.”
“왜요?”
“싫어서.”
“어떤 점이요?”
“하는 짓이.”
지금의 부모님은 살아 계시지만, 이전 삶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세계가 정말로, 내가 살던 그 세계가 맞는지.
그러니까, 이곳은 흔히들 말하는 평행우주고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30여 년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 것이고, 내가 이 세계로 넘어와서 새롭게 만난, 이제 만난 지 겨우 3년 된 부모님만 살아 계신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나는 평행우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물리적인 시간이 태엽처럼 뒤로 감긴 것이기를 바란다.
어땟든 그렇기에 나는 우신이 내 부모님을, 그리고 내 부모님과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을 죽였고, 내 동료를 죽였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평행우주라면 이곳의 우신에 복수해 봤자 내가 살던 우주의 우신은 아무런 타격이 없을 거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분노를 풀 곳이 필요하고, 이곳의 우신도 하는 짓은 똑같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와서 내가 상황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나는 우신을 파멸시키 위한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시간을 거슬러 이곳에 왔고, 육신도, 나이도 바뀌었다.
하지만 이 몸 안에 든 나는 이전 삶과 이번 삶에서 연속되는 존재다.
즉, 내 알맹이는 지금 서른일곱이 아니라, 마흔일곱인 것이다.
“우신이 변호사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요?”
강민재는 우스갯소리로 한 말 같았지만, 나는 문득 그런 충동이 들었다.
한 번만이라도 털어놓고 싶다는, 그런 충동.
그리고 그 충동은, 내가 스스로를 멈추기도 전에 발산되었다.
“응.”
“예? 우신이 변호사님한테 나쁜 짓 했다고요?”
“그래, 했어.”
“아니, 무슨 짓을 했는데요?”
“정말 나쁜 짓.”
“……말씀하기 어려우신 거면 자세히는 안 물어볼게요. 그래서 검찰 나오신 거예요?”
“그렇지.”
“대체 언제요? 변호사님이 검사였을 때요?”
강민재는 놀라움과 걱정이 혼합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인생 2회차잖아. 첫 번째 인생 때 그랬어.”
“아, 뭐예요.”
그는 또 나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지, 씩씩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자꾸 장난치실 거면 저 갈래요.”
장난 아닌데.
“잘 자.”
“……네. 변호사님도요 얼른 쉬세요. 어쨌든, 다 잘 될 겁니다.”
강민재는 빈 접시를 가지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불을 꼈다.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각.
얼른 자고, 내일은 오 사무장과 최종현, 조봉준에게 내 상황을 알려야 할 것 같다.
아, 태식이에게도.
강민재에게 붙여 줘야 하니까.
‘피곤하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털어놓으니 조금은 후련한 것 같기도 하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