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7)
너희들은 변호됐다-27화(27/641)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
드라마와 나은성의 서류를 비교하는 작업을 마치는 데에는 이틀이 걸렸다.
그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른 사건이 없어서 이틀 내내 드라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뭐, 중간에 윤세연 기자가 쳐들어와서 인터뷰 답변을 주기는 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뺏기지는 않았다.
나와 강민재는 중간중간 저작권법 판례를 샅샅이 찾아보았다.
나는 미래에서 언뜻 보았던 판례들도 따로 기억해내 적어 두기도 했다.
이러면 편법인가 싶긴 했지만, 이정도가 편법이라면 내 진실 판별 능력부터가 말도 안 되는 사기 아닌가?
“변호사님이 보시기엔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전 승산 있다고 봅니다. 재판에 권력과 돈의 개입될 가능성이 커서 조금 걸리긴 하지만요. 정혜진 작가 명성도 있고요.”
대본이 있는 12화 분량은 드라마를 틀어 놓고 비교했고, 13화는 A4용지 1매 길이의 회당 줄거리와 비교했다.
나은성의 회당 줄거리에는 회별 핵심 명대사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13화에서도 겹치는 대사까지 확인할수 있었다.
그 부분을 전부 형광펜으로 그어놓았는데, 약 15개가량이 발견되었다.
같은 장면으로 따지자면 약 20개 정도.
더 추가하자면, 두 주인공의 성격도 비슷하며 옷 입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의뢰인이 작성한 비교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몹시 객관적이었으며, 분석에도 치우침이 없었다.
“여자 주인공 이름은 글자 하나 다르고, 남자 주인공 이름은 똑같고. 진짜 뻔뻔하기 짝이 없네요.”
여자 주인공 지윤영을 지윤수로, 남자 주인공 선우준은 똑같이 선우준이다.
어지간히도 이름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여자 주인공, 남자 주인공 설정도 마찬가집니다. 흔한 설정들이기는 하지만, 거의 설정에서만 스무 가지를 그대로 갖다 썼어요. 에피소드까지 더하면 말도 안 되죠.”
“난 저 가상의 구. 부자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이걸 대비시키는 부분이 좀 커 보이는데.”
설정이야 흔할 수 있겠지만, 원작 대본에서는 그 부분에 특별한 연출을 해 두었다.
카메라 설정까지 달리해서 색감을 조정한 것은 물론, 마치 선을 그어둔 것처럼 명확하게 구획을 나눠 놓은 느낌.
심지어는 부자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길게 철창까지 쳐져 있다.
물론 떨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철창이지만, 여자 주인공은 마치 침범하지 말라고 그어 놓은 선처럼 느낀다.
아이디어 영역이라 보호된다고 치더라도, 연출까지 똑같은 것은 재판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을 것이다.
“공모전 세부 사항을 보면, 모든 심사위원이 모든 출품작을 직접 읽는다고 되어 있어.”
“작가도 심사위원이니까 당연히 읽었겠죠. 의거성이 충분해요.”
“1차에선 시놉시스만 읽고 한 번 거른 뒤에, 괜찮은 것들을 2차에 올려서 대본을 읽었겠지?”
“그랬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그 많은 걸 전부 읽을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2차 선발된 작품들은 푸른섬 미디어 제작팀 전원이 다 함께 검토한다고 되어 있어요.”
나는 푸른섬 미디어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안내 멘트가 끝난 후, 곧바로 연결됐다.
-네, 푸른섬 미디어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푸른섬 미디어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네. 말씀하세요.
“지난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으로 열분이 등록되어 계신데, 그중에서 2차로 걸러진 작품은 심사위원 외에도 제작팀 전원이 보신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혹시 제작팀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스무 분 정도 계십니다.
“안 그래도 워낙 좋은 드라마를 많이 만들어 내는 곳이라 바쁘실 텐데, 원고 보실 시간은 있으신지 걱정되네요. 푸른섬 미디어 공모전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8화 분량을 받으시잖아요. 거의 책 한 권 분량인데……. 전부 보시는 게 가능한 건가요? 제가 다음 공모전에 출품해보고 싶어서, 궁금한 게 좀 많습니다.”
-모든 분이 틈틈이 보실 수 있게 제본해서 돌리고 있어요. 그 부분은 염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그럼 내년에도 심사위원에도 정혜진 작가님이 계십니까? 개인적으로 팬이라, 그분께 꼭 보여 드리고 싶거든요.”
-아, 글쎄요.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우수한 작가님도 많으세요. 정혜진 작가님이 참가하지 않으시더라도 꼭 출품해 주시길 바랄게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강민재가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말투, 목소리 변호사님 아닌 줄 알았어요. 배우 하셔도 되겠네.”
아무 일도 아닌 척 물을 때는 저런 말투 흉내 내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 삶에서 우신 비리를 파헤치는 동안, 수많은 관계자에게 썼던 수법이기도 했다.
정작 만나면 내가 나와 있어서 모두 도망치기 바빴지만 말이다.
“푸른섬 쪽에서도 자기들이 베꼈다는 걸 자각하기는 한 것 같은데.”
“왜요?”
“다음 공모전 심사위원에서 정혜진이 빠질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흘렸거든.”
직원의 말은 애매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말로 갈음해도 될 것을 굳이 언급한 걸 보면 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
아마 그들이 제 발 저렸거나, 아니면 제보를 받아 의뢰인의 호소문을 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심사위원 열 명에, 제작팀 스무 명이 2차로 걸러진 걸 다 본다는데. 제본해서.”
“2차로 걸러지는 작품이 몇 개 안되나 보네요.”
“그럴지도 모르지.”
2018년 같았으면, 아니, 적어도 2015년 정도만 되었더라도 모두 핸드폰이나 패드로 봤겠지만 아직은 아날로그 세상이다.
“강 변.”
“예.”
“만일 푸른섬 미디어에 소송을 건다면, 그쪽에서 뭐라고 할 것 같아?”
“의거성도 부인하고, 설정도 흔하다고 부인하고. 뭐, 그렇겠죠. 설정 부분은 솔직히 부인해 봤자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것도 알 수 없고. 사실 실질적 유사성을 증명하는 부분에서는 대부분 자잘한 설정들은 논외 대상이 될 겁니다. 아까 말씀하신 그 부자 동네, 달동네 대비 부분이 가장 큰 이슈가 아닐까 싶고요. 제 생각엔 의거성 부분을 어떻게든 부인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의거성 부인하면서 뭐라고 할까? 이미 공모전에 출품한 이력까지 있어서 부인하기 힘들 텐데.”
“음, 그건.”
강 변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나는 답을 알고 있다.
“1차에서 이미 걸러져서 초반밖에 못 봤다고 하겠지. 시놉시스와 주인공 소개는 봤을 테지만, 어쨌든 초반만 봤다고 하면 후반부 유사성에 대해서는 그냥 흔해서 겹친 거다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메일이 누락되어서 전혀 접한 적이 없다고 하든가.”
“근데 읽음 표시되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건 서버상의 문제라고 둘러대면 그만이고.”
“그렇긴 하겠네요. 하지만 2차 통과된 것들은 제본해서 돌린다고 했으니까, 그 제본된 걸 찾으면요?”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공모전에 출품된 시나리오를 표절해서 드라마로 낼 정도였다면, 2차는 무난히 통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원작 역시 제본되었을 터.
다만, 공모전은 작년에 열렸고 정혜진 작가의 드라마는 올해 3월부터 방영되었다.
그렇다면, 이미 제본된 시나리오는 폐기되었을 것이다.
참고하기 위해서라면 정혜진 작가의 컴퓨터에 파일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정혜진 작가의 컴퓨터를 압수수색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장치로 조치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인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표절하기로 마음먹은 뒤부터는 제발 저려서 빨리 폐기했을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네요. 제본소에 물어보면 어떨까요? 제본한 적 있느냐고.”
“일단 제본소가 어딘지 모르고. 제본소 사장도 뭘 제본했는지 모를 텐데. 워낙 일이 많을 테니까 내용까지는 안 봤을 것 같거든.”
어느 제본소와 거래한다고 대놓고 물어보면 알려 줄 리가 없다.
윤세연 기자의 도움도 받기 어려운 영역이다.
“일단 푸른섬 미디어하고 가까운 제본소들부터 쭉 전화 돌려 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의거성 증명할 때 키포인트잖아요.”
우신 계열사이니, 우신 쪽과 거래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우신은 인쇄 사업을 하지 않는다.
그들 푸른섬 미디어 내부에서 제본기를 소지할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비효율적이다.
거래하는 제본소가 분명 있을 텐데.
“반씩 갈라서 돌리지. 강 변이 이 구역, 내가 이 구역. 충무로에는 인쇄소가 많으니까.”
푸른섬 미디어의 위치도 충무로고, 충무로는 인쇄소가 집결된 곳이기에 하나쯤은 걸릴 것이다.
우리는 약 30분 동안 전화에 불이 나도록 연락을 돌렸다.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민재는, 곧 나를 돌아보았다.
찾은 게 있냐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변호사님.”
“왜.”
“이 사건 수임하실 거죠?”
제본소까지 찾는 지경이면, 거의 착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우신 그룹 계열사라 건드리고 싶은 마음이 큰 것도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이 재판이 우리에게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 보상을 받고 싶은지는 알 수 없지만, 재판까지 가기 전 그쪽에서 금전으로 무마하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푸른섬 미디어가 언론에서 개망신을 당하기를 바라지만, 우선 변호사라는 사명감하에 생각해 보더라도 의뢰인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지는 않다.
드라마 팬들의 질타 정도는, 고소를 마음먹은 입장에서 그녀도 이미 예견했을 테고.
“해야지.”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민재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저희가 사건을 수임하는 것으로 결정나서요. 하하. 이 부분 안내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아, 예. 예. 편하실 때 내방하셔서 자세한 이야기 나누었으면 하는데요. 예. 아이고, 그럼요. 예에. 감사합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너무나 신나 보이는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큰 사건이고, 주목을 받을 것이며, 우리 사무실이 성장할 수 있다 큰소리를 치던 강민재의 말이 떠오른다.
2018년, 그러니까 내가 살던 미래의 말로 그를 표현하자면…….
그는 관종 아닐까?
* * *
“그러니까, 의뢰인은 내일 오시기로 했다고?”
내 맞은편에서 짜장면을 정신없이 먹던 강민재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럼 그전까지 뭔가 보여 드릴 건 있어야겠네.”
우물우물.
먹느라 대답도 못하던 강민재가 그릇에 코를 처박고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하다못해 제본소는 찾아야지.”
“아아. 배부르다. 그렇죠. 제본소 찾아야죠.”
“코에 짜장 소스 묻었는데.”
“아, 넵.”
강민재가 머쓱한지 얼른 휴지로 코를 닦았다.
나는 소파에 깊게 기대앉으며 팔짱을 꼈다.
“제본소를 어떻게 찾는다……. 거기 직원 하나 붙잡아서 물어볼 수도 없고요.”
“제본소 찾아다니는 걸 그쪽에서 알면, 고소당할 거 눈치채고 증거인멸부터 빠르게 시작하겠지. 그 전에 확보할 건 확보해야 해.”
“그렇죠. 아, 뭐가 좋을까요.”
한참을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익숙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거 해 줄 사람 있어.”
“예? 누구요?”
“차 빼 놔.”
“아, 누군데요.”
“가 보면 알아.”
그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앞으로 2년 뒤지만, 조금 빨라져도 상관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