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70)
너희들은 변호됐다-270화(270/641)
‘살해 도구 발견’이라는 단어를 읽은 지는 몇 초가 흘렀지만, 나에게는 그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았다.
그러니까, 단순한 부엌칼 같은 것을 가지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겠고.
혈흔이 남아 있고, 시신의 상처와 일치하는 흉기가 나왔기 때문에 저렇게 단정적으로 ‘살해 도구’라고 하는 거겠지.
가짜 증인으로도 모자라, 가짜 증거까지 심어 놓은 모양이다.
내가 어제부터 집을 비웠으니, 오늘 경찰이 영장을 치기 전에 누군가 내 집에 들어가서 흉기를 갖다 놓은 것이다.
“변호사님, 사무장님 전화 왔어요.”
“받아 봐.”
아무래도 오 사무장 역시 속보를 보고 바로 전화한 게 아닐까 싶다.
“사무장님, 옆에 변호사님도 같이 계세요.”
강민재가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하며 말했다.
-변호사님, 저 형사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형사요?”
오늘 사무실에는 압수수색이 없었다고 하기에, 그쪽에는 아직 연락이 가지 않을 모양이라고 생각했더니.
오 사무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네. 요점 먼저 말씀드리면 결과적으로 변호사님 어디 있는지 아냐, 이겁니다. 전 모른다고 했고요. 갑자기 연락이 두절돼서 사무실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변호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고도 일단 말하긴 했습니다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겠죠.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형사가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요.
“이상한 말이요?”
-변호사님이 이정찬을 죽이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요.
오늘 낮에 강 실장이 전해 준 이야기다.
살인 도구가 발견되었다는 속보에 그 이야기가 없길래, 당분간은 숨기려는 건가 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흉기가 조금 더 크리티컬한 증거니까, 그쪽 먼저 조명한 거겠지.
“네?”
아직 강민재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전이라, 그는 꽤 놀란 듯이 되물었다.
“화군 저수지에 있던 낚시꾼이라고 하더군요.”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오늘 전달 받아서 알았습니다.”
-우신 쪽에서 섭외한 배우겠죠?
“그럴 겁니다.”
-그 증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밝혀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래서 이제부터 강 변하고 같이 움직여 주셔야 합니다.”
강민재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증인이라는 사람이 제가 이정찬을 죽이는 것을 봤다는 장소 말입니다. 일단 거기가 어딘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다음에, 그 장소가 보일 만한 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수배해 봐야죠. 그 증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밝힐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 증인이 변호사님을 봤다는 장소가 어디인지, 지금 공개된 자료가 없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강 변이 조만간 경찰에 그때 저와 같이 있었다고 조사받으러 갈 겁니다. 그때 강 변이 알아내면 됩니다.”
“역시 계획이 있으셨던 거죠?!”
강민재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계획이라기보단, 그냥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어디인지 특정해 주면, 저랑 변호사님이 그때 그 저수지 한 바퀴 돌았으니까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어요.”
-그렇겠네요. 알겠습니다.
“저수지 입구 쪽에 매점과 낚시용품 판매점이 있었습니다.”
-일단 그쪽에 문의해서 그 시간에 저수지에 드나든 사람부터 찾아야겠어요.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게 가장 편할 것 같습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 변이 조사받고 돌아오면 바로 일 시작할 수 있게 준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화군 저수지면 거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죽치고 있는 낚시꾼들이 몇 있을 거라, 동호회 쪽도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직 이 소식은 접하지 못하신 것 같아서요. 놀라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허어, 놀랄 일이 더 남았습니까?
“저희 집에서 이정찬 살해에 이용된 도구가 나왔다네요.”
-네?
“거기에 대해선 아직 정보가 없어서, 조금 더 지켜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 사무장은 대답이 없었다.
-…….
이럴 때 공백을 메우는 것은 늘 강민재의 몫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그런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한테 들으셨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오히려 이런 때에 불안에 떨고 흥분하는 것보단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니까요.
“네.”
-잘 해결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아는 변호사님은 언제나 그러셨으니까요. 검사 시절부터요.
오 사무장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 시절부터라.
나에게 아무 능력도 없던 때다.
미래를 미리 알고 있지도 않았고.
여태까지 사람들은 그런 능력으로 인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 이 와중에 철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무실에 오고 나서는 계속 실내에만 있었는데 현장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강 변호사님이랑 같이 조사하러 다닐 생각하니까, 이거 꽤 신나는데요?
오 사무장은 분위기를 환기해 보려는 듯했다.
나는 작게 웃었다.
“그렇네요. 사무장님의 실력을 뽐낼 때가 왔습니다.”
오 사무장은 이제 집으로 들어가 봐야겠다며 전화를 적당히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자가 여럿 들어와 있었다.
통화 중에 전화가 걸려 오면 문자가 날아오는 캐치콜 서비스 문자였다.
윤세연, 최종현, 조봉준.
아주 돌아가면서 전화를 해 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님, 아버님도 많이 놀라셨을 것 같은데……. 연락이 없으시네요.”
“강 변이 통화 잘했잖아. 그 말 믿고 기다리고 계신 걸 거야.”
어머니와 통화하는 자리에 나도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물론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우셨지만, 강민재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잘 전해 드렸다.
어떤 거짓 증거가 나타날지 알 수 없고, 그 때문에 여론은 들썩이겠지만 잘 해결될 문제고, 시기를 보고있을 뿐이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새삼 두 분이 강민재와 안면이 있으신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만일 생판 모르던 사람이 저런 말을 했으면 믿지 않으셨을 텐데.
“변호사님, 봉준이 형님이에요.”
그때, 다시 한번 휴대폰이 울렸다.
강 변은 휴대폰 화면을 나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받아.”
“네. 스피커폰으로 받을게요.”
강민재는 수신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아직 스피커폰 버튼이 눌리지도 않았는데도 조봉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랑 그렇게 열심히 통화 중이었어? 아니, 그건 둘째치고, 씨발, 이게 무슨 소리야?!
강민재는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며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귀 떨어질 준비를 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형님, 일단은 진정하시고,”
-차 변 집에서 살해 도구가 왜 나와! 말이 되는 소리야, 이게?! 엉?
“조봉준 씨. 작게 말해요. 귀 아픕니다.”
내가 한마디 거들자,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소리 지르던 그가 잠잠해졌다.
-차 변?
“네.”
-지금 강 변하고 같이 있는 거예요?
“네.”
-거기 잘 숨어 있어야 돼. 진짜, 잡히지 말고. 분위기 안 좋으니까. 알죠? 또 누가 차 변 아니랄까 봐 남의 일인 것처럼 굴지 말고. 여유 좀 작작 부리고. 어?
최종현이 갑자기 난입해서 빠르게 말을 쏟아내었다.
박영기도 그렇고, 강 실장도 그렇고, 오 사무장도 그렇고, 최종현까지.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뭐가 됐든,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 여럿이 나에게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핏대를 세우는 것은 결코 걸러들을 만한 일은 아니다.
“뭐 들은 거라도 있으세요?”
강민재가 묻자, 최종현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일중일보 그쪽 계열 언론사에선 차주한 묻는 걸로 합의 끝난 것 같더라고. 아마 우신 머니 들어갔겠지.
“펜으로 묻는다고요? 이것보다 더 강경한 기사가 나오는 게 가능해요? 인터넷 기사 보니까 환장하겠던데.”
-가능하지. 단순히 사건 보도만이아니라, 칼럼이나 사설 쪽에서 ‘어떤 변호사의 추락’ 이 지랄하면서 차 변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기획 기사 잡고. 진짜 사소하게는 칼럼하고 사설은 또 매니아층들도 있고, 부모들이 학생들한테 논술 교육용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마 교복 입은 애기들도 차 변 씹고 다닐걸? 진짜 찌질하게 온갖 방법 다 쓸 거야. 뭐가 됐든. 다행인 건, 그래도 다른 계열 언론사는 잠잠하다는 거야.
최종현의 말에, 나는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강관웅이나 이세화가 약을 친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강민재도 모르는 눈치였다.
-차 변, 근데 나 물어볼 거 있어.
잠자코 있던 조봉준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짭새 놈들이 차 변 집 압수수색한 시간 알아요?
“글쎄요. 오후라고 듣긴 했습니다.”
-그래? 그럼, 혹시 차 변 오늘 낮에, 11시쯤에 집에 들렀었어?
“집에요? 서초동 집 말입니까?”
-응.
“아뇨. 계속 강 변 집에 있었습니다.”
-도우미 아주머니라든지, 부모님이라든지, 강 변도 집에 안 갔고?
“안 갔는데요?”
이번엔 강 변이 대답했다.
“왜 그러세요, 형님?”
-아니…….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그때 차 변 집에 누가 있었던 것 같아서. 내가 아침에 민재한테 전화 오기 전에, 속보 보고 놀라서 차 변한테 전화했는데 차 변이 전화를 안 받더라고? 그래서 집에 찾아갔었거든.
“그런데요?”
-벨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길래, 진짜 존나게 눌렀지. 연타했어. 다다다다. 근데 그러니까 그 인터폰 끊기는 소리 있잖아. 팟! 이런 소리. 그게 나더라고. 그래서 나는 차 변이 집 안에 있나, 이런 생각했거든.
“조봉준 씨가 벨을 연타하니까, 누가 안에서 끊었다, 그 말입니까?”
-그런 걸로 예상이 된다는 거지. 물론 기계 오류일 수도 있지만, 지금 차 변 집에서 살해 도구가 나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마음에 걸리네.
“……아무래도 조봉준 씨가 누가 제집에 들어가서 흉기를 갖다 놓았을 때, 그때 조봉준 씨가 계셨던 것 같은데요.”
그들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돌아가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정찬이 죽은 후, 내가 용의자로 낙점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생각보다 이르게 내 귀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몸을 숨길 수 있었고, 그렇기에 우신은 내가 제대로 된 은신처를 찾기 전에 공개 수사로 전환하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경찰 그 자체를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일중일보를 통해 엠바고를 푼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정찬의 살인에 이용된 흉기를 나에게서 발견되게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 수사로 전환된 상황이라 경찰에서 급하게 내 집에 수색 영장을 치자, 그때 내 집에서 흉기가 발견되게 하기 위해 그날 아침 내 집에 잠입했다.
어차피 내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그 전날 일을 감행할 생각이었겠지만, 미리 내가 이정찬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보를 접한 기자들이 내 집 앞에 모이는 바람에 그럴 수는 없었겠지.
결국, 기자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차주한이 도주 중이고 연락도 두절되었다는 내용을 강조해서 계속 보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기자들은 그 집에 아무리 죽치고 있어 봤자 건질 게 없다는 생각에 내 사무실로 타깃을 바꿨다.
그래서 우신은 겨우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내 집에 잠입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두 분 일단 저희 집으로 오실래요?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좋겠어요.”
강민재의 물음에, 시끄럽게 떠들던 두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너희 집?
“네.”
-그러니까, 강관웅 전 대통령 집?
“……그렇죠?”
-그런 데에 우리가 가도 되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명료하게 대답했다.
“두 분이 여기로 오신다고 해도, 제가 여기 있다고 생각되진 않을 겁니다. 두 분이 강 변하고 친하게 지내셨고, 제 일로 근심하다가 만나서 얘기하려고 왔다고 하면 되니까요.”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 판국에 이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전 대통령 집이잖아! 나 그런 데 한 번도 안 가봤어. 진짜 우리 가도 돼? 할아버님이 싫어하시지 않을까?
“에이, 안 싫어하세요. 손자 친구들이 놀러 온다는데 왜 싫어해요.”
-헉, 그럼 당연히 가야지. 이런 구경을 언제 또 해 보겠어. 우리 한 1시간 정도면 갈 거야. 형 빨리 샤워해. 며칠 동안 안 씻었잖아! 그리고 옷도 깔끔한 걸로 입어. 어? 빨리, 빨리!
“……그냥 오셔도 되는데.”
-우리 끊는다! 주소 문자로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