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72)
너희들은 변호됐다-272화(272/641)
강민재는 아침부터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침을 차리고 있다는 가사도우미의 말을 전달받을 때만 해도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잠시 전화를 받고 오겠다더니 금세 얼굴이 굳어 버린 것이다.
“무슨 전화길래 표정이 그래?”
최종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맞은편에 앉는 강민재를 예의주시하며 물었다.
“경찰에서 전화가 왔어요. 오늘 참고인 출석하라고.”
“무슨 그런 일로 표정을 굳혀? 당연히 전화 을 거라고 생각했잖아.”
“그렇긴 한데, 말하는 게 좀 재수 없어서요. 어쨌든, 얼른 식사부터 하시죠. 여사님, 저희 얼른 밥 주세요. 배고파요. 헤헤.”
강민재가 배를 문지르며 말하자, 가사도우미들이 분주하게 식탁 위에 그릇을 나르기 시작했다.
“……와, 민재야. 넌 맨날 아침을 이렇게 먹냐?”
아침 식탁에 앉은 조봉준이 상다리 휘어지도록 늘어선 그릇들을 보며 물었다.
그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어떤 것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을 굴리고만 있었다.
“그럴 리가요. 이렇게까지 안 먹는데, 손님 왔다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신경 써 달라고 하셨대요. 아, 맛있겠다.”
집주인이 먼저 국을 뜨자, 그제야 조봉준과 최종현도 수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제 새벽까지 방송에서 어떻게 이 정보들을 다룰 것인지 함께 논의하다가 이곳에서 잠을 잤다.
그러고는 원래 오후까지 늘어지게 자던 인간들이라 그런지, 오전 11시나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나는 오늘도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 3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7시에 일어났지만 말이다.
“차 변은 왜 안 먹어?”
“전 어르신하고 먹었습니다.”
“……어르신이 강관웅 전 대통령님을 말하는 건가?”
“네.”
강민재도 일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와 단둘이 식탁에 앉아야 했다.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아침을 거르면 되냐는 강관웅의 꾸짖음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원래 아침을 안 먹는다고 대답은 했다.
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그렇게 강관웅과 둘이서 30분 동안 식사를 했지만, 달리 오간 대화는 없었다.
그는 무언가 진전이 있느냐고 묻기만 했고, 나는 몇 가지 행동을 시작할 단서는 찾았다고 대답한 게 전부였다.
강관웅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원해서가 아니라고 해도, 어쨋든 나를 보호하고 있는 입장이 되었다.
내가 그랬듯, 그 역시 충분히 자신이 휘말렸을 때 얼마나 사안이 복잡해질지, 피해는 어디까지 미칠지 전부 생각했을 텐데.
딱히 채근하지도, 자세히 묻지도 않았다.
나를 믿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상황에서도 네가 제 발로 헤쳐나올 수 있는지 보겠다는 심산인지는 알 수 없다.
치외법권에 준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은신처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입장에서 이것저것 따질 때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 그렇구나. 이거 아침까지 이렇게 거하게 챙겨 주셨는데 정말로 인사 안 드려도 되는 건가?”
그렇게 말하는 조봉준은 입 안 가득 음식을 물고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다 먹고 말해, 더럽게.”
“글쎄요. 여쭤볼까요?”
“여쭤볼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집안에 어른이 계신데 집에 왔다가 인사도 안 드리는 건 유교 중심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의 예의범절 상식으로는 살짝 무례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
“그냥 책에 사인받고 싶다고 말해, 봉준아.”
횡설수설하는 조봉준에게 최종현이 한마디 보태자, 조봉준은 정색을 하며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내가 어? 사인받고 싶어서 그런 거겠어? 그냥 유교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내가, 어?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건데.”
“그래서 너 책 가져왔어, 안 가져왔어.”
“가져왔지.”
“그러면서 말이 많아.”
“……가져왔는데! 목적이 사인인 게 아니라, 인사를 드리게 될 줄 알고 그러면 겸사겸사 사인을 받아야겠다~ 뭐, 그런 생각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며, 조봉준은 옷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90년대에 출간된 강관웅의 회고록이었다.
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우리에게는 필독서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학교 도서관에서는 가장 많이 빌려 보는 책 순위에도 들었고.
그런 책에 저자인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그것도 인쇄되지 않은 것이 들어 있다면 꽤 희소가치가 높을 것 같긴 하다.
“너 사인 받아서 어디 팔아먹으려고 그러지?”
“…….”
“에이, 뭐야. 그러면 안 여쭤볼래요. 할아버지가 기껏 사인도 해 드렸는데 그걸 갖다 판다고 하면 얼마나 슬프시겠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얼마나 감수성이 풍부하신데.”
“야, 민재야. 그거 아니다. 형 그러려고 한 거 아니야.”
어쨌든, 식사가 끝난 뒤 강민재는 그들의 염원대로 강관웅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그에게 갔다 왔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조봉준은 책에 사인도 받았고 말이다.
“경찰에 언제 출석한다고 했지?”
“이제 준비하고 나가야 해요.”
강민재가 시계를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저 일단 씻고,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그는 반도 채 피우지 못한 담배를 급하게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럼 CCTV는 우리끼리 받으러 갈까?”
“그러지, 뭐.”
“두 분이 가는 것보단, 강 변이 같이 가는 게 좋을 겁니다.”
“왜?”
“CCTV가 원칙적으로는 아무한테나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서요. 보는 것까지는 괜찮아도 파일까지는 안 주려고 할 겁니다. 가상의 사건 때문에 변호사가 왔다고 하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요.”
“그냥 우리가 짭새라고 하면 안 되나? 나 좀 형사같이 생기지 않았어? 강력계 형사.”
조봉준은 누아르 영화 속 형사처럼 폼을 잡으며 맛깔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종현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렇게 생기긴 했다만, 살짝 방향 잘못 틀면 조폭 같아서 안 돼.”
“아, 왜. 그냥 형사라고 하고 보여달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민재가 언제 나올지 알고 그때까지 기다려? 시간 아깝게.”
“그러다가 나중에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너는 바로 공무원 사칭이야. 알아, 인마? 그럼 너 혼자 다 뒤집어써라.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테니까.”
최종현의 단호한 말에 조봉준은 시무룩해졌다.
아무래도 형사 놀이를 할 생각에 좀 신났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들도 강민재가 경찰에 출석할 때 같이 돌아가야겠다며 씻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왁자지껄했던 정원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나는 그곳에 홀로 않아 강 실장에게서 받았던 대포폰을 꺼내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 사무장도 음직이겠다고 했으니, 태식과 연결을 시켜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강민재에게서 연락해야 하는 주요 인물들의 전화번호를 받아 저장해놨던 터라, 나는 바로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코난보다 바람난 배우자 증거 잘 잡아 드리는 대박 흥신소입니다.
“태식아, 나다.”
-내가 누군데. 누군데 초면에 반말질이야, 엉?
“네 돈줄.”
-내 돈줄? 아, 혹시 변호사님?
목소리를 들어도 모르는데, 돈줄이라고 하면 알아듣는다니 이거 참 서운한데.
“그래.”
-와, 흉악범이다! 살인범이다! 얘들아, 경찰에 신고할 준비 해라! 살인범한테 전화 왔다!
“태식아. 지금 내가 장난할 기분으로 보여?”
-……아뇨. 죄송합니다.
과거의 기억으로 이득을 본 적은 셀 수도 없지 많지만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이런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 주는 순간 말이다.
만일 나에게 과거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나는 태식에게 전화를 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식은 물론이고, 오 사무장이나 최종현도 마찬가지였겠지.
-지금 꽁무니 빠지게 튀고 계신 중 아니에요? 어쩐 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주셨대요.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할 거요? ……변호사님이 언제부터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말씀 잘못하신 거 아니에요? 시킬 거라고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부탁이라고 하신 거 아니고요?
“그래. 그럼 시킬 게 있어서 전화했다.”
-어쨋든, 저한테 엎드려 눈물로 부탁하실 게 뭔데요?
“나보고 살인범이라고 한 거 보면 이 사건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네, 뭐. 대충 알죠.
“지금 사무장님이 조사하고 계신 게 있어. 그걸 좀 도와 드려.”
-……사무장님이요?
태식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오 사무장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하는 일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강 변도 도와주고.”
-알겠습니다. 그럼 사무장님한텐 제가 전화드려요?
“그래. 사건 난 장소, 거기가 화군 저수지거든. 거기서 사건 일어난 날, 그 시간에 거기 있었던 사람들을 찾고 계실 거야.”
-흐음. 그날, 그 시간에 화군 저수지에 있던 사람들……. 거기 낚시하는 사람들 많지 않아요?
“맞아. 밤 10시부터 12시 사이로 특정해 봐.”
-알겠습니다. 일단 거기 애들 보내서 좀 알아봐야겠네요. 근데 거기 사건 현장이라고 노란 테이프 안 쳐져 있으려나요? 못 들어갈 것 같은데?
“아마 그럴 거긴 한데, 모든 장소가 통제되진 않았을 거야.”
-알겠습니다. 뭐, 가 보면 알겠죠.
“그래, 그럼 끊는다.”
-아, 변호사님.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냈는데, 다급한 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자, 태식이 어색하게 물어 왔다.
-안전한 데 잘 계신 거죠?
“그래.”
-밥도 잘 드시고?
“어.”
-잠도?
“그래. 잘 자.”
-싸가지도 여전히 없으시고?
미친놈.
-헤헤. 장난입니다. 그럼 저 진짜 끊습니다. 이 번호로 연락드려도 되는 거예요?
“웬만하면 강 변 통해서 전화하는 게 좋지. 근데, 태식아.”
-네?
“하나만 묻자.”
뭘요?
“너는 왜 내가 이정찬 안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냐.”
이전 삶의 태식이라면 당연히 나를 믿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번 삶에서의 그 역시 다르지 않았기에 나는 지금도 그를 믿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삶은 저번 삶과는 조금 다르게 다시 만났고, 조금 다르게 함께 일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의 태식은 왜 나를 믿는 것인지.
-뉴스 보자마자 그냥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뭐 이유가 있나요?
“명쾌하네.”
-감동받으셨어요? 그렇다고 울진 마세요. 하하핫, 그럼 끊습니다!
태식과 전화를 끊고 나니, 웃음이 났다.
무슨 이유가 있냐는 그의 말이 마치 우문현답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슨 대답을 바랐던 것일까.
강민재가 할 것 같은,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용비어천가가 듣고 싶었던 걸까.
그를 직접 보며 대화한 것이 아니기에 능력을 사용해 볼 순 없었지만, 너무나도 태식이 할 법한 대답이 흘러나와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정말로 용비어천가가 흘러나왔다면, 한 번쯤 의심해 봤을지도 모르겠다.
“두 분 택시 타고 오셨죠? 그럼 출석하러 가는 길에 오피스텔에 떨궈 드릴까요?”
“그럼 우리야 좋지.”
어느덧 준비를 마쳤는지, 세 사람이 정원으로 나오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재는 조사 끝나면 전화해 줘. 그러고 차 변네 오피스텔에서 만나게.”
“넵.”
“근데 얘가 엄청 늦게 나오면 어떡해? 경찰이 괜히 오래 붙잡고 있으면 어떡해. 얘는 분명히 차 변 억울하다고 열변을 토할 텐데, 괘씸해서라도 조사 질질 끌 수도 있잖아. 이런 건 빨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쟤가 오래 붙잡혀 있겠어?”
최종현이 한심하다는 듯이 조봉준을 바라보았다.
“왜? 민재가 말빨로 형사 쌈싸 먹을 수 있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쟤네 할아버지 전 대통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