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76)
너희들은 변호됐다-276화(276/641)
“차 번호를 알아낸 건 좋지만, 대포차일 확률이 높아.”
“그럴 거예요.”
이미 수십 번 돌려 본 CCTV를 여러 번 더 돌려 보며, 강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긴 아쉽지. 일단 확인한 것들 태식이한테 보내서 한번 찾아보라고 해야겠네.”
“태식 씨가 찾을 수 있을까요? 너무 정보가 없잖아요.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태식이 사람을 찾을 때 어떻게 찾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여태 일을 맡겼을 때 그는 얼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해 왔었다.
“경찰에 아는 분 없으세요?”
태식에게 CCTV 영상이 담긴 메일을 전송하면서, 강민재가 물었다.
알고 지내는 경찰은 있지만, 이런 걸 부탁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내 상황이 이런데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고.
“종현이 형님도 딱히 방법을 못 찾으시던데. 만일 이런 거 부탁할 사람 있었으면 진작 말씀하셨을 텐데.”
“CCTV 확인을 할 수 있어야 해. 번호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번호판 확인은 안 할 수가 없어서 하겠지만, 대포차일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인 상황이다.
지금 그 가스 검침원을 찾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차량을 조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 도로 CCTV를 확인해서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멈췄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찾든, 본거지를 알아내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저도 검사 시절이 짧아서 아는 경찰이 별로 없어요. 하, 어떡하지.”
강민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검침원으로 분장하여 수상하게 내 집에 침입했다는 것까지는 증명할 수 있다.
아니, 경찰이 나에게 호의적이기만 했어도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그 집에 들어온 다음 압수수색이 시작되었으므로 증거들을 갖다 놓으러 갔을 가능성을 알아서 생각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사는 어땠어?”
내 물음에, 강민재가 표정을 굳혔다.
계속 혼자 조사받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꼈던 것을 알고있기에, 그리 진지하게 묻진 않았는데.
“경찰 태도 말이야.”
“경찰은 변호사님을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네. 그리고……. 어쩌면 제가 그 생각에 불을 지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나중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알아내야 하는 것도 있었고, 그러니까…….”
“강 변. 탓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횡설수설하지 마.”
“…….”
“탓할 생각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난 강 변이 어떤 판단을 내렸든 그게 맞았을 거라고 생각해.”
진심이었다.
그에게도 나와 같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 봐 주기를 바랐을 정도로.
“그러니까 자세히 말해 봐.”
내 채근에, 강민재는 결국 자신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 * *
“계속 함께 있진 않았습니다.”
강민재는 형사에게 눈을 맞추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속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린 이상, 그리고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최선이었다.
‘같이 있진 않았는데 그게 뭐?’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그는 최선을 다해 표정을 관리했다.
“같이 있지 않았다고요?”
“네. 들어가서 함께 이정찬 전 대표를 찾다 보니, 저수지가 너무 넓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더군요. 그래서 피의자와 흩어져서 찾기로 했습니다. 저수지가 원형이었기 때문에,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져서요.”
“그렇게 흩어져 있던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20분 남짓입니다.”
사실은 20분보다는 더 길었을 것이다.
대략적으로 잡아도 45분은 웃돈다.
하지만 45분이라고 하면, 차주한이 이정찬과 만나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생각되기 쉽다.
20분은 그러기에는 너무 짧지 않은가.
“20분 남짓이라…….”
형사는 강민재의 말을 기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냥 같이 있었다고 말할까 생각했다.
강민재와 떨어진 시간이 있으면 경찰은 당연히 그사이에 살인이 벌어졌을 거라고 여길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혹시라도 나중에 진짜 목격자나 증거들이 나타날 경우에 문제가 된다.
그러면 함께 있었다는 강민재의 진술과 앞뒤가 맞지 않아, 어쩌면 증거를 포기하거나 강민재의 진술이 그릇되었음을 인정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또한,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저3의 증거와 증인은 차치하더라도, 최악의 경우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강민재까지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물론 누군가가 꾸민 일이긴 하지만, 차주한의 집에서는 살해 도구까지 나온 마당이 아닌가.
용의자로 특정돼도 모자람이 없는 증거다.
운이 좋아 공범까진 가지 않더라도, 그 장소에 함께 있었을 강민재는 최소한 방조죄는 적용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강관웅의 사저에서 나갈 수 없는 차주한은 팔다리가 잘리는 셈이 된다.
“자, 이건 저수지 지도입니다. 이쪽이 강민재 씨가 피의자와 함께 커피를 구입했다는 매점이 있는 쪽 입구죠?”
“맞습니다.”
“동선을 한번 그려 보시겠어요?”
형사가 건넨 삼색 볼펜을 든 강민재는, 검은색 볼펜으로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선을 그렸다.
자신이 지금부터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다.
아직 형사가 자신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차주한이 이정찬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물론 만들어진 목격자지만, 어쨌든 목격한 장소가 어디인지 특정해 주었을 터.
오 사무장의 조사를 돕기 위해서는 그 증인이라는 사람이 어디서 살인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이쯤부터는 확실히 어두워졌어.’
강민재는 볼펜을 그으며 지도를 확인했다.
저수지 쪽으로 마치 반도처럼 튀어나온 지형이 있던 부분.
거기에 마치 등대처럼 발광력이 좋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너머로는 풀숲이 우거져 있어서 인적이 드물어졌다.
당연히, 그 조명을 지나쳐 갔을 땐 컴컴해서 보이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어두운데 길까지 좁아졌다는 인상을 받으며 지나치지 않았던가.
강민재는 우신이 대놓고 짠 판이니, 그날 저수지에서 ‘목격자’라는 사람이 차주한과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을 거라고 먼저 가정했다.
그렇다면 목격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이 많았던 곳에서 목격했다고 하진 않았을 테고.
아마 이 부근 너머에서 차주한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강민재와 차주한이 갈라진 것은 여기서 조금 더 넘어가서, 5분 정도 걸은 다음이다.
차주한은 이쪽 길로 계속 갔고, 강민재는 그 반대편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반대 방향을 살폈다.
‘그쪽으론 변호사님이 아니라 내가 갔다고 거짓말을 해 보면 어떨까.’
문득 든 생각이 있었지만, 강민재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라도 우신 측에서 산 배우가 아닌, 진짜 목격자가 나타났을 때 자신과 말이 맞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자신은 이곳에 와서 증인 선서를 하고 진술한 것이 아니기에 위증죄가 성립되지도 않고, 그냥 헷갈려서 말을 잘못한 것 같다고 둘러대도 된다.
하지만 그러면 자신이 이곳에 와서했던 모든 발언에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그건 좀 곤란하겠고.
“왜 그러세요?”
지도에 볼펜을 긋다 말고 망설이는 강민재를 향해, 형사가 물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볼펜 색을 바꾸며 대답했다.
“지도상이라 살짝 헷갈려서요.”
“아, 이렇게 돌려서 볼까요?”
형사는 아무 의심 없이 지도 방향을 돌려 주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파란 볼펜으로 선을 이어 긋기 시작했다.
“피의자는 이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강민재는 검은 볼펜 자국 위에 붉은 선을 덧그리며, 입구를 지나쳐 반대 방향을 향해 쭉 긋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가 이쪽으로 갔고요.”
“그랬군요. 반대 방향으로 가셨다면, 사건 발생 지점까지는 동행하지 않으셨네요. 그렇다면 피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장면을 직접 보진 못하셨을 테니, 저수지까지 동행했다고 하더라도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셨을 것도 이해됩니다.”
“흐음, 사실 제가 반대 방향으로 나오면서 계속 저수지 너머로 피의자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조명도 있고 해서, 인영이 보였거든요.”
“그래요?”
형사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 지점이 보였다고요?”
그는 강민재가 향한 지점과, 차주한이 향한 지점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물었다.
강민재가 차주한을 옹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뇨. 그쯤까지 가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물가를 따라 걸었으니, 이쪽에 설치된 조명빛이 닿는 곳까지는 계속 보였어요. 그쪽 조명은 발광력이 좋았거든요. 일부러 낚시꾼들을 위해서 설치해 둔 것 같았습니다.”
강민재는 두 사람이 흩어진 장소에 놓여 있던 조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군요. 여기 빛이 밝았다고 하셨는데, 어디까지 보였습니까?”
“이쯤까지 보였던 것 같습니다.”
강민재는 일부러 조명이 닿지 않았던 지점을 가리켰다.
목격자가 범행 장소로 주장할 수 있는 장소보다 더 지나친 지점이었다.
“강민재 씨. 거짓말하시면 안 됩니다.”
“거짓말이라니요?”
“범행 장소는 이곳이고, 목격자가 이미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고 말했어요. 경찰이 가서 직접 검증했고요. 저희는 무조건적으로 차주한 씨가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여태까지 가리킨 모든 지표가 피의자를 가리키고 있는 상황이라 우선은 포커스를 맞춘 거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서로 크로스 체크 하려는 거예요. 그렇게 거짓말로 감싼다고 좋아질 거 하나도 없어요.”
형사가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강민재를 나무랐다.
무조건 차주한이 용의자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코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경찰 입장에선 너무 자연스럽게 증거들이 딱딱 맞게 준비되어 있으니 차주한일 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목격자와 말이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말을 거짓말로 치부하는 건 옳은 태도란 말인가?
아, 그렇다고 거짓말을 안 했다는건 아니다.
“거짓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지도를 보면서 움직인 게 아니기 때문에 그쯤이라고 예상하고 말씀드린 거죠.”
“뭐, 이해합니다. 게다가 강민재 씨 입장에서 차주한 씨는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인데다 현장에 같이 있기까지 했는데, 아닐 거라고 믿고 싶으시겠죠.”
형사는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허허 웃으며 지도를 다시 홀더 안으로 집어 넣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20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피의자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달라진 점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먼저 이정찬 전 대표를 보았냐고 물었고, 제가 아니라고 하자 본인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정찬이 저수지에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바로 함께 서울로 돌아온겁니까?”
“그렇습니다. 저수지에서 30분가량 함께 찾다가, 따로 찾은 시간 20분정도 하면 대략 1시간 정도 머물렀다고 봐야겠네요. 그러고 12시쯤 화군 저수지에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평소 피해자와 피의자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강민재 씨 말에 의하면, 범행 시간은 최대한 길게 잡아도 20분 남짓입니다. 20분 동안 피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강민재는 형사의 질문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차주한이 이정찬을 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 겨우 20분뿐이었다는 것을 경찰은 일단 사실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증거가 나오면 금방 폐기될 수도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살해한다면 이정찬 전 대표가 피의자를 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왜입니까?”
“이정찬 전 대표는 본인이 정치 권력을 잃게 된 과정에 피의자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이세형 씨 건도 그렇고, 명화제약 건도 그렇고. 실제로 피의자가 명화제약 건에서 촉탁 수사관으로서 검찰과 함께 수사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렇다면, 실제로는 피의자가 피해자가 저지른 부정을 세상에 드러낸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당사자가 맞다.
하지만 그게 맞다고 하면, 차주한이 평소 이정찬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모든 것을 폭로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죽이기까지 했다고 말이다.
“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폭로했던 사람은 당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던 분이었거든요.”
“흐음, 일단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고, 협조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조사는 끝이 났다.
자신이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성공했다.
차주한이 처음 말했던, 강민재가 조사를 받으러 가는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던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인, ‘범행 장소’를 정확히 식별한 것.
그리고 범행 시간을 20분 이내로 확 단축시켜 수사에 혼선을 준 것.
‘뭐라도 도움이 됐어야 했을 텐데…….’
내가 나름대로 꾀를 낸 것 때문에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면 어떡하지.
강민재는 차에 올라 핸들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크게 울리는 클랙슨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긋 쳐다보았지만, 그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