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77)
너희들은 변호됐다-277화(277/641)
“제가 변호사님하고 계속 같이 있었다고 했어야 했던 건지,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았을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변호사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하, 일단은 그냥 같이 있었다고 거짓말하고 후에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 잘못 기억했던 거라고 우겼어야 했던 걸까요?”
이야기를 마친 강민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외쳤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강민재는 답답하기까지 한 모양인지 내 코앞으로 의자를 당겨와서 소리쳤다.
“네? 네?! 빨리 대답 좀 해 주세요 제가 맞게 한 거예요? 아니면 바보같이 한 거예요? 네?”
“잘했어.”
“아, 역시 제가 실수…… 네?”
“잘했다니까?”
좋은 대답을 해 줬는데도, 강민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못했다고 하면 시무룩해서 하루 종일 어깨 축 처진 채로 다닐 거면서.
“진심이세요?”
“그래. 범행 가능한 시간을 20분으로 축소시킨 것도 어느 정도 수사에 교란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강 변도 의심받지 않는 선에서 잘 말했어. 만일 계속 같이 있었다고 하면 강 변이 공범으로 몰리는 건 둘째치고, 그쪽은 증인 말을 더 믿는 상황일 테니까 강 변이 했던 모든 말을 거짓말로 치부했겠지.”
“……하, 다행이다.”
강민재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자신감을 좀 가질 때가 되지않았어? 언제까지 그렇게 나한테 하나하나 허락 받으면서 할 거야? 강 변이 지금 어쏘야?”
“…… 저는 확신이 없으니까 그렇죠.”
“나도 확신 없어. 그냥 맞는 것 같은 걸로 하는 거지.”
“변호사님이 맞는 것 ‘같은’ 걸로 하신다고요? 맞다는 확신 없이?”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다 싶은 걸로 하는 거지.”
“저는 뭐가 최선인지 모르겠는데요?”
“현장 경험이 부족한가 보다. 내가 강 변을 너무 싸고돌았나 본데.”
“……변호사님이 저를 싸고돈 기억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새 사건을 하게 되면, 강민재에게 웬만한건 다 맡겨놓고 지켜보는 게 좋겠다.
뭐, 내가 쉬고 싶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말한 범행 장소가 어디야?”
강민재는 내 말에 노트북 화면에 화군 저수지 지도를 띄웠다.
그리고 그중 한 지점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여기예요.”
“확실히 내가 혼자 갔던 부분이네.”
“네.”
나 역시 지도를 확인하며 저수지를 헤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 시기에 로드뷰 서비스가 있었던가?
있었어도,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대되기 전이었던 것 같긴 한데.
지도에 뜬 아이콘을 살펴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저수지 내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저수지 바깥 큰길까지만 보였을 뿐.
“여긴 직접 가 봐야 알겠네.”
“네. 안 그래도 태식 씨한테 어디인지 말해 주긴 했는데, 사건 현장표시가 되게 광범위하게 있었대요. 이쯤부터 이쯤까진 다 테이프 쳐 놨다고.”
강민재가 지도 위에 표시하며 말했다.
확실히 사건 현장치고는 너무 넓다.
물가이기도 하고, 낚시꾼들이 오가는 곳이라 일부러 진입하지 못하게 하려고 넓게 설정해 놓은 것 같긴 하다.
낚시꾼들은 고기만 잘 잡히면 진입하기 어려운 곳이라도 어떻게든 들어가서 자리 잡으니까.
“저 지점이면 내가 강 변하고 흩어진 다음 한 15분 정도 흘렀을 때 같은데. 거리상으로만 보면.”
“네. 그러니까 웃긴 거예요. 어떻게 30분 동안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싸움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물에다가 던져 놓고, 주변 정리 다하고 입구까지 올 수가 있냐고요.”
아무리 이정찬이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체격이 작지만은 않다.
나 혼자서 그 모든 것을 30분 내에 처리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함이 많다.
아마 국과수에서도 30분 내에 그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거라고 거라고 의견을 낼 것이다.
그러니, 경찰 역시 그곳에서 우발적으로 싸움이 일어났다고 보기보다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죽일 생각으로 만난 증거를 잡으려고 할 터.
내가 이정찬을 죽인 시점에선 당연한 질문이긴 하지만, 강민재에게 내가 이정찬과 어떤 관계였는지 물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변호사 님 말씀대로 CCTV 확인할 방법이 있는지는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이예진 선배한테 부탁해 볼까…….”
강민재가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말끝을 흐렸을 무렵, 내가 입을 열었다.
“이왕 신세 지는 거라면 부탁할 사람이 없진 않아.”
나는 강민재의 휴대폰을 건네받고, 그 안에서 박영기의 전화번호를 화면에 띄웠다.
처음부터 떠올랐던 얼굴이긴 하지만, 가뜩이나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 CCTV까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은 할 수 없었다.
만일 그가 CCTV 조회를 하려 든다면, 본인이 직접 할 수는 없고 누군가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하지만 CCTV 조회를 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박영기가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도 미지수였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훗날 어떻게 꼬리가 밟힐지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박영기도 곤란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쉽사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가뜩이나 지금 어딘가에서는 나에게 미리 피의자로 몰렸다는 정보를 흘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 박 차장님! 박 차장님이라면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도와주실 것 같아서 문제야.”
나는 짧게 대답하며 박영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오래 가지 않아, 그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어, 강 변. 어쩐 일이야.
박영기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차장님, 저 차주한입니다.”
-아, 차 변. 오늘 강 변이 조사받으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잘 받았는지 안 그래도 궁금했어.
“잘 받고 온 것 같습니다.”
-그래? 차 변이 그렇게 말 할 정도면 안심해도 되겠구만.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염치 불고하고,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그에게 최종현과 조봉준, 그리고 강민재가 찾아낸 ‘검침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할 정보였기 때문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말이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언제나 부탁을 받는 입장이었고, 내가 부탁을 해야 할 때는 거래로 그것을 대체하는 편이었다.
이세화에게 한영그룹 관계자를 소개받는 대신, 그녀의 선거 캠프에 들어가 주기로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마저도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 부탁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박영기의 경우, 내가 지금 당장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기 위해서는 내가 다시 기사회생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 않은가.
지금 상황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은…….
글쎄, 돈뿐이려나.
하지만 박영기가 돈으로 움직여지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진 정도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차 변 말대로 그 차는 대포차일 것 같고. 그 검침원을 찾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것 같은데. 찾으려면 CCTV로 추적해 보는 수밖에 없겠구만.
박영기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정답을 말했다.
-흐음, 내가 확인해 주면 되겠나? 그럼 그 검침원, 찾을 수 있겠어?
그리고 내가 부탁하기도 전에, 또다시 정답을 말했다.
“차장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쉬이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하하, 차 변. 사람이 살면서 아쉬운 소리도 하면서 살아야지.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어. 억만금을 가진 사람이든, 불세출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 아쉬운 소리는 반드시 하게 되어 있다고. 오히려 차 변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기회가 너무 늦게 찾아온 거라곤 생각 안 해?
박영기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 지금은 차 변이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라고.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정 미안하면 나중에 몇 배로 이자 쳐서 갚으면 되니까.
“차장님께서 그런 CCTV 조회를 하셨다는 게 후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지실 것 같아서요. 지금이 사건이,”
-그건 걱정하지 마. 지금 정창윤이가 뺑소니 사건 맡고 있는 게 있어. 그거 CCTV 조회할 때 살짝 끼워서 같이 조회해 달라고 하면 되니까. 기억하지, 정 프로?
“물론입니다.”
-CCTV 자료 받는 대로 연락할 테니까, 일단 다른 쪽으로도 조사 진행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차장님.”
감사 표현을 할 때라는 생각에 다급히 고맙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내가 어떤 말투로, 어떤 톤으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평생 해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차 변.
“네.”
-혹시 자존심이 상하나?
박영기가 물었다.
차갑거나 비웃는 듯한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그럴 수도 있어. 내가 차 변을 그렇게 오래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 밑에 있을 때 모습은 기억하니까. 차 변은 아쉬울 게 없었잖아. 그래서 언제나 고개 뻣뻣하게 세우고 다녔고.
“그랬습니까.”
-그런 점을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지만, 난 싫지 않았어. 자기가 본인 몫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부탁하고 아쉬운 소리 할 일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
-하지만 아까 내가 말했듯, 영원히 그럴 순 없어. 그리고 나는 차변도 언젠가 그런 걸 배워야 하는 날이 오길 바랐지.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네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박영기는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점들에 대하여 많은 사유를 했던 듯,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하필이면 자네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 나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전화위복으로 삼을 만한 것들을 생각해야 해. 내가 생각하기엔 그중 하나가, 자네가 깨달음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는 거야. 자네는 지금까지 혼자만의 힘으로도 잘해 왔지만, 이제는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서, 도움받으면서 함께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깨달음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참 다행이지 않나? 이럴 때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그런데 자네는 여태 주변 사람들에게 잘했나 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 보면.
강민재와 오 사무장이 당연하다는 듯 나를 돕겠다고 했던 것처럼, 나에게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음에도 나를 걱정해서 내 집에 찾아왔던 조봉준과 최종현처럼, 그리고 당연하게 내 짓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나를 걱정했던 태식처럼 말인가.
나는 박영기와 통화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한 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왜요, 차장님이 안 된대요?”
강민재는 목소리 죽여 나에게 걱정스럽게 물었고, 나는 전화를 끊으며 대답했다.
“차장님이 확인해 주신대.”
“와, 다행이다. 진짜 감사하네요. 진짜 너무 감사하다. 제가 차장님 댁에 가서 큰절이라도 몇 번 올리고 올까요?”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왜 절을 몇 번이나 해?”
“그건 그렇네요. 그럼 한 번만 할게요. 헤헤.”
절을 하면 내가 해야지, 왜 네가 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민재의 신난 표정을 보니 그렇게 초를 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