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80)
너희들은 변호됐다-280화(280/641)
“상길 씨가 큰일 했네요.”
아침부터 태식이 가져온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살인이 일어나던 그날,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을 찾았다는 것도 충분한데 그 이상의 결과를 가지고 왔다.
살인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되는 그 시간, 그곳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녔다니.
세 명이라고 했으니 나와 강민재를 보고 그런 말은 한 것은 아니겠고.
그렇다면 이정찬을 죽인 당사자인가.
“그 사람이 본 게 이정찬을 죽인 놈들일까요?”
강민재 역시 골몰히 생각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입을 뗐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 거야.”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하세요? 우신 밑에서 더러운 짓 하는 놈들일 것 같은데. 이정찬이 죽은 시간에 그러고 있을 만한 놈들이 그 인간들 밖에 더 있어요?”
“우신 밑에서 더러운 짓 하는 놈들인 건 맞겠지. 하지만 이정찬을 직접 죽인 범인은 아닐 거란 소리야.”
“왜요?”
“현장에서 멀지도 않은 곳에 낚시꾼들이 있었다잖아. 범인이라면 이목 끌어서 좋을 게 없는데, 거기에 양복을 입고 무리 지어 다녔겠어? 분명히 거기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 등산복 같은 걸 입고 갔겠지. 그 정도 머리도 안 돌아가는 놈들을 고상준이 쓸 리가 없어.”
나는 이전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실종 사건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개 우신의 비리를 폭로하려던 사람이거나, 최종현처럼 우신의 구린내 나는 속사정을 파헤치던 사람들이었다.
정황상 우신의 짓이 분명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나오지 않아 결국은 미제로 끝난 적이 많았다.
우신의 짓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은 전부 내 앞으로 당겨 직접 관리했지만, 그럼에도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귀신같이 일 처리를 하는 놈들이다.
많은 기술이 발달한 2018년에 비해 지금은 치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11년이면 고작 7년 전이다.
그 정도의 치밀함이 갖춰지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럼 그 양복쟁이들은 누군데요?”
“글쎄, 굳이 생각해 본다면 이정찬이 제대로 죽은 게 맞는지, 일 처리는 잘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고상준이 직접 보낸 수족들일지도 모르지.”
“그럼 살인범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직도 파악이 안 됐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아, 그건 좀 슬픈데.”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거시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우신은 분명 신원 상 우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선정하여 이정찬을 죽이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 내가 누명을 벗는다고 해도, 그 범인이 우신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은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고상준의 수족이라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생기지 않겠는가.
강민재에게 들으니, 경찰은 이정찬이 나와 주고받은 문자 내역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정찬이 ‘우신에 대해 고발할 자료를 넘기겠다’고 언급한 내용도 분명히 봤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이정찬이 죽은 그날 우신 관계자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우신을 걸고넘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경찰은 문자 내역을 분명히 봤었지.”
“네, 그랬죠.”
“이정찬이 나한테 우신에 대해 고발할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문자 보낸 것도 봤을 텐데. 그럼 경찰 내부에, 진범은 내가 아니라 우신일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음모론에서나 언급할 법한 사안들을 믿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오인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정찬을 죽인 것이 우신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음모론에서나 말할 법한 일이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바로는 언제나 어떠한 파장이 큰 현상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음모론이 따라붙었다.
대개는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라고 평가받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그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다른 현상이 발생하면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사실은 진짜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일이 많다.
그래서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깨달음을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빨리 얻는다.
어떠한 사건의 전모가 너무나도 허무맹랑하고 충격적이라, 사회적 파장을 염려해서 다르게 공개하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수사기관에 속한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일단은 염두에 둔다.
우습게도, 그게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이와 비슷하게, 이정찬의 문자 내용을 확인한 경찰 쪽에서도 우신의 짓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원칙적으로 안 되는 일이지만, 유명인에 대한 사건 기록이 한번 작성되면 경찰들 사이에서는 다른 서, 다른 파출소 사람들까지 전부 알게 될 정도로 소문이 돌기 때문이다.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종현 형님한테 친한 경찰 있으면 한번 떠보라고 얘기해 볼게요.”
“지금 문제는 우리가 경찰에 인맥이 부족하다는 거야. 검찰에는 박 차장님이 계시고, 정계에는 어르신이 계시고, 언론 쪽에는 최종현 기자와 윤세연 기자가 있는데. 경찰에만 없어.”
“그리고 지금 이 사건은 아직 검찰에 송치되기 전이라, 수사권이 경찰에 있죠.”
“맞아.”
만일 경찰 쪽에서 믿을 만한 조력자를 찾을 수 있다면, 보다 더 조사가 쉬워질 것이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와 함께 강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재가 문을 열자, 강 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박영기 차장님한테서 퀵이 왔습니다.”
강 실장이 손바닥만 한 상자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퀵이요?”
“네. 정확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보시면 아실 거라고.”
강 실장이 방을 나선 뒤, 나는 상자를 뜯어 보았다.
그 안에는 에어캡으로 싸인 외장하드가 들어 있었다.
“어, 설마 CCTV 아니에요?”
강민재가 반색하며 에어캡을 벗기고 외장하드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리고 과연, 그 안에는 시간 별로 정리된 수십 개의 도로 CCTV 영상이 들어 있었다.
검침원의 뒤를 쫓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인 것이다.
* * *
영상을 하나씩 확인한 지 한참이 흘렀다.
강민재와 나는 각자 노트북을 하나씩 붙들고 반씩 나눠 보고 있었는데, 문득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알 빠질 것 같아요.”
도로 CCTV 분석은 검찰청을 나온 이후 처음 하는 작업이었다.
심지어는 검찰에 있을 때도 우리가 분석해야 하는 일은 잘 없었다.
보통 도로 CCTV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분석하고, 범인을 찾는 것은 검찰이 아닌 경찰의 일이기 때문이다.
설령 검찰에 넘어 온 다음 이런 CCTV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검사가 직접 분석하는 일이 별로 없다.
수사관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거 사무장님이 엄청 잘하실 텐데. 괜히 우리가 한다고 나댔네요.”
그리고 검사 출신 변호사인 나와 강민재는, 눈에 핏대가 선 채로 한참 동안 CCTV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하우가 없으니 기계적으로 다음 영상, 다음 영상을 클릭하기도 수십 번.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요긴하게 쓰일 정보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집중을 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새끼 진짜 소름 돋는 놈이네요.”
“왜?”
“그 오피스텔에서 나오자마자 진짜로 한성 에너지 서초 센터에 멈췄어요.”
처음 그 남자가 내 집에 흉기를 가져다 놓은 후 진짜 검침원인 척하기 위해 20층에서부터 한 층, 한 층 내려오며 몇 시간을 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충분히 치밀하다.
앞서 저수지에 나타났던 그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범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치밀함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검침원으로 변장한 자신을 수상하게 여겼을 때를 대비해서, 임무가 끝난 시점에도 끝까지 검침원 행세를 한 것이다.
“그게 몇 시야?”
“7시 32분이요. 그리고 이게 마지막 영상인데요?”
“왜 여기서 끊기지. 이 차가 다시 나온 다음 어디로 가는지 봐야 하는데.”
“그러게요? 파일이 다 안 옮겨진 건가?”
강민재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차장님한테 말씀드릴까요? ……그러면 너무 염치없는 거예요?”
“이왕 염치없어진 거 끝까지 염치없어도 돼. 내가 걸게.”
박영기가 직접 그러지 않았는가.
혼자서 본인 몫을 온전히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도움받지 않아도 되지만, 보통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도움받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CCTV를 확인할 능력이 없으니,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말한 것은 박영기 본인이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더라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 강 변. 퀵은 잘 받았어? 혹시라도 기록 남을까 봐 퀵으로 보냈는데.
“차장님, 차주한입니다.”
-아, 그래, 그래. 그렇지. 강 변 전화라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보자마자 바로 영상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감사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그래. 도움은 됐나? 단서는 찾았어?
“아뇨, 이렇게 도와주셨는데 죄송하게도 단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래서 죄송한 김에 한 번 더 죄송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CCTV 영상이 2974 번호판을 단 흰색 다마스가 한성 에너지 센터로 들어가면서 끝납니다. 그 이후의 거취가 필요한데, 그 정보가 없어서요. 2974가 한성 에너지 센터에서 나오는 게 찍힌 영상으로 한 번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박영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껏 진지하게 말했는데, 왜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잠자코 그가 웃음을 멈추기를 기다렸다.
-도움받으라고 했다고 알차게도 써먹는구만. 그건 안 그래도 정 프로가 얘기했는데, 그 이후로 2974가 거기서 나오는 게 안 찍혔다고 하더라고.
“……안 찍혔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도 거기에 그 차가 주차되어 있다는 뜻이겠지. 그 이후로도 계속 한성 에너지 스티커 붙은 2974 흰색 다마스가 나오는지 확인했는데 없었다고 하니까.
“그게 며칠 전의 일인데, 그 차 안에서 사람이 며칠 내내 있었을 리도 없잖습니까. 거기서 나온 사람이라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확보한 엘리베이터 CCTV 영상에 체형하고 얼굴 일부가 찍힌 게 있어서, 비교해 보면 될 것 같은데요.”
-흠, 그래? 정 프로 수사관이 돌려 보면서 체크했다고 하니까, 영상 아직 폐기 안 했는지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 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시간 뒤, 박영기에게서 두 번째 퀵이 도착했다.
“진짜 눈알 빠질 것 같네요.”
1, 2분짜리 영상이 수십 개 있었던 지난 영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3시간씩 잘린 2개의 동영상이 도착했다.
빠르게 돌리며 안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멈춰서 ‘검침원’과 인상착의를 대조하는 작업을 먼저 했는데, 그 안에서 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 새끼 어디로 날랐지?”
잠자코 영상을 확인하던 강민재는 이제 답답함을 느꼈는지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사람 열받게 하네요. 대체 어디간 거죠? 어, 잠깐. 하얀 다마스 나온다.”
영상을 확인하다 잠시 멈춘 강민재는, 차 번호판을 확인하더니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에이, 뭐야. 2974 아니에요.”
흰색 다마스는 워낙 흔하기도 했고, 설상가상으로 한성 에너지에서 단체로 맞추기라도 했는지 CCTV에 찍힌 흰색 다마스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그 뒤로도 흰색 다마스가 나올 때마다 영상을 멈추고 확인해 보았지만, 그 중 2974는 없었다.
“아니, 2974는 아직도 거기 주차중이라고 치고. 그럼 그 검침원이라도 나와야 할 거 아니에요. 대체 주차해 놓고 어딜 갔냐고. 어, 하얀 다마스! ……아, 이것도 2974 아니다.”
“잠깐만. 다시 뒤로 가 봐.”
“언제로요?”
“10초 전으로.”
강민재는 지루한 얼굴로 재생바를 뒤로 당겼다.
여태까지 봐 왔던 것과 동일하게, 흰색 다마스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당연히, 번호판은 2974가 아니었다.
“여기서 정지.”
“왜요? 뭐 이상한 거 있어요?”
빠르게 일시 정지를 누른 강민재가 물었다.
“여기 창문에 글자. 한성 에너지 아니잖아.”
“……어? 진짜네. 여태까지 나온 흰색 다마스는 다 한성 에너지라고 붙어 있었는데.”
“한림 상사라고 적혀 있어.”
“한림 상사? 흠, 한성 에너지 거래처인가? 아니면 자회사? 둘 다 ‘한’자 돌림이긴 한데.”
“번호판은 7519네.”
“그럼 검침원 차는 아닌 거잖아요.”
“그렇게 단정 지을 건 아니지.”
“……그럼요?”
“검침원이 한성 에너지 주차장에 차 댄 다음에 스티커 한림 상사로 갈고, 번호판도 갈았을 수도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