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81)
너희들은 변호됐다-281화(281/641)
“흐음……. 그렇게 따지면 여태까지 지나갔던 하얀 다마스들 전부 다 검침원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근데 이쪽 봐. 뒤에 후미등이 깨져 있잖아.”
내가 한림 상사 스티커가 붙은 다마스를 콕 집어 말한 까닭은 후미등이었다.
차의 앞뒤가 찍힌 도로 CCTV만 몇 시간 째 보고 있다 보니, 눈을 감아도 차의 모습을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처음 봤을 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인데, 한림 상사 스티커가 붙은 차를 봤을 때 기시감이 들어 생각해 보니 후미등이 나간 것이 똑같았다.
하지만 스티커도 그렇고, 번호판이 달라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저 차가 주차장에 머문 시간이 짧지 않은데, 스티커와 번호판을 바꿀 시간 정도는 충분히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렇네요. 후미등 깨진 부분이 똑같아요.”
강민재는 도로 CCTV를 켜서, 우리가 쫓던 2974의 뒷모습을 화면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화면에 두 영상을 함께 띄우고 비교해 보니, 확실히 같은 차가 맞는 듯했다.
뒤 범퍼 주변에 긁힌 자국도 그렇고.
“치밀한 새끼네, 치밀한 새끼야. 보통 그렇게 검침원인 척 오피스텔에서 계속 버렸으면 안심할 법도 하지 않나요? 근데 번호판에 스티커까지 바꾸고 다른 차인 척을……. 진짜 소름 돋는 새끼네요.”
강민재가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혐오스러울 만큼 치밀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치밀함을 뚫고 어떻게든 찾아내지 않았는가.
번호판을 교체한 이후에도 치밀하게 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방심했을 공산이 크다.
오히려 잘됐다.
“일단 차장님께 연락해서 저 번호판 추적해서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아, 네. 그럼 제가 지금 전화 걸겠습니다.”
“아니야. 시간이 벌써…… 8시 반이네. 어차피 지금 말씀드려도 CCTV를 새로 조회해야 하는 거라 바로 되진 않을 거야. 내일 아침에 말씀드리자고.”
“알겠습니다. 저녁 식사하셔야죠?”
“그래.”
“그럼 저 일단 여사님께 말씀드리고 좀 씻고 올게요. 하루 종일 모니터 보고 있었더니 눈 빠질 것 같아서.”
강민재가 방을 빠져나간 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전 삶에서 나를 죽였던 놈들 역시, 이런 식으로 서류상으로는 우신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면, 유령 하청 업체라고 해야 할까.
나를 드럼통에 가둔 뒤, 배 위에서 말을 붙였던 사람은 한 사람이었지만 분명히 그 주위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살던 오피스텔 앞에서 나를 불러낸 뒤 기절시켜 데려간 놈들, 나를 드럼통에 넣고 시멘트를 붓던 놈들까지.
최소한으로 잡아도 5명은 넘는다.
이번에 이정찬을 죽인 일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한 명이 벌인 짓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단서를 찾은 검침원, 이정찬을 죽인 놈, 모두가 전부 다른 사람들일 게 분명하다.
그러니 만일 이번에 검침원을 찾아내서, 내 집에 흉기를 놓고 나왔다는 실토를 받아 낸다고 쳐도 이정찬을 죽인 사람은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너무나도 긴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로해졌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박영기는 우리에게 한림 상사 스티커를 붙인 채달리는 7519의 도로 CCTV를 보내주었다.
이번에는 우리끼리 확인하다가는 또 하루를 다 까먹을 것 같아서, 특별히 전문가 오 사무장을 강민재의 집으로 불렀다.
그는 역시 다수의 경험이 만들어낸 전문가가 분명했다.
여러 가지 기능을 활용하여 한 시간 정도 훑어보는가 싶더니, 금세 결론을 지었다.
“여기네요. 한림 상사.”
검침원이 멈춘 곳은 명진구에 위치한 낡은 빌라 건물 1층에 위치한 한림 상사.
저곳조차 위장인지, 아니면 그들의 본거지를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림 상사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곳들 중, CCTV에 나온 장소와 일치하는 검색 결과를 기반으로 찾아보았지만 한림 상사는 이렇다 할 활동 내역이 없었다.
검색하면 뭐라도 나온다는 해외 포털 사이트에 넣어 봤을 때도, 결과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수기로 거래하는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 거래 장부 엑셀이라도 나오기 마련인데 말이다.
확실한 것은, 한림 상사가 한성 에너지의 자회사나 거래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성 에너지에 직접 연락해서 사칭범 때문에 피해를 입은 척하며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확실하다.
아마도 놈들이 위장 활동하기 위해 만들어 낸 회사가 아닐까 싶다.
“집에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냥 저희가 가서 한 번 보는 게 낫겠는데요.”
상황을 지켜보던 오 사무장이 입을 열었다.
“저랑 강 변호사님 둘이 가기에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태식이네 식구들 몇 붙여 주시면 다녀오겠습니다.”
“거기서 검침원이 있는 걸 확인하면, 그다음엔 어떡해요?”
“검찰에선 보통 바로 구속하죠. 그러고 데려다 앉혀놓고 사실대로 불 때까지 조사하고요.”
검찰에 잠시 몸만 담갔다 뺀 수준인 나와 강민재와는 달리, 검찰에서 거의 평생을 지냈던 오 사무장은 아직도 애티튜드가 배어 있었다.
여태까지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만 하던 그가 모처럼 야성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저희는 공권력이 없잖아요.”
하지만 강민재가 바로 초를 쳤다.
그 말에, 오 사무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 저희는 구속력이 없으니까, 그 검침원이 사실대로 불 때까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물어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죠.”
오 사무장의 목소리에는 그 잠깐 사이에 힘이 다 빠져 있었다.
“공권력이 없다고 구속할 수 없는 건 아니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물론 우리가 국가 기관에 구속할 순 없지만, 데리고 있을 순 있지 않습니까? 그건 장소와 인력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당장 우리에게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할 단서는 그 검침원 하나뿐이다.
물론, 상길이 낚시 동호회에서 만났다는 사람이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사람 외에 다른 목격자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금도 상길이 열심히 그쪽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쓸 만한 정보들을 캐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살인현장을 목격한 사람을 새롭게 찾아내는 것이 아닌 이상, 지금 상길이 접촉했다는 그 사람이 정확한 범인의 신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우리가 그 사람을 활용할 방법은, 우리 쪽에서 후보군을 제시하고 이 사람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것뿐이다.
심지어는 내 예상대로 그 사람이 본 것이 범인이 아니라, 정말로 고상준의 수족인 경우에는 조사가 보다 깊이 진전된 다음에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신의 지령을 받고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움직인 검침원을 찾아낼 단서가 생겼다.
나는 그 검침원이 이 사건을 일으킨 몇 사람, 다시 말해, 소규모 단체의 일원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서 단순한 협박이나 거래, 혹은 설득이라는 온건한 수단으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 상대에게 통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신변을 구속하고 주변을 뒤지는 것.
휴대폰이라도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국가에서 부여한 자격도 없는 우리가 하면 불법이 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하다.
내가 정식으로 수임한 사건이라면 이런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고,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능력도 사용할 수 없지 않은가.
많은 것이 제한된 상황이니 다소 극단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검침원을 막말로 고문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뭐…….
굳이 말하면 압수수색 같은 것을 해보겠다는 것뿐 아닌가.
게다가 그런다고 해서 문제 삼을 만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그건 불법 아닙니까?”
“감수해야지.”
“…….”
내 말에 강민재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변호사인 자신이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는 것이 껄끄러운 것일까.
“저 그런 거 진짜 해 보고 싶었어요. 영화에서만 본 건데!”
하지만 강민재는 언제나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나와 오 사무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그 자식 잡으면 일단 한 대 갈겨도 되나요? 저 진짜 쌓인 거 많은데.”
“그건 안 돼.”
설마 강민재는 내가 그 검침원을 잡아서 고문이라도 하며 사실대로 실토하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넵.”
* * *
이튿날, 명진구에 세 대의 차가 몰려들었다.
오양훈과 강민재가 탄 A팀 차량.
태식과 상길, 그리고 장정 셋 정도가 탄 B팀 차량.
마지막으로 대철과 준범이 탄 C팀 차량.
얼굴이 알려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오양훈과 강민재는 직접 진입하지 않고 예상 도주 경로 앞에 차를 대고 대기하기로 했고, C팀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B팀인 태식과 상길이 직접 한림 상사로 진입하기로 했다.
빠른 상황 보고를 위해 무전기까지 장착한 그들은, 비록 수사기관에 속한 자들은 아니었으나 마음만은 검찰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이렇다.
1. 바로 위층인 2층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할 예정이라 양해를 구하러 왔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2. 그들이 문을 여는 순간, 자연스립게 안으로 돌진해서 검침원을 찾는다.
3. 만일 검침원이 도주할 경우, B팀 인원이 추격하고, 앞뒤로 A팀과 C팀이 각각 길을 막아서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고려할 변수는 하나.
만일 검침원이 한림 상사에 없을 경우다.
하지만 그 부분도 걱정할 것은 없다.
B팀이 오늘 아침에 빌라에 들러 미리 CCTV를 확인해 봤으니까.
사설 CCTV, 특히 빌라에 달린 CCTV는 확인이 어렵지 않다.
인근 빌라 주민인데, 키우던 고양이가 가출해서 찾고 있다고 말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이 근처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 CCTV를 확인하고 싶다고 하면 보통은 바로 보여주니까.
그렇게 그 CCTV를 통해 오늘 검침원이 한림 상사에 들어가는 모습을 캐치했고, 그 이후로 이 앞에서 진을 치고 보고 있는데 아직 검침원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즉, 놈은 독 안에 든 쥐다.
“근데 변호사님이 웬일이래요. 이런 불법적인 일을 다 시키고.”
“그 인간 말은 불법적인 일은 안한다고 하는데, 할 건 다 해. 저번에 그 예수쟁이들 모인 데에 불 지르는 척 쇼한 것도 그렇고, 아! 도청도 했었잖아.”
“아, 그렇네요. 하여간 그 변호사님도 내숭은.”
“그건 그렇고. 창고는 준비됐냐?”
“예, 형님. 저희 사무실 쪽에 있는 오성 조경이 딱입니다. 거기 얼마 전에 사장이 중국으로 도망가서 딱 비어 있거든요. 거의 폐가 수준입니다. 어제 답사도 갔다 왔는데 주변도 조용하고, 뒤쪽으로는 산이고 앞 쪽에는 비닐하우스가 쫙 깔려 있어서 사람도 안 지나다닙니다.”
“사람 하나 담가도 아무도 눈치 못챌 장소 맞아?”
“물론입니다.”
“연장은?”
“연장도 딱 준비해 뒀습니다. 인석동 몽키스패너라고 불렸던 저 최상길의 진면목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빨 하나는 치과 의사보다 잘 뽑잖습니까, 형님. 변호사님을 괴롭힌 괘씸한 놈이니 제가 특별히 임플란트에 천만 원 정도 쓰게 만들까 합니다. 후후.”
……그리고, 검침원을 고문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강민재뿐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