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82)
너희들은 변호됐다-282화(282/641)
한 손에는 음료수 한 상자,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빵이 가득 든 봉지를 든 상길은 한림 상사 앞으로 다가서는 태식의 뒤에 바짝 붙었다.
태식은 골목 앞뒤를 막아선 A팀과 C팀 차량과 차례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빌라 안에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문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 체크했다.
지하로 나가는 문이 없다는 것 역시, 빌라 주인에게 확인받았다.
이 문만 제대로 봉쇄하면, 애초에 A팀과 C팀이 움직일 필요도 없이 검침원을 둘이서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옆으로 좀 떨어져, 인마.”
“아, 예.”
괜히 긴장한 탓에 아무 잘못도 없는 상길에게 화풀이 한번 해 준 태식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한림 상사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차주한의 말에 의하면 이 한림 상사라는 회사는 진짜 회사가 아니다.
그는 사업자등록도 안 하고 그냥 간판만 달아 놓았을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니 한림 상사에 방문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저긴 그저 지들끼리 노가리나 까는 공간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문을 두드리면 경계하며 아무도 없는 척하는 게 당연하겠지.
어리석은 놈들.
하지만 너희들은 문을 열어 주게 되어 있다.
“아이고, 안에 안 계신가? 조카야,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은데 그냥 옆집으로 갈까?”
“예, 조, 조카? 아, 아! 예. 삼촌. 그래도 한 번 더 두드려 보죠! 혹시 못 들으셨을 수도 있잖아요. 저희 당장 내일부터 인테리어 공사해야 하는데 양해도 못 구하면 너무 죄송하고…….”
“역시 그렇지? 에휴, 공사 소음 때문에 주변에 죄송해서 내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집 꼬라지가 말도 못 해요, 진짜로. 그냥 살다가는 아주 그냥 들숨에 곰팡이 날숨에 곰팡이,”
“누구세요?”
태식이 준비한 멘트를 다 치기도 전에, 한림 상사 문이 빼꼼 열렸다.
아직 경계를 지우지 못한 듯, 안에서 나온 남자는 얼굴이 조금 나올 정도로만 문을 열고 바깥을 둘러보았다.
“안녕하세요! 저희 윗집에 이사 들어오기로 한 사람들인데요,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돼서요. 공사하면 시끄럽잖아요. 그래서 미리 양해 말씀을 좀 구하려고…….”
태식이 멘트를 치는 동안, 상길은 빠르게 남자의 얼굴을 스캔했다.
일단 검침원은 아니다.
검침원은 키가 컸지만, 이 사람은 170이 겨우 넘을 것 같았으니까.
“공사요? 윗집에 이사 오셨어요?”
“아, 네. 저희 이제 이웃사촌이 되네요. 하하하.”
“이상하다? 윗집 분들 어제도 봤는데?”
“아, 그분들 오늘 이사 나가세요. 저희는 내일부터 공사하고요. 그래서 말인데……. 미리 뇌물을 슬쩍 드리려고 찾아뵀습니다. 하하.”
태식은 상길이 들고 있던 주스와 빵 봉지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 이거 말고 또 있잖아? 어디 있어?”
“삼촌이 들고 계시잖아요.”
“아, 맞다. 이건 이사 떡입니다. 하하하.”
태식은 시루떡이 든 비닐봉지를 남자의 눈앞에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다.
“아이고, 주스하고 빵 때문에 손이 없으시네. 저희가 안에 좀 넣어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여기 손가락에 끼워주세요.”
“아이고, 자꾸, 미끄러지네~?”
손가락에 떡이 든 봉지를 끼우는 척 계속해서 미끄러트린 태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열린 문틈 사이로 발을 걸쳤다.
“안에 넣어 드릴게요. 아, 그리고 위에 수도관이 좀 샌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아래층에 물 안 새세요?”
“안 새는데요.”
“이상하다. 물이 고여 있다고 했는데. 한번 들어가서 봐도 되나요? 곰팡이가 슬었을 수도 있어요. 저희 공사해 주시는 업체에서 혹시 누수있으면 수도관 만지면서 서비스로 살짝 봐주신다고 하셨거든요. 한 번만 살짝 볼게요.”
“아니, 괜찮다니…….”
남자가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태식은 그 남자가 양손 가득 든 짐 위에 떡이 든 봉지를 올려놓고 그대로 있는 힘껏 몸으로 밀어붙였다.
양손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갑작스립게 밀쳐진 그는, 그 순간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태식과 상길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봐요! 뭐 하시는 겁니까!”
뒤늦게 엉덩방아를 찧은 남자가 짐을 내팽개치고 그들의 뒤를 따랐지만, 태식과 상길은 이미 사무실 바깥 공간을 한 번 스캔한 다음이었다.
낡은 소파 따위가 놓인 공용 공간에는 없었으니, 아마 방 같은 데에 있을 것 같다.
“넌 저 방 봐라, 난 이 방 본다.”
“예, 형님.”
“니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험악하게 생긴 숙질 사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호칭이 형님으로 바뀌었고, 그들이 사무실을 헤집고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황 파악은 끝났다.
어디서 온 놈들인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야! 저 새끼들 잡아!”
그때, 용무를 보고 돌아온 듯한 두 명의 어깨들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어깨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고, 그들은 눈치를 채고 방 쪽으로 젭싸게 달려갔다.
“이 새끼는…… 아니고. 이 새끼도…… 아니고.”
태식이 들어간 방에는 간이침대 몇 개가 놓여 있었다.
태식은 바깥에서 한바탕 난리 난 것을 듣지 못한 듯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그들의 턱주가리를 잡아채고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때, 가장 끝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수상하게.
“너지, 이 새끼야.”
잡았다, 요놈.
태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거칠게 들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안에 누워있던 남자가 총알처럼 튕겨져 나와 바깥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상길아, 저 새끼다!”
태식은 빠르게 그 뒤를 쫓으며 다른 방을 뒤지고 있는 상길에게 소리쳤다.
소리를 지르는 태식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는 남자들 사이에 있느라 못 들을 법도 하건만, 무전을 용케 캐치한 상길이 방 밖으로 나오려 뒤돌았다.
“니네 어디 새끼들이야, 엉?”
하지만 조금 늦은지도 모르겠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어깨들이 상길을 둘러싸며 점점 그를 조여 왔다.
“이 자식들이 이러면 못 지나갈 줄 아나!”
상길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가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하지만 물겅, 하는 감촉과 함께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왔다.
흡사 어린 시절 플러버를 만지던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동네 오락실에 있던 방방이를 타던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시바…….”
그렇다.
어깨들은 신체 전체에 상당한 지방층을 축적한 상태였다.
“누가 보내서 왔어? 엉?”
남자들은 꿩 몰 듯 상길을 방 안으로 몰아세우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상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저 지방으로 생성된 거대한 벽을 넘어갈 순 없을 것 같고, 저 뒤에 창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 저쪽으로 뛰어내리는 게 최선일 듯하다.
저놈들은 그들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지방층 때문에 창문을 통과하지 못할 테니.
아니, 애초에 저 창문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이중에서는 요새 빡센 다이어트로 멸치 직전의 체구를 갖게 된 나, 최상길뿐이다!
“으아아아!”
상길은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한편, 검침원은 몸집도 큰 주제에 잽싸게 몸을 날려 한림 상사 사무실 바깥으로 나간 상태였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태식은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어깨들이 문앞을 지키고 있었다.
“존나 재밌네?”
문 앞을 막아선 두 명의 어깨와 대치하던 태식은, 그들 너머로 검침원이 도망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빠르게 무전기에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A팀 쪽으로 가고 있어요! 막으세요!”
“씨발, 대체 이 새끼들 뭐 하는 새끼야?”
“저 새끼 쫓는 거 보면 딱 답 나오잖아.”
“……아아, 그쪽?”
저들끼리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보던 태식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1대 2로 붙는다고 해도, 아니, 저기서 퍼질러 자고 있던 놈들로 구성된 연합군이 이미 상길을 처리한 것인지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1 대 5가 되려나.
그래도 이길 자신은 있다.
지금은 비록 차주한에게 부려 먹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근본부터 싸움꾼인 나, 장태식에게 이따위 자식들이 걸림돌이나 될 수 있겠는가!
“덤벼 이 새끼야.”
선빵은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갖춘…… 것처럼 말했지만, 말과 달리 태식은 그대로 앞으로 돌진해 문을 막은 놈에게 로우 킥을 때려박았다.
“아윽! 악! 씨바아아알!”
남자의 소중한 그곳에 말이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한 번 봐줬다.”
태식은 소중한 부분이 차여 바닥을 뒹구는 남자를 우지끈 밟고 문밖으로 달려 나가며 사나이답게 읊조렸다.
만일 후에 자신과 1대 1 진검승부를 요청해 온다면 조금도 피할 생각은 없다.
상황이 따라 줬다면 그게 지금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검침원이 우선이니까.
“저 새끼 잡아!”
바깥으로 나온 태식은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검침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골목 앞뒤로는 이미 A팀과 C팀이 차를 가로로 세워놓고 퇴로를 막은 상태.
차로 받으면 바로 하늘나라 가는 인간의 약하디 약한 몸으로, 차주한이 준 돈 2억으로 뽑은 고오급 중형 세단 (참고로 천오백만 원짜리 깡통이다.)을 밀쳐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림 상사 문을 붙잡고 있던 태식은, 멀쩡한 놈들이 나오려고 하자 그대로 문을 세게 닫아 버렸다.
터덩, 터덩!
놈들이 문에 부딪혀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왔다.
태식은 문 옆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빠루 여러 개를 문고리에 꽂아 문을 열지 못하게 한 뒤, 검침원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야, 이 개자식아! 그냥 포기해, 멍청한 새끼야!”
태식의 무전을 듣고 차에서 내린 강민재가 급하게 내려 검침원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앞에선 강민재가 죽일 기세로 달려오고 있고, 뒤에선 양아치 한 놈이 조질 기세로 달려오고 있고.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강민재가 잡으려 들면 옆으로 피해서 도망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량이 그 길마저 막으려는 듯 심상치 않게 부릉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C팀, 뒤에서 조여!”
그사이 빠르게 검침원과 격차를 좁힌 태식이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그러자 C팀 차량이 매섭게 달려와 검침원의 뒤에 바짝 달라붙었다.
“포기하라고, 이 새끼야!”
동시에, 태식이 그대로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윽!”
그리고, 태식에게 그대로 깔린 검침원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질렀다.
뭐가 뽀각, 하는 소리가 났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씨바, 띨빡이 새끼. 네가 도망가봤자 예수 그리스도 손바닥 안이지.”
태식은 그대로 검침원을 바닥에 짓누르고 두 팔을 결박했다.
어느덧 그들 앞에 도착한 강민재가 노끈으로 검침원의 팔목과 발목을 묶었다.
군대에서 배웠던 매듭법으로 세게 꽉꽉 묶었으니, 풀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강 변! 차에 이 새끼 실읍시다! 저 새끼들 곧 튀어나올 거예요.”
아까부터 한림 상사 현관문이 덜컹덜컹 거리는 게,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태식은 그야말로 괴력을 뽐내며 몸집이 큰 검침원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A팀 차량 뒷좌석에 놈을 싣고 자신 역시 올라탔다.
“빨리 출발! 출발!”
태식은 운전석을 발로 뻥뻥 차며 오양훈을 재촉했다.
한때 도로 위의 신사, 베스트 드라이버로 이름 날리던 오양훈은 오랫동안 지켜왔던 신념도 깨고 일방통행 표시를 무시한 채로 골목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근데 상길 씨는요?”
“몰라, 안 나왔어요?”
“안 나왔는데? 상길 씨 붙잡힌 거 아니에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강민재가 글로브박스에서 청테이프를 꺼내 태식에게 건넸다.
그러자 태식이 검침원의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며 대꾸했다.
“에이, 설마.”
“그래도요. 상길 씨 위험하면 어떡해요! 상길 씨, 상길 씨 괜찮아요?”
강민재가 무전기에 대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잠시 치직,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희망찬 메시지가 들려왔다.
-나는 안전하다, 오바! 하지만 크윽, 조금 늦을 것 같다……. 먼저가라, 오바…….
“장난치는 거 보면 멀쩡하네. 거 세게 세게 좀 밟읍시다, 사무장님!”
그들은 신음에 찬 상길의 목소리는 애써 외면했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알아서 잘 도망가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