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86)
너희들은 변호됐다-286화(286/641)
어깨에 내려앉은 손은 느낌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거친 인생을 살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두툼하고 거칠거칠한 손이다.
상길은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태식과 약속했다.
더는 나쁜 짓은 하지 않기로.
물론 검침원을 납치한 건 나쁜 짓이긴 하지만 그건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서 그런 것뿐이다.
어쨌든, 그런 자신이 먼저 상처 입히는 것은…….
“헉.”
상길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이었다.
누군가 느릿한 움직임으로 상길의 눈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그 순간,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아오, 씨벌, 깜짝이야! 존나 깜짝이야! 악! 씨발,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씨발! 아아악!”
미친 듯이 욕설을 내뱉으며 남자를 밀친 상길이 멀찍이 떨어져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꼬질꼬질한 냄새.
저 등치.
화군 저수지 네임드 노숙자였다.
“뭐 죄졌냐? 혼자서 개지랄을 떨어놓고 나한테 괜히 욕하고 있어, 어린놈이 싸가지 없게 말이야…….”
‘뭐 죄졌냐?’ 외에는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노숙자 특유의 중얼거림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숙자 따위에게 쫄아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니.
창피해서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뭐, 뭔데요?”
“담배 줘.”
“……씨, 씨발. 담배는 무슨 놈의 담배! 없어요!”
만일 이렇게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한 대 정도는 줬을 것 같지만, 기분이 나빠져서 그건 안 되겠다.
상길이 담뱃갑을 주머니에 쑥 집어넣으며 짜증스럽게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담배 줘! 많잖아!”
“한 대밖에 없어요!”
“웃기지 마! 내가 다 셌어. 열다섯개 있는 거 다 셌어! 어린놈의 새끼가 못돼 처먹어서 어른이 달라고 하면 곱게 줄 것이지 말이 많아. 팍 씨, 내가 몇 살만 더 젊었어도 한대 패주는 건데, 확.”
“하, 진짜…….”
앞으로 화군 저수지에 올 일이 많아질 것 같은데, 그때마다 이 노숙자에게 계속 붙잡힐 걸 생각하면 눈앞이 컴컴했다.
게다가 사람 인상 봐 가면서 들이대는 일반적인 노숙자들과 달리, 저 인간은 그냥 누가 담배를 피우고만 있으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그냥 와서 들이대는 것 같은데.
자주 노출되어서 위험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태식의 했던 말도 생각나고, 이 인간이 또 어떤 위기의 순간에 아는 체를 할까 두렵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 아저씨.”
“왜.”
“그럼 제가 오늘 담배 많이 사드릴 테니까, 앞으로 저한테 아는 척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몰랐어요?”
“많이 사준다고?”
“네.”
“소주도 사주냐?”
“하, 네. 그것도 사드릴게요.”
“알았어. 대신 많이 사줘야 돼. 많이.”
“알았다고요.”
상길은 앞서 걷는 노숙자의 뒤를 따라 매점으로 향했다.
“아저씨, 담배 뭐 피워요.”
“아무거나.”
“아저씨도 취향이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노숙자 하기 전에 피우던거라도 있을 거 아니냐고요.”
“……저기 뭐냐. 네가 피우는 거. 그거 괜찮더라.”
“사장님. 이거랑 똑같은 거 한 보루 주세요. 그리고 또요. 아저씨 술 산다며.”
“산 소주.”
“산 소주도 주세요.”
“네 병.”
“……하, 네 병 주세요. 비닐에 담아 주세요.”
“비닐 없어도 돼. 나 가방 있어.”
노숙자가 등에 지고 있던 가방을 보여 주며 말했다.
꼬질꼬질한 데다, 등에 납작하게 들러붙어 있어서 가방인 줄도 몰랐다.
매점 주인이 담배 한 보루와 소주네 병을 꺼내 주자, 상길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제 태식에게 받았던 활동비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거스름돈을 돌려받은 후, 상길은 노숙자의 가방에 담배와 소주를 넣어 주었다.
여태까지 구시렁거리던 것과는 달리 잠자코 가방을 벌리며 재산이 쌓이는 것을 지켜보던 노숙자가, 일순 상길의 손에 들린 거스름돈을 바라보았다.
“아오, 다 뜯어 가라, 다 뜯어 가.”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그냥 좋은 일 했다고 치자.
“이걸로 저기 가서 국밥이라도 사드셔.”
상길이 그의 손에 잔돈을 쥐여 주며 말했다.
“라면이면 충분하지 무슨 국밥은, 돈 아깝게. 라면 먹으면 면 있지, 국물 있지, 뜨끈하지, 국밥이랑 다를 것도 없는데 가격은 6천 원이나 차이 나.”
“하……. 알았어요. 마음대로 하셔, 그러면. 그럼 이제 앞으로 나 봐도 아는 체하지 마셔. 알겠죠?”
노숙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매점 테이블에 앉아 바로 소주를 까기 시작했다.
밥 먹으라니까, 말도 안 듣고.
상길은 혀를 쯧쯧 차며 인생배팅과 만나기로 했던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어, 형님! 이쪽이에요!”
저 멀리서 인생배팅이 낚시가방을 들고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발, 제발 저 인간이 검침원 봤어라.
제발.
* * *
물고기가 잡혀도 너무 잘 잡혔다.
“…….”
2시간 동안 인생배팅에게 검침원 이야기는 묻지도 못했을 정도로.
“이야, 오늘 날인가 보다. 그치?”
“하하, 그런가 봐요. 너무 많이 잡았는데? 우리 잠깐 낚싯대 거두고 라면이나 먹을까요?”
“낚싯대를 왜 거둬? 또 잡힐 수도 있는데.”
“너무 많이 잡으면 용왕님 개빡쳐요. 적당히 먹을 땐 편하게 먹어야죠.”
일단 낚싯대를 치우는 것까진 성공.
잡은 물고기들을 보고 있는 인생배팅을 주시하며, 상길은 버너 위에 양은 냄비를 올렸다.
기분이 좋아 보이니까, 슬쩍 말 꺼내도 되겠지.
“형님, 근데요. 저번에 저희 얘기했던 거 있잖아요.”
“우리 얘기했던 거? 아, 그때 제주도로 낚시 가자고 한 거?”
아오, 이 낚시밖에 모르는 양반아.
상길은 라면을 반으로 쪼개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그 이정찬 얘기 있잖아요.”
“아, 그거? 그거 왜?”
“사실은, 그때 제가 아는 동생한테 얘기 들은 거라고 하면서 말씀드렸잖아요. 기자라고 했던.”
“동생? 선배라고 하지 않았어?”
“아, 선배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동생이라고 했어요?”
“응, 방금 동생이라고 했는데.”
“에이, 아니, 선배요. 실은 얼마 전에 그 선배 만날 일이 있어서 만났다가, 형님한테 들은 얘기 슬쩍 했거든요. 그때 형님이 따로 말하지 말라고 하신 건 아니었어서 그냥 말했는데……. 괜찮아요?”
“그래, 뭐. 네 말대로 내가 말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근데 그 선배가 자꾸 형님 만나게 해 달라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했어요. 괜히 형님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고. 잘했죠?”
이런 말을 먼저 하면, 자신은 할도리를 다했으며 인생배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다.
과연, 인생배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 괜히 귀찮은 일 생기는 거 좀 그렇거든. 혹시라도 목격자 같은 거라도 되면 경찰서도 들락날락해야 하고, 그렇잖아. 실제로 내가 본 것도 별거 없는데.”
“그렇긴 하죠. 그래서 제가 더더 안 된다고 한 거거든요. 근데…….”
“근데 뭐?”
“그 선배가 그러면 부탁 하나만 들어 줄 수 있냐고 해서요…”
“부탁?”
“네. 그냥 그때 보신 양복 입은 사람들 중에 이 사람 있었냐고 확인만 시켜 달래요. 너무 부담스러우시면 안 하셔도 되는데……. 그 형이 너무 간절히 부탁해서요. 형님한테는 귀찮은 일 안 생기게 해 주겠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인생배팅은 한숨을 쉬며 끓는 물에 스프를 탈탈 털어 넣었다.
“어디 한번 보자, 그러면.”
상길은 그 말에 휴대폰을 꺼내 검침원의 얼굴을 바로 보여 주었다.
인생배팅은 상길의 휴대폰을 붙잡고 한참 동안 검침원의 얼굴을 확인했다.
“흐으으음…….”
“좀 기억나세요? 얘 키도 되게 크고, 몸도 좀 좋다고 하던데.”
인생배팅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상길에게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그 양복 입은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어린 애는 없었어.”
“그렇구나…….”
역시 차주한의 말대로,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길은 실망스럽게 휴대폰을 받아들며, 태식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ㅅㅂ못봤대요]그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메시지 전송을 눌렀을 무렵, 인생배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쟤, 그날 낚시터에서 봤던 것 같은데.”
“보셨다고요?”
“응. 그때 내가 뭘 놓고 와서 다른 사람들한테 좀 빌리려고 돌아다니다가, 저 사람한테도 갔던 것 같아. 근데 같이 온 사람들 인상이 더럽길래 무서워서 그냥 지나쳐 갔던 것 같은데.”
“시, 시간은요?”
“몰라, 한 10시 됐으려나? 밤.”
* * *
“다른 사람들 폰에는 복제 흔적 없어요. 이상한 어플도 안 깔려 있고. 기계 뜯어 봤는데도, 별거 없네요.”
국정원은 강민재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다행이다.”
국정원이 있는 곳으로는 강민재가 직접 휴대폰을 받으러 왔다.
강민재는 자신의 휴대폰을 챙긴 뒤, 국정원이 검침원의 휴대폰을 PC에 연결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근데 왜 태식이나 똘마니들이 안오고 직접 오셨어요?”
“그냥 제가 집에 가는 길에 들렀어요. 태식 씨는 할 일도 있고 해서.”
검침원을 가둔 이상, 상주하며 그를 감시할 사람이 필요했다.
태식의 직원들도 물론 잘하겠지만, 워낙 중요한 사안이니 태식이 직접 지키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그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고생하기로 했다.
강민재나 오양훈은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감시에 대비해서, 평소 패턴대로 생활하면서 필요할 때 오가기로 했고.
태식의 흥신소는 이러한 이유로, 당분간은 문을 닫기로 했다.
태식은 쿨하게 차주한이 돈만 제대로 준다면 닫아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대신에 만일 돈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면 사무실 앞에 똥을 싸겠다며 협박했다.
사실, 흥신소를 당분간 닫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림 상사 안으로 진입하면서 얼굴이 노출된 사람이 다름 아닌 상길과 태식이 아니던가.
한림 상사 쪽에서 두 사람의 신상을 캐서 흥신소로 밀고 들어오면 불필요한 육탄전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
그러니 그들도 사건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일단 검침원 휴대폰 위치 추적 안되게 GPS 죽여 놨고요. 패턴은 그냥 ‘ㄱ’자 모양으로 바꿔 놨으니까 필요할 때 쓰세요. 그리고 이건 USIM인데, 이건 끼우지 마세요. 데이터 연결되면 기지국 위치가 잡혀요.”
“이거 없으면 전화, 문자, 데이터 다 안 되는 거죠?”
“네.”
“그럼 우리 휴대폰도 USIM만 빼면 위치 추적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GPS로 잡힐 수도 있어서. 두 분은 위치 추적 안 잡히고 싶으시면 핸드폰 끄는 게 제일 편한 방법이에요.”
국정원은 USB 하나를 강민재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이 핸드폰에 들어 있던 데이터 파일 옮겨 놓은 거. 사진도 몇 장 있던데요.”
“사진이요?”
만일 검침원이 이정찬을 죽인 범인이라면, 보고용으로 사진 몇 장 정도는 찍어두지 않았을까?
사진이 있다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다 지운 건지, 아니면 일부러 안 찍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딱 네 장 들어 있던데요.”
국정원이 휴대폰 안에 들어 있던 사진 파일 폴더를 열며 말했다.
강민재는 국정원의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바짝 당겼다.
만일 그 네 장 중에 한 장이라도 보고용 현장 사진이 있다면, 모든 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