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87)
너희들은 변호됐다-287화(287/641)
-변호사님은요?
-2층에 계셔.
강민재가 집에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층에서 대문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고로 들어온 건지 벌써부터 아래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다녀왔습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서 일단 말씀부터 드리고 옷 갈아입으려고요.”
오늘 그들과 함께 있진 않았지만, 대단한 무용담을 떠들며 전화기를 놓지 않았던 태식 덕분에 대충 어떻게 검침원의 신병을 확보했는지는 들었다.
돌격대였던 상길은 작은 부상을 입었다고 했고, 태식은 조금 긁힌 것 말고는 괜찮다고 했는데.
강민재 역시 부상은 없어 보였다.
태식이 ‘강 변은 그냥 놀았어요’라고 말했을 때부터 크게 걱정은 안했지만 말이다.
“말씀하신 대로 국정원한테 휴대폰 검사받았는데, 저희는 딱히 복제나 해킹 흔적은 안 보인대요.”
“다행이네.”
“아, 그리고 검침원 휴대폰 내용물 좀 털어 봤는데요. 잠시만요.”
강민재는 품 안에서 USB를 꺼내 내 방 안에 있던 노트북에 꽂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진 앨범 폴더를 열어, 나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정찬 살해 현장이 찍혔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없었어요.”
처음으로 뜬 사진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웃긴 사진 하나.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건, 변호사님 댁 사진인 것 같아요.”
강민재의 말대로, 그다음 사진은 우리 집 사진이었다.
정확히는, 내 책상 서람 내부에 신문지에 둘둘 만 과도를 넣은 뒤 찍은 사진이다.
그 외에도 남은 하나의 사진 역시 내 서재 전체 전경을 찍은 것으로, 윗선에 보고하기 위한 용도로 촬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 사진이면 일단 검침원이 변호사님 댁에 흉기를 갖다 놨다는 확실한 증거는 될 것 같아요. 저희가 검침원이 변호사님 댁에 들렀다는 증거도 확보했으니까.”
“그렇네.”
“그리고 다음 사진인데요. 이건 꽤 쓸 만할지도 모르겠어요.”
다음 사진으로 넘기자, 열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단체 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곡을 배경으로 구명조끼 차림에 패들 따위를 들고 찍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친한 사람들과 래프팅하러 가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직접 찍은 사진 같지는 않고, 실물로 인화된 사진을 찍은 것 같다.
“태식 씨가 그러는데, 여기 찍힌 사람 중에 절반 정도는 한림 상사에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경찰에 제출하면 남은 똘마니들까지 검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여기 있는 놈들이 다 한림 상사 놈들이란 거야?”
“아마도요. 저희가 갔을 때 거기 있던 사람은 절반 정도였지만요. 아, 그리고 국정원이 캐시 파일을 확인하고 나서 말해 준 건데, 사진이 대량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삭제된 흔적이 보인다고 했어요. 아마 이정찬 죽인 다음에 만일을 대비해서 데이터를 다 비운 것 같아요. 휴대폰 문자 내역을 봤는데 스팸 문자가 많이 왔더라고요. 근데 이정찬이 죽은 날 이전 문자는 없어요.”
“그럼 여기 있는 건 이정찬 죽인 다음에 새로 저장한 사진이겠네.”
“네. 그리고 카톡 주고받은 것도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탈퇴한 것 같아요. 어플 들어가니까 가입 화면 뜨더라고요.”
검침원이 납치되자마자 보안을 염려한 한림 상사의 누군가가 다른 기기로 로그인해서 탈퇴한 모양이다.
나는 한림 상사 직원들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인화 날짜가 어제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본인들끼리 워크샵 개념으로 놀러 갔다가 어제 인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따위 범죄 조직이 소속감을 높이겠다고 워크샵을 다녀왔다는 것이 가소로울 뿐이다.
나는 천천히 그 안에 모습이 찍힌 사람들의 얼굴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한림 상사가 내 예상대로 우신의 하청을 받는 조직이 맞다면, 이번에 제대로 뿌리 뽑지 않는 한 언젠가는 다시 맞닥뜨리게 될 것 같아서였다.
“이 사람…….”
-그러게, 왜 주제를 모르고 나댔어?
그때였다.
별안간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털털털털-
낡은 배의 조악한 모터 소리와 함께, 온몸에 진동이 느껴진다.
혀끝에서 짭조름한 맛과 함께 코끝에 바다의 냄새가 스친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겨우 팔다리, 그리고 상체를 들썩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허억, 헉.”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틀어쥔 듯,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발아래부터 천천히 축축하고 질척한 무언가가 내 몸을 감싸왔다.
시멘트.
시멘트가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나마 들썩이는 것 정도는 가능했던 몸이 순식간에 시멘트 무게에 짓눌려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어떻게든 얼굴은 잠기지 않게 하려고 턱 끝을 들어 올렸다.
-흐흐흐, 흐흐. 꼴에 살고 싶은가 보네?
-병신 새끼.
-그러게 적당히 까불지 그랬어? 지금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어 봐.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멍청한 새끼. 크큭. 병신. 크크큭!
그놈이 발버둥 치는 나를 보며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콧속까지 시멘트가 밀려 들어오는듯,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둔탁한 무언가가 비강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숨을 쉴 수도, 쉬지 않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두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게에 점점 무너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이전 삶에 있던 일이잖아.’
그래.
이전 삶의 일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 강민재의 집에서, 강민재와 함께 사진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갑작스럽게 내가 시멘트에 담겨질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 따위, 털털거리는 진동 따위 느껴질 리가 없다.
“허억, 옥…….”
그것을 깨닫기가 무섭게, 나는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변호사님, 변호사님! 괜찮으세요?”
강민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잠시뿐이었다.
불이 난 건물 속을 헤매는 것처럼 머릿속 가득 기계적인 이명이 울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반사적으로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두근, 두근, 두근.
한 번 박동할 때마다 그 속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심장이 터져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혈액이 전부 역류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구 저리는 듯한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가슴팍으로, 그리고 팔다리까지 퍼져나갔다.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지금 이 순간 목숨을 끊는 것이 더 편하겠다 싶을 정도로.
“변호사님! 변호사님!”
무언가가 내 어깨를 꽉 잡은 듯 저린 어깨에 압력이 느껴졌다.
“변호사님, 숨, 숨 쉬세요! 숨 쉬셔야 해요!”
“윽, 허억, 헉.”
“들이마셔요. 숨 깊게 들이마셔요. 변호사님, 괜찮아요. 지금 변호사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여기 저희 집이에요. 저랑, 수일이 형이랑, 저희 할아버지밖에 없어요. 숨 깊게 들이마셔요.”
“큭, 흐으윽.”
“눈 감지 마세요. 저기, 저기 있는 거. 샤워실 문고리 한 번 쳐다보세요. 저것만 계속해서 보세요. 집중해서.”
샤워실 문고리?
젠장, 그딴 게 지금 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방 안에 있다는 것도 알겠다.
여기에 나를 죽이러 오는 사람 따위는 없다는 것도 알겠다.
시멘트 따위는 애초에도 존재하지도 않았고, 내 손발이 묶여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겠다.
마치 색색의 조명을 쏘아 댄 것처럼 눈앞이 기이한 색깔로 번쩍이는데, 빌어먹을, 샤워실 문고리 따위가 보일 리가…….
“그, 그렇지. 그렇게요! 숨 들이마셔요! 깊게, 깊게 마셔요.”
가까스로 샤워실 문고리에 시선을 맞추자, 강민재가 소리쳤다.
샤워실 문고리도 가까스로 찾았는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간헐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호흡기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떻게든 숨을 들이마시려고 입을 벌렸지만, 학, 학, 거리는 새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변호사님. 과호흡 와요. 깊게 코로, 복식 호흡하듯이……. 손은 갈비뼈 밑에다가 놓고요, 이렇게요.”
귓가에서 강민재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강민재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을 갈비뼈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손이 덜덜 떨려서 가만히 올려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자꾸 미끄러져 내리는 내 손을 꽉 누르며 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시늉을 했다.
“맞아요, 그렇게요. 거기서 잠깐만 멈추고, 숨을 천천히 내보내요. 길게 후우우, 후우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심장 박동과 손의 떨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온몸을 뒤흔들던 진동과 이명까지도, 천천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천히 흩어졌다.
“이제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
내가 침대에 늘어지듯 기대자, 강민재가 젭싸게 방 안에 있던 냉장고로 달려가 생수병을 가지고 왔다.
내 입가에 대 주려는 것을, 내가 생수병을 붙잡자 강민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집스럽게 입가에 대주었다.
“지금 물건 잡으면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손하고 발에 힘줬다가, 풀었다가 하세요. 1분 정도요.”
목구멍 너머로 물이 들어오자, 답답한 기분이 한결 가시는 것 같았다.
남아 있던 어지러움이 걷히고, 천천히 시야가 뚜렷해졌다.
나는 강민재의 말대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나를 지켜보고 있던 강민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공황장애 있으세요?”
강민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공황장애?
알고는 있다.
공황장애가 생기면 갑작스럽게 발작이 온다고 들었다.
그 증상들도 대충은 알고 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방금 전까지 벌였던 볼썽사나운 행동들이 그 증상과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젠장, 공황장애라니.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전 삶에서도 불면증은 있었어도 공황장애는 없었는데.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럼 이렇게 발작 온 거 처음이세요?”
“그런 것 같은데.”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나는 책상 위 노트북 화면에 여전히 띄워져 있는 검침원의 사진을 흘긋 바라보았다.
“저 사람일 거야.”
“……네?”
“이정찬 죽인 놈 말이야.”
나는 기진맥진해서 겨우겨우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민재는 내 말에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가까이 가져오려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노트북을 다시 내려놓았다.
사진을 보면 또다시 나에게 발작증세가 찾아올 거라 생각한 듯했다.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 검침원하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새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
이전 삶에서의 죽음은 나에게는 벌써 3년 전의 일이 되었다.
얼마 전에 꿈을 꾸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드럼통에 담겨 죽어 가던 그 순간을 떠올린 적은 별로 없었다.
회상한다 해도 이렇게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낀 적도 없었다.
그 꿈을 꾸었을 때조차, 평소 생각도 잘 하지 않던 일이 왜 꿈에 나왔을까 의아했을 정도였다.
“……기가 막히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막연하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한 번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던 나에게는 그러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놀라지 않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이미 당할 건 다 당해 봤으니, 더는 놀랄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니까.
그렇게 온갖 센 척은 다 해놓고, 그 새끼 얼굴 하나 봤다고 그날의 공포감을 떠올려 발작이 온다고?
“이 사람이요?”
“……그래.”
얼굴을 보자마자 숨도 못 쉬고 헐떡거렸으니,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나는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겨우 대답했다.
“이 사람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