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89)
너희들은 변호됐다-289화(289/641)
“아, 깜짝이야! 아, 시바 깜짝이야! 아악!”
인생배팅과 상길의 사이에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 불한당 같은 남자와, 그에게서 비롯된 퀴퀴한 냄새에 놀란 상길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꽥소리 질렀다.
“너는 왜 내가 나타날 때마다 놀라냐. 죄졌냐? 내가 너 죽인댔어? 왜 혼자 오바를 떨고 난리야.”
“……하.”
이 웅얼거리는 듯한 화법과 이 목소리, 무엇보다 이 냄새.
오늘 담배와 소주를 사 주며 퇴치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숙자였다.
노숙자는 간이 테이블에 넓게 펼쳐놓은 과자 봉지에서 과자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으며 상길을 바라보았다.
뭐가 잘못됐냐는 듯한 눈치였다.
“아, 이 경우 없는 아저씨를 봤나. 앞으로 아는 체 안 하기로 했잖아요! 오늘 저한테 뻥도 엄청 뜯었으면서 왜 자꾸 얼쩡거려요! 아니, 이 양반이 나를 스토킹 하는 거야, 뭐야! 아저씨 나와바리 저기 입구 쪽 아니었어요? 여기까진 왜 들어왔는데! 저 구를 만큼 구른 놈이고, 나이가 많든 적든 좇같으면 그냥 받아버리거든요? 어떻게, 오늘 한 따까리 해?!”
진정한 사나이인 상길은 노숙자를 보자마자 세 번이나 질겁한 것이 민망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하지만 노숙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과자를 집어먹으며 상길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 상길아…….”
“이럴 거면 제가 드린 담배랑 소주 다 토해내요!”
“상길아, 잠깐만.”
상길이 소리 지르자, 인생배팅이 중재를 해 보려는 듯 계속해서 끼어들려 했다.
“아, 왜요?”
그러나 상길은 온순하고 착한 청년 연기를 하던 것도 잊고 인생배팅을 팍 노려보았다.
상길이 착한 척 눈웃음을 살살 쳐서 그렇지, 사실 그리 인상이 부드러운 편은 아닌지라 인생배팅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평화로운 것은 오로지 노숙자만으로, 계속해서 과자를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상길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필요 없어? 그럼 나 그냥 간다. 앞으로 아는 척도 안 할게. 개새끼, 지 도와줄라고 했더니만 그것도 못받아 처먹고. 등신, 등신. 지만 손해지 내가 손해냐?”
노숙자는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손을 쪽쪽 빨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상길의 뒷통수를 한 대 세게 치고는 가방을 들쳐메고 반대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 왜 때리고 지랄이야…….”
다시 주저앉아 뒤통수를 슬슬 문지른 다음에야 겨우 분노가 가라 상길은, 그제야 자신이 인생배팅 앞에서 숨겨왔던 야성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말았다.
그는 다시 눈웃음을 살살 치며 괜히 호탕하게 웃었다.
“아, 형님. 놀라셨죠? 제가 원래 이런 놈이 아닌데 오늘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어 가지고…….”
“그게 아니라, 상길아.”
“네?”
“저 아저씨 말 못 들었어?”
“무슨 말이요?”
“저 아저씨가 봤다잖아.”
“뭘요?”
“네가 보여준 사진 속 사람 말이야.”
“엥?”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정확히는 노숙자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면서 뭐라고 하는 걸 듣긴 했지만 웅얼거려서 알아듣지 못했고, 무엇보다 너무 놀라서 간 떨어지는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달은 상길은 튕기듯 일어났다.
그리고 인생배팅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노숙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노숙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왕년에 경보라도 했나.
주변이 컴컴해서 못 찾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100년 동안 이발도 안 하고 감지도 않은 듯한 머리 스타일은 실루엣만으로도 존재감을 뿜어내고있었다.
“아저씨! 아니, 선생님! 잠깐만요! 선생님!”
걸음걸이는 왜 이렇게 빠른지, 상길은 젖 먹던 힘을 다해 그의 등뒤로 따라붙었다.
절대 만지고 싶지 않았던 노숙자의 어깨를 콱 붙잡자, 그제야 노숙자가 걸음을 멈췄다.
“설마 나를 부른 거냐?”
“……아유, 선생님. 그럼 선생님 말고 제가 누구를 불렀겠습니까.”
“내가 언제부터 선생님이었냐? 경우 없는 아저씨 아니었냐?”
노숙자는 단단히 뿔이 난 것 같았다.
입냄새를 뿜으며 씩씩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니 정말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상길은 그의 찐득찐득한 손을 잡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선생님. 제가 오늘 안 좋은 일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선생님께 막말을 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실까요?”
상길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그에게 권하며 다정하게 웃었다.
“한 대 쭉 빠시겠습니까?”
“여기서 담배 피우면 불 나, 이 새끼야.”
“사방이 물인데 뭐 어떻습니까, 선생님. 우리 선생님이 피우고 싶으시면 피우시는 거죠. 하하하!”
노숙자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상길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미쳤었나 보다.
노숙자가 자꾸 인기척 없이 나타나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니까 저도 모르게 짜증이 확 치솟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자신은 정말로 한 마리의 미친놈이었다.
정말로 노숙자가 사진 속의 사람을 봤다면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강민재가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던 검침원보다 더 중요하게 꼭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이쪽이 범인이라는 소리 아니겠는가?
범인을 본 사람이라면 나중에 증인 같은 것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가벼운 입놀림으로 일을 그르친다면 태식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상길은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에 노숙자의 앞에 반쯤 무릎을 꿇은 채로 안절부절못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크신 진노가 풀리실까요? 제가 뭐든 하겠습니다. 담배와 소주가 더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조공하겠습니다.”
“…….”
“이렇게까진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혹시라도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디 월세방이라도…….”
물론 자신은 그런 능력이 없지만, 차주한은 돈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혐의를 벗겨 줄 수있는 사람이 이렇게 나타났는데 그 돈 많은 양반이 월세방 하나 못 구해 줄까?
상길은 생각나는 대로 떠들며 싹싹빌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 제발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정말로, 진짜로.”
“국밥 사 줘.”
“……예?”
“국밥 사 달라고.”
“그, 그거면 되겠습니까?”
“그래.”
* * *
혹시라도 국밥집 사장이 노숙자는 안 받아 준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노숙자는 100년 동안 굶은 사람처럼 국밥을 먹어 댔다.
벌써 세 그릇째 눈코 뜰 새 없이 수저질을 하고 있으니 말 다 했을까.
상길은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잘 익은 김치를 그의 숟가락 위에 얹어 주었다.
“같이 드세요.”
“…….”
가식적인 친절에 상길을 흘긋 쳐다보던 노숙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마저 했다.
중간중간 소주까지 곁들이면서.
40분째 쉬지 않고 먹어 대는 노숙자를 지켜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상길은, 네 그릇의 국밥을 비운 뒤에야 겨우 배를 두드리며 트림을 하는 그를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이제 여줘봐도 되나요?”
“물어봐.”
노숙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상길은 휴대폰에 사진을 띄워 공손하게 노숙자 앞에 놓아 주었다.
“그 이정찬이 죽던 날이요. 언젠지 아세요?”
“몰라.”
상길은 음식점에 걸려 있는 커다란 달력을 가리키며 대충 언제쯤인지 셈해 주었다.
그러자 노숙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여기,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람 보셨습니까?”
“그래, 봤다.”
“여기 어린 놈은요?”
“걔도 봤다.”
“혹시 이밖에 더 보신 사람은 없는지……?”
“얘네 둘만 봤어.”
“혹시 몇 시 경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내가 시계가 어디 있어, 이 잡놈아. 내가 시간을 알 것 같냐?”
가장 중요한 건 저 둘을 본 시간이다.
인생배팅의 발굴이 상길의 가장 큰 업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정찬이 죽던 날, 그 사건 발생 시각 즈음에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두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 상황에 이곳 저수지에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노숙자가 결정적인 증인이 되려면 마찬가지로 이정찬이 죽은 시간 언저리에 그들을 목격했어야 하는 것이다.
“하, 그럼 밤이었어요?”
“그럼 밤이지, 낮이냐?”
“……깊은 밤?”
“내가 걔네 보고 나서 다시 입구로 나오니까 매점 문 닫고 있었어.”
매점이 문 닫는 시간은 밤 12시다.
차주한과 강민재가 화군 저수지에서 이정찬과 만나기로 한 시각은 11시.
입구에서 보이지 않자, 저수지 내부로 들어간 시각은 11시 10분경.
그리고 차주한과 강민재가 흩어져 찾기 시작한 시점이 11시 20분 정도라고 가정하고, 이정찬이 저수지에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넉넉하게 10시부터 11시 20분 사이가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을 목격하고 나서 바로 입구로 나오셨어요?”
“아니. 좀 있다가 나왔지. 한 40분쯤 지켜본 것 같은데 내가 시계가 없어서 그거는 모르겠고, 하여간 내 기분상으론 그랬어.”
노숙자의 말대로 그가 그들을 40분 정도 지켜보고 나왔다면, 그들을 목격한 시간은 11시 20분이다.
살인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 범주 안에 들어온다.
“이 사람들을 어디서 보신 건지, 보셨을 때 이 사람들이 뭐 하고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상길은 휴대폰에 저수지 지도를 켜놓고 다시 노숙자 앞에 놓아 주었다.
인생배팅은 10시쯤 검침원이 이곳 에서 험상궂은 사람들과 낚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즉, 인생배팅은 그들이 이정찬을 살해하기 전에 본 것으로 추정되는것이다.
하지만 노숙자가 그보다 더 근접한 시간에 그들을 보았다면, 살해 현장을 목격했을 가능성도 있다.
상길은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걔네를 본 건 여기.”
노숙자가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빽빽하게 들어 선 숲 쪽이었다.
현장 보존을 위해 폴리스라인을 쳐놓은 곳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었다.
“내가 낚시하는 애들한테 컵라면 달라고 하려고 나무 사이로 가로질러서 이렇게 들어오고 있었단 말이여? 근데 갑자기 어떤 놈들이 낚시가방을 질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오는데 뭔가 이상해서 여기 숨었어.”
“그랬는데요?”
“아까 네가 사진 보여준 애들이 이렇게 와서 가방을 찍 열더라고? 그랬더니 그 안에 기절을 했는지 뭘 했는지 하여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 영감이 나오더라고.”
“……그게 이정찬이었어요?”
“그땐 몰랐지, 나는.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정찬 같은 거야.”
“그래서요?”
“그 사진에 있던 어린 놈이 영감을 이렇게 들어서 세우고, 그 어깨동무한 놈이 영감을 이렇게 칼로 푹푹푹 찌르는 거여.”
상길은 그 순간 ‘나이스!’ 하고 외치려다 가까스로 참았다.
사람이 죽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리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비식비식 올라가는 입꼬리를 멈추지 못했다.
찾았다, 목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