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9)
너희들은 변호됐다-29화(29/641)
“아이고, 힘들어라. 아이고, 아이고.”
베란다 너머로 태식이가 괜히 어깨를 주무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전경이 보였다.
두 명의 똘마니를 달고 들어온 놈은 마치 사채를 독촉하러 온 일수 회사 오야붕 같았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아, 예. 검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고 계신데요. 좀 이따가 의뢰인이 오실 거라 자료를 보고 계십니다.”
강민재가 나를 가리키자, 태식이와 두 똘마니가 내게 90도로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동안 강민재는 냉장고 앞에 서서 예의 그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를 그들에게도 하고 있었다.
“검사님, 저 왔습니다.”
“방금 봤잖아.”
내가 그들이 자리한 상담 테이블에 앉자, 태식이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검사님, 저희가,”
“변호사님.”
“네?”
“이젠 변호사니까 변호사님.”
“아, 그렇군요. 예, 하여튼 변호사님. 저희가 그 출력소를 찾아냈다는 거 아닙니까. 이놈들 촬영용 대본 배우들한테 돌릴 때도 거기 쓰고요, 제본할 일 생기면 죄다 거기에 맡기는 모양이더라고요. 단순 인쇄도 좀 양이 많으면 그쪽으로 보내고요.”
태식이가 자못 자랑스럽다는 듯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푸른섬 미디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출력소 주소였다.
주소를 보니 우리가 전화를 돌렸던 반경 내인데, 왜 못 찾았을까.
“이 새끼들은 인터넷에 등록을 안해 놔서 찾느라 겁나게 힘들었다는것만 알아 주십쇼. 헤헤.”
“그래도 빨리 찾았네.”
오늘 의뢰인이 오기 전에 출력소를 알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그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과거의 삶에서, 그러니까 2010년에 태식을 만났을 때도, 믿을 만한 놈이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의 스피드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놈도 우신 그룹의 비리를 밝혀내겠다는 사명감이 생겨 움직임이 빨라졌으니, 가르쳐 쓰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된 일이지?
“변호사님이 사무실을 여셨으니까, 저희 쪽이랑 그 뭐죠? 모유? 그런 거 체결하셔서 어? 저희 쪽에 일 좀 주시고, 돈도 좀 주시면 좋으니까. 그래서 신용을 보여 드리려고 빨리 찾아온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입니까. 검찰청이 맺어 준 인연 아니겠습니까?”
“모유가 아니라, MOU 말씀하시는것 같은데…….”
강민재가 슬쩍 끼어들자, 태식이가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니, [MO] 이걸 [모]라고 읽잖습니까? 그리고 U. 그러니까 모유.”
“……차라리 모우라고 읽으시면 그나마 읽는 것 같긴 한데요, 사장님. 좀, 단어가 민망하잖습니까.”
“아! 시끄럽고! 그래서, 변호사님 저희랑 엠오… 그거 하여간, 체결해서 같이 상생하실 겁니까, 안 하실겁니까?”
“너 하는 거 봐서.”
앞으로도 일을 만족스럽게 해 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는것은 당연하다.
“어쨌든. 이제 또 뭐 시키실 거 있으십니까?”
“강 변. 거기 의뢰인 대본 태식이한테 보내 봐.”
강 변은 태식에게 조심스레 이메일 주소를 물어 그에게 대본을 보냈다.
태식이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저 대본을 인쇄한 적이 있는지 알아봐야 해.”
“……푸른섬 미디어한테 걸리면 안된다면서요?”
“그렇지.”
“근데 어떻게 알아봅니까?”
“그러니까 알아서. 잘.”
소파 뒤에 손을 모으고 서 있던 똘마니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대본 숙지하고 있다가, 쪼가리라도 나오면 그걸 네가 찾아내야겠지?”
“……인쇄된 게 언젠데요.”
“아마 작년.”
“그럼 이미 다 버리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네가 살펴봐야겠지?”
“……그건 그런데,”
“그런 상노가다를 바쁜 변호사님이 해야겠냐, 태식아?”
“아뇨. 제가 해야죠…….”
이런 걸 분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각자 특화된 분야를 맡는 것.
그래야 일이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된다.
“그럼 그렇게 알고,”
“변호사님! 의뢰인! 의뢰인 오시는데요!”
잠깐 사무실 문을 열어 보았던 강민재가 소리쳤다.
나는 문득 그들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똘마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태식이는 아무래도 있던 신용도 다 떨어트릴 것 같은 비주얼이다.
노인 혹은 심약자가 보면 과호흡으로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
“너희들 일단 베란다에 숨어.”
“예? 왜요?”
“강 변도 너 보고 쫄았는데, 심약하고 젊은 여성이 널 보면 쫄겠냐, 안 쫄겠냐?”
“…….”
태식이는 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인정하기 싫은지,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내 말대로 똘마니들을 이끌고 베란다로 나갔다.
사무실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셋이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나는 적당히 내 의자로 비어져 나와 보이는 부분들을 가렸고, 곧이어 의뢰인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음료는 어떤…….”
다시 웨이터 모드가 된 강민재가 물었다.
의뢰인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누가 계셨었나 봐요.”
“아, 조사원이 다녀 가셨어요. 어서 앉으세요.”
“와, 조사원도 계시는군요. 참! 제가 커피 사 왔어요. 두 분 아메리카노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예? 누가요?”
“1층 카페 알바분이 그러시던데요?”
김연준 씨를 말하는 건가.
참 여전하다.
“어, 우선 제 사건 수임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믿고 찾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태식이가 있을 때와 180도 달라진 강민재가 싹싹하게 대답했다.
의뢰인이 작게 웃었다.
“두 분 의견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승산이 있으니까…… 수임하신다고 하신 거겠죠?”
“그렇습니다.”
승산도 있고.
푸른섬 미디어가 우신 계열사기도 하고.
겸사겸사지만,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저도 같이 준비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유사성 부분도 심각할 정도로 비숫하고, 의거성도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의거성 부분을 면밀하게 검토하기 위해 조사원에게 좀 더 정보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의거성이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요. 메일도 수신확인 되어 있었고, 심사위원들이 다 읽었을 테고…….”
의뢰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씀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메일을 서버 오류라고 하거나, 심사 과정에서 누락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인정받으면 의거성이 사라집니다. 표절 재판의 3대 요소인 원저작물의 창작성, 의거성, 실질적 유사성. 이 세 가지 중에서 의거성이 재판에서 키 포인트가 될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실질적 유사성은 인정받기 몹시 힘든 영역입니다.”
“유사하지 않다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희가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작물이 비슷한 정도에 따라 그쪽에서 해야 하는 보상의 단위가 커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실질적 유사성을 입증해야죠. 그런데 이 유사성을 입증하는 단계에서, 의거성이 확실하게 증명되면 좀 더 수월하게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증거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많이 어렵네요. 그렇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우선 저희가 알아낸 것은, 푸른섬 미디어가 공모전에서 2차 선발까지 올라간 작품을 제본해서 제작팀 직원과 심사위원 전부에게 돌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뢰인 분의 작품은 2차 선발에 올라갔다고 가정했을때, 제본소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 제본소를 방금 막 찾아냈고요.”
“제본해서 보는 건 몰랐어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전화 한 통으로 간단히 알아낸 정보였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거기서 얼마큼의 정보를 캐낼 수 있느냐가 문제긴 합니다마는. 자세한 보고는 차차 문서화해서 송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이 한숨을 쉬었다.
강민재는 슬쩍 인쇄기로 다가가며 그녀에게 말했다.
“가는 여정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의뢰인께서도 의욕적으로 임해 주시면 이길 수 있을 거예요. 고소하기 전에 확보할 것들을 확보해 두고, 그다음에 고소해야 증거 입수가 편해요. 고소당했다는 걸 알면 그쪽에서도 증거 인멸을 시도할 테니까요. 시간은 충분하십니까? 오래 걸리는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네. 지망생이라, 계속 원고 작업하고 있거든요. 거의 집 아니면 카페인데 뭐가 바쁘겠어요.”
“그러시군요. 수임이 결정되었으니 계약서부터 한 부 작성하시죠.”
물 흘러가듯 강민재가 인쇄기에서 갓 뽑아온 계약서를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수임 계약서는 또 언제 만든 걸까.
시키지는 않았으나 필요한 일들을 저렇게 알아서 잘하니, 받아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착수금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세요?”
“제가 가진 게 많지 않아서, 한 오백만 원 아래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 괜찮으실까요?”
“아, 그러시군요.”
강민재가 안타깝다는 듯 말하며 내 눈치를 봤다.
의뢰인은 조금 위축되어, ‘너무 적은가요?’하고 되묻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시죠. 착수금은 300만원 정도만 받겠습니다.”
“변호사님!”
이런 재판에 꼴랑 착수금 300만원이 말이냐는 식으로, 강민재가 나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대신 성공 보수는 의뢰인께서 받으실 보상 금액의 30% 어떠십니까.”
이전 판례를 보면, 피고인의 드라마가 원고 시나리오의 리메이크로 인정 받을 경우, 고인 작가료의 1/3가량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정혜진 작가의 회당 고료는 4천만원.
24화를 통틀어 9억 6천만 원의 고료를 받게 되어 있다.
물론 나는 더 세게 부를 생각이지만, 이 정도로만 인정을 받아도 30퍼센트면 약 3억 2천만 원.
하지만, 피고인은 정혜진 작가 한명이 아니라, 드라마를 만든 푸른섬 미디어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푸른섬 미디어가 이 드라마로 인해 이득 본 것까지 더해서 더 큰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더 멀리 나아가, 완전한 도용으로 인정 받을 경우에는 액수가 더욱 커진다.
지금 <당신과 나의 거리>가 벌어 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본방 수입과 PPL 수익, 드라마 앞뒤로 붙는 광고 수익, VOD와 OST 수익까지 약 200억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순수익은 약 100억으로 추산된다.
승소만 한다면 의뢰인은 하루아침에 큰돈을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정혜진 작가와 푸른섬 미디어가 벌어들인 모든 수익은 본래 의뢰인이 받았어야 할 것들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들이 번 돈을 최대한 높은 비율로 우리가 가져오는 것이 최선이다.
“좋아요.”
강민재는 빠르게 특약 사항을 첨가해서 계약서를 만들어 왔다.
의뢰인은 곧바로 망설임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은성 씨가 궁극적으로 바라시는건 뭡니까?”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나은성 씨가 고소하기로 결심하셨을 때,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보상받고 싶으셨냐는 뜻입니다.”
“……처음엔, 그냥 제 저작물이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눈을 굴리며 지난 감정들을 떠올리려는 듯했다.
“그런데 비슷한 표절 사건들을 찾아보니까, 재판은커녕 인터넷에서 조금 회자되고 끝나는 케이스가 많았고요. 그래서…….”
“네.”
“저는 그냥, 알리고 싶어요. 이 저작물이 원래 제 거라는 사실을요.”
“금전적인 보상은 원하지 않으십니까?”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마음 같아서는 정혜진 작가가 받은 작가료나 푸른섬 미디어가 본 이득을 전부 뺏어 오고 싶지만, 안 된다는 거 알아요.”
“최대한 많이 뺏어 오고 싶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그 누구도 금전 없이는 살 수 없고, 그것은 심지어 수도승이나 신부들도 마찬가지다.
창작하는 사람은 창작물로 돈을 벌어야 하고, 변호하는 사람은 재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녀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전 돈은 필요없어요’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많이 뺏어 오기. 그걸 목표로 잡고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저, 착수금은 바로 입금할게요. 계좌번호를 알려 주시면,”
“여기로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나은성 씨.”
강민재는 재빨리 내 사업자 명의의 구좌를 알려 주었다.
정말이지, 못 당해 낼 것 같다.
착수금을 이체한 나은성은, 자신의 의견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밤낮가리지 말고 연락 달라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베란다 문이 열리며 쿠당탕 덩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오, 다리 저려!”
“저는 팔 저립니다, 형님!”
“형님이 제 발을 밟고 계셔서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우, 아오오.”
“그래서 이 새끼들아. 그래서! 어쩌라고 이 개새끼들아!”
지들끼리 머리 때리고 멱살 잡고 난리가 났기에, 나는 그들이 다 놀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나의 시선을 의식한 태식이가 헛기침하며 옷을 정리했다.
“의뢰인 말 들었지?”
“……예.”
“의뢰인 대본 출력소에 찾으러 가라. 이번에도 역시,”
“예에. 푸른섬 미디어 모르게요.”
태식이 내 말을 가로채며 대꾸했다.
그리고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인 뒤에, 문 앞으로 걸어갔다.
“제가 까짓거 못 찾아낼 것 같습니까?”
사무실을 나가기 전, 태식이가 나를 돌아보며 대뜸 소리쳤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문득, 이전 삶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가볍게 웃었다.
“아니. 찾아낼 것 같다.”
“…….”
태식이는 말이 없었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새로운 게 발견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편히 쉬십쇼.”
“편히 쉬십쇼!”
태식이와 똘마니들이 사무실을 빠져나간 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첫 민사 재판이다.
패소한 적 없는 나의 커리어에 흠이 될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