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
너희들은 변호됐다-3화(3/641)
황영찬은 나를 바라보며 빈정거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이런 거로 열 받으면 안 되지.
난 너한테 뒤통수 맞고 시멘트에 담겨서 죽었는데.
“하하, 지금 웃었나?”
“웃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자네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궁금하군. 철 지난 반항인가?”
나는 이때 황영찬과 꽤 친했다.
그는 늘 합리적인 척, 깨끗한 척을 했지만 나에게만은 온갖 법조인들의 흉을 봤다.
우연히 알게 된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는 양념이었고.
나는 그걸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뿐인가?
황영찬이 아내와 싸웠을 때, 자식이 속 썩일 때, 높으신 분들이 그에게 꼽 줬을 때, 그밖에 기타 등등.
하소연이 필요할 때 그는 늘 나를 찾았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무시하니, 퍽 불안했을 것이다.
‘개새끼. 그런 내 뒤통수를 쳐?’
다시 생각해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2008년의 황영찬과 2018년의 황영찬 사이의 갭이 너무 커서 어이가 없는 지경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황영찬이 그렇게 된 것은.
“말해 봐. 나한테 서운한 일이라도 있나? 그런 게 있다면 풀어야지.”
황영찬은 내가 오자마자 왜 연락을 무시했는지, 전화를 씹었는지, 그 이유를 줄줄 불며 사죄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보통의 평검사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보통의 평검사’라면 애초에 부장의 연락을 무시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해 봐, 차 프로. 아니면 집안에 우환이 있나? 표정이 안 좋은 거보면 그런 것 같은데. 오 계장한테 물어봐도 자네가 요 며칠 사이에 좀 변한 것 같다고 하고.”
내가 연락을 무시한 것은 내가 아니라, 황영찬을 위해서였다.
진정되지 않은 채로 그를 만나면 턱주가리를 날려 버릴 것 같아서.
“왜, 말하기 힘든 문제가 있나? 나한테 말해 봐.”
문제? 있지.
사흘이나 마음을 진정시켰는데, 아직도 황영찬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리고 싶은 문제가 있다.
“없습니다.”
“서운하군.”
“제 모든 걸 전부 부장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내 대답에 황영찬이 한 방 먹은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뻔했다.
‘이 새끼가 감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배신감을 느낀 듯,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제 모든 걸 부장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한테 화난 게 있는 것 같은데. 끝까지 말 안 할 생각인가?”
“없습니다.”
황영찬은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창가에 서서 밑을 내려다봤다.
대단히 열 받았을 때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내게 화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황영찬의 자랑스러운 ‘새끼’니까.
정말로 혈연관계라는 게 아니라, 황영찬이 키우는 검사라는 뜻이다.
검사장이 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직접 나를 콕 집어 ‘물건’이라며 칭찬했고, 황영찬을 따로 불러 잘 키워 보라고 했다고 들었다.
실제로도 그가 검사장이 될 때, 내가 그의 밑에서 처리한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그의 치적이 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내가 품에서 빠져나가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그간 내게 흉보았던 것이 있으니, 내가 어디 가서 입이라도 놀리면 어떻게 될까.
공고하게 쌓아 둔 인품과 이성을 두루 갖춘 부장검사라는 이미지를 망치는 것은 한순간이다.
여러모로 황영찬이 아쉬운 입장이라는 뜻이다.
“이따가 술이나 한 잔 하지. 시간 비워 놔.”
황영찬이 화를 가라앉힌 듯,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황영찬과 술을 먹느니, 아까 날 검사 형님이라고 부르던 그 피의자와 먹겠다.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
“달리 지시 사항 없으시면 그만 가보겠습니다. 바빠서.”
“그래. 그만 들어가 봐.”
황영찬은 찜찜한 얼굴로 손짓했다.
닫힌 문 너머에서 물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부터 그렇게 권위주의적인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평검사가 삐대는 것 하나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져 대는 꼴이라니.
그러게, 인생 좀 똑바로 살지 그랬냐.
지잉-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갈까 해서 흡연구역으로 나왔는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오늘 만나기로 한 거 안 까먹었지? 이따 8시에 거기서 보자 -동진]나는 발신인의 이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서 오 계장에게 선약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정말로 있었을 줄이야.
그것도 동진이와.
‘그래, 이때는……. 이때는 동진이가 살아 있었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 * *
“아이고, 검사님. 오랜만에 오시네요?”
대박집.
테이블 5개 겨우 들어가는 소규모 식당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제법 크기가 되는 양대창집이다.
양동진과의 고정적인 만남 장소였다.
하도 드나들다 보니 사장이 우리 이름을 전부 외웠을 정도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장사 잘되네요.”
“그럼요. 흐흐. 맨날 오늘만 같았으면 소원이 없겄습니다.”
흡연구역에서 빠르게 담배를 몇 번 빨며 사장이 대답했다.
대박집은 2014년에 문을 닫는다. 장사가 안 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맛있는 곳이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어서 들어가시죠. 친구분도 기다리고 있어요.”
“사장님.”
“네?”
“아드님들 너무 믿지 마시고, 다 퍼 주지 마십시오.”
저 양반은 자식들 사업 말아먹은 거 메우느라 모아둔 재산을 전부 다 꼬라박았다.
끝내는 대박집까지 남에게 넘겼으니.
저 양반의 말로도 퍽 안쓰럽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오늘 청에서 들은 케이스가 있어서요. 사장님 걱정돼서.”
“허허. 에휴. 제 걱정해 주시는 건 검사님밖에 없네요. 우리 아들놈들도 다 검사님처럼 건실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엔 아주 그냥, 검사님 부모님이 제일 부럽습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어이, 차 검사! 여기다!”
빨간 앞치마를 한 양동진이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 조진태 사건 뉴스에 나온 거 봤어. 크크. 회사에서 엄청 자랑했다. 저 사건 맡은 게 내 친구라고.”
양동진은 2008년 기준으로, 내 유일한 친구다.
“참. 엄마 아는 사람이 지방에서 사과 농장 한다고, 한 박스 시켜 준다던데. 너도 하나 보내 주랴?”
“난 됐어. 집에 자주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검사실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으면 되지.”
“사과 깎을 시간도 없다.”
“보약은 못 지어먹어도 과일은 먹어 줘야 돼. 우리 이제 20대 아니다. 40대 금방이다, 너. 우리 벌써 서른넷이야.”
“그래야지.”
대학병원 의사인 동진도, 나도 일이 바빠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오랜 친구가 다 그렇듯이, 간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양동진은 변함없었다.
나는 아니었지만.
“얼른 먹어라. 다 탄다.”
동진이 집게로 내 파채 위에 잘 구워진 대창들을 놓아주었다.
“내가 할게.”
“뭐냐, 너 오늘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구냐? 나한테 뭐 화 난 거 있냐?”
눈치는 전부터 참 빨랐지.
내가 이렇게 어색하게 구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주한아, 한 번만 도와줘라. 제발, 부탁이다. 나 정말 끝나. 이대로면 정말 끝난다고. 제발…….
-동진아.
-내가 정말, 너한테만큼은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그러니까 제발, 주한아. 나 좀 도와줘.
-미안하다, 동진아.
이전 삶에서,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무릎까지 꿇었던 놈을 내가 외면했으니.
“아니, 그냥 생각이 좀 많다.”
“생각이 왜 많아? 무슨 일 있냐?”
“나 사표 쓰려고.”
“뭐어?”
쿠당탕탕!
양동진이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모였지만, 양동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야, 미쳤냐? 무슨 벌써부터 사표야? 돌았어?”
“진정해라, 인마. 앉아.”
“나라에서 이제 그만 노인정으로 꺼지라고 할 때까지 검찰청에 붙어 있을 것 같은 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검사 신분으로 우신을 잡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나를 결점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을 것.
후에 어떻게 책 잡혀서 떠내려갈지 모르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게 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됐어.”
내가 울며 간청하는 동진을 외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동진을 도와주면 나중에 약점으로 작용할 것 같아서.
우신 스나이퍼로 살기 위해, 나는 많은 사람을 잃었다.
전처, 친구, 동료들…….
그래, 전처와 이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동진이 일은 달랐다.
마지막으로 친구인 나에게마저 버림받은 그는, 결국…….
-주한 씨, 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주한 씨!
-…….
-우리 애 아빠가, 정말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주한 씨 찾아가서,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 그거 하나, 그거 하나 들어주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요?
-……미안합니다.
-미안하면 다예요? 우리 애 아빠 살려 내요. 내 남편 살려 내! 내 남편…… 흐흑, 내 남편 살려 내! 어흐흑, 내 남편 살려 내요, 내 남편……. 끄윽, 흑흑.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으니까.
나는 벼랑 끝에서 살아 보겠다고 손을 뻗은 죽마고우를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과거로 돌아와, 살아 있는 그를 마주 보고 있다.
마치, 다시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처럼.
“무슨 사정이 있었는데?”
“나중에 말해 줄게.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돼서.”
“어휴, 이 새끼 진짜.”
“변호사 개업하면, 주변에 도움 필요한 사람들 있으면 나한테 좀 보내줘라. 며칠 전에 조진태 잡은 그 검사라고 꼭 덧붙이고.”
“어련하겠냐, 새끼야. 화환도 보내준다. 혹시 나중에 내가 찾아가면, 그때 할인 팍팍 해 줘.”
“네가 찾아올 일 없어야지. 그래야 좋은 거야.”
“글쎄다. 이혼 소송 같은 거 부탁할 수도 있잖냐.”
“제수씨가 먼저 찾아오면 제수씨 대리인 할 거다. 제수씨 쪽이 더 승산이 있는 것 같거든.”
“아나 이 새끼. 친구 사이에 그러기냐? 하하, 미친놈. 마셔.”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셨다.
이렇게 마셔 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간 일부러 술을 멀리해 왔다.
혹시나 내가 술김에 우신 이야기를 줄줄 불까 두렵기도 했고, 술김에 어디 납치되거나 사고라도 당하진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으니까.
“아니, 이 새끼는 안 그러던 놈이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마시고 지랄이야?”
동진은 나를 부축해서 차에 쑤셔 넣었다.
오랜 세월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헤어지는 게 퍽 아쉽다.
동진은 차 문을 세게 닫으며 대리기사에게 출발을 외쳤다.
나는 흐릿하게 기억에 남은 주소만 불러 주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장님, 다 왔는데요.”
“으으.”
깊게 잔 탓인지, 술에서 완전히 깼다. 지갑을 꺼내 돈을 건네려다, 문득 차창 너머의 풍경에 헛웃음이 나왔다.
“기사님, 죄송하지만 서초동으로 가 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사장님이 방배동이라면서요?”
“제가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술김에 예전 주소를 불러 드린 것 같습니다.”
“에휴. 요금 추가되는 거 아시죠?”
무심코 2018년에 살았던 방배동 오피스텔 주소를 불러 버렸다.
역시 이전 삶에서 술을 멀리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10년이나 젊은 몸으로도 술김에 이런 실수를 하는데, 그때였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끙.”
오피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주저앉았다. 휴대폰에 도착한 밀린 연락들을 확인했다.
[집에 잘 들어갔냐? -동진]그렇다고 답장해 주고.
[차주한 검사님, 로펌 태광입니다. 며칠간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한 번 뵙고 싶은데 연락 부탁드립니다.]로펌 태광.
글자만 봐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태광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다.
대기업의 갖은 소송을 위임받아 덩치를 불려 온 법조계의 괴물 집단.
나에게도 세 번의 러브콜을 보냈다.
처음엔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을 때였다.
내 목표는 검사였기 때문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다.
이후 5년 차에 한 번, 7년 차에 한 번씩 두드렸으니.
지금이 두 번째 타이밍인가 보다.
‘개새끼들. 그래, 니들 낯짝 한번 봐 주마.’
태광은 우신의 소송을 전담하는 로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 있었던 안트로졸 부작용 소송도 태광에서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우신 회장 비자금 재판에서 나와 피 튀기며 싸웠다.
미래의 적이자 과거의 적.
미리 얼굴 한번 봐 두는 것도 워밍업으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