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0)
너희들은 변호됐다-30화(30/641)
“아니, 여기서 하루 종일 뭐 하세요들? 쓰레기를 막 헤쳐 놓고. 이거 당신들이 다 치울 거요?”
밤 11시.
출력소 불을 모두 끄고 바깥 폐휴지 수거장으로 다가온 사장이 세 명의 덩치에게 물었다.
그는 노끈으로 묶은 종이 더미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 앞에 쪼르르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세 명은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고양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예?”
“고양이가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찾고 있습니다.”
“……고양이가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그냥 길고양이처럼 생겼습니다. 애기일 때 제가 주워 왔거든요. 근데 그놈이 글쎄…… 따흑, 뜨흐흑!”
태식이 팔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자, 똘마니들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형님!”
“이쪽 근방에서 사라졌으니 우리 나비가 좋아하던 걸 놓아두면 올 겁니다, 형님!”
대철이 자신들 앞에 놓인 작은 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겠지? 뜨흐흑…….”
“그렇습니다, 형님! 힘을 내십쇼!”
“쯧쯧. 안됐구먼. 생긴 거라도 알려줘 봐요. 내가 찾으면 말이라도 해주게.”
“까맣고, 흰 얼룩이 있습니다. 얼굴에도 희고 큰 점이 있고, 흰 양말을 신어서 얼마나 귀여웠는데요. 쪼꼬야……. 아빠가 보고 싶다…….”
“형님! 나비요, 나비!”
옆에서 형식이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태식이 더욱 크게 곡소리를 내며 절규했다.
“나비야아아아!”
“쯧쯧……. 꼭 찾으슈.”
출력소 사장은 혀를 차며 종이 더미를 쓰레기장에 휙 던져 놓았다.
그리고 태식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신의 차에 몸을 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완전히 골목에서 사라졌다.
“……갔냐?”
고개를 팔에 처박고 있던 태식이 작게 물었다.
“예! 갔습니다, 형님.”
“찾아!”
태식이 피가 몰려 빨개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형식은 빠르게 쓰레기 더미로 뛰어 들었고, 대철은 문득 태식을 올려다보았다.
“형님. 눈가에 눈물이 조금 맺히신 것 같습니다.”
“너무 감정 이입이 심했다……. 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배우 했으면 깐느 갔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쓰레기 더미로 뛰어들었다.
“곧 있으면 또 드라마 새로운 편이 방송되겠네요.”
강민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24화로 끝난다는 드라마 <당신과 나의 거리>는 어느덧 15화 방영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내용이 의뢰인을 괴롭게 할지 궁금한 지경이었다.
의뢰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의식한 것 같다는 내 추측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대놓고 베끼던 대사를 토씨 하나쯤은 바꿔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말인데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던 중, 강민재가 말했다.
여자 주인공이 사는 달동네와 남자주인공이 사는 부자 동네가 노골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저기가 이양구 삼창동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드라마에서 필터나 효과를 준 것 말고는 다 저곳에 그대로 있다고 하던데요? 펜스도요. 그리고 부자 동네 상징하는 저 높은 건물들도.”
실존하는 공간이라.
두 각본 사이에는 수많은 공통점들이 있지만, 통속 드라마가 늘 그러하듯 단순한 겹침인 것들이 더 많다.
나은성 씨의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포인트로 잡아 밀어붙여야 한다.
나는 그게 바로 저 동네와 두 지역을 대비시키는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조건이 똑같다면, 푸른섬 미디어 측에서 같은 지역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변명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선 나은성 씨한테 저기서 영감받으신 게 맞냐고 물어보고, 저쪽에 한번 가 봐야겠는데.”
“넵. 그런데 언론 플레이는 언제부터 하실 겁니까? 아무래도 고소하기 전에 터트리는 게, 뭐랄까……. 같은 사례에서도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시작하는 게 여론 싸움에서도 유리했고요.”
“터트리는 건 나은성 씨가 혼자 해야 해. 우리가 뒤에 있다는 게 밝혀지면 푸른섬 미디어도 준비를 시작할 테니까. 계속 힘없이 묻히고 묻히지만,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 기사화해 주고 게시판에서 네티즌들이 웅성웅성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고. 그러다 방심한 뒤를 잡는 거지.”
나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정혜진은 슬슬 발이 저리는지 대사를 조금씩 바꾸고 있어. 만일 인터넷에서 조금이라도 소동이 일어난다면, 아예 내용을 고치려고 할 거야. 그러면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유사점을 확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럼 계속 드라마가 끝까지 방영될 때까지 기다리신단 말씀입니까? 나은성 씨가 많이 힘들어할 텐데요.”
“끝까지는 말고. 한 20회까지 방영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 20회에 주인공들 과거 진실이 밝혀지니까, 남은 4회는 어차피 마무리 단계일 거야. 나은성 씨의 시나리오에서는 그 4회 동안 큰 사건이 없어. 둘이 이어지고 알콩달콩 잘 사는 내용 위주였거든.”
어차피 내일이 16화 방영일이고, 2주 지나면 20화가 방영된다.
오히려 그쯤 되면, 기다리는 의뢰인의 속은 좀 타겠지만, <당신과 나의 거리>는 더욱 큰 수입을 올리고 있을 터였다.
승소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금원도 커진다는 뜻이다.
의뢰인의 애타는 마음을 케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오늘도 비슷한 장면이 세 개쯤 나온 것 같습니다. 그중 흔한 장면을 제외하면, 유의미한 것은 하나 정도.”
“한 회에 한 장면씩만 건져도 24개인데. 나쁘지 않지.”
“그렇네요. 아, 잠시만요. 나은성 씨 전화가 와서요.”
드라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걸려온 전화다.
그녀는 무척 화가 난 상태일 것이다.
“스피커폰으로 받아 봐.”
“네. 여보세요. 나은성 씨?”
-아, 강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저 오늘 드라마 보고 너무 열 받아서요.
“저희도 방금 막 드라마를 보고 장면을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나은성 씨 많이 화가 나시는 건 알겠지만, 조금 진정,”
-이번에는 그냥 참을 수가 없어요. 이건 백퍼예요. 백퍼라구요!
“나은성 씨, 일단 진정…….”
“잠깐만.”
나는 강민재를 잠시 저지했다.
“나은성 씨.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네.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셨습니까? 저희에게도 공유를 좀 해주시죠.”
나은성은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쩌면 차분하다기보다는 흥분하는 것에 지쳐 힘이 빠진 거라고 해야 맞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늘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흥분했다면 큰 이슈가 있다는 뜻이다.
-퓨리어 얘기요.
나는 오늘 방영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재벌인 남자 주인공이 자신을 배척하는 회사 임원에게 경고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김 이사님. 혹시 퓨리어라는 맹수를 아십니까?] [하하, 제가 그쪽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맹수입니다. 꽤 사나운 녀석이죠. 맹수의 왕인 사자에게 이 퓨리어는 꽤나 큰 적수입니다.] [그렇군요. 처음 듣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심플합니다. 사자가 사냥한 먹이를, 퓨리어가 채가기 때문이죠. 기껏 사냥해 놨더니, 방심한 사이에 웬 놈이 나타나서 자신을 패 버리고 그 사냥감을 뺏어가는 겁니다. 열이 받겠습니까, 안받겠습니까?] [상당히 얍삽한 놈이네요.] [얍삽하기도 하지만, 영리하기도 하죠. 손쉬운 사냥이 될 테니까요.] [그렇네요.] [저는 그런 퓨리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아 볼까 합니다.]“네, 퓨리어 기억합니다. 오늘 김이사와 대립하는 장면에서 나왔었고. 나은성 씨의 시나리오에도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상황이 조금 달랐지만.”
-퓨리어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에요. 제가 만들어 낸 거라구요!
순식간에 사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독창적인 표현], [원저작물의 창작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장면이다.-저 못 참겠어요, 변호사님. 제발, 빨리 진행해 주세요.
“나은성 씨. 이렇게 하시죠.”
나는 아까 강민재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그녀와 공유했다.
다시 한번 적당한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을 만한 곳에 유사성을 폭로하는 글을 올리는 것.
그리고 ‘고소하면 어차피 질 걸 알기에 사람들에게 저 저작물이 내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코멘트를 붙인다.
인터넷 뉴스가 가장 먼저 냄새를 맡고 조금씩 기사화할 것이고, 일부는 정혜진 작가에게 직접 물을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 측에서는 저런 주장을 ‘사실무근’이라고 표현할 터.
이런 류의 논란들은 이런 식으로 금세 사장되곤 했다.
“제가 알아보니, 다음 주 방송분을 전 주에 미리 찍는다고 하더군요.”
-……네.
“지금쯤 17화와 18화를 찍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다음 주에 19화와 20화를 찍을거고요.”
-네.
“다음 주까지 인터넷에 올릴 글을 작성하죠.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흠 잡힐 데 없도록 잘 메이드해서 나은성 씨 블로그와 이런저런 사이트에 올리는 겁니다.”
-아예 시나리오까지 공개할까요? 모두가 열람할 수 있게요.
“그건 아직입니다. 시나리오를 본 게 푸른섬 미디어뿐인 것을 이용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러시군요. 네. 알겠어요.
“글을 올린 뒤, 반응을 봐서 시원찮으면 제가 기사화라도 시켜 보겠습니다.”
윤세연 기자에게 부탁하면, 어디 작은 인터넷 뉴스 기자라도 소개해 줄지도 모른다.
내 인터뷰뿐만 아니라 강민재 인터뷰까지 뜯어 갔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날 도울 차례라고 말해도 될 거고.
……그렇게 그녀와 나 사이의 거래는 무한 루프가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알겠어요.
“그럼 여태까지 새로 방영된 부분까지 나은성 씨가 생각하시는 유사점들 추가해서 글 주십시오. 그런 다음 저희와 함께 수정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글 작성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은성 씨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생물을 만들어 냈다.
그 특징까지 부여해 가면서 리얼리티를 쌓아 올렸다.
그것을 그대로 정혜진이 사용했다.
최소한 실제로 존재하는지 검색조차 해 보지 않았다는 소리다.
정혜진은 성의 없이 대본을 쓰고, 그것으로 수억의 고료를 챙기고 있다.
어쩌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안일해 보이는 이 모습은, 마치 이미 몇 번 해 보았지만 걸리지 않아서 경계가 해이해진 사람처럼 보인다.
“강 변.”
“예?”
“정혜진 드라마 전작들. 혹시 이런 식으로 유사성 얘기 없었는지 좀 찾아봐.”
“네.”
강민재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의 장점은 내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데에 있다.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낸 강민재가 잽싸게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에 도는 소문이 있는지도 한번쯤 확인해 볼 만하다.
“강 변. 그 때 김연준 씨 사건 때 만났던 그 조감독 말야. 번호 좀 나한테 보내 봐.”
“예, 알겠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길 위에서 서성이다, 조금씩 길을 찾아 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