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02)
너희들은 변호됐다-302화(302/641)
“민재가 많이 늦네요.”
시계를 보던 강 실장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평소엔 한 시간 반, 도로가 뻥 뚫린 밤에는 빠르면 40분 만에 주파 가능한 거리임을 감안하더라도 걱정할 만큼 오래 지난 때는 아니었다.
“먼저 주무시죠. 늦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애가 안 왔는데 먼저 자긴 좀 그렇잖습니까.”
과보호인가?
여태까지 이 집안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서른 살도 넘은 시커먼 남자가 3시까지 들어오지 않는다고 걱정하다니.
심지어 가는 곳이 어딘지도 밝혔는데.
어쩌면 이따금 그가 나에게 해 주던 강민재의 거친 과거 이야기도 그의 시각이 섞인 과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전 자러 가겠습니다.”
강 실장이 여기서 포기하고 자러 간다고 해도, 어차피 강관웅이 곧 일어날 것이다.
그는 퇴임한 이후에도 5시로 고정한 기상 시간을 어긴 적은 없다고 했다.
2시간만 더 있으면 어차피 강관웅이 그를 맞아 줄 텐데, 굳이 이렇게 두 명씩이나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내 말에, 강 실장은 진심이냐고 묻고 싶은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표정은 상당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생각이 읽히는 수준이 되었다.
아마 속으로 ‘민재가 너를 위해서 이 새벽에 고생하는데 속 편하게 먼저 자겠다는 거냐?’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정 걱정되시면 전화해 보시죠.”
놀랍게도, 강 실장은 아직 강민재에게 전화조차 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않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가 정말 잠이 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방해될 것 같고, 또 자기 과보호한다고 짜증 낼 수도 있어서요.”
역시 강민재에게 불평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것 같다.
우리 사무실에 오고 나서도 외근이든, 회식이든 여러 가지 이유로 몇번 외박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어떻게 견뎠을지 모르겠다.
“변호사님도 민재가 걱정돼서 나와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저는 잠이 안 오는데 담배 피우러 가려면 1층까지 내려와야 하니까 그게 귀찮아서 여기 있었습니다.”
“방에서 피우셔도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러면 환기를 시켜도 자기 전에 냄새가 사라지지 않으면 담배 연기를 마시면서 자는 기분이라서요.”
내 말에 강 실장은 한숨을 쉬었다.
나 역시 자신처럼 강민재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기를 기대했던 듯했다.
“……그럼 먼저 주무세요. 저라도 오는 거 보고 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잖아도 슬슬 졸리던 차였다.
소파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하는 층계 쪽으로 몇 걸음 떼었는데,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 실장이 벌떡 일어났다.
“민재 왔나 봅니다. 뭐 하러 갔는지도 모르는데, 얘기나 듣고 올라가시죠.”
그는 묘하게 틱틱 거렸다.
내가 강민재가 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고 올라가 자 버릴 사람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곧 엔진음이 꺼지고, 강민재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손에 작은 쇼핑백을 들고 있었는데, 화군 저수지 앞 국밥집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었다.
“어, 아직 안 주무셨네요? ……형은 저 기다리셨을 테고.”
강민재는 강 실장을 향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곧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변호사님도 저 기다리신 거예요?”
이번에는 상당히 기대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아니, 그냥 잠이 안 와서.”
“저 때문에 잠이 안 오신 거네요. 하하.”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니라는 내 대답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본인의 용건부터 꺼낼 정도로.
“이거, 화군 저수지 앞에 있는 유명한 국밥집에서 사 온 건데요. 내일 다 같이 드세요. 여사님들하고 할아버지하고 형하고 변호사님도 드실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사 왔어요. 근데 변호사님은 화군 저수지에 안 좋은 기억 있으니까 혹시 드시고 싶지 않으시면 제가 여사님한테 미리 말해 둘게요.”
“그런 거 없는데.”
“다행이네요. 하, 피곤하다. 그럼 이거 갖다 놓고 올라가 볼게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부엌을 향해 몸을 틀었다.
“강 변.”
“네?”
“이 새벽에 갑자기 화군 저수지에 다녀왔으면 나한테 왜 갔다 왔는지 공유는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내 말에, 강민재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는 듯 입술을 매만지며 침음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송 때문에요. 그때 그 노숙자 아저씨 출연시킬 수 있을까 싶어서.”
[거짓]오랜만에 써 보는 능력이었다.
나는 그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글자를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애초에 능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굳이 이 밤에 노숙자를 만나기 위해 다급하게 뛰쳐나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강민재는 나의 시선을 받으며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그, 그럼 올라가 볼게요! 변호사님도 얼른 주무세요!”
뭔가를 알아낸 것 같은데, 일부러 나에게 숨기는 것 같다.
이유는…….
글쎄, 내가 그의 속마음까지 전부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니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동진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동진에게 모든 진행 과정을 알려주지는 않았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언급해서 괜히 희망을 갖게 하고, 그러다가 그 희망이 좌절되면 두 배로 힘드니까.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충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오늘은 방송 없어?”
다음 날 아침, 그가 사 온 해장국을 먹으며 내가 물었다.
“없어요. 뭐, 더 공개할 것도 없고.”
처음부터 새로운 목격자인 노숙자의 존재와 그가 건넨 손수건에 대해서는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했으니, 컨텐츠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노숙자를 통해 확보한 진술과 증거는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것보다는 경찰에 넘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방송을 통해 공개하면 여러모로 확실해지겠지만, 경찰이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목격자가 있다는 것도 알아내지 못한 경찰의 수사력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어질 것이 분명하니까.
무엇보다, 우리를 상도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면 미움받을 것을 감안하고 그렇게 진행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이다.
아직 수사권은 경찰에 있다.
검찰에 넘어갈 경우 여러 가지 이해관계들이 얽히고 설킬 가능성이 있기에, 그 전에 끝내려면 경찰에 최대한 잘 보여야 한다.
“아까 보니까 형님들 공지 올렸던데요.”
“무슨 공지?”
밥을 먹으며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예의 바른 말투로 공지가 올라와있었다.
[안녕하세요.최종현, 조봉준입니다.
원래 오늘은 정기 방송일이지만, 취재를 위하여 한 차례 쉬어 갑니다.
더불어, 취재 상황에 따라 다음 주 정기 방송도 휴방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청자분들께 보다 확실한 정보, 보다 빠른 정보를 전달해 드리기 위함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정보는 모이고 있고, 질적으로도 꽤 괜찮아서 저희도 기대가 큽니다.
최대한 빠르게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Xnajkl10: 공지에서 조교PD의 냄새가 난다….
wjdguddn90 : 형들 조교PD한테 얼차려 받고 있는거면 경찰에 신고해…!
rlaalstjdll : ㅅㅂ휴방 지겹다
harry1981 : 또 휴방이냐 미친놈들아 그냥 방송 때려치워
togoqhraksgdl : 휴방좀 그만해;;;;
qkedmtpdy : ㅅㅂ책임감 존나 없네 사람들한테 혼란줘놓고 지들은 쏙 빠져서 방송을 안한다고?]
그들은 세상에 거대한 화두를 던져 놓고 휴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공지를 올려 공분을 산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좋은 의미의 공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니까.
“그럼 전 얼른 나가 봐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휴대폰으로 방송 댓글을 보고 있는데, 강민재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일어 났다.
“어디 가는데?”
“조사하러 가야죠. 그래야 변호사님이 빨리 풀려나시니까.”
“조사할 게 있어?”
“이제부터 조사할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죠. 식사 마저 하세요!”
우리는 노숙자가 건넨 증거를 조금 더 보강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경찰에도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뭔가를 더 제시하려면 조사를 해야 하는 건 맞다.
“고생해.”
“넵.”
그는 빠르게 대답하고 다이닝룸을 빠져나갔다.
원래라면 어디를 더 파 봐야 할 것 같냐며 나에게 의견을 물었을 테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노숙자에게 비밀을 엄수할 것임을, 그리고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는 각서까지 받아 둔 상태라 시간이 더 걸린다고 새삼 불안할 것은 없다.
……아니, 정확히는 불안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벌써 일주일이나 흘렀다는 사실이다.
그날 이후 강민재는 매일같이 어딘 가로 사라졌다.
조봉준과 최종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제나 회의할 것이 있다며 서류를 잔뜩 들고 이 집으로 왔었는데, 그들 역시 발걸음을 끊었다.
강민재가 집에 오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참다못한 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거냐고 물어도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나에게 보고할 것이 없냐는 말에도, 새롭게 알아낸 것은 없다고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이세화 당선 유력!]대선이 치러졌고,
[이세화 당선 확실!]이변 없이,
[이세화 당선 확정!]이세화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나는 결국 그녀에게 한 표 행사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결과는 좋게 나왔으니 다행이었다.
자유정의당은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이세화의 선거 캠프에서는 그녀에게 목걸이 화환을 걸어 주며 만세를 불렀다.
만일 이 사건이 없었다면 나도 저기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 * *
“오, 이세화 당선됐네.”
“한가한 소리 하지 말고 운전에나 집중해.”
라디오를 들으며 중얼거리는 조봉준의 말에 최종현이 라디오를 끄며 핀잔을 주었다.
“아니,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 일어났는데, 왜 라디오를 못 듣게 해! 뭐, 이세화가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 당선되니까 기분 좋네. 이세화 테마주 엄청 사 놨는데. 많이 오르겠지? 이미 엄청 오르긴 했 지만, 원래 이런 이슈가 확정되면 또 한 번 크게 반등하거든.”
“야! 너무 빠르게 달리잖아! 놓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두 사람이 말싸움을 벌이는 동안, 뒷좌석에 앉아 있던 강민재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근데 경찰은 계속 대선 시국에 묻어갈 생각인 걸까요? 그때 방송에서 터트린 게 한두 개가 아닌데 공식발표가 없네요.”
그날 방송 이후, 강민재는 경찰에서 새롭게 기자 회견을 열 거라고 생각했다.
문자 내역을 공개했으니, 이에 대해서 이정찬의 소지품과 자택을 수색해 봤을 때 문자에 언급한 자료는 없었다든지,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이정찬이 우신의 기밀 자료를 넘기려다가 죽었을 거라는 사람들의 추측은 갈수록 확장되어 온갖 설이 난무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우신이 직접 나설 수는 없는 상황이니, 경찰이라도 한마디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국과수를 닦달해서 2차 부검 결과라도 빨리 발표하지 않을까 싶었다.
검침원의 존재를 경찰은 왜 몰랐냐는 비난 여론도 확실히 있었으니까.
경찰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면 언론 쪽에서라도 계속 장작을 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조차도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이 일주일 남은 상황에, 특집 방송이 지속적으로 편성되면서 확실히 뉴스의 포커스도 그쪽으로 향했다.
우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한 것인지 밝혀진 것도 아니었고, 이정찬이 말한 그 고발 자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 역시 계속 할 말이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윤세연에게 기자들이 뭐라도 얻어내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들도 성과가 없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강민재는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이 꺼질까 두렵기도 했다.
이세화가 당선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업을 수 있는 건 팩트와 호의적인 여론뿐이지 않은가.
이세화 당선보다 차주한의 누명을 벗기는 게 더 중요하다.
“민재야, 근데 정말 괜찮은 거냐?”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한 조봉준이 룸미러에 그를 비춰보며 물었다.
“뭐가요?”
“저 새끼들 말이야.”
그들은 지금 한밤중의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대의 차량이 아닌 척 따라붙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 할 정도로, 상당히 조심스럽고 숙련된 움직임이었다.
“저 새끼들이 갑자기 뒤에서 받으면 어떡해.”
“그럴 리가 없어요. 저놈들이 저희를 죽이려고 하는 거면 진작 죽였을 거고, 차로 받아서 사고 낼 거였으면 진작 냈을 거예요. 적어도 목적지까지는 우리는 무조건 안전합니다.”
강민재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들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다.
방송에서 말을 흘린 지 일주일이나 지났고, 휴방 공지도 뉘앙스를 풀풀 풍겨 놨다.
그러니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들을 죽일 수 있었다.
대통령 손자인 강민재는 힘들더라도, 조봉준이나 최종현은 어렵지 않았을 터.
물론 죽이고 싶어도 방송에서 너무 많이 떠든 이후라, 그들이 죽으면 확실히 우신 짓이라는 말이 나올 게 분명하니 그러진 않을 거라는 계산이 서서 저지른 것이긴 하지만…….
“얼마나 남았어요?”
“10분 뜨네.”
“꽤 멀다. 근데 괜히 이러다가 우리만 손해 보는 상황 나을까 봐 걱정되네. 괜찮겠어, 정말? 그러면 지금이라도 다른 데로 가게.”
“전 우리가 리스크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확실하게 변호사님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리스크가 있어도 감안하고 진행할 단계가 됐다고 생각해요.”
“네 말이 맞긴 한데……. 차 변이 알면 난리 나지 않을까?”
“맞아. 너 엄청 혼날 텐데.”
“혼내시면 혼나야죠, 뭐.”
강민재의 시원한 대답에 최종현은 작게 웃었다.
어느덧 저 멀리에서 오성 조경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