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08)
너희들은 변호됐다-308화(308/641)
강민재가 집에 들어온 것은 나만은 정체를 모르는 ‘몸을 쓰는 일’이 있고 나서 사흘 뒤였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했다.”
강 실장이 그를 마중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강민재는 가증스럽게도, 강 실장에게 지방에 증언해 줄 만한 사람이 있다기에 그를 설득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한 상태였다.
강 실장이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만일 내가 오 사무장과의 통화를 강 실장 앞에서 했다면, 강민재는 분명히 강 실장에게 3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강민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사자인 나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상태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뤘는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변호사님,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결과는 어땠어. 증인 설득은 잘했어?”
“2층으로 올라가서 얘기해도 되나요? 저 옷도 좀 갈아입고, 또 씻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강민재의 양손에는 큰 손모아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아직 날이 쌀쌀하기는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강민재가 장갑을 끼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다친 게 분명했지만, 강 실장 앞에서 괜히 말했다가 귀찮은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다쳤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강민재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숨겼다.
오른손이 다쳤는데, 그쪽만 장갑을 끼면 의심을 살까 봐 양쪽 다 낀 모양이었다.
“……별로 안 다쳤어요.”
“그래? 붕대를 칭칭 감는 게 언제부터 별로 안 다치는 거였어?”
“변호사님 눈에 엑스레이 달렸어요?”
강민재가 기겁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뻔하지 않은가.
단순히 반창고를 붙이는 수준이 아니고, 붕대까지 칭칭 감아야 하니까 저렇게 숨긴 것이다.
평소 강민재의 취향을 생각하면, 반드시 장갑을 껴야 할 경우에는 손모아장갑보다는 가죽 장갑을 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손모아장갑을 선택한 이유 역시, 붕대를 감고도 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눈에 엑스레이가 달리지 않았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씻고 나와. 그런 다음에 이야기하자. 밥은 먹었어?”
“네. 오면서 휴게소에서 먹었어요.”
[거짓]강민재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거짓이라는 글자는 차치하고서라도,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냥 확실히 하자는 생각으로 써봤을 뿐인데, 확정적으로 거짓임을 확인하니 괘씸했다.
“나한테도 지방에 출장 갔다 온 척 할 생각이야?”
“……얼른 씻고 나올게요.”
강민재는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 역시 한숨을 쉬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오 사무장에게 강민재를 도와주라는 내용의 통화를 한 것이 그들과의 마지막 직접 연락이었다.
그 이후로는 강민재, 오 사무장, 최종현과 조봉준, 심지어 태식과 상길까지 짠 것처럼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강민재가 강 실장에게 하루에 한 번씩 생존 신고를 하는 것으로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듯하다.
그들이 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격렬하게 반대할 만한 일을 했을 것 같아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안전도 그러하거니와, 일의 성패와 그에 따라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까지도.
강민재가 씻는 틈을 타 오 사무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들끼리 약속이라도 해둔 게 아닐까 싶다.
강민재가 자신이 직접 알린 뒤에 연락 돌릴 테니, 그전에는 내 전화를 받지 말라는.
-변호사니임.
한 시간가량 지난 후에 문밖에서 강민재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말하자, 그는 롤케이크와 찻잔이 든 트레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강 실장이 나에게 ‘이거 잘 드시네요’라고 한 적이 있던 롤케이크와 차였다.
씻는 데 참 오래 걸린다 싶었는데, 다과를 준비해서 조금이라도 내 화를 풀어 볼 심산인 것 같았다.
“앉아.”
“넵. 저희 오붓하게 담배나 한 대씩 피우면서 얘기할까요?”
쿠션을 대체 몇 개나 까는 거야.
“마음대로 해. 그리고 그렇게 눈치 살살 보면서 말하지 말고 그냥 사실대로 말해.”
“그럼 화 안 내실 거예요?”
“그건 들어 봐야 알지.”
사실 내가 화를 낼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강민재가 무얼 했든지 간에 결국 내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것인데, 화를 내면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한 내가 그런 노력을 펌훼하는 셈이 될 것 같아서였다.
나는 펌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내 감정과는 별개로, 앞으로 나는 강민재와 계속 일해야 한다.
또 이런 일이 생겨서 언제 또 내가 부재할 상황이 올지 알 수 없다.
그때는 또다시 강민재가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지금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재차 위험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강민재는 내 반대로 인해 이런 방법들을 폐기해야 할 때마다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재한 상황이 오자 비로소 그 방법을 써 볼 수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성공시켜 나에게 이 방법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심이 자랐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검침원을 좀 몰아붙였어요.”
“몰아붙여?”
“네. 태식 씨네 식구들 동원해서 한림 상사 놈들이 검침원을 죽이러 온 것처럼 꾸몄어요. 그래서 검침원이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고, 그래서 자백하게끔.”
[거짓]처음부터 나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강민재는 대개 나에게 진심을 말하고 보여주지만, 오늘은 거짓뿐이었다.
나는 팔짱을 꼈다.
나에게 덜 혼날 생각으로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짜 온 것 같은데, 이러면 곤란하다.
“그래서?”
“그래서 태식 씨네 식구들이 한림 상사 놈들인 것처럼 쳐들어왔고, 저희끼리 막 남남인 것처럼 치고받았어요.”
“그걸 보고 검침원이 자길 죽이러 온 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
“네.”
“아하. 검침원은 자기랑 동고동락했던 한림 상사 사람들 얼굴도 모르나 보네?”
“……그건 아니고, 검침원은 소리만 들었죠. 저희가 그 방 앞에서 싸우는 척했거든요.”
“그럼 강 변 손은 왜 다쳤는데?”
“검침원이 안 보이는 데서 그러면 안 믿을까 봐 저희 다 조금씩 다치기로 했어요.”
[거짓]내가 추가로 질문할 때마다 조금씩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런 거짓말은 내가 아니어도, 태식이조차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강변 손 한번 보여줘 봐.”
“……안 돼요. 병원에서 다음 내원 때까지 풀지 말랬어요.”
“그래? 그럼 방금은 왼손으로 씻었어?”
“네.”
“그렇구나.”
“하하. 네. 그래도 잘됐죠? 검침원 자백받아냈으니까요!”
강민재는 이제야 안심한 듯 웃으며 종알대기 시작했다.
“검침원이 저희가 납치한 것도 납치 아닌 걸로 얘기해 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신 사장, 아, 신 사장은 그 사진 속에서 어깨동무 한 놈인데요. 신 사장이 시켰다는 얘기랑 우신도 관련 있다는 이야기도 해 줬어요. 저희가 다 동영상으로 찍어놨어요!”
검침원이 고작 그런 쇼를 한번 봤다고, 아니, 들었다고 자백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귀로만 들었다면 더더욱 의심했을 터.
나라도 그랬을 것이고, 태식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신 사장이 그렇게 쉽게 무리수를 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을 터.
오히려 납치당한 내내 자신이 신 사장에게 버림받았을 거란 생각은 이미 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납치한 지 한참이 지난 시점에, 여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이런 액션을 보였다면 의심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아무리 신 사장이라도 검침원이 다 불어 버릴 것 같은 상황이 온다면 어느 정도 무리수를 둘 만도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 이거 왠지 느낌이 오는데.
[하지만 계속해서 정보는 모이고 있고, 질적으로도 꽤 괜찮아서 저희도 기대가 큽니다.]문득, 최종현과 조봉준의 방송 공지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른다.
처음엔 노숙자의 증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의아하기도 했다.
우리는 노숙자의 증언을 공개하지 않고 경찰에게 넘기기로 했는데, 왜 갑자기 저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래서 당시에는 우신과 한림 상사 쪽을 긴장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블러핑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제 보니 이 인간들, 계속 한림 상사 쪽에 검침원이 자백할 거라는, 혹은 자백했다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잘됐네. 검침원 자백이 있으면 내가 무고하다는 건 밝힐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 사장을 우리가 잡아 줘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하려고?”
“그것도 생각해 놨어요. 검침원을 미끼로 삼아서 슬쩍 위치 노출하고, 신 사장이 검침원을 죽이러 오거나 다시 데리고 가려고 하면 그때 딱 잡는 거죠. 그건 저희가 다칠 일 없어요. 왜냐면 검침원 자백한 거 먼저 경찰에 넘기고 신 사장 확보 작업할 거라서요. 그땐 경찰 부르면 되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직감했다.
이것이 이번에 그들이 한 일임을.
하지만 경찰에 연락은 하지 못했을 테니, 결국 흥신소 직원들과 한림 상사 직원들이 패싸움을 벌인 것이다.
“아, 그렇게 해서 검침원 자백받고 신 사장도 잡은 거구나?”
“네. 헤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그쵸?”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강민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 방심하는 점과 너무 신나면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한 간단한 방법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검침원 위치 흘려서 신 사장이 쳐들어오게 했고, 그래서 개들하고 싸웠고, 그 과정에서 강 변은 다친 거네. 그치? 그리고 신 사장은 검침원을 죽이려고 했었고, 검침원은 신 사장이 자길 죽이려고 하는 걸 보고 배신감 느껴서 자백하겠다고 한 거지. 그리고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신 사장을 생포하는 데 성공했고. 태식이하고 태식이네 식구들, 그리고 강 변은 그거 때문에 다쳤구나. 또, 나는 오 사무장님을 그런 위험한 자리로 가라고 한 거네? 칼부림 나는 곳으로. 그렇지?”
“…….”
강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머리 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출력되지 않았지만, 나는 내 말이 전부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황을 한차례 정리하고 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신 사장을 생포하고, 검침원의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일 한림 상사 직원들의 전력을 흥신소 직원들이 당할 수 없었다면, 검침원이 신 사장의 배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지 않았다면, 신 사장이 도망쳤다면.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존재했고, 그 변수들이 하나같이 위험천만했다.
“……강 변이 이 정도 다쳤으면, 분명히 흥신소 직원들도 다쳤을 텐데. 얼마나 다친 거야. 혹시 죽은 사람은 없어?”
“없어요. 정말 없어요.”
“태식이는 어때.”
“태식 씨도 그렇고, 흥신소 분들 다 좀 다치긴 했지만 괜찮아요. 그리고 오 사무장님이랑 형님들은 티끌만치도 안 다쳤어요. 한림 상사 놈들도 다치긴 했는데, 그걸로 뭐 어떻게 하진 못할 거고요.”
그들의 안전이 확인되자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작전이 성공한 데에는 정말로 천운이 따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강 변. 내가 알면 화낼 거 알고 한 거지?”
“……네.”
그는 풀이 죽은 채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화내도 할 말 없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