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23)
너희들은 변호됐다-323화(323/641)
달 모양 펜던트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머릿속에는 ‘왜?’라는 글자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오랜만이죠?”
그녀가 물었다.
매우 놀란 나와는 달리,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평이한 물음이었다.
“……아영 씨가 나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쪽 집안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니, 그녀는 처음부터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고 나왔겠지만 나는 달랐다.
2년 전 이예진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고 내가 애프터를 거절했을 때, 나는 이런 자리에서 전처를 또 만날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이전 삶에서도 결혼할 여자라며 그녀를 데리고 갔을 때,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공통된 지인이 있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분이 아버지가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영남이라는 친구분이셨나 보다.
별로 접점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많이 놀라신 것 같네요. 제가 누군지 알고 나오신 거 아니었나요?”
“모르고 나왔습니다.”
“등 떠밀려서 오셨나 보네요.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저번에는 등 떠밀려 나갔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강요가 있긴 했지만 전처라는 말을 듣고 확실히 인연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자발적으로 나갔다.
두 번째 만남을 거절한 내가 등 떠밀려 나온 거라고 지레짐작한 듯, 전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어요. 저도 등 떠밀려 나온 처지라……. 일단 부담 없이 카페에서 뵙자곤 했는데, 배가 좀 고프네요. 식사 아직이시면 위에 프렌치 레스토랑 괜찮은데, 식사하시겠어요?”
그녀는 이번 삶에서 처음 봤을 때에 비해 다소 성격이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년 전에는 분명히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식사 말입니까?”
나는 느리게 대꾸했다.
두 모습의 간극이 내 대답을 더디게 만들었다.
뭐, 상관없다.
이번 삶에서 그녀가 얼마나 달라졌든, 나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늘의 만남도 여기서 끝날 테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등 떠밀려 나온 처지라, 바람맞히고 싶지 않아서 인사만 드리고 돌아가려고 나온 겁니다. 괜히 시간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트라우마까진 아니지만, 나에게 그녀는 썩 좋은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번 삶의 전처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전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니, 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그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내가 아닌, 그 외도 상대와 만나 결혼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 만남은 교제의 의미지만 그 이상의, 단발성 조우 역시 해당된다.
“미안해요. 잠깐만요.”
그렇게 악수 한 번 나누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전처가 별안간 팔짱을 꼈다.
이전 삶에선 당연하게도 팔짱 그 이상의 일도 많이 해 보았으니 새삼 놀랄 것은 없었지만, 이번 삶에서는 해당 사항이 없는데 왜 이러나 싶어 나는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그 상태로 반쯤 끌려가다시 피하며 그녀를 따라 호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나는 그녀를 놓으며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죄송해요. 지금 오빠가 제가 주한 씨 잘 만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주한 씨도 같은 상황이셔서 아시겠지만, 결혼이 늦어서 집에서 난리거든요. 제가 상대 바람맞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해서, 오늘은 어떤지 감시하러 온 것 같네요.”
“…….”
“게다가 들으니까 주한 씨도 댁에서 결혼 때문에 말씀 많이 들으신다면서요. 아버님이 저희 아버지 아는 형님분하고 친구시라고 해서 들었거든요.”
“네.”
“우리 오늘 소개팅 잘했다고 둘러대고, 당분간 그 잔소리에서 탈출하는 게 어떨까요.”
나도 탈출하고 싶긴 한데, 왜 그 상대가 하필 전처여야 하는 거지.
“제가 너무 싫으신 것만 아니면, 오늘은 그냥 오빠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밥이라도 먹고 헤어지고요. 앞으로는 제가 적당히 잘 만나고 있다고 둘러댈게요. 주한 씨도 그렇게 하시고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졌다고 하면 되잖아요.”
“그때도 형님, 아니……. 오빠분이 감시하러 나오시면요.”
“그럴 일 없게 할게요. 부탁드릴게요. 제가 선보러 나오신 분들한테 이런 시도 많이 해 봤는데, 다들 본인부터가 결혼이 급한 분들이셔서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하…….”
“아, 2년 전에 했던 소개팅 때문에 혹시 제가 주한 씨하고 이런 핑계 대서 계속 만나길 원한다고 생각하시는 거면 그런 오해 안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처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땐 저도 연애하고 싶은 상황이었고, 주한 씨가 마음에 들긴 했어요. 얼굴이 제 취향이었거든요. 아, 목소리도. 아, 키도.”
전처는 연애 때 나에게 이런 말을 많이 했었다.
외모 취향이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았더라면 너같이 재미없는 남자는 안 만났을 거라고.
뭐, 칭찬인지 험담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후로 저도 일이 바빠졌고, 일 욕심도 생겨서 연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조금도요. 주한 씨가 만나 달라고 해도 만날 생각 없으니까 미리 알아 두시고요. 오늘은 그냥 식사만 하고 돌아가는 걸로. 어떠세요?”
누가 당신하고 만난대?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웬만하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편이었지만, 이번 삶을 살면서 하면 안 되는 말들이 많아져 하고 싶은 말을 참는 법을 터득했다.
이번 삶 초반까지만 해도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인데, 주변에서 제동거는 사람이 워낙 많아져서 습관이 잘 든 모양이다.
“저도 조아영 씨와 만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 취소다.
습관이 덜 든 것 같다.
“……하, 같은 생각이라서 좋긴 한데 살짝 기분 나쁘네요?”
“어떤 점이 기분 나쁩니까? 조아영씨도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하셨고, 저도 없다는데.”
“……아니에요. 이런 캐릭터일 줄 알았어요. 방송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들리는 소문도 그렇고요.”
무슨 소문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조아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약간 감정이 결여된 스타일이시라고 들었거든요.”
“일할 땐 그렇습니다.”
“평소에도 그렇다던데요.”
“저는 지금 이 상황을 조아영 씨가 만나는 척 해 달라고 저에게 ‘부탁’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맞아요. 하지만 제가 거짓말을 못해서요.”
“그것도 감정 결여의 일종 아닙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가늠해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본인이 거짓말 못 한다는 말로 포장해서 하는 거 잖습니까.”
“하하. 차주한 변호사님, 못 하는 말씀이 없으시네.”
“조아영 변호사님도 마찬가지 같네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모이는 것이 느껴 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조아영은 시선을 인식한 듯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서며 헛기침했다.
“그래서, 식사하실 건가요?”
“하시죠.”
처음엔 딱 잘라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부모님에게 계속 결혼을 강요받는 것, 조아영과 만나는 척 하는 것, 둘다 싫다.
하지만 만나는 척 하는 것은 감시하러 나왔다는 처남의 의심만 사라지면 그 뒤로는 만나지 않아도 계속 할 수 있다.
이미 한 번 만났으니, 밥 한 끼 먹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이겠는가.
“사무실 폐업하셨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코스 요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조아영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물었다.
“네.”
“변호사 그만하시려고요? 지금 한창 잘나가실 땐데. 아니면 어디 좋은 데서 제안이라도 받으셨나.”
“아뇨. 법인으로 전환하려다가, 그냥 이것저것 처리할 게 번거로워서 그냥 폐업하고 새로 창업하는 걸로 했습니다.”
“그럼 강민재 변호사 외에 다른 변호사를 들일 생각도 있으신 건가요?”
“없습니다.”
“아, 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애피타이저 요리가 나오고,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로 식사를 시작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되나요?”
“네.”
“정말로 이정찬 살해 용의자로 몰린 걸 자진 출석하시던 그날까지 모르셨나요?”
“몰랐습니다.”
“정말로 암자에 계셨고요?”
“네.”
“그렇구나. 참 특이하네요.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 직원들에게 아무 말도 없이, 행선지도 안 밝히고 그렇게 사라지시다니.”
“사람은 누구나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죠.”
“이세화 대표님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이 타이밍에요?”
“이세화 대표님과 제가 무슨 상관이죠.”
“이세화 대표님이 주한 씨를 싱크 탱크로 찍어 놨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해요.”
“이세화 대표님이 찍어 놓은 것과, 제가 진짜로 싱크 탱크가 되는 건 다른 얘기죠.”
“아, 네.”
딱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질문을 멈췄다.
이전에도 전처는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선이 상대방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안쪽에 있어서 놀랄 때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크리티컬한 지점까지는 침범하지 않는다.
나는 곧이어 나온 요리에 포크를 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이 상황에 기시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전처와 이곳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던가.
“아, 혹시 저한테 질문하실 거 있나요?”
“없습니다.”
“그럼 저 할 일이 있어서 잠깐 업무 좀 볼게요. 각자 할 거 하다가 헤어지는 걸로 하죠.”
그때, 그녀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그러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책이라도 한 권 가져올 것을.
그녀는 나에게 용건이 끝났다는 듯 그때부터 딱 자른 듯이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신문 한 부 받을 수 있을까요.”
“신문 말씀이십니까? 한글 신문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영자 신문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한글 신문으로 주세요.”
“어느 신문사 신문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아무거나 주세요.”
“그럼 일중일보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거 빼고, 나머지로요.”
“푸흡.”
바쁘게 음식을 입에 넣으며 서류를 넘기던 그녀가 일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바쁘신 줄 알았는데요.”
“제가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서, 집중한 상황에서도 말소리가 귀에 홀러 들어왔네요.”
나는 신문을 읽고, 전처는 업무를 보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디저트까지 다 먹었을 무렵, 그녀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2차는 별로 안 땡기시죠?”
“네.”
“저희 오빠도 지금쯤이면 돌아갔을 것 같긴 하네요. 우리가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 봤다면 안심했을 거라. 어느 쪽으로 상상했든지요.”
식사하는 것 말고 어느 쪽으로 더 상상할 수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럼 저희 집에는 주한 씨와 더 만나 보기로 했다고 말할게요. 주한 씨도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그러시죠.”
“아, 혹시 오빠가 제가 주한 씨랑 만나는 게 맞는지 주변에 물어볼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그녀의 오빠가 이번 삶에도 그 성격 그대로라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다.
“그래도 주변에 주한 씨랑 만난다고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상관없는데요.”
“다행히 제가 주한 씨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급에 부합하는 여자이긴 한가 보네요.”
“아닐 이유가 있습니까? 아영 씨가 아니었어도 누구든 상관없었을 겁니다.”
“하하, 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는 분이시네요. 그런데 그래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주한 씨도 알리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특별히 이유가 있습니까?”
그녀는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빌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 제가 장영에서 태광으로 옮겼거든요. 길게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