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27)
너희들은 변호됐다-327화(327/641)
“……와, 화환 리스트 장난 아니네.”
흡연 구역에 모인 검사들이 한 사람의 주변에 둥글게 모여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강관웅이야 강민재 할아버지니까 그렇다 치고, 우리 차장은 왜 보낸 거래?”
“차주한이 차장 서부지검 때 직속이었잖아. 그리고 얼마 전에 명화제약 때도 차주한한테 소스 받아서 한 거라는 얘기 있던데. 그래서 차주한도 수사 참여했잖아.”
“아, 그랬지. 얘는 검찰청에 있을 때보다 나가서 더 눈에 띄네. 변호사가 체질인가 보다.”
“근데 좀 웃기지 않아요? 그런 데 관심 하나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더니, 보면 온갖 방송엔 다 나오던데요. 뉴스에도 나오고 그 SBC 뭐냐, 하여간 그 프로그램도 나오고. 아주 특집 방송까지 만들어 줬던데?”
“웃긴다니까, 진짜.”
휴대폰을 들고 있던 검사가 코웃음을 쳤다.
그날 박영기 차장이 차주한의 법무법인 개업식에 간다기에, 얼굴도장 한 번 찍을까 싶어서 따라가긴 했는데 솔직히 가관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작 변호사 둘이서 차린 사무실인데도 그 한 층을 전부 빌린 것도 웃기고, 인테리어에 돈깨나 들었을 것 같던데 그러다 유지비 감당 못하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어 웃기고.
바닥 소재나 벽지, 사무실 가구, 하다못해 명패까지 돈을 처바른 느낌이 난다.
대놓고 돈을 발랐다는 느낌보다는, ‘이거 예쁘네’ 하고 가격표를 보면 턱이 빠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관심받는 거 싫어하는 체하더니 고작 두 명짜리 로펌인데도 개업식씩이나 하고, 거기다가 차장까지 초대한 걸 보면 딱 봐도 검사들 우르르 끌고 와 달란 소리 아니겠는가?
변호사 개업하고 검사들하고 연락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사람이, 심지어 첫 사건부터 친정 저격한 사람이 검사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던 건 당연히 자랑하기 위함일 것이다.
차주한이 수임료뿐만이 아니라, 온갖 재테크로 수백억 자산가가 되었다는 소문은 이미 자자하다.
가만 보면 졸부가 하는 짓은 전부 다 하는 것 같다니까.
아무리 검찰에 밉보였어도 ‘난 잘먹고 잘산다’ 하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와, 저거 이세화 화환 아니야?”
사진을 넘겨 보던 검사가 이름 부분을 확대하며 말했다.
“이세화가 차주한 찍어 놨다는 소문이 진짠가 보네. 화환까지 보내고.”
“강관웅이 이세화 키웠으니까 손자 위신 세워 주려고 이세화한테 화환 보내라고 한 거겠죠.”
“아무리 그래도 내일모레 취임식 할 양반이 아무 데나 화환 보내냐?”
“차장도 노났다. 강관웅이 제일 아끼는 제자가 차장이라며. 근데 이세화가 당선됐으니 검찰총장은 따 놓은 당상인가?”
“그건 모르죠. 우리도 줄 잘 서야할 것 같은데요, 이거.”
“어차피 대통령은 갈 사람이다. 5년만 있으면 다른 대통령 올 텐데, 뭐 하러 그거 생각하면서 줄 서냐. 검사질 5년만 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검사 한 사람이 말끝을 흐리자, 다른 이들도 모두 복잡하다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서부지검에 있을 당시에도, 그전에도 박영기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관웅이 가장 아끼는 제자라는 것은 연수원이나 학교를 함께 다녔던 부장들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강관웅은 퇴임 후 조용히 지내던 사람이었고 박영기 역시도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박영기가 중앙지검 3차장으로 온다고 했을 때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던가.
그래도 사람은 좋다고 하니, 또 욕심은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건만, 이세화가 당선되고 나니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줄을 서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였다.
특히 앞으로의 5년이 중요한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동문회 때 동기 몇몇과 모여 샴페인 몇 모금 마시고 사라지던 조용한 박영기에게는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동문회 때 다른 선배들 찾아가서 허리를 굽실거릴 때 귀찮아서 박영기는 빼먹었던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와, 한영그룹 화환은 뭐냐. 어디 계열사 대표 화환도 아니고 설정준 회장 화환. 장난 아니네.”
“와, 진짜네. 설정준하고는 또 무슨 인연이야?”
“그거 있잖아. 그 한영그룹 둘째를 첫째가 죽이려다가 난리 난 거.”
“아, 그거? 그건 또 왜?”
“그때 SBC 거기 처음 나온 거 아니야. 원래 그게 의사 처방 미스로 문제가 됐던 건데, 그 의사가 하필 차주한 친구였던 거지. 그래서 차주한이 도와줬는데 알고 보니까 의사는 문제없었고, 한영그룹 첫째랑 간호사랑 의사랑 짜고 둘째 죽이려고 했던 거.”
“아, 그거 고마워서 화환을 보낸 건가? 둘째 죽이려던 진범 찾아서?”
“그런 거겠지.”
“그런데 웃기지 않아요? 그 진범이 자기 장남이잖아요. 둘째는 안 그래도 식물인간인데 첫째까지 차주한 때문에 깜빵 가고. 순식간에 2세 경영 물 건너간 건데, 뭐가 고맙다고 화환까지 보내요?”
“그건 모르지. 그래도 뭐, 착실한 아들인 줄 알았는데 형제 잡아먹는 악마 같은 놈인 걸 알게 돼서 고마운 걸 수도 있고. 차주한이 입을 잘 털었겠지. 하, 뭐가 됐든 진짜 차주한 얘는 참 웃겨. 은근 권력자들한테 잘 붙는단 말이야?”
차주한의 개업식 화환 목록이 화려하다기에 구경하자며 시작된 자리는, 어느덧 차주한 뒷담화로 번져가고 있었다.
“차장도 그렇고, 차주한도 그렇고, 뭔가 조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눈에 띄네요.”
“야,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차주한은 검사 때도 엄청 눈에 띄었어. 다른 데 있다 와서 모르나 보네.”
“그래요? 어땠는데요? 뭐 엄청 특출나요?”
“기계야, 기계. 싸가지 더럽게 없는데 일도 기계처럼 해. 정확도도 좋고, 속도도 좋고. 그래서 차주한 데리고 있던 부장들이 엄청 예뻐했지. 그러다가 황 부장 품에 들어가서 개업할 때까지 다신 못 나왔잖냐.”
“황 부장이면, 황영찬 부장님이요?”
“그래.”
“야, 말도 마. 내가 형사 3부였잖아. 황 부장이 엄청 싸고돌았어. 부장들끼리 있을 때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차주한 싸가지 없다고 씹는 거 황영찬이 다 블로킹해 주더라니까. 애쓴다 싶더라.”
“아무리 일 잘한다고 그렇게 싸고돌아요?”
“차주한이 일당백 하니까, 차주한 데리고 있으면 그 실적이 다 자기 거잖아. 다른 부서에 안 뺏기려고 애를 쓰던데. 특히 특수부가 검사의 꽃이라는데, 그거 한번 해 보려는 검사가 얼마나 많냐. 차주한이 간다고 했으면 특수부도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줬을걸. 그러니 차주한이 특수부 간다고 할까 봐 온갖 감언이설로 구워삶는데, 진짜 눈물겹더라. 황 부장도 안 됐어. 재수 없는 후배를 상전인 양 모시면서 화내고 싶은 거 꾹꾹 눌러 참으면서 버텼을 거 아니야.”
“친구들, 일 안 해?”
그때 등 뒤에서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들이 고개를 돌리자, 그 앞에는 잘근잘근 씹은 흔적이 남아 있는 종이컵을 든 이예진이 서 있었다.
“남의 이야기 하느라 되애애애게 재밌는 건 알겠는데, 일해야지. 그래야 차주한처럼 싸가지 없어도 부장님들이 예뻐해 주지. 그치, 진 프로야?”
“……아, 예. 검사님.”
“자, 해산. 얼른 가!”
이예진이 모여 있던 검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좌우로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검사들은 눈치를 보며 흩어졌다.
“아오, 저 개새끼들이 어디서 남의 흉을 저렇게 봐? 뒤지려고.”
“부러우니까 배 아파서 저러죠.”
수사관이 한마디 거들자, 이예진은 그녀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웃어 보였다.
“우리도 일하러 가죠!”
힘찬 발걸음으로 두 사람이 사라졌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쏟아지는 봄 햇살이 푸르게 돋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질 때, 응달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등나무 기둥에 담배를 길게 긁었다.
“저 새끼들이…….”
황영찬이 까득 이를 갈았다.
* * *
“귀 간지러워.”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그러자 박하사탕을 집어 먹던 강민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누가 변호사님 뒤에서 씹나 보다.”
“그랬으면 좋겠지, 아주.”
나는 물티슈로 손을 닦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전한 사무실이 전에 있던 곳과 멀지 않아서, 자주 가는 식당도 그대로였다.
물론 강민재는 대로변으로 나온 만큼, 길 건너편의 새로운 맛집을 탐방하겠다며 열의를 불태웠지만.
“근데 확실히 사무실 바뀌니까 좀 어색해요. 아까 혼자 앉아 있는데 외롭더라니까요.”
오 사무장이 농담을 던지자, 강민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오 사무장에게 달라붙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쵸. 저도 아까 제 방에서 혼자 울었어요. 사무장님, 저랑 같이 일하시면 안 돼요? 어차피 사무장님 방에 스페어 책상 있잖아요.”
“거기 짐 많은데.”
“할 일도 없는데, 정리하면 되죠. 제가 할게요. 들어가는 길에 문방구 들러서 라벨지 살까요? 저랑 같이 정리해요.”
“어유, 아니에요. 저 혼자 하면 되는데요, 뭐.”
“아니에요. 저 진짜 할 일 없어서 그래요. 핸드폰 게임도 질렸어요.”
국정원의 도움으로 사이트를 열고,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도 인터넷에 새로 업데이트했다.
그 덕분인지 문의 전화가 몇 군데서 걸려 오긴 했지만, 아직 우리가 검토할 수준은 아니라 오 사무장이 적당히 상담해 주는 단계에 그쳤다.
“예전에 맨날 새로 사건 안 들어오나 걱정했었는데, 갑자기 그때 생각나네요.”
강민재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오 사무장이 잠시 점심시간 안내 멘트로 돌려놓았던 전화기를 만지는 동안, 강민재는 재빠르게 오 사무장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어디로 하면 좋을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 전화 온다.”
그때, 사무실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네, 법무법인 정도입니다. 네. 네, 아. 차주한 변호사님이요? 어쩐 일로……. 아, 네. 그러십니까. 네, 그러면 일단 연락처 남겨 주시면 연락드리라고 전달하겠습니다. 네. 공일공…….”
나를 찾는 전화인 것 같은데.
사무실 입구에 놓인 식물 이파리에 분무기를 뿌리던 나는, 오 사무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화를 끊은 오 사무장이 메모지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김찬영 씨가 변호사님한테 급하게 용무가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아는 김찬영은, 그때 그 친구밖에 없는데. 명화제약. 그 친구인 것 같기도 해요, 목소리가.”
“그럴 겁니다.”
김찬영이 나에게 급하게 용무가 있다니, 그럴 만한 일이 무엇일까.
나는 메모지를 들고 내 방으로 돌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내 휴대폰에 있던 연락처는 전부 백업해 두었기에 김찬영의 번호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내 바뀐 번호를 일일이 돌리진 않아서 아마 몰랐던 듯하다.
어차피 사무실 번호가 공개되어 있으니 나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은 그쪽으로 연락하겠지 싶어 그냥 두었는데, 생각해 보니 사무실 폐업처리를 한 지 오래되어서 연락이 안 되었을 법도 하다.
-여보세요?
“나 차주한 변호사인데, 방금 사무장님한테 메모 받아서.”
-변호사님……. 저 좀 도와주세요.
“무슨 말이야?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봐.”
-저 좀, 저희 엄마 좀 도와주세요…….”
그의 말끝에는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