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29)
너희들은 변호됐다-329화(329/641)
“아니, 그것도 이상해.”
내 말에, 김찬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점이요?”
“고상준이 만일 어머님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살인자로 몰진 않았을 거야. 내가 그 고상준한테 살인 누명 쓴 사람이잖아.”
“…….”
“고상준이 만일 어머님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살인 누명을 씌우지 않아. 자살로 위장했겠지.”
내 말에 김찬영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고상준은 나를 살해할 수 없기에 살인 누명을 씌워 변호사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정확히는, 살해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살해까지 할 필요도 없이 나 같은 조무래기 변호사는 인생만 망쳐 놓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화영은 다르다.
김화영은 고상준의 내연녀였고, 혼외자인 김찬영까지 낳았다.
김화영이 고상준의 무엇을 더 알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김화영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그냥 자살로 위장하는 방법을 썼을 것이다.
이미 김화영에게 잡힌 약점이 너무 많으니까.
“그러면,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건데요? 저도 알아요. 고상준이 정말 저희 엄마를 제거하고 싶었다면 죽일 인간이라는 거. 하지만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면 엄마를 살인자로 뒤집어씌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넌, 집사는 누가 죽였다고 생각해?”
“자살 가능성도 있겠죠.”
“이유는?”
“집사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선 모르지만, 좀 이상한 사람이란 건 알아요.”
이상한 사람이라.
그 집사가 평소 가족들에게 김화영과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집사와 김화영 중 누가 더 이상했는진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서로에게 과실이 있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김찬영이 알고 있는 것은 김화영이 말해 준 이야기들이겠지.
“어떤 점이?”
“저희 엄마를 많이 무시했대요. 첩이라고.”
“대놓고?”
“네. 고상준이 바쁘니까 엄마가 먼저 가 있는 때가 많았는데, 아니면 엄마가 늦게 나오든지요. 고상준은 먼저 가고. 그러면 집사하고 둘이서 남잖아요. 고용인들은 엄마가 특별하게 말한 게 없으니까 뺀다고 치고요.”
“그런데?”
“고상준이 있을 땐 사모님, 사모님 하면서 입안의 혀처럼 굴다가, 고상준만 사라지면 불러도 오지도 않고, 뭘 갖다달라고 해도 안 갖다주고, 준다고 해도 던진다든지. 일부러 고상준 오기 전에 엄마 화장품을 없애거나, 엄마 옷에 뭘 흘린다든지. 그런 식으로 엄마를 많이 괴롭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 집사란 사람이 본인 가족들에게 어머님하고 사이 안 좋다고 한 건 어떤 식으로 말한 건데?”
“반대로요. 엄마가 자길 무시한다고. 본인은 집 관리인으로 고용된 건데 시녀 부리듯 부리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더라고요. 우신하고 계약 사항 때문인지 우신에 대한 얘기는 조금도 안 했다는데. 죽은 사람한테 이런 말은 미안하지만, 우신은 무섭고, 저희 엄마는 만만했나 봐요.”
서로가 서로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다니, 사이가 안 좋았을 법도 하다.
그 정도가 지나쳤다면, 살해의 동기로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경찰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갔다고 했지?”
“네.”
“제보자가 누군진 모를 테고. 익명의 제보 내용은?”
“엄마가 집사한테 손을 대는 걸 봤다고요. 심각한 건 아니에요.”
[거짓]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일관되게 진실 판정이 나왔지만, 심각한 건 아니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짓 판정이 나왔다.
김화영을 만나 직접 이야기해 봐야하지만, 김화영은 지금 살인 용의자로 몰려 침착하지 못할 게 분명하기에 나는 그나마 이성적으로 반응할 김찬영에게 최대한 진술을 들을 생각이었다.
내가 얼마 전까지 살인범으로 몰려보았기에 당사자인 김화영이 얼마나 불안할지, 그리고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지 잘 알고 있으니까.
나야, 원래부터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던 놈들 짓이라고 하니 충격은 덜했지만, 김화영은 사랑하던 남자에게 배신당한 충격이 클 것이다.
“변호사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찬영이 의아한 듯 나를 불렀다.
나는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건을 맡게 되면, 어차피 제보 내용을 알게 된다는 걸.
금세 들킬 거짓말이라고 해도, 김화영이 뭐라도 잘못한 게 있다고 하면 내가 사건을 맡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사건을 축소해 볼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
“찬영아.”
“네?”
“솔직하게 말해야 해, 적어도 나한테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찬영이 시치미를 떼었다.
“나한테만큼은 사건을 축소하거나 확대할 이유가 없어.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이 사건에서 김화영 씨가 조금이라도 잘못한 게 있다고 하면, 이 사건을 안 맡을 거라고 생각해?”
“…….”
“아직 사건 파악을 완벽하게 한 건 아니니까, 일단은 가정하면서 말할게. 김화영 씨가 무고하다는 가정하에, 나는 우신에 의해서, 김화영 씨랑 똑같이 살인 누명을 썼던 사람이야. 김화영 씨 마음을, 네 마음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변호사님, 저는,”
“모든 피해자가 무고해야 할 필요는 없어. 불쌍한 사람들이 언제나 선해야 한다는 강박은 버려. 어차피 그런 프레임은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위한 거니까. 하지만 난 재미있고 이입할 만한 스토리를 들으러 온 게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러 온 거야. 이해했어?”
“……네.”
“자. 다시 말해 봐. 제보 내용이 어땠는지.”
김찬영은 내 말에 잠시 동요하는 듯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다시금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토해 내듯 말했다.
“엄마가 집사 따귀를 때리고 목을 조르는 사진이요. 그게 들어갔대요.”
칼로 위협하는 사진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따귀를 치는 것까진 예상했지만, 목을 조르는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가 아파요. 아파서 그런거예요.”
김찬영은 틈 없이 덧붙였다.
“편찮으시다고? 어디가.”
“정신적으로요. 조울증이 있어요.”
정신 질환이 있다는 건 흠이 아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좋은 양형 요소이기도 하다.
가령, 김화영의 무고함을 풀지 못하게 되었을 때라든지.
“기분 좋을 땐 한도 끝도 없이 좋아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대요. 밖에도 잘 안 나가려는 사람이 쇼핑을 가자고 하기도 하고, 데이트하자고 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우울해지면, 또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해져요. 그리고 고상준을 만날 때, 그게 극에 달하는 것 같아요. 고상준이 만나자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헤어지면 우울해지는 거죠. 아마……. 그런 사진이 찍힌 것도 그렇게 우울할 때 엄마를 건드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어머님하고 그 사진에 대해서 얘기해 본 적 있어?”
“네. 근데……. 그냥 싸우다가 그랬다고, 그러다가 말았다고 하셨어요. 집사도 다치진 않았다고 했고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그 사진이 찍힌 날도 집사가 죽기 한참 전이라더라고요.”
“사진은 그럼, 고용인 중 한 사람이 찍었을 가능성이 있네.”
“네.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고용인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조울증이 생기면서 기억력이 많이 나빠졌어요.”
어쨌든 목을 조르고 따귀를 치는 사진이 있었다면, 집사가 죽은 상황에서는 확실히 불리해진다.
게다가 경찰이 그 안가를 김화영의 개인 별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더욱.
그곳에 드나든 사람은 김화영뿐이고, 가뜩이나 집사와 사이가 나빴던 데다, 고용인들도 아마 입을 맞춰서 그렇게 말했을 테니.
“기소되었다고 했는데, 지금 절차는 어디까지 온 거야? 재판은 얼마나 남았어?”
“사실, 첫 공판을 치렀어요.”
“뭐?”
아무리 우신이 수도꼭지를 잠갔다고 해도, 1차 공판이 치러졌는데 소식이 새어 나가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기소되었다고 하기에 아직 재판은 치르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1차 공판이 끝났다니.
“2차 공판은 언제야?”
“2주 뒤요. 그런데 연기 신청을 할 생각이에요. 변호사님이 사건 안 맡아 주신다고 해도, 변호사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변호사가 누군데?”
“태광에서 맡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고상준이 세팅해 준 사람들이라 저는 처음부터 미심 쩍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일단은 고상준 믿고 받겠다고 하셨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서요.”
“1차 공판에선 무죄 주장했어?”
“말은 그렇게 했는데, 느낌이……. 1차 공판은 30분 만에 끝났어요. 엄마가 집사가 죽을 때 그 집에 있었다는 증거도 있는데, 엄마가 그날 그 집에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 측에서도 엄마의 무죄를 입증할 자료를 못 찾고 있어요. 왜냐면, 그날 집에 고용인들이 없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야. 고용인들이 왜 없어? 상주 인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상하게, 그 전날 집사가 고용인들한테 휴가를 줬고, 고상준이 6시에 오니까 그때까지 돌아오라고 했나 봐요. 그런데 엄마는 5시에 미리 가셨고요. 그래서 집에 두 사람밖에 없었던 거죠.”
“지금 어머님 상태는 어떠셔?”
“엄마한테 고상준이 아무 문제 없게 세팅해 주겠다고 했나 봐요. 진범도 부지런히 찾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요. 그래서 그 말만 믿고 엄마는 첫 재판 들어갔고요. 태광 변호사들 붙여 줬고, 그중에 김윤희 변호사라고 아세요? 그 사람이 직접 들어간 것 같더라고요. 그 밖에 시니어급 변호사 셋이 더 붙었어요.”
김윤희라면 강민재가 태광에 있던 시절 직속이었던 그 변호사다.
태광 설립자 중 한 사람으로, 직접 재판을 하지 않아도 될 연차인데도 불구하고 굵직한 사건들은 직접 집도한다.
내가 알기론 후에 따로 로펌을 차려서 나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관계는 어떨지 모르겠다.
정말 김윤희가 태광에서 입지가 좋은 변호사고, 그래서 고상준의 부탁으로 김윤희가 직접 집도한 것인지.
아니면 태광에서 입지가 좋지 않아서 성의 표시만 하려고 그 사람을 붙여 준 것인지.
“근데 재판을 받아 보니, 느낌이 아닌 거죠. 그래서 지금……. 고상준한테 많이 화가 난 상태예요. 그렇게 집착하던 고상준하고 연락하는 휴대폰도 꺼 놓고 있고요.”
“그럼 일단 어머님은 고상준하고 등을 돌리신 건가?”
“……네.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정말, 정말 많이요.”
조울증이 심각한 상황에서, 집착하던 대상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면 어떤 선택까지 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러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그럼 지금 고상준 쪽하고는 어떻게 대화하고 있는 거야?”
“제가 얘기하고 있어요.”
“고상준은 뭐라고 하는데.”
“1차 공판 성의 없었다고 했더니, 2차 공판은 변호사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무죄 나오게 해 주겠다고 하죠. 그런데 엄마가 변호사들을 안 만나려고 해서 문제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렇게 못 믿는다면 다른 로펌에 의뢰해도 괜찮지만, 그래도 당장 엄마를 구해 줄 수 있는 건 본인밖에 없다고 하죠. 현실적으로 제가 구하는 변호사하고 본인이 붙여 주는 변호사가 급이 같겠냐고요. 진범 찾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른 범인을 세팅해서라도 엄마 구한다고요.”
“건방진 새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이었지만, 김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새끼죠.”
“그런데 내가 사건을 맡으면 너는 고상준하고 사이가 많이 틀어질 텐데, 괜찮겠어? 네가 증오하긴 해도, 생물학적으론 아버지니까.”
“변호사님, 전 고상준하고 틀어질 생각 없어요.”
그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두 눈에 이채를 띤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