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33)
너희들은 변호됐다-333화(333/641)
고상준은 김찬영과 만날 때는 대부분 김찬영 모자가 사는 집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바깥에서 만나는 것은 노출의 우려가 있는 데다, 설령 그들이 부자지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목격되면 그런 소문이 돌기 십상이라는 고상준의 염려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이르게 그의 집에 도착했다.
“혼자 오셨네요.”
“두 명보단 한 명이 들킬 확률이 낮을 테니까.”
“그건 그렇네요. 고상준은 6시에나 시간이 난다고 해서, 아직 한 시간 정도 시간 있어요. 뭐 마실 거 드릴까요?”
고상준을 부르기 위해, 김찬영은 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가 좋지 못한 건 당연히 고상준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6시에 오겠다고 했다니.
김화영은 고상준이 윤성희와 이혼할 거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건 고상준이 김화영을 달래기 위해 던진 의미 없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 윤성희와 이혼하고 김화영을 선택할 생각이었다면 상황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상태가 나쁘다는 말에 바로 달려왔을 것이다.
특별히 스케줄이 있었다고 해도, 우신 그룹 회장 정도 되는 지위라면 일정을 미루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특히나, 김화영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가장 잘 안다고 하는데 말이다.
“엄마는 지금 주무세요. 약을 드셨는데, 그게 잠이 오게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엄마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 괜찮아.”
“주스 괜찮으시죠? 가져올게요. 별 거 없지만 집 구경이라도 하세요. 고상준 내연녀이자 한때 최고 주가 달리던 배우 집 구경할 일, 잘 없잖아요.”
김찬영은 농담 삼아 말한 듯했지만, 그의 말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강민재와 달리 나는 남의 집 구경하는 취미는 딱히 없지만, 무언가 나중에 쓸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장식장을 확인했다.
김화영이 배우였을 때 받았던 상패와 사진, 김찬영이 받았던 상들과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다.
김화영은 어린 시절 잡지 모델로 데뷔해, 하이틴 스타의 위치를 거쳐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였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김화영의 책받침을 들고 다니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그녀가 톱스타였던 시절에 나는 연예인보다는 동진과 흙장난하는 게 더 좋았지만, 그녀가 어느 정도의 인기를 누렸는지는 충분히 체감했다.
사건이 어떻게 흐를진 알 수 없지만, 만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그녀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미지 손상을 입을 것이다.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시대를 대표했던 신비주의 배우가 아닌가.
“아, 옆엔 제 졸업식 사진이에요. 엄마든, 고상준이든 올 수가 없는 처지라 삼촌이 대신 와 줬어요. 왜 있잖아요, 그때 명화제약 이사였던.”
어느덧 주스를 들고 나타난 김찬영이 나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는 제 이름을 고상준하고 엄마 이름을 따서 준영이라고 짓고 싶었대요. 그런데 고상준은 제 존재를 반기지 않았고, 혹시라도 단서가 될 수 있다면서 반대했나 봐요. 그래서 김찬영이 된 건데, 저는 마음에 들어요. 김준영보단 김찬영이 낫잖아요. 무엇보다, 제 이름에 고상준 이름에 쓰인 글자가 있었다면 진작 개명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늘어놓은 김찬영은, 나를 소파 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찬영은 고상준을 증오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자신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 주지 못하고,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는 아버지의 몰락을 바란 게 아니라 사랑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그가 품은 증오는 단순한 증오가 아닌, 애증으로 치환된다.
그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몰락을 반대급부로 취하는 것으로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만일 고상준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김찬영 모자를 정성스럽게 대하기 시작하면 김찬영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증오는 녹아내릴지도 모른다.
지금 고상준이 붙여 준 태광 변호사들은 1심에서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2심에서는 보란 듯이 김화영을 구해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찬영이 이러한 결과를 내기 위해 고상준이 꽤 노력했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그는 이 일을 계기로 고상준을 향한 원망을 조금은 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물론 나에게는 손실이다.
나는 한 명이라도 고상준을 무너트릴 때 도움이 될 사람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김찬영에게 그것이 유년 시절의 불행을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 이득만을 취하려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번 일은 다행히 이성이 살아 있었다.
김화영의 케이스가 내가 당했던 것과 동일하기에, 조금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복수심에 눈이 어두워 남의 인생을 무너트리는 선택일지라도 감행하는 짐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별거 아냐. 어머님 슬슬 일어나셔야 할 텐데.”
나는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고상준이 오면, 김화영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로 했다.
고상준이 그런 김화영을 달래고 재우면, 김찬영은 고상준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앞으로 김화영의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김찬영이 고상준에게 할 말은 미리 정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김찬영의 방의 붙박이장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다르게 말해 두었다.
“정말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방 반응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방법이 있는 거예요? 뭐, 시선의 움직임이나 얼굴 근육의 움직임, 제스처, 이런 걸로요?”
“그건 모든 사람한테 해당하는 건 아니라서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야. 하지만 고상준도 사람이니까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거고, 뭘 강조하는지,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대충 진정성 있게 말하는지 판단해 볼 생각인 거지.”
“신기하네요. 프로파일러도 아니고, 검사도 그런 걸 할 줄 아는구나.”
“아니, 어제도 말했잖아. 그런 반응들만으로 판별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고상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너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볼 거니까. 그건 그냥 참고하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야.”
“알아요. 저도 변호사님이 그런 걸로 판단하겠다고 했으면 신뢰감이 뚝 떨어졌을 것 같아요. 근데 그냥, 그런 걸로 파악해 볼 생각은 안 했어서 신기…….”
띠, 띠, 띠, 띠, 띠.
김찬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현관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찬영은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김찬영이 다급히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집이 크고 거실과 현관 사이에 거리가 있어 우리의 대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을 것 같진 않지만, 나는 고상준이 오기 전에 붙박이장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약속 시간은 40분이나 남았다.
그런데 왜 벌써?
-아버지, 오셨어요?
멀리서 김찬영의 한 톤 밝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상준에 대한 깊은 원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그를 반기는 듯이 연기하며 평생을 살았던 모양이다.
처음 듣는 톤의 목소리였지만, 급조하거나 억지로 꾸민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일찍 왔다. 그런데 찬영이 넌, 오늘은 출근 안 했니?
고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소 부드러웠지만, 특유의 고압적으로 들리는 말투는 다르지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정중한 체하는 사람이다.
이전 삶에서 특검이 시작되고, 조사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점점 특검팀이 많은 것들을 들쑤시기 시작하자, 특유의 고압적이고 교만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그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저번처럼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나에게 어떤 증상이 나타나 일을 망치게 될 것 같아서, 미리 약을 먹고 왔으니까.
-엄마 연락 받고 반차 썼어요.
-신입 사원이 벌써 반차 쓰면 눈치 보일 텐데. 고생이 많구나.
-아니에요.
-네 엄마는?
-방금 전까지 우시다가, 약 드렸더니 좀 괜찮아지셨나 봐요. 주무시더라고요. 아버지 바쁘신데 괜히 오시라고 했나 봐요. 죄송해요.
-아니야. 안 그래도 들르려고 했다. 저녁은 먹었니? 저녁이나 같이 할까?
-아직이요. 이따가 엄마 깨면 같이 먹으려고요. 약 먹고 주무시는 거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괜히 기다리지 마시고 다음에 같이 식사해요.
-그래.
-차 한잔 드릴게요. 잠깐 앉아 계세요.
깍듯한 말투에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고상준 역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1심이 끝난 뒤 아들의 기분이 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전과 다름없이 깍듯하게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만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그래도 형님들이 아버지를 든든하게 받쳐 드려서 다행이에요.
김찬영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내가 이 방에서 숨을 시간을 벌어주려는 목적인 것 같았다.
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김찬영의 방으로 잘 찾아 들어온 것 같고, 붙박이장도 있다.
나는 붙박이장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혹시라도 문 열리는 소리가 날까 봐 매우 신경 쓰면서.
김찬영은 붙박이장 내부에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미리 정리를 해 둔 듯, 내가 들어갈 공간은 충분했다.
통풍을 위해 가로로 비스듬하게 난구멍을 통해 방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됐다.
나는 김찬영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준비 완료]-아, 아버지. 오신 김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
-뭔데?
-혹시 엄마가 깨면 들으실 것 같아서……. 제 방으로 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고상준은 크게 의심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난 듯, 가죽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찬영의 임기응변이 좋았다.
본래는 김화영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면서 고상준의 마음이 급해지게 만들 생각이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김화영을 재우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대화를 시작하는 게 전체적인 계획이었다.
마음이 급해지게 하는 것엔 실패했을지 몰라도, 김찬영의 임기응변 덕에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여기 앉으세요.
김찬영은 고상준에게 창가 쪽 티테이블 의자를 빼 주었다.
그러자 고상준의 뒷모습이 보였고, 그가 자리에 앉자 비로소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을 보니 구역감이 올라왔다.
[검사님…… 적당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무리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 하시는 게 무리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하하, 꿈을 꾸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건 오만이죠.]이전 삶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먹을 더욱 세게 쥐었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찌르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엄마 도와주시려고 힘써 주시는 거 너무나도 잘 알지만, 계속해서 여쭤볼 수밖에 없는 거 이해해 주세요…….
김찬영이 운을 떼었다.
-그래. 이해한다. 왜 아니겠니. 네 엄마한테 처음 있는 일이고, 갑작스러웠으니까. 가뜩이나 아픈 사람 아니냐.
-네……. 변호사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긴 하지만, 엄마는 지금 변호사들조차 의심하고 있어요. 저는 아버지 믿고 따르면 된다고 계속 말씀드리고는 있는데, 그래도……. 엄마가 아프잖아요.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 세상 누구든 다 의심하고 싶은 것 같아요. 가끔은 저한테도 그래요.
-찬영이 네가 고생이 많아.
-고생은요. 그래도 아버지, 2심 때는 정말 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엄마가 이러는 걸 받아 주는 것도 점점 지쳐요. 저도 그릇이 크진 않은가 봐요. 제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겠죠.
-아니야. 누구라도 이런 일이 닥치면 남 건사하는 게 쉽지 않아. 아무리 엄마라도 마찬가지지.
고상준은 꼴에 아버지 노릇은 해야겠다는 생각인지, 김찬영을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제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변호사들이 저에게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것 같지가 않아서요. 그래서 저도 엄마한테 뭐라 해 줄 말이 없는데, 이 상황에 엄마는 자꾸 다른 변호사를 알아보자고 하시고……. 엄마를 달랠 방법이 없어요. 혹시 아버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실 수는 없을까 해서요…….
-흐음…….
고상준은 잠시 대답을 미루고 침음했다.
-저번에 말씀하신, 그 진범이요. 2심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때까지 진범을 찾는 건 요원해 보여요. 혹시 진범을 찾으셨어요?
-아니, 아직 못 찾았다.
[거짓]고상준은 진범을 알고 있다.
그것이 윤성희든, 윤성희가 아닌 누구든 고상준은 진범을 알고 있는데도 아직도 내놓지 않았다.
정말로 김화영을 도와줄 생각이 없거나, 김화영을 구하긴 할 테지만 진범이 그보다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윤성희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상황이라면, 지금쯤이면 가짜 진범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혹시 진행 중인가요?
-안 그래도 오는 길에 보고 받았다. 조연동 집 가드가 자수하기로 했어. 그 전에 맞춰 볼 게 여러 가지 있어서 아직은 준비 중인 것 같더라. 찬영아, 그동안 고생 많이 했을 텐데, 이제는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 믿고 조금만 기다려라. 알겠지?
[진실]-……감사합니다, 아버지.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