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34)
너희들은 변호됐다-334화(334/641)
고상준은 진범을 밝힐 생각은 없지만, 김화영을 돕겠다는 것만은 진심이다.
가짜 진범이 레디되었다는 것도 진실이다.
2심 전에 진범이 자수하면, 김화영은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사건이 길어지면 불필요하게 언론이 끼어들어 김화영의 이미지가 손상될 공산이 크다.
여기서 마무리 짓고 그들이 가장 안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나의 몫이다.
문자를 보내 몇 가지 질답을 더 유도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사실 김화영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자수한 사람이 진범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사건을 키우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과정에서 김화영이 한 차례 범인으로 몰렸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고, 이는 김찬영 모자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럼 이만 가 보마. 저녁이라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나.
고상준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김찬영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저, 아버지.
고상준이 그대로 방을 나서려는데, 김찬영이 그를 멈춰 세웠다.
할 말이 더 남았던가.
뭐, 당부의 말이라도 한마디 더 하고 싶은 것은 지금 상황에선 당연한 일이다.
-진범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누구인지 유추되는 사람은 없으세요? CCTV 정리하면서 의심 가는 사람은 있었을 것 같은데…….
-…….
고상준은 대답하지 않고 김찬영을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서 귀찮음이 읽혔다.
김찬영은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당사자인 김화영을 대리하고 있기에 당사자나 다름없다.
그런 김찬영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그런데도, 고상준은 ‘네가 감히?’라고 묻는 듯한 눈이었다.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이에요. 대체 누가 집사를 죽였을지……. 고용한 사람들 외에 조연동 집 존재를 아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기껏해야 형님들하고 큰어머니뿐인데…….
김찬영 역시 그런 고상준의 기색을 읽었는지, 곧 누그러진 말투로 덧붙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여태까지 부드러운 어조로 일관해 왔던 고상준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김찬영은 그런 고상준에게 오히려 미소로 응수했다.
-걱정이 되어서요.
-무슨 걱정?
-혹시라도 집안사람이 엮여 있으면…… 아버지가 아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집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아버지가 모르시는 일이 있으면 안되잖아요.
그리고 김찬영은 놀라우리만치 영민하게 말했다.
자신이 속한 모든 집단에서는 자신이 정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자존심을 치켜세워 주고 있었다.
-윤성이 형 일도 있었고, 또 최근에 그 변호사가 떠들고 다니는 헛소리 때문에 아버지 근심이 많으신데……. 혹시나 집안사람이 연루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걸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잖아요. 갑자기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겠어서…… 조금 불안해요. 아버지가 스트레스 받으시는 것도 싫고, 엄마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해지는 것도 싫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도, 그래도 우리 엄마가 방패가 되어서…… 우신 이름에는 먹칠할 일 없겠다고 생각하는 제가 가장 싫어요…….
김찬영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러자 고상준은 방어적인 표정을 한 겹 누그러트렸다.
그리고 김찬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자식들이 다 너 같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 같구나.
-……아니에요. 형님들도, 누나도 마음은 다 저 같을 거예요. 표현이 서툴러서 그래요.
-하하, 그래. 걱정하진 마라. 집안사람들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
[거짓]-진범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건 고용인들이야.
[거짓]집안사람 중 누군가의 짓이고, 고용인들은 가능성이 없다.
-CCTV에 찍힌 고용인 중에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진실]-아마 그 사람이 아닐까 싶다.
[거짓]-그래서 그놈을 찾느라 시간이 걸렸던 거야. 하지만 네 엄마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니, 2심 전에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가짜 진범을 준비하기로 한 거고. 곧 변호사들이 너한테 보고할 거다.
[진실]-집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괜히 네 엄마와 네가 고생하는구나. 조금만 더 견뎌라, 찬영아. 충분히 보상하마.
[진실]이런.
김찬영의 가증스러운 몇 마디 말에 이런 거대한 수확이 있다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저하고 엄마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 잘 모실게요. 고용인 찾으시면 저에게도 알려 주세요.
-그래.
고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 그렇지. 아직 좀 시간이 있는데. 오늘 뭐 할 일 있니?
-아, 오늘,
-네가 모처럼 입사했는데 양복 한 벌 정도는 맞춰 줘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런데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이렇게나 지났구나.
그렇게 말하며, 고상준이 붙박이장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뒤를 다급히 따르는 김찬영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양복 많아요, 아버지.
-많기는. 저번에도 몇 번 보니까 늘 똑같은 거 입고 있던데.
-그게 마음에 드는 옷이라 자주 입어서 그래요.
김찬영이 고상준을 앞질러 가며 말했지만, 고상준은 오히려 웃으며 붙박이장 문고리를 잡았다.
-아버지가 주는 선물 번번이 거절하면 아버지도 서운한 법이야.
그렇게 말하며, 고상준이 붙박이장을 활짝 열었다.
“…….”
나는 빼곡하게 걸린 코트와 패딩 뒤에 쭈그리고 앉은 채 입을 막았다.
아까 전 붙박이장 안에 숨으면서, 내 다리가 보일 만한 하단 부분은 붙박이장 안에 있던 상자들로 가려두긴 했는데…….
“……뭐, 옷은 이것저것 있는 것 같은데. 브랜드들이 영 별로야.”
고상준이 옷마다 태그를 확인하며 말했다.
거기서 조금 더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면 내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김찬영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 그 역시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입을 막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숙였다.
젠장…….
“백화점이나 갈까?”
“아니에요. 아무리 퍼스널 쇼퍼하고 쇼핑한다고 해도, 괜히 말 나와요.”
김찬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아까 전 고상준이 이쪽으로 향할 때 사색이 되었던 것과는 달리,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내가 후원하는 재단 장학생이라고 하면 돼. 전에도 그런 적 있잖니.”
“……아니에요. 말씀은 너무 감사한데요, 엄마 아직 자는데 혼자 나가기도 좀 그래서요. 나중에 다 해결되고 나면 그때 사 주세요. 이런 상황에 제가 새 옷 사 들고 나타나면 엄마 화낼지도 몰라요.”
만일 여기서 들키기라도 하면, 내가 김찬영 몰래 일방적으로 이 집에 숨어든 것처럼 해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을 돌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긴.”
고상준은 붙박이장을 닫으며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올 뻔했지만, 아직 거리가 충분히 벌려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입을 막은 채로 자세를 유지했다.
-모처럼 만났는데 밥 한 끼도 못하고 서운하구나.
-다음에요. 제가 첫 월급 받고 넥타이핀 사 드리긴 했지만, 그래도 밥이라도 한 끼 사 드리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사게 해 주세요.
-네가?
-네. 저 이제 돈 잘 벌어요, 아버지.
-하하, 그래. 그럼 기대하고 있으마.
-네, 아버지. 조심히 가세요.
-그래. 엄마 잘 보살피고, 배웅은 하지 마라. 알아서 갈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고상준은 방을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도어 록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쾅, 하고 닫혔다.
김찬영 역시도 잠시 방을 떠나는 듯했다.
고상준이 정말로 나간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는지, 곧 돌아와 붙박이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코트와 패딩 사이를 벌리며 그 뒤에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하아……. 진짜 심장 쪼그라드는 줄 알았어요.”
김찬영이 이마를 짚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약을 먹고 온 게 맞나 내 기억을 의심했을 정도로.
“뭐 건지신 거 있어요? 어떠셨어요?”
김찬영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자, 김찬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옷을 털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와 어머님을 도와주겠다는 말은 진짜 같아. 2심 전에 변호사들이 보고할 거라는 말도, 2심이 얼마 안 남았잖아. 연기 신청은 아직 안 했지?”
“네.”
“적어도 2심 전에 변호사들이 얼마나 준비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됐어. 보고가 시원찮거나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고상준을 한 번 더 조이거나 2심을 연기하고 내가 맡으면 돼.”
“다른 점은요?”
“글쎄.”
말할 수가 없었다.
CCTV 상에 집사가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시각에 안가에 고용인 중 한 사람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집안사람 중에 진범이 있고, 고상준은 이를 알고 있다는 것을.
결국 고상준은 집안사람을 지키기 위해, 집안사람이 아닌 김화영을 방패로 쓴 것이다.
김찬영이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김화영은 그들의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고 있었다.
이렇게 된 마당이라면, 역시 진범은 윤성희일 확률이 가장 높다.
사건을 내가 맡을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처음 생각한 대로 김찬영을 위한 선택을 해야겠지.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고상준이 어머님을 지켜 줄 용의가 있느냐였는데, 그 말을 할 땐 진심 같았어. 너한테 그 말을 할 때, 네가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상당히 구체적으로 말했거든. CCTV 내역에 대한 얘기라든지, 2심 전에 변호사들이 보고할 거라든지. 네가 추가적으로 고상준한테 했던 말이 유효타였던 것 같아. 고상준이 널 더욱 신뢰하게 만든.”
그 말에 진심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고상준이 그 말을 믿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태까지 김찬영이 고상준의 밑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까지 했다.
“불안하면 2심 전에 변호사들한테 보고 받고 연락해. 그전까진 나도 계속 주시하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변호사님. 변호사님 고급 인력인데, 저 때문에 괜히 시간만 뺏기신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니야. 그래도 어머님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지.”
“……와, 방금 그거 되게 사교적인 멘트 같았어요. 웬일이에요, 변호사님?”
“사교적인 멘트 아닌데.”
“그럼 진심이었어요?”
“그럼 아니겠어?”
“저 좀 감동인데요?”
만일 김찬영이 집안사람을 숨겨 주기 위해 김화영을 방패로 썼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니, 김찬영은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니 차치하더라도, 김화영이 알게 되면 그녀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고, 2심 때 준비될 그 가짜 진범마저도 필요 없다며 난동을 부릴 공산이 크다.
나는 김찬영의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가면서, 김화영의 닫힌 방문을 흘긋 바라보았다.
고상준에게 착취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각자마다 그 방법도, 사연도 다양하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