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35)
너희들은 변호됐다-335화(335/641)
“흐음, 그렇구나.”
강민재는 자장면으로 세수를 할 참인지, 그릇에 코를 박고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당연히 얼굴에 자장면이 묻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깨끗했다.
“그런데 변호사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정말로 윤성희 짓이라면 좋은 기회가 될 텐데요.”
오 사무장은 식사를 다 마쳤는지, 수저를 내려놓고 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우신의 손에 살인범이 되기 직전까지 갔던 내가 맡기에 최적의 사건이긴 한가 보다.
“맞아요. 솔직히 그렇게 되면 찬영이랑 어머님은 해피 엔딩이긴 하겠지만, 결국 진범은 등 뒤로 숨는 거잖아요.”
강민재 역시도 아쉽다며 한마디 보탰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 있어요? 그때 말씀 들어 보니까 딱 봐도 윤성희가 찬영이 어머님한테 덮어씌우려고 일 벌였다가 고상준이 오므려 주는 모양새인데. 이렇게 살아남으면 윤성희는 또 어머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거라고요.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요.”
“원론적으론 그렇지. 하지만 고상준도 나름대로 윤성희가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할 테고……. 다 떠나서, 내가 그 사건을 맡는다면 찬영이든 어머님이든 위험해질 것 같아서 손을 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맞아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변호사님. 변호사님한테 사건 의뢰하면 고상준이 가만두겠습니까? 찬영이가 아무리 고상준 앞에선 어머니와 척을 진 체하면서 산다고 해도,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 말이죠. 그 연기가 먹히려면 찬영이가 집을 나와야 할 텐데, 찬영이 입장에선 아프신 어머님 혼자 두는 것도 좀 그럴 거예요.”
“하긴, 이 사건 맡겠다는 것도 결국 우리 욕심이죠. 재발 방지를 생각하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 뿌리를 고상준이 알아서 뽑을 거라고 믿어야죠.”
고상준과 김화영,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김화영에게도 물론 큰 문제가 되겠지만 고상준에게 더욱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다.
김화영이야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숨어 산 지 오래지만, 고상준은 아직도 우신그룹의 회장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김화영은 불륜녀, 첩 소리를 듣겠지만 어차피 그런 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은 인터넷을 끄면 사라지는 망령 같은 것이다.
원래도 외출을 잘하지 않는 그녀로서는 공개적으로 치부가 까발려졌다는 상처만 잘 극복하면 크게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상준은 다르다.
불륜, 성 상납, 김화영을 숨어 살게 만든 것, 혼외자.
여러 가지 문제가 덮치면서 주식에도 영향이 갈 것이고, 이미지 훼손도 상당할 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라, 이 사건이 물 위로 올라오면서 줄줄이 엮여 터져 나올 연쇄 작용들이다.
그것이 어느 방향까지 뻗어갈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어쩌면 나에게는 바라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하, 이거.
내가 바라는 바와 양심이 정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윤성희는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왜 김화영 씨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을까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꼴 보기 싫었다면 김화영 씨를 죽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집사를 죽이면 혹시라도 지금처럼 고상준이 구해 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진범이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확실하게 처리되는게 아닌데.”
오 사무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야기는 꽤 으스스하지만, 맞는 말이다.
“김화영, 그냥 편의상 존칭 생략할게요. 김화영을 죽이면 고상준의 분노가 클 것 같아서가 아닐까요? 윤성희가 김화영을 그렇게 만들려고 한 건 어쨌든 질투라든지,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텐데. 그러면 고상준하고 관계가 틀어지면 안 되잖아요.”
“근데 김화영 씨를 살해하든, 살인범으로 만들든 고상준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건 고상준이 윤성희와 이혼하려고 했다는 걸 윤성희가 알았다면, 고상준도 할 말은 없을 거잖아요. 윤성희도 할 말은 있을 테고, 고상준도 괜찮겠죠. 근데 이혼 얘기는 김화영하고 둘이서만 한 얘기일 텐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네요.”
“누가 전해 줬나 보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내가 끼어들자, 강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집사인가?”
“그랬다면 집사를 심복으로 쓰고 있었거나, 심복으로 쓸 기회인데. 죽이진 않았겠지?”
“흐음, 집사가 선택된 이유는 그냥, 김화영과 집사가 사이가 아주 나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겠죠. 집사가 그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면, 적어도 고용인들은 전부 김화영을 가리킬 테니까. 그걸 노렸겠죠.”
“그런데 윤성희가 고상준이 이걸 커버 쳐 줄 거란 생각을 못 했을까?”
내가 던진 화두에 강민재와 오 사무장은 짠 것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을 리가요?”
“그렇다면 살인범으로 만드는 것도 실패할 거란 사실을 윤성희도 진작 알았을 거잖아. 그렇다면 왜 집사까지 죽이면서 이런 일을 벌이난 말이야. 어차피 실패로 돌아갈 텐데.”
“……그러게요?”
“윤성희는 고상준이 본인과 이혼하면 김화영과 재혼할 거라 생각했고, 그걸 막기 위해서 김화영을 살인범으로 만든 거라고 가정하자. 이렇게 되면, 만일 김화영이 살인범이 되지 않더라도, 단지 그렇게 의심을 받았다는 전적 하나만 있으면 고상준은 자신의 새로운 배우자로 김화영을 선택하지 않을 거야.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나쁜 상대하고 재혼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전까지는 내 앞에 던져진 의문이 많아서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헐, 그러면…….”
“윤성희는 김화영 씨가 지금 재판받고 있는 걸 터트리려고 할 것 같아. 1심 때는 고상준이 틀어막아서 못 냈다고 하지만, 2심 전까진 고상준이 김화영 씨를 어떻게든 살려 낼 걸 알 테니까. 그 진범이 자수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사건을 터트리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다.
사건 번호만 알아도 김화영이 왜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니까.
다른 말은 필요 없다.
김화영이 그 재판에 피고인으로서 출석했다는 내용만 있어도 치명적이다.
설령 다른 진범이 나타났다고 해도, 사람들은 첫 소식을 가장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그 이후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김화영에게 혐의가 없어 재판이 끝나게 된다고 해도, 이런저런 루머는 나돌 것이다.
게다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은 김화영이 무얼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해 왔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그녀의 신비주의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그런 찰나에, 살인범이라는 기사가 터지면 이미지는 그렇게 각인될 것이다.
기사 한 번 터트리는 것으로, 그녀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종현이 형님한테 연락해 볼게요. 그쪽에 소식 도는 거 없는지.”
“터지면 일중일보 쪽일 거야.”
일중일보가 우신과 그렇게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윤성희 덕분이다.
윤성희가 일중일보 사주의 딸이니까.
그 두 사람은 언론과 재벌의 유착으로 대표되는 혼맥이다.
“아무리 고상준이 틀어막아도, 윤성희가 이혼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면 아마 기사를 내겠지.”
고상준이 반발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두문불출 외부 활동도 없는 첩이 욕 좀 먹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면, 고상준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 자신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남들이 상처를 받든, 인생이 망가지든, 하찮은 인생이 좀 망가지는게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윤 기자한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오 사무장의 말에, 나는 휴대폰을꺼냈다.
윤세연에게 전화를 걸자,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와아, 이게 누구야. 서초동 대형로펌 대표 변호사 차주한 변호사님 아니세요! 와, 이런 거물이 변방의 기자 나부랭이한테 연락을 주시다니!
“윤 기자님.”
-왜요. 왜 그렇게 진지하게 말씀하세요. 뭐 새로운 거 있나요? 소스 주시려고요? 그럼 저 메모장 좀 가져와도 되나요?
“반대입니다.”
-반대라니요?
“혹시 지금 스탠바이 중인 기사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 해서요.”
-우리 부서면 확인해 드릴 순 있는데, 다른 부서면 모르겠네요. 어느 부서인데요?
“기자님 부서일 겁니다.”
-뭔데요?
“살인 사건입니다.”
-변호사님 귀신이네요. 이건 또 어떻게 알았대요?
“살인 사건 맞습니까?”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 볼까요? 제가 먼저 흘리는 건 좀 그러니까, 장소하고 범인 이름 앞글자 말씀해 보실래요?
“조, 김.”
-맞아요. 그거 내일 조간신문에 나가요. 이거 비밀이니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기사 막을 방법은 없겠습니까?”
-막아요? 왜요? 이거 혹시 뭐 복잡하게 엮인 거 있어요?
윤세연은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스 주려고 연락한 건 아닙니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너무 궁금해서 그만. 그런데 이게 너무 특종이라, 안 될 것 같은데. 이거 저희가 독점으로 내보내는 거라고 저희 부서 사람들하고 데스크 말고는 아무도 몰라요.
“……인쇄까지 된 겁니까?”
-인쇄가 중요해요? 인쇄야 했어도 다시 찍으면 그만인데. 아직 시간도 있고. 근데 일단 저는 아시다시피 절대 막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도 하고, 이거 소스 받아 온 사람도 저희 부장님이에요.
부장에게 직접 꽂혔다는 건, 확실히 윤성희가 친정에 말해서 내는 기사가 맞다는 확신을 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저랑 같은 사건 말하는 거 맞죠? 저 낚인 거 아니죠?
“맞습니다. 김화영 씨 사건.”
-……네. 아니, 근데 변호사님은 이런 거 대체 어떻게 알아요? 진짜 귀신이네?
“일단 끊겠습니다.”
-네? 아니, 변호사님. 말해 주고 끊어요! 왜 그러는데요? 왜 그러는데요!
나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아까부터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던 오 사무장과 강민재에게 말했다.
“내일 조간 1면이랍니다.”
“와, 이거 제대로 큰일 났네…….”
나는 빌지에 법인 카드를 꽂아 강민재에게 건네주고, 먼저 식당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먹으러 나온 것이니, 어느덧 8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김찬영이 알려 주었던 대포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차주한인데, 할 말이 있어서.”
-뭔데요? 만나서 얘기해야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럴 필욘 없어. 넌 날 만날 게 아니라 고상준을 만나야 해.”
-무슨 일인데요?
내 입에서 고상준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찬영의 목소리에 눈에 띄게 긴장감이 어렸다.
“내일 일중일보 조간신문에 어머님 기사 1면으로 나와. 고상준이 여태 틀어막았는데, 윤성희가 푸시해서 나가는 것 같아.”
-씨발, 무슨 말도 안 되는…….
“고상준이 몰라서 나가는 건지, 아는데도 못 막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확인 한번 해 봐.”
-알겠습니다. 확인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고상준이 김화영을 구하려는 마음만은 진심이었으니, 기사가 나가는 것을 알기만 하면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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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김화영, 본인 소유 별장관리인 살해]그리고 이튿날, 일중일보 조간신문 1면에 김화영의 기사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