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36)
너희들은 변호됐다-336화(336/641)
일중일보 조간신문 1면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신문을 사러 나갔다.
하지만 가판대에서 신문을 집어 들기도 전에 보이는 ‘김화영’ 세 글자에 나는 결국 한숨을 쉬고 말았다.
고상준은 왜 막지 못했는가?
혹은, 막지 않은 것인가?
“…….”
새벽 5시의 이른 시간.
나는 잠시 망설이다 휴대폰에 김찬영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김찬영에게 어제 소식을 알렸으니, 오늘 기사가 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고객님이 통화 중이어서…….]하지만 통화 중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아마 김찬영도 이 상황을 알고 고상준에게 따지기 위해 통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콜백이 오겠지 싶어 그동안 사태 파악을 하기 위해 서재로 가 노트북을 켰다.
요즘은 신문 지면으로 특종을 알리는 시대는 아니다.
인터넷 기사로 먼저 터트리고, 그 다음 날 지면으로 싣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신문 구독자를 늘리는것보다는,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 수를 늘려 광고비를 받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신문 기사로 실은 것은, 김화영이라는 배우를 잘 아는 중년층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요즘 스마트폰이 보급되었다고 해도, 스마트폰은 아직까지는 10대, 20대 사이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에 김화영에 관한 기사가 떠도 ‘그래서 그게 누군데?’ 하는 반응만 가득할 것이기에.
[80년대 청춘스타 김화영, 별장 관리인 살해…… 혐의 부정신비주의 배우 김화영의 민낯
이래서 숨어 있었던 거였어? …… ‘사람 죽인 청춘스타’
청춘스타 김화영을 둘러싼 수많은 루머, 그 이상의 진실 ‘살인’]
온갖 원색적인 문구로 포털 사이트 연예면이 도배되어 있었다.
기사에는 어떻게 해서 김화영이 살인자가 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집사가 실종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위치가 잡힌 곳이 김화영의 별장이었다고.
김화영이 수색을 거부하여 조사가 이어지지 못하다가, 익명의 제보로 김화영과 집사의 사이가 심각했다는 것이 드러나 영장이 나왔다고.
수색한 결과 정원 한쪽에서 시신이 나왔다고.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화영의 근황 사진이 공개된 적은 없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김화영이 예전보다는 다소 수척해진 모습으로 차에 오르는 사진도 널리 퍼져 있었다.
실물과 너무 달라, 처음 사진을 보았을 땐 김화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신경질적인 표정과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한 얼굴은 동화 속 마녀를 연상하게 했다.
일부러 살인자의 모습에 걸맞게 못 나온 사진을 골라 게시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마, 김화영의 이미지를 무너트리기 위해 윤성희 쪽에서 제공한 사진일 것이다.
[aa**** : 김화영 옛날에 좋아했는데… 늙어서 피부 다 처지고 늙은 마녀 다 됐네… 쩝…zd**** : 내 첫사랑 돌리도~~!
qk**** : 살인자 악마년
la**** : 소식 없이 얼굴 비추는 일 없이 살길래 어디서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가정 꾸리고 사는 줄 알았더니.. 조연동에 별장 지어 놓고 관리인한테 히스테리 부리면서 살고있었구나…]
확산 속도가 빨랐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도 수백 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화영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로 이름을 많이 들어 보았을 젊은 층들 마저도 김화영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인터넷 이용하는 중년층,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중년층까지 전부 알게 되었을 테니, 이제 전 국민이 이 이야기를 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게다가 이 얼마나 씹기 좋은 주제인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연예인들의 원색적인 찌라시들이 돌아다닌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하지만 이번엔 공인된 기사가 나왔으니, 그 누구도 김화영을 욕하는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
1시간쯤 흘렀을까.
전화가 울렸다.
김찬영이었다.
“여보세…….”
-고상준이……. 고상준이 도와주겠다고 한 건 진심일 거라고 하셨잖아요…….
김찬영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비음이 섞인 것을 보면 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찬영아.”
-고상준이 엄마 살리려는 건 진심일 거라고, 변호사님이 그러셨잖아요! 그 전에, 2심 전에 가짜 진범 준비되는 것만 확인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그러셨잖아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찬영도 알고 있다.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탓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상준이 엄마를 정말 구해 줄 거라면, 대체 왜 그 기사 하나를 못 막아요! 대체 왜! 고상준이 그런 거 하나 못 할 인간은 아니잖아요!
나 같은 변호사에게는 일중일보 1면에 나갈 기사를 막을 힘 같은 것은 없다.
만일 내가 사건을 맡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윤성희 하나로도 치명타인데, 고상준까지 함께 덤볐다면 상황이 오히려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어제 김찬영에게 소식을 전해 주고 나서,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마 고상준이 자신이 막아 보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데, 굳이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
그래서 나도 안심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김찬영의 말대로, 고상준이 그거 하나 못 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고상준도 실패한 것인가.
윤성희가 어떻게 부탁했는지는 몰라도, 장인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면, 일부러 막지 않았을까.
-이제 어쩌죠……. 하, 좀 있으면 엄마 일어날 거예요. 엄마가 이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 정말 감도 안 와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영원히 숨길 수는 없어.”
-알아요, 아는데……. 일단 안정제를 먹인 다음에 말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김찬영은 탄식만 내뱉었다.
그가 어떤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김화영은 자살 기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김화영을 직접 보았을 때 그녀는 불안정해 보이기는 해도, 눈에 띄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집사의 목을 졸랐던 것을 생각하면, 돌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어머님 모시고 응급실에 가.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 있는 응급실로.”
-엄마를 입원시키라고요?
“며칠만이라도. 소식 알려 드리고, 인터넷은 보지 못하시게 해. 그리고 병원으로 가. 네가 항상 붙어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같은 집에 있어도, 공간이 분리되는 순간 사고 날 수도 있어.”
-……하.
“고상준은 어제 뭐라고 했어?”
-어제……. 어제, 변호사님 연락받고 바로 고상준한테 연락했어요. 일중일보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들었다고……. 대충 둘러대면서 말했더니, 많이 놀라더라고요. 그러더니, 자기가 막아 보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다야?”
-전화 끊고 새벽 1시쯤에 문자가 또 와서, 또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믿고 잤는데, 대체 왜 이런…….
“방금 통화한 건. 그때 고상준하고 통화한 거 아니야?”
-맞아요. 그땐……. 본인은 막으려고 애썼는데, 안 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엄마 잘 보살피고, 어차피 가짜 진범이 자수하면 문제없는 거니까 지금만 견디라고……. 자기가 다 보상한다고…….
보상?
코웃음이 나왔다.
그때 붙박이장 속에서 들었을 때도, 고상준은 보상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말인가.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도 자신이 기워서 새것처럼 만들 수 있단 소린가?
아니면 그 알량한 돈?
고상준의 사고방식에 구토가 치밀었다.
“일단 중요한 건 사람들이 어머님에 대한 모든 것들을 말하는 걸 직접 보면 안 된다는 거야. 휴대폰, 텔레비전, 인터넷. 전부 다 못 보시게 해. 그리고 네가 보도가 나갔다는 사실만 알려 드려.”
-그냥 말하지 않으면……. 그냥 숨기면 안 되나요? 어차피 엄마 밖에도 안 나가고 연락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러면 네가 휴대폰 치운 것, 텔레비전, 인터넷, 다 못 보시게 하는 건 어떡할 건데. 그리고 어머님이 궁금한 걸 못 참고 네가 없을 때 확인하시면. 그래서 네가 바로 대처 할 수 없으면?”
-하…….
나도 의사는 아니기에 뭐가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입원하는 것은, 결국 환자가 누군가를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쯤은 안다.
물론 그 누군가에,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일단…… 그렇게 해 볼게요.”
* * *
김찬영은 전화를 끊고 벌떡 일어났다.
부엌에서 가위를 들고 와서, 텔레비전 전원 선과 인터넷 선을 전부 끊었다.
그로도 부족해서, 집 안에 있는 모든 뾰족한 물건들을 커다란 부직포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부엌칼, 커터 칼, 작은 가위, 나이프, 심지어 버터나 쟁을 바르는 나이프도 포함했다.
그는 미친 듯이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텔레비전 전원 선을 자르고, 샤프나 볼펜까지도 전부 부직포 가방 안에 쓸어 넣었다.
김화영의 침실에 있는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원선을 자르고, 그녀의 방 안에 뾰족하고 날이 선 모든 물건을 가방안에 넣으니 벌써 무거워졌다.
“으음……. 아들?”
잠결에 김찬영이 자신의 방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었는지, 김화영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상체를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아침.
김찬영은 반사적으로 가위를 등 뒤로 숨기며, 김화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
“엄마, 좋은 아침.”
“응……. 근데 아들, 무슨 일 있어?”
“아, 엄마. 잠깐만 기다려.”
김찬영은 방 밖으로 나왔다.
부직포 가방을 자신의 방에 넣어놓고, 문을 잠갔다.
모든 방문 열쇠는 미리 챙겼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머그잔에 미온수를 담고 필요 시 약으로 받아둔 약을 챙겼다.
“엄마.”
김찬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침실로 들어가 김화영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물 한잔 마셔.”
“응.”
김화영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김찬영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왜 물을 마셔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장 믿는 아들이 하라고 하니, 그저 하는 것이다.
김찬영은 목이 메는 것을 겨우 참으며 알약을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약.”
“응.”
순순하게 약을 삼키는 것을 보면서, 김찬영은 그녀의 휴대폰을 집어들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텔레비전을 틀기 위해 리모컨에 손을 올렸다.
버튼을 눌렀지만, 텔레비전은 켜지지 않았다.
“텔레비전 왜 안 켜지지?”
“모르겠네. 정전인가?”
김찬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약효가 돌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30분 정도면 될 것이다.
“엄마, 나 회사에서 좋은 일 있었어.”
김찬영은 말을 돌리기로 했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자신이 회사에서 제안한 것이 반응이 좋아서, 위까지 보고가 올라갔다고.
그 일로 팀에서 에이스로 불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네 아버지가 알면 좋아하겠다. 아무도 끌어 주는 사람 없이 입사해서, 이렇게 성과도 좋잖아. 하……. 그럼 뭐 하니. 어차피 그 인간은 날 버렸는데.”
김화영이 인상을 구기자, 김찬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에게는 고상준을 증오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고상준과의 영원하고 온전한 사랑을 꿈꾸는 상반된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2심 전에 가짜 진범을 자수시키겠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엄마.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어. 어떻게든 엄마 구해 주겠다고. 내가 어제도 통화했어.”
“……그래? 아아, 근데 왜 이렇게 머리 안에서 뭐가 꾹꾹 누르는 것 같지? 뭐랄까, 중력 같은 거에 납작하게 눌리는 기분이야. 아까 먹은 거 아침 약 맞아?”
“이상하다. 왜 그러지?”
“이상하네…….”
약효가 돈 것 같다.
김찬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
“응?”
“기사가 났어.”
“무슨 기사?”
“……엄마 재판 중인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