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4)
너희들은 변호됐다-34화(34/641)
‘이건 능력으로 확인해야 한다.’
출력소에 찾아가 사장을 붙들고 다짜고짜 물을 수도 있고, 푸른섬 미디어에게 질문할 수도 있다.
내 능력은 얼굴만 맞대고 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두 방법 모두, 고소한 다음에라야 가능한 방법이다.
고소하기 전에 저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이 법정 공방을 예상할 것이 분명하다.
준비할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어차피 드라마 종영도 한 발짝 다가왔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우선 당장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넣고 고소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다.
만일 나은성의 시나리오를 인쇄한 적이 없다면, 태식이를 그쪽에 두고 노가다 시키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어쨌든 있다면 가장 크리티컬한 증거가 아닌가.
“……스케줄도 바뀌었고.”
배우들 팬카페에 들어가 스케줄을 확인했다.
저번에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추가 촬영 일정이 잡혀 있었다.
언뜻 봐도 2화를 다시 찍을 수 있을 정도의 일정이었다.
나은성의 비교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을 기점으로, 정혜진이 대대적인 수정을 시작했다는 근거가 된다.
그로부터 2시간 뒤, 8시쯤 되었을까.
강민재와 나은성이 사무실에 나란히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지친 얼굴이었다.
특히 나은성은 많이 울었는지 눈과 코가 벌게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나은성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좀 진정은 되셨습니까.”
“……네. 아깐 추태를 부려 죄송했어요.”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그녀가 진정되는 대로 사무실로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은 나였다.
강민재가 그녀와 내가 마실 음료를 내오는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에게 할 말을 정리했다.
이윽고 강민재가 내 옆에 앉자, 나는 입을 열었다.
“나은성 씨.”
“네.”
“나은성 씨 말씀대로, 고소를 앞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저는 그냥 그때 너무 우울해서 변호사님한테 화풀이한 거예요. 너무 제 말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아뇨.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확인하지 못하였을, 갑자기 바뀌어 버린 상황을 설명하는 캡쳐본들이었다.
“이게 무슨…….”
“드라마는 20화로 종영될 겁니다. 우리의 계획은 종영 전 고소해서 지금 이 여론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거였고, 그래서 종영 3주 전에 맞춰 비교문을 터트린 거고요.”
“…….”
“그런데 다음 주 종영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졌다는 뜻입니다. 푸른섬 미디어는 대본을 바꾸고 두 주인공의 과거 비밀을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 작정인 것 같습니다.”
“그럼 고치기 전에는 제 줄거리대로 가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네. 원본 대본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려는 듯했다.
강민재 역시 몹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그는 곧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계속 말씀해 주세요.”
“나은성 씨의 대본을 출력소에서 인쇄했다는 증거는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출력한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정혜진 혼자 가지고 있을 확률도 있고요.”
“……네.”
“어쨌든, 가장 크리티컬한 증거가 없다 뿐이지 다른 증거와 증인들은 있습니다. 그리고 유사점이 많은 건 확실하고요. 의거성도 본인은 부인했지만, 캐릭터 설정 정도는 검토했을 테니 걸고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또 수정 전후 대본을 전부 가지고 있으니, 일부러 나은성 씨와 다르게 하려고 수작 피운 것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네.”
“저는 고소하려면 종영 전에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쇄했다는 증거가 없더라도요. 약간의 리스크를 가지고 가는 겁니다. 공방이 길어질 가능성, 어쩌면 패소할 가능성. 하지만 나은성 씨가 그 증거를 취득한 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고소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은성 씨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1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의뢰인의 의견이다.
“19화가 방영되는 6일 뒤. 그때까지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물론 그때는 방송 금지 가처분은 낼 수 없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아뇨.”
나은성이 내 말을 자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대답할게요.”
그녀는 나와 강민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심약해 보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두 분 믿겠습니다. 두 분의 판단대로 해 주세요.”
6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울며 고민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강민재는 놓치지 않고 ‘바로 내가 그녀를 달랜 사람이다’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고소장 작성 진행하겠습니다.”
* * *
이튿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서와 고소장을 제출했다.
통상적으로 가처분 여부는 1주일 내외로 정해진다.
지금처럼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선, 아마 방송 하루 전에 재판이 잡히고 가처분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겨우 며칠 사이에 저작권 침해를 완벽하게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정말로 방송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다.
화제성. 우리는 그것만 챙기면 되었으니까.
[작가 지망생, <당신과 나의 거리>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 받아들여지나?] [<당신과 나의 거리> 종영 앞두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 [<당신과 나의 거리>의 저작권 침해, 어느 수준인가?] [작가 지망생 측, <당신과 나의 거리> 저작권 침해로 소송 제기……] [<당신과 나의 거리>VS<우리 사이> 법정 공방의 승자는?]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모든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가 교체되었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네티즌끼리의 싸움은 더욱 첨예해졌다.
이제는 절대로 인터넷을 하지 않겠다고 나은성과 약속을 받아 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김연준 무죄 입증했던 차주한 전 검사가 이번에는 법무법인 태광과 맞붙는다네요]법조계 커뮤니티에도 짤막하게 나와 관련된 게시글이 올라왔다.
물론,
[차주한 전 검사, 형사부 출신인데 저작권 분쟁을 맡네요……. 그것도 태광 상대로요. 유명세를 위해 뭐든지 하는 느낌이군요……. 이용당하는 작가 지망생만 안됐습니다. 드라마계에서 공모전 제출 작품 표절하는 거 공공연한 사실이고, 다들 그걸 몰라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승소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저작권 전문 변호사도 힘들어하는 일인데… 차주한 변호사 무리 많이 하네요……. 보기 안 좋습니다.ㄴ차주한 변호사는 사실상 검찰하고 등 돌렸다고 봐야 합니다……. 일중일보하고 인터뷰한 것도 너무 나대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청에서는 누가 밀어주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ㄴ검찰하고 등 돌린 형사 변호사가 밥 먹고 사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검찰하고 마주칠 일 없는 민사 쪽으로 선회한 건 아닌가 싶네요.
ㄴ민사로는 첫 재판인데 이렇게 큰 사건에 언플까지…….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네요. 패소하면 그 망신을 어떻게 감당하려고ㅋ
ㄴ현직 대형 로펌 저작권 전문 변호사입니다. 승소하기 굉장히 힘든 사례인데 저렇게 무식하게 들이받다니요……. 개인적으로 차주한 전 검사와는 연수원 동기라 꽤 좋아했는데 갈수록 실망이네요.]
법조인들은 댓글을 몇 개씩 달아가며 내 욕을 하느라 바빴고 말이다.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 역시도 내 예상대로 되고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변호사로서 유명세를 키워 나갈 작정이었다.
유명해지면 필연적으로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고, 동종 업계 종사자라면 싫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좋은 이미지로 남길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을 대상으로 할 때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모든 재판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유명세를 얻기 위해 재판을 이용하는 건 사실이니까.
“변호사님 뒤 봐주는 사람 있어요?”
강민재 역시도 커뮤니티를 보고 있었는지, 마우스 휠을 굴리며 낄낄거렸다.
“있으면 좋겠네.”
내 대답에 더욱 자지러지게 웃는 건 덤이었다.
[다들 반응이 안 좋으시네요……. 전 차주한 변호사 응원합니다^^ㄴ허허.. 차변 본인이신가…… 바쁘실 텐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ㄴ졸린 오후 크게 웃고 갑니다^^
ㄴ센스 대박이십니다~!ㅋㅋ]
이 아저씨들 내 욕하는 거 많이 재미있나 보네.
“아, 제가 댓글 달았는데 변호사님으로 오해받았어요. 어떡해요?”
“저 댓글 강 변이었어?”
“……하하.”
그때, 갑자기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여전히 숨넘어가게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강민재를 뒤로하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푸른섬 미디어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태광입니다.
우신 그룹의 계열사는 전부 법적 분쟁을 태광에 일임한다.
푸른섬 미디어 역시 다르지 않았다.
태광 윤원형을 들이받고 온 것이 겨우 두 달 전의 일인데, 벌써 맞붙게 될 줄이야.
어찌 됐든, 놈들도 쉽게 볼 상대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괴물 집단으로는 첫 손에 꼽히는 이들이니까.
“네.”
-미리 접촉도 없이 이렇게 기사까지 내시고……. 한번 뵈어야죠?
“그러게 말입니다.”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았다.
저작권 분쟁 전문 변호사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전화 거는 예의가 이렇게 없어서야.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면, 사전에 자신의 정보가 들어갈 것을 차단하기 위함인가.
어차피 만나면 알려질 일인데, 잔기술에 불과하다.
확실히 나를 얕보고 있는 것은 알겠다.
-언제 시간 괜찮으십니까? 가급적 빨리 뵈었으면 좋겠는데요. 오늘도 언제든지 괜찮습니다만.
아마, 인터넷상에 나은성의 입장문이 올라왔을 때부터 변호사가 붙어 사안을 검토했을 것이다.
이미 준비도 끝난 모양이었다.
아직 고소장을 받지도 않았을 시점에, 고소당했다는 기사만 접하고 바로 보자는 것을 보면 말이다.
“5시에 뵙죠. 저희가 푸른섬 미디어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강 변에게 턱짓했다.
“네티즌 놀이 그만하고 나갈 준비해.”
“넵!”
벌써부터 만나자는 걸 보면 고소 취하 쪽으로 조정해 보려는 것 같은데, 나는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푸른섬 미디어 인간들 면상부터 보고 인쇄본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