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41)
너희들은 변호됐다-341화(341/641)
나는 강민재에게 눈짓했다.
지난 30분 동안 그녀의 용태를 지척에서 확인한 강민재에게, 그녀가 지금 진술을 해도 될 것 같은지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강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이 이곳에서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보기에도 김화영이 많이 가라앉은 것 같으니 한번 들어 볼까.
“집사 남자 친구라고 하셨습니까?”
“네. ……사실, 그 사람이 집사 남자 친구인 줄은 몰랐어요. 바로 어제까지도요.”
“그런데 왜 그 사람을 집사 남자 친구라고 표현하셨습니까?”
“찬영이가 말해 줬어요. 태광 변호사들이 입장을 냈을 때, 집사가 남 자 친구를 안가에 들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말이요. 그때 거기 있었다면, 그 사람이 남자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그렇다면, 어머님과 집사 외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그 시간에 그곳에서 그 남자를 보셨던 겁니까?”
“네. 사실…… 사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니, 기억이 뚝뚝 끊겨서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아까, 부끄럽지만…… 그렇게 소리쳤을 때 그날 일이 막 떠올랐어요. 그 집에서 도망치듯 나오면서 누구랑 부딪혔던 게 생각나요.”
“부딪히셨다면, 그 사람이 숨어 있진 않았던 겁니까?”
“아니에요. 수, 숨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하아, 그러니까…….”
김화영이 이마를 짚으며 눈을 잠시 위로 뒤집었다.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제가 말씀드릴게요, 변호사님. 방 안에서 어머님 말씀 들으면서, 제가 좀 자세히 여쭤봤는데……. 찬영아, 연필하고 종이 있어?”
“네. 잠시만요.”
김찬영은 재빨리 방 안에서 필기도구를 가지고 나왔다.
강민재는 대충 종이 안에 직사각형을 그린 뒤, 집안 평면도처럼 문을 그리고, 직사각형 바깥, 문 맞은편에 작은 정사각형을 그렸다.
“이 사각형은 뭐야.”
“이건 기둥이에요. 어머님, 안가의 어머님 방 구조가 이랬던 거 맞죠?”
“네……. 침대가 이쪽에 있고, 화장대가 이쪽, 문 맞은편에 있어요. 저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걸 발견하고 싸웠고요. 여기 방 밖에 있는 기둥은 그림보다 조금 더 큰 느낌이에요.”
“어머님은 이쯤에서 집사와 다투신 다음에, 방을 나서셨대요. 근데 보통 그렇게 급하게 나가는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직선거리로 나가잖아요. 그래서 기둥 앞으로 지나가실 거라고 생각했는지, 집사 남자 친구가 계속 기둥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머님은 그때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시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셔서 뒤쪽으로 돌아나오셨고요. 그러면서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집사 남자 친구와 부딪히신 겁니다. 어머님, 맞죠?”
“네, 맞아요.”
“그러면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집사와 다투실 때, 문은 열려있었습니까?”
“네. 열려 있었어요. 제가 방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집사가……. 그러고, 제 목걸이를, 그러고, 그러고 있었던 게 보여서 닫을 새도 없이 달려들었거든요.”
“그럼 경찰에 넘어간 제보 사진도 저 기둥 뒤에서 찍혔을 것 같은 구도던가요.”
“맞아요. 네, 네, 맞아요. 변호사님, 이 사람이…… 이 사람이 제보했나 봐요. 이 사람이, 이 사람이 제가 집사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제보했나 봐요!”
김화영은 다소 흥분했지만, 약물의 효과 덕분인지 일반적인 선에서 그쳤다.
“어머님, 집사 남자 친구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해요.”
“외부인입니까?”
“아니에요. 안가에서 회장님이 오기 전에 그림을 교체하는데…… 그 그림을 교체하러 오는 우미 갤러리 직원이에요.”
우미 갤러리.
우미 갤러리는 윤성희가 운영하는 문화재단 산하에 있는 갤러리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미술품 거래가 활발한 갤러리고, 자연스럽게, 정재계 돈세탁의 온상이다.
나와 사소하긴 하지만, 엮인 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전에 명화제약 사건 때 명화제약이 중앙약사위원회 위원들에게, 그리고 이정찬에게 뇌물을 공여할 때 사용되었던 곳이니.
어쨌든 우신 그룹의 산하에 있는 갤러리니, 고상준의 안가에 주기적으로 그림을 갈러 온다면 이상할 것은 없다.
중요한 건, 이렇게 되면 이 우미 갤러리 직원이 ‘제보자이자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고용인’일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날 고상준이 집에 오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집사는 고용인 모두에게 오지 말라는 연락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우미 갤러리 직원이 그곳에 와 있었다는 건, 어머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미 갤러리 직원과 집사가 연인 관계였을 확률이 높다는 걸 시사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그밖에, 두 사람이 연인이라고 할 법한 점은 더 없습니까?”
정황만 두고 보면 그렇지만, 조금 더 확신할 만한 것들이 필요하다.
“……갤러리 직원이 그림을 갈아끼고 있는데, 집사가 와서 직원 엉덩이를 만지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갤러리 직원 반응은 어땠습니까?”
“다급하게 집사에게 자기 뒷주머니에 있는 장갑을 꺼내 달란 식으로 말했어요. 그래서 그땐 그냥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데, 생각해 보면 제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임기응변으로 둘러댄 게 아닐까 싶어요.”
“일리 있군요.”
제보자가 집사의 남자 친구가 맞다면, 제보한 것도 상당히 자연스러워진다.
자신은 우미 갤러리 직원의 입장이라 나설 수 없는데, 김화영이 여자친구를 죽였다고 생각한다면 익명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제보자를 목격자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아, 찬영아. 우리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하고 올게. 뭐 생각난 게 있어서.”
나는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저희 사건 관련된 거예요? 그럼 여기서 하셔도 되는데.”
“아냐. 우리가 맡은 다른 사건이있는데, 그거 회신해 줘야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사무장님한테 말씀드리려고.”
“아, 네.”
나는 강민재에게 눈짓했고, 그는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빨리 오겠습니다.”
그는 김화영을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강민재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혹시라도 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차에서 얘기하는 게 가장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변호사님도 같은 생각 하셨어요?”
차에 타자마자, 강민재가 물었다.
“제보자가 목격자라고 생각한 건, 고상준이 그때 사건 발생 예상 시각에 안가에 들어간 고용인이 있다고 해서였잖아요.”
“맞아.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남자 친구일 가능성이 생겨 버렸네 고상준이 안가에 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집사가 오라고 불렀을 수도 있어.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그러니까요……. 아, 이렇게 되니까 왠지 전 그 사람이 목격하지 못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강민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자기 여자 친구가 살해당해서, 그게 묻힐까 봐 경찰에 제보까지 한 사람이에요. 만일 목격했으면 진술했을 것 같아요. 일단 이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정말 목격했다면 김화영 씨가 범인인 것 같은 사진을 보내진 않았겠죠. 그럼 당연히 범인은 김화영 씨 쪽으로 쏠릴 텐데, 그럼 진범이 김화영 씨 뒤로 숨을 거 아니에요. 그냥 완전 생판남이면 또 모르는데, 남자 친구라고하니까…….”
“그럼 잠적한 이유는?”
“그야 CCTV에 찍혔고, 김화영 씨한테 걸렸으니까 잠수 탔겠죠. 사귀는 사이인 거 드러나고, 또 그 집 휘젓고 다녔다는 거 알면 껙 아닌가요.”
강민재가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나는 다른 가능성을 버릴 수 없었다.
그 우미 갤러리 직원은 현장을 목격했고, 고씨 집안 사람 중 누군가가 집사를 죽이는 것을 보았을 가능성을.
일단 경우 1.
우미 갤러리 직원은 경찰에 범인을 이미 찔렀다.
하지만 경찰이 묵살했다.
이 케이스는 사실상 아니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만일 경찰이 묵살했다면, 그전에 우신에 연락이 갔을 것이다.
우신은 그 정보를 듣고 그 사람을 만나려 했을 터.
하지만 고상준은 갤러리 직원이 연락되지 않으며, 현재 백방으로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찔렀을 정도라면, 다른 곳도 아니고 우미 갤러리 직원이니 우신으로 말이 흘러갈 것을 모두 각오하고 움직였을 텐데, 이제 와서 잠적하는 것은 이상하다.
고상준에 의해 강제로 잠수를 타게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고상준의 표현 중 ‘찾고 있다’에서는 [거짓] 판정이 나왔어야 한다.
경우 2.
우신에 직접 찔렀다.
이 역시 경우 1과 같은 이유로 말이 되지 않는다.
경우 3.
누군지 보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나설 용기가 없어서 익명으로 사진을 제보해 살인이 났다는 사실만 알리고 잠적했다.
이 케이스는 처음에 우미 갤러리 직원이 집사의 남자 친구라는 정보가 없을 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 친구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대가 우신인 만큼 나서기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보까지만 하고 잠수를 선택한 것이다.
경우 4.
목격하지 못했을 경우.
김화영이 집사의 목을 조르는 것까지 보았으니, 실종이 아니라 김화영이 죽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보했다.
지금 생각했을 땐 경우 3, 4가 가장 가능성이 있다.
뭐가 됐든, 확실해진 것은 우리는 그 우미 갤러리 직원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상준도 찾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찾을지 벌써부터 암담하긴 하지만.
경우 3이 맞다면, 갤러리 직원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흐음, 변호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내 설명을 들은 강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제보자가 목격자일 확률이 높다는 우리의 추리가 틀리진 않았던 거네요.”
“경우 3이 맞다면 그런 거지. 일단 고상준이 확보한 그 CCTV 속 고용인이 우미 갤러리 직원이 맞는지 확인하고, 그 뒤로 언제 집에서 나갔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
“일단 찬영이한테 알아보라고 해야겠네요. 그건 우리가 알아볼 수가 없으니까.”
강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리려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가, 곧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잠깐만요.”
“왜.”
그는 내리려던 나를 붙잡았다.
“김화영 씨가 살인자로 몰린 이유 중 하나는 그날 그 시간에, 그 집에 집사 외에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거기에 김화영 씨가 집사의 목을 조르는 사진이 발견되어서 문제가 된 거잖아요.”
“그렇지.”
“만일 남자 친구가 범인이면요? 고상준도 그랬잖아요. 그 고용인이 범인인 것 같다고요. 그리고 남자 친구는 김화영 씨가 의심받게 하려고 일부러 경찰에 사진을 넘긴 거죠. 목격자가 아니라 범인일 수도 있는거죠, 그러니까! 전 바본가 봐요. 변호사님이 제보자가 목격자일 수도 있다는 말씀하셨을 때, 그때 반대로 목격자가 아니라 범인일 수도 있단 생각을 해야 했는데!”
“그건 말이 안 돼.”
“왜요?”
범인은 고씨 집안 사람이니까.
……라고 할 순 없고.
“살인자가 가장 바라는 건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거야. 타깃이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으로 특정됐다고 해도 수사 과정에서 자신으로 타깃이 바뀔 수도 있잖아. 아예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걸 바라는 게 정상이지. 실제로 김화영 씨 사진 제보만 하지 않았더라도 압수수색은 안 나왔을 테고, 시신도 발견되지 않아서 지금도 계속 실종 상태로 있었을 테니까.”
“……그건 그렇네요.”
“김화영 씨하고 찬영이한텐 그 얘기 하지 마.”
“근데 이미 찬영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긴 하다.
고상준이 CCTV에 찍힌 그 고용인을 범인으로 보고 있다고 했으니까.
얘기해 보면 알겠지.
조사를 함께 진행하는 사람에게 내가 아는 사실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논리적으로 블로킹할 수 있었지만, 고씨 집안 사람이 범인이라는 가정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얼마나 난처해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