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50)
너희들은 변호됐다-350화(350/641)
“그렇다면 더더욱 할 말은 없을 것 같은데요. 김화영 씨는 태광을 불신했기 때문에 해임한 겁니다. 그런 태광 관계자를, 그것도 본래 변호인단에 속해 있던 사람을 만날 이유는없죠.”
-태광에 소속된 것과는 상관없이, 김화영 씨의 변호사였던 사람으로서 할 말이 있어서예요.
그녀에게 대단한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 삶에서 살맞대고 살았던 사이인 만큼 그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나는 이전 삶의 그녀를 잘 알지만, 이번 삶의 그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만일 그녀가 이전 삶의,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면 크게 따지지 않고 만났을 것 같다.
이전 삶의 그녀는 단지 소시민이었을 뿐, 다른 사람에게 악의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김화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들어 줄 용의가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협박하러 온 거, 한 번쯤 시원하게 들어주고 나도 할 말 하고 끝내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잘 모르겠다.
이전 삶과 다르게 태광에 들어갔고, 고상준의 더러운 음모의 파편이 된 사람이다.
과연 악의가 없을까.
있다면, 내가 굳이 그 말을 들어야할까.
-시간 오래 뺏지 않을게요. 지금 주한 씨 집 근처예요. 재이 초등학교 사거리. 정확히 주한 씨 집이 어디인진 모르겠지만, 대충 이쯤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서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뵙죠, 하고 전화를 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크게 기대되는 것은 없지만, 혹시라도 그녀에게서 괜찮은 소스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전 삶의 그녀라면 그러지 않을 테지만, 이번 삶의 그녀는 또 다를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차피 밤은 길다.
기분을 전환시킬 방법은 또 있을 것이다.
“주소 보낼 테니까, 그쪽으로 와서 연락 주십시오.”
전처는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을 취해 왔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자, 공원 벤치에 정장 차림의 전처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쉬고 계셨나 봐요.”
전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왁스 기가 없는 머리와 옷차림을 보고 그렇게 짐작한 듯했다.
“그랬는데, 부르셨죠. 태광에선, 아니, 우신이겠네요. 우신에선 지금도 제 스토킹에 열을 올리고 있나 봅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하필이면 절 협박할 두 번째 카드로 선택된 게 조아영 씨라, 신기해서요.”
“…….”
“호텔에 올라갔어서 그런지, 조아영 씨와 만나고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네요. 저도 아는 게 없어서.”
[거짓]내가 전처와 다시 호텔에서 만났을 땐, 이미 전처가 김화영 사건을 맡고 있을 당시였을 것이다.
그쪽에선 당연히 정보 유출을 염려했을 테고, 조아영은 만나는 게 아니라며 경위를 소명했을 터다.
팀에서 잘리지 않은 것을 보면 태광은 조아영을 믿기로 했던 것 같고.
그럼에도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이 상황에서 태광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 중에 나와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그녀이기 때문이겠지.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네. 김화영 씨 사건, 주한 씨가 맡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랬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고 맡으셨을 거라곤 생각 안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녀는 나에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네, 라고만 대답했다.
“그 일로 고 회장 난리 났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주한 씨가 우신 사건만 판다는 거,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거, 모르시나요.”
드디어 협박 차례인가.
아까 김윤희는 내가 사건을 맡은 이후 고상준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단지 고상준과 김화영이 부부의 연 비슷한 것으로 맺어져 있으며 잠시 위기가 찾아온 것뿐인데, 우리가 사건을 맡으면 그것을 완전히 뜯어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을 뿐이다.
강민재에게는 대놓고 하지 못했던 말이 이제야 나오는 모양이다.
“김화영 씨가 저희 사무실에서 많이 흥분하셨고, 놀라서 가셨다는 거 저도 봤습니다. 김화영 씨가 주한 씨 찾아간 것도 이해해요. 고 회장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에게 가고 싶었겠죠. 그런데,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 수임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태광 변호사가 아니라 김화영 씨 담당했던 변호사로서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바로 수임한 내 애티튜드를 문제 삼는 거죠?”
“돌려보내셨어야 해요.”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저도 주한 씨와 고 회장의 사이는 잘 모르겠지만, 고 회장 반응을 보면 알려진 대로 두 분 사이가 아주 나쁜 것 같던데. 게다가 김화영 씨는 고윤호, 고윤석 두 형제가 죽였다고 생각하시고……. 악조건이 너무 많이 겹쳤어요. 하필 주한 씨고, 하필 김화영 씨가 고 회장의 아들을 의심해요.
이런 상황이라면, 고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거 짐작 못 하셨나요. 김화영 씨 지금, 아실지 모르겠지만 많이 불안정하세요. 그런 분 사건 오래 끌어서 좋을 거 없다는 거, 주한 씨도 아시잖아요. 이 모든 상황 빠르게 끝내고, 김화영 씨를 이 악몽에서 꺼내 줄 수 있는 건 고 회장뿐이라는 거, 정말 모르셨어요?”
전처가 빠르게 쏘아붙였다.
하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대충 내가 김화영을 태광에 붙잡아 두었던 까닭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나 역시 그래서 김화영을 태광에 잡아 두었다.
그 지점을 파고드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꽤 노력했다는 생각은 든다.
“조아영 씨, 지금 김화영 씨가 고윤호와 고윤석이 집사를 죽였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까?”
“네. 주한 씨한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던가요?”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럼 태광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네, 당연하죠.”
[거짓]그녀도 알고 있다.
고윤호와 고윤석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는 사실을.
이 사실은 변호인단 중에서도 일부에게만 공유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얼른 가짜 진범 내세워서 김화영 꺼내 주고 사건 덮을 생각이었을 텐데 굳이 진범이 누구인지까지 모두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녀가 정말로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저 나에게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저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명확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게 된 모양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거나, 판단할 수 있는데도 그냥 눈을 감거나.
“이것 때문에 사건 맡으셨군요. 진범이 고윤호와 고윤석이라는 말에 넘어가서…….”
“본인 생각, 본인 말만 맞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여전하네요.”
“여전이요? 절 얼마나 보셨다고,”
“그래서 맡은 거 아닙니다. 저 역시 조아영 씨가 말한 것 같은 이해 관계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김화영 씨한테 태광 변호 받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김화영 씨가 태광에 큰 불신을 느끼시고, 그럴바엔 죽겠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사건 맡았습니다.”
“아뇨, 그래도 돌려보내셨어야 해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받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법정에 서는 게 주한 씨라면 어려워질 거란 얘기예요. 고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1차 공판을 그따위로 끝냈던 태광에게 훈수 듣고 싶지 않습니다.”
“주한 씨가 정말로 본인의 목적을 위해서 김화영 씨 변호를 맡으신 게 아니라면…….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전 김화영 씨가 주한 씨와 손을 잡으면 더 궁지에 몰릴 거라고 확신해요. 차라리 다른 변호사를 소개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우리의 손을 벗어나서 아쉬운 게 아니에요.
김화영 씨가 고호와 고윤석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입밖에 낸 순간, 그게 고 회장의 귀에 들어간 순간, 이 싸움은 검찰 대 김화영이 아니라 고상준과 검찰 대 김화영이 되는 거예요. 전 김화영 씨가 하루빨리 모든 불명예를 벗고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그리고 그 가장 빠른 방법은, 저희가 사건을 맡는 거고요.”
어쩌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그녀가 희생양이 되어 버렸으니 김화영 한 사람만 놓고 보면, 하루라도 빨리 자유롭게 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고윤호와 고윤석의 부정을 밝히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전히 소시민적이다.
혹자는 그게 현실적인 거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법조인이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니다.
“그런 태도라면 더더욱 제가 사건을 맡는 게 맞는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까 김윤희 변호사님은 김화영 씨와 고상준이 부부 같은 사이라고 하시더군요. 부부 같은 사이인데, 오해 좀 받았다고 바로 궁지로 몰려고 한다는 게 좀 이해가 안 갑니다. 궁지로 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오해를 풀려고 해야죠. 그런 사람을, 그리고 그런 사람의 지시를 받는 태광을 어떻게 믿고 인생을 맡깁니까.”
“오해를 풀 기회를 안 주시니까요. 김화영 씨, 병원에 입원하셔서 지금 면회도 안 하시지 않나요.”
“그게 노력의 끝입니까?”
“…….”
“그러면 바로 아, 나랑 대화할 생각 없구나, 하고 바로 척지는 게 부부입니까? 매달려라도 봐야죠.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부부라는 것도, 두 사람을 과포장한 말에 불과하고요.”
“계란으로 바위를 칠 생각인가요?”
이 질문을 그녀에게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전 삶에서 나는, 그럴 거라고 말했다.
아주 진부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다는, 뭐 그런 아주 진부한 대답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대답할 생각이다.
“내가 왜 계란입니까.”
“그럼 뭔데요.”
“정입니다.”
크기는 바위에 비해 한없이 작을지 몰라도, 계란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정 말이다.
처음부터 돌을 깎기 위해 만들어진.
“나도 부족함은 많지만, 조아영 씨에게 훈수 들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충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무슨 충고요?”
그녀의 전체적인 말은 결과적으로는 태광에게 다시 넘기라는 결론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김화영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알아서 풀려나게 해 줄 테니까 난동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태광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할 수가 없어서 완곡하게 다듬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저 모든 말이 정말 김화영을 위한 거라면, 결국 일개 개인이 내가 거대 권력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니 윤리적으로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게 맞다는 말 아닌가.
결국 본인 생각은 현실적이고, 내 계획은 허황된 이상을 좇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성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이전 삶과 똑같은 결론이다.
“본인만 옳은 생각 하는 거 아닙니다. 본인이 하는 생각, 남들도 할 줄 압니다. 그런데도 하는 겁니다.”
“…….”
“애초에 가는 길이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길이 다르면 그냥 지나가세요. 본인이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남도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고상준 무서웠으면 애초부터 시작도 안 했습니다. 태광의 지령을 받고 온 게 아니라, 정말로 김화영을 생각하는 변호사로서 왔다고 하니 하는 말입니다.”
“생각보다 오만한 스타일이시네요.”
“오만한 게 아니라, 본인의 시야가 좁은 겁니다.”
조아영은 분개한 듯했지만, 나는 말을 무를 생각은 없었다.
범죄자 숨겨 주고, 죄도 없는 사람 돈 쥐여 주고 감옥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왜 변호사라 불려야 한단 말인가.
이전 삶과 이번 삶의 그녀는 조금 달랐지만, 그럼에도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정의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나 역시도 정의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입장이기에, 정의 타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적어도 태광의 앞에서는 한없이 떳떳하다.
그녀가 집사를 죽인 범인이 고윤석과 고윤호가 아니라고 할 때 거짓 판정이 뜬 것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말라며 나를 버렸던 그녀는, 결국 이번 삶에서 바위가 되기를 선택했다.
“조아영 씨의 방법으로는 김화영 씨를 구할 수 없을 겁니다. 언젠가 가짜 진범이 감옥에서 폭로라도 하면요. 그래서 재심이라도 요청하면요. 김화영 씨는 다시 광장으로 끌려나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그때 태광은 김화영을 책임져 줄까?
고상준의 명령이 있다면 또다시 가짜 진범을 마련해 줄 순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반복된다.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가짜 진범이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거짓]하긴.
나에게 김화영이 넘어온 시점에서 가짜 진범을 동원하려 했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했다가는 후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테니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당연하다.
“모르는 얘기라면 어쩔 수 없고요.”
“주한 씨가 김화영 씨를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잘 알았어요. 그나마 안심이 되네요. 하지만, 목적이 전치되지 않게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화영 씨를 고 회장을 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마세요. 그리고 주한 씨의 선택 때문에, 앞으로 김화영 씨가 더 큰 고난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도, 각오해 두셔야 할 겁니다.”
“조아영 씨도 목적이 전치되지 않게 주의하세요.”
“무슨 목적이요?”
“변호사가 된 목적 말입니다.”
나는 짧게 묵례하고 공원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시 50분.
오늘 하루가 10분 남았다.
10분 내로 기분 전환할 방법이 있나.
지잉-.
그때, 짧은 진동 소리와 함께, 강민재에게서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갤러리 직원이 내일 보자고 합니다]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