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51)
너희들은 변호됐다-351화(351/641)
“접선 장소는 한강으로 했어요. 걔가 먼저 거기서 보자고 하더라고요. 찬영이 집으로 불렀을 때도 안 들켰고, 갤러리 직원이 다른 말 안 하는거 보면 대포폰도 안 들킨 것 같고. 꼴에 잘 숨어 있는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강민재는 한강을 향해 차를 몰며말했다.
느지막이 나온 나와 달리, 그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듯했다.
들어 보니 아침부터 오 사무장에게도 사건을 대충 브리핑해 주었고, 오 사무장도 이에 따라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도 파악한 것 같았다.
“김화영 씨 만나는 줄 알고 오는 거지?”
“네. 입원했다는 건 모르더라고요.”
“정보력이 그렇게 특출난 건 아니네. 하긴 이제 도망 다니는 신세인데 사적인 정보를 얻을 방법도 없겠지.”
나는 조수석에 깊게 기대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은밀하게 만나는 것이 좋으니 약속 시간으로 정해진 것은 해가 진 다음이었다.
도로를 따라 보이는 한강 변에는 삼삼오오 모여 불꽃놀이를 하는 20대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인적이 드문 공간이 나온다.
괜히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한강 변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인적이 드물뿐더러, 조명도 없어서 바로 앞에 난 길을 지나쳐 가는 사람마저도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를 때가 있다.
“변승민이라고 했지, 이름이.”
“네. 그런데 4억 없이 어떻게 증거를 내놓게 하실 거예요. 저한테도 말씀 안 해 주실 거예요?”
“대단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야.”
“네?”
“협박할 거거든.”
미국에서는 변호사를 흔히들 사기꾼, 깡패 따위로 비유하곤 한다.
물론 나는 미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만난 전처만 봐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본래의 의미에서 퇴색되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사기꾼, 깡패라고 불리는 변호사는 대개 둘로 나뉜다.
법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겁먹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공포를 자극해서 돈을 벌려 하는 사람들.
혹은 태광처럼, 오랜 시간 쌓아온 커넥션으로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법을 한순간에 상업적 거래가 가능한 화폐로 바꾸는 사람들.
나는 그 둘에도 해당되고 싶지 않지만, 깡패를 상대할 땐 깡패 비슷한 거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이 더럽게 나오는데, 나 혼자 깨끗한 방법 동원한다고 해서 알아 주는 사람도 없고…….”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꾸했다.
“전 변호사님의 그런 행보 응원합니다. 상대방이 더러워지면, 우리도 무기를 업그레이드 시켜야죠.”
강민재가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개업 초반에는 노력했던 것 같다.
나라도 깨끗하기 위해서.
남들이 더러울 때, 더럽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상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러운 수를 쓸수록, 독야청청하려는 내 이상적 방법에 한계가 왔음을 느낀다.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에 갇혀 목표조차 포기하고 싶진 않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편법은 필요하다.
일전에 검침원을 불법 압수수색 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고.
앞으로 그런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마다 죄책감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론은 나를 다룰 때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고, 법적으로 다뤄야 할 상대방은 법망 위에서 놀며 사건을 주물러대는데 나 혼자 깨끗하려고 해 봤자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뭐, 그렇다고 내가 갤러리 직원까지 검침원처럼 감금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태식이는?”
“이미 도착했대요. 저기 보인다. 봉고차.”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은 체는 하지 말라고 했지?”
“네.”
태식을 부른 것도, 감금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이다.
“여기예요.”
강민재가 차를 댄 곳은 한강 변의 컴컴한 굴 안이었다.
어딘가로 통하는 통로 같지만, 끝이 컴컴하게 막혀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안쪽을 향해 헤드라이트를 켜자, 그 안이 훤히 드러났다.
강민재는 차에서 내려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소리쳤다.
“어? 당신 누구야!”
건축 부자재 따위가 쌓여 있는 곳, 정확히는 그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 뒤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확실친 않았지만, 체형과 키를 보았을 때 갤러리 직원, 변승민인 듯했다.
“아, 들켰네.”
그리고 과연, 변승민은 가죽 점퍼를 툭툭 털며 헤드라이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야. 누군데 여기 있어요?”
“변승민 씨?”
“……누구냐고 물었잖아요.”
“김화영 씨가 보내서 왔습니다.”
“확실해요?”
변승민이 헬멧 눈가리개를 위로 올리며 강민재를 삐뚜름하게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강민재가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변호인 선임서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차주한? 나 어디서 이름 많이 들어 봤는데.”
이야기를 듣던 나는 차에서 내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망자 신세인 변승민이 의심할 것 같아서 변호사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차주한 본인입니다. 지금 김화영 씨 변호 맡고 있고요. 이쪽은 강민재 변호사입니다. 나하고 강민재 변호사가 김화영 씨 새 담당 변호사입니다.”
“……원래 태광이었는데?”
“어제부로 잘렸습니다. 변승민 씨 때문에.”
내 말에, 변승민이 킬킬대며 웃었다.
태광이 고상준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우미 갤러리 직원이었던 그가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태광이 아닌, 김화영에게 직접 연락했을 것이고.
그날 김화영과의 통화 이후, 태광이 잘렸다면 이는 변승민의 의도대로 됐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변승민 역시 진범이 누구인지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태광이 변호하는 이상 김화영에게 자신이 필요 없을 거란 사실을 알았을 터다.
그러니 진범이 누구인지 먼저 공개해서, 김화영이 태광과 고상준에 대해 더는 신뢰하지 못하도록 한 것일테고.
꽤 정교하게 머리를 썼다.
“진짜로 잘생겼네. 화면발이 드럽게 안 받네요.”
변승민은 내 주변을 돌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인터넷에서 봤어요. 우신만 드립게 파는 변호사라고. 우신한테 똥물 뒤집어쓴 변호사로 유명하던데.”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요. 기존에 태광은 진범을 숨기고 싶어 했겠지만, 나는 진범을 밝혀서 김화영 씨의 무고를 밝히고 싶은 사람입니다. 또, 우신처럼 변승민 씨를 납치하거나 죽일 수도 없는 사람이고요. 충분한 협상 대상이 됐습니까?”
“그렇네요. 괜히 숨어 있었네.”
“왜 숨어 있었는데요.”
강민재가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사모님이 그 사달이 났으니까 혹시 아드님이 날 어떻게 하려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지켜보려고.”
그렇게 말하며 변승민이 불량하게 윙크했다.
강민재는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지만, 변승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차에서 얘기하죠.”
“납치 안 할 거죠?”
납치 안 할 거냐고 묻는 사람에게서, 납치당할까 봐 두려운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고윤호와 고윤석의 살해 현장이 담긴 사진이 얼마나 큰 패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화영의 무고를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패를 자신이 쥐고 있는데,태광도 아니고 조그만 로펌인 너희가 나를 어쩔 수 있냐는 듯한, 그런 자신감.
뒷좌석에 그를 태우고, 나도 그의 옆에 자리했다.
“어, 잠깐만. 조수석에 앉아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강민재가 운전석에 타려고 하자, 변승민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강민재는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말을 들어주는 게 맞냐는 듯한 시선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어쨌든 협상하는 자리니 굳이 불안 요소를 더할 필요는 없다.
“자,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됐죠?”
“네. 자, 그럼 이제 중요한 건 돈인데요. 사모님한테 들어서 아시겠지만, 어쨌든 제가 우신한테 엿을 먹이는 사진을 드리는 거라서 이 사진이 공개되면 우신이 저를 죽이려 들 거란 말이죠. 도망 다니는 것도 잠깐이지,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외로 도망가는 게 마음도 편하니까.”
“알고 있습니다. 4억하고 사진하고 바꾸자는 말이잖아요. 맞죠?”
“네. 그렇습니다. 이야, 이 변호사님은 생긴 것처럼 시원시원하시네.”
변승민은 강민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아드님하고 어디까지 얘기 진행됐는지는 들으셨나요? 4억 주시는 것까지는 대충 오케이 비슷하게 됐습니다. 근데 자꾸 돈을 먼저 주네,사진을 먼저 주네, 우리가 서로를 못 믿으니까 그런 문제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던 거거든요. 아시겠지만, 시간 끌수록 안 좋아요. 변호사님도 급하실 거 아닙니까. 말씀하신 대로, 고윤호랑 고윤석이 진범인 거 밝히고 싶으시잖아요?”
변승민은 김화영의 새로운 법정대리인이 나라는 사실에 크게 만족한 것 같았다.
내가 우신을 파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 증거가 절실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그런 사진을 갖고 있다면 왜 우신으로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우신이라면 4억쯤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요. 어차피 우미 갤러리 직원이니까 그쪽 통해서 고상준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을 거고, 거기다가 사진 넘기고 죽은 듯이 살겠다고 혈서라도 쓰면 4억 받고 원하는 대로 캐나다로 가서 살 수 있을 텐데. 왜 4억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김화영 씨에게 그런 협상을 제안한 겁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요? 아무리 고상준이어도 4억은 돈 아닙니까? 고상준이 나한테 4억을 주는 것보다, 그냥 나까지 죽여서 증거 인멸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 그러면 나는 꼼짝 없이 죽임당하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는데요?”
변승민은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열을 올리며 소리쳤다.
“이런 것도 생각 못 하는 사람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 겁니까? 하, 정말 답답하네요.”
그러면서 가슴까지 팍팍 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실제로 아무리 변승민이 해외로 나가서 입 다물고 살겠다고 바닥을 기면서 말해도, 고상준은 변승민을 믿을 수 없다며 죽이는 걸 선택할 사람이다.
“나도 변승민 씨한테 사진을 먼저 받기 전에 돈을 먼저 주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 이렇게까지 했는 데도요? 제가 돈 먹고 튈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캐나다로 넘어간다고 해도 어차피 고상준이 변승민 씨를 찾아낼까 봐 불안할 거 아닙니까. 그럼 애초에 증거를 넘기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거죠. 거기에다가 돈까지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게 없고요.”
“그래서 내가 돈 먹고 사진은 안 줄 거란 말입니까?”
“도망쳐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어차피 우린 태광처럼 큰 로펌도 아니고, 김화영 씨도 개인이고. 지금 우신 눈 피해서 잘 도망 다니고 있는데, 우리쯤은 만만하잖아요, 지금.”
변승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요. 난 돈 받기 전엔 사진 못 줘요. 선금이라도 일부 받는 거 아니면.”
“강 변, 운전석으로 옮겨 타.”
합의되지 않은 말이었지만, 강민재는 내 말을 알아듣고 바로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겨 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대로 고상준한테 갑시다. 어차피 고윤호와 고윤석이 진범이라는 걸 알았으니, 그 키워드로 알아서 조사해서 진범 밝혀내겠습니다. 사진 먼저 못 주겠다고 하니까, 고상준한테 변승민 씨 넘겨주고 김화영 씨 너무 고달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라도 해 보죠. 안 그래도 내가 사건 맡은 것 때문에 고상준이 되게 열 받은 것 같았는데, 변승민 씨 넘기면 좋아할 겁니다.”
“뭐, 뭐요?”
“고상준도 변승민 씨 애타게 찾던데. 잘됐네요. 강 변, 뭐 해. 출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