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53)
너희들은 변호됐다-353화(353/641)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서 재판에 필요한 서류들을 확인하고 있던 차였다.
하루 빨리 김화영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공판 연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볼 서류가 산더미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오 사무장이 빠르게 뛰어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서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것들을 다 준비해 주었기 때문에 파악이 그리 늦어지진 않을 것 같다.
손가락에 골무를 끼웠음에도 손끝에 아릿한 느낌이 들었을 때였다.
지이잉-
진동 소리와 함께 태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벌써 도착했나 싶어 시계를 봤더니 그들이 출발하고부터 3시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그럼 내가 2시간 반이나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건데…….
어쩐지 눈이 아프더라니.
“잘 도착했어?”
-네. 지금은 변승민이 짜장면이랑 탕수육 먹고 싶다고 해서 시켜 주고 나왔습니다. 존나 잘 처먹네요.
“가는 길에 꼬리 안 밟히게 조심했지?”
-당연하죠. 제가 이 짓 한두 번합니까.
태식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붙어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여태까지 우리는 수많은 미행을 피해 다니느라 그쪽으로는 도가 텄다.
특히 그 능력이 가장 극대화되었던 시기는 이전에 내가 누명을 썼을 때, 검침원을 오성 조경에 숨겨 두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그 비슷한 상황이 되었네.
“고생해라.”
-네. 아, 그리고 저 새끼 휴대폰 말인데요. 정말 안 뺏어도 되는 거예요? 개수작 부리면 어떡해요.
태식은 미심쩍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침원을 감금했을 때는, 말 그대로의 감금이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행동을 전부 제한해야 했다.
하지만 변승민은 케이스가 조금 다르다.
기분 좋은 합승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 배를 탄 상황 아닌가.
변승민도 우신에 넘겨지는 것보다는 우리 쪽에 사진을 넘기고 돈을 받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온 것이다.
그러니 굳이 그가 돌발 행동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가 우신에 대해 갖고 있던 공포심은 진짜였다.
우미 갤러리에서 재직 중일 때 보아 왔던 게 있으니, 허튼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신을 여기서 빼 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인데, 그가 그렇게 나가 어딜 간단 말인가.
우신에게 쫓기듯 도망 다니는 신세는 여전한데, 아무런 보상도 존재하지 않는 바깥으론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진을 넘기려고 하지 않았던 건, 넘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지킬 수단을 확보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사진을 넘기고 싶은 건 변승민 자신일 것이다.
“괜찮아.”
-아 참, 아까 여기로 오는 길에 변승민이 누구랑 잠깐 통화를 하더라고요.
“통화?”
-되게 승질을 부리던데. 뭐라더라, 재판 안 끝난 게 무슨 상관이냐고 했던가?
“누구랑 통화한 건데?”
-그건 모르죠. 존댓말 쓰던데요.
“블랙박스 있지? 차에.”
-네.
“그거 통화하는 내용 따서 나한테 보내 봐.”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태식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그리 길지 않은 짧은 음성이었다.
나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네. 네? 지금 통화 곤란한데요. 네. 아니, 또 뭘 그렇게 따진다는 건데요. 저는 지금 이해를, 아니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재판 결과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랑은 상관도 없는 건데. 손, 아니 어쨌든 도와주시는 분도 그런 말은 안 하던데. 죄송한데, 저 지금 통화 힘들고요. 제가 연락할 수 있을 때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신경질적인 변승민의 목소리가 끝나고, 재생 역시도 끝났다.
얼핏 듣기에는 누군가에게 맡겨 놓은 일 처리가 늦어져 불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반복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여러 번 들으면서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체크할 심산이었다.
[또 뭘 그렇게 따진다는 건데요. 저는 지금 이해를, 아니, 이해가 안 간다니까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재판 결과가 무슨 상관이에요.]변승민에 대해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그는 현재 본인이 직접 재판에 얽혀 있진 않았다.
그가 연관된 재판은 여자 친구인 집사의 재판뿐일 텐데.
그렇다면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집사의 사망을 일컫는 말인가.
[저랑은 상관도 없는 건데.]여자친구가 죽었는데 본인과 상관 없다는 말은 통상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변승민이 저런 말을 한 까닭은, 상대방이 재판 결과를 보고 일을 진척시키겠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일 터.
지금 김화영의 재판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범인이 누구인지 여부이다.
즉, 범인이 김화영이든 아니든, 이미 집사는 죽었으며 이 일에 본인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손, 아니 어쨌든 도와주시는 분도 그런 말은 안 하던데.]손?
손 씨 성을 가진 누군가를 말하는 건가.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특정인을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일단 변승민이 우리 쪽에 정보가 누설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말을 고쳐 쓴 것 같으니 이 점은 잠시 넘기는 게 좋겠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알 수 있는 정보는 변승민은 김화영의 재판 결과에 따라 일을 진척시킬지 말지를 고민하겠다는 상대방에게 자신은 이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변승민은 뭔지는 몰라도 일이 빠르게 진척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상대방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다.
변승민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루빨리 우신의 영향력 아래 놓인 한국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까닭은 돈 때문이다.
돈…….
“보험?”
보험으로 생각하고 아귀를 맞추면, 말이 된다.
추측이지만, 말을 맞춰 보자.
변승민은 집사 앞으로 생명 보험을 들어 놓았고, 보험사에서는 집사를 살해한 것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생명보험금의 집행을 재판 이후로 미뤘다.
하지만 변승민은 자신이 용의 선상에 오른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른 사람이 살해한 것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빠르게 보험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와 갈등을 빚고 있고, 그렇다면 그가 말하다 말았던‘손’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손해사정사.”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심지어는 변승민이 왜 김화영이 집사의 목을 조르는 사진을 경찰에 넘겼는지조차, 모든 것이 이해된다.
변승민은 이 살인 사건이 이대로 묻히면 안 되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집사의 보험을 들어 놨으니 사망보험금을 받으려면 이 살인 사건이 경찰에 접수되어야 한다.
김화영이 그 일로 오해를 받아 집사를 죽인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든지 말든지, 변승민에게 중요하진 않다.
하루라도 빨리 집사의 사망 소식이 드러나 보험사에 보험금 집행을 요구해야 하니까.
잘 숨어 있던 변승민이 갑자기 김화영에게 연락을 취해 온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그 당시, 정확히는 그보다 더 전, 김화영이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면서 사람들은 김화영을 진범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태광의 공작으로 여론이 뒤집혔다.
김화영의 기소가 너무 섣불렀고, 김화영에게 무죄 판결이 나올 거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가짜 진범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승민은 몰랐을 테니, 이대로라면 재판이 끝나도 범인이 잡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터.
보험사 측에서는 부부 사이도 아닌, 단순한 연인 관계에서 피보험자가 변승민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변승민이 살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테고, 확실하게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보험금 지급을 미루려 했을 것이다.
이를 안 변승민은, 김화영에게 진범을 알려 주고, 김화영이 풀려날 판이라면 고윤호와 고윤석이라도 범인이 되어 사건이 종결되길 바라면서 다소 위험한 수를 던진 것이다.
고윤호와 고윤석이 범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단서를 제공하는 수를.
혹시라도 보험금이 늦게 집행될 때를 생각해서, 해외 이주 비용이라는 옵션까지 붙인 채로.
“이거 상종도 못 할 개새끼잖아?”
여자친구라면서 고윤호와 고윤석이 집사를 폭행할 때 나서지 않았던 것도 또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물론 폭행치사가 아니라 과실치사지만, 저러다 죽으면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
아니, 어쩌면 집사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은 그 순간부터 변승민은 집사를 죽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 좋게 고윤호와 고윤석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고윤호와 고윤석이 집사를 죽였다는 변승민의 말에는 진실 판정이 떴으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니길 바란다.
“……어쨌든, 보험을 들어 놓은 건 맞는 것 같은데.”
직계 가족이 아닌 사람을 피보험자로 생명보험을 드는 건 어렵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몰래할 순 없었을 것 같은데.
만일 유족이 남자 친구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생명보험이 들어져 있었고, 그 남자 친구는 지금 연락 두절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히 어떻게든 문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족은 ‘실종된 줄 알았던 우리 딸이 김화영의 별장에서 발견됐다,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이야기 외에는 따로 하는 말이 없다.
보험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의문이다.
정말로 변승민에게 악의가 없었는지는 직접 능력을 써서 확인해 봐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이대로 고윤호와 고윤석이 범인이 되면 변승민은 거액을 보험금을 수령하게 될 것이다.
이건 이것대로 문제다.
‘일단은 재판에서 증언은 시켜야 해.’
유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보험을 들었을 때의 상황을 확인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 유족은 김화영을 범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데다, 나는 그 변호인이라 지금 나설 수는 없을 듯하다.
고윤호와 고윤석이 범인이라는 게 확실해진 다음에 그쪽에 연락해 보 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디다 보험을 들어 놨을까.’
가능하다면 확인해 보고 싶은데.
우신 생명은 절대 아닐 테고.
아마 변승민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월 납입금 한도 내에서, 가장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가성비가 좋은 보험사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
“하아.”
공시된 보험금을 토대로 국내의 모든 생명보험 취급사를 정리하고 나니, 또다시 2시간이 홀러 있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노동 끝에 뽑은 가성비 좋은 생명보험사 1위는, 다름 아닌 한영 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