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54)
너희들은 변호됐다-354화(354/641)
사실 한영 생명을 계열사로 가지고 있는 한영그룹과 대단히 친밀한 인연으로 엮여 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교모세포종 수술 이후 잘못된 항균제를 쓴 쇼크로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설형석이 아직 깨어난 것도 아니고, 설형석을 그렇게 만든 범인을 잡았다고는 하나 그것이 그 형인 설효석이었기 때문에 설정준 회장 입장에서는 나 때문에 아들을 한꺼번에 둘이나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마저도 설정준 회장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고, 이세화에 의해 겨우 내 존재를 아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배 실장과는 직접 만나긴 했지만, 그쪽에 내가 단순히 ‘내 의뢰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순박한 변호사’로 비칠 리는 만무했다.
당시 동진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노골적인 단어를 써 가며 그 안에 새겨진 욕심을 자극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배 실장은 정도 사무실 개업식에 설정준 회장 이름으로 화환도 보냈고.
이 정도 부탁은 해도 되는 거 아닐까.
변승민이 보험을 들었을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진 보험사가 한영 생명이라는 것을 안 이상,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 *
이튿날, 나는 출근하기가 무섭게 방문을 닫고 배 실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통화 가능하냐는 내용이었는데, 배실장은 바로 확인한 듯 전화가 걸려왔다.
-아, 차 변호사님. 오랜만이네요. 그때 화환 보낼 때 이후로 처음 연락하는 것 같은데.
“안녕하셨습니까.”
-그래요. 목소리 들으니까 건강한 것 같네. 그간 고생했던 것들은 다 회복이 된 모양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자고 하시고?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들어나 봅시다.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내 말에 배 실장이 작게 웃었다.
-예전에 차 변호사가 우리 설 전무 일로 연락했을 때가 생각나서 웃었습니다. 그런데요?
“살인사건인데, 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고인의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한 사람의 남자친구 신분으로 생명보험을 들어 놓은 사람을 발견해서요.”
-그게 우리 한영 생명 쪽인 것 같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한영 생명인 것 같고, 지금 보험금 지급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것 같았습니다. 한영 생명에 보험을 든 게 맞는지, 맞다면 들 때 당시의 상황과 더불어 여러 가지로 둘러싼 정황에 대해서 좀 듣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렇군요. 누명을 쓴 살인사건이라……. 그런데 남자 친구가 보험을 들어 놓았다. 우리 쪽에서도 쉽게 보험금을 지급하기엔 어려운 사안이긴 하네요.
“그러실 겁니다. 아마 보험사 쪽에서는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때 지급하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한번 알아보고 연락드리죠. 인적사항 문자로 보내 줄래요?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어진 뒤, 나는 배 실장에게 변승민의 신상 정보를 넘겼다.
아마 적어도 한영 생명에 하나 정도는 들어 놨을 것이다.
애초에 여러 개 들어 놓았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한영 생명을 비껴 갔을 이유는 없다.
“변호사님.”
커피 한 잔 내리고 재판 준비나 계속할까 하고 생각했던 찰나 문이 열리고 강민재가 들어왔다.
정확히는 강민재보다, 커피 두 개가 든 캐리어를 든 손이 먼저 불쑥 들어왔다.
캐리어 두 개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오 사무장에게 이미 하나 주고 온 모양이었다.
“커피 한잔하시죠.”
“마침 할 말 있었어. 앉아.”
“뭐예요. 저 잘려요?”
아직도 저런 농담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강민재가 책상에 커피를 내려놓자, 나는 책상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강민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았고, 나는 지난밤에 태식에게 보고받았던 음성과 내 추론을 그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한영그룹 쪽에 아는 분, 그분은 뭐라세요?”
“확인해 보고 연락 준대. 하루 이틀 걸릴 거라고 하더라.”
“처음부터 재수 없더라니. 근데 그 사진 보면 고윤석하고 고윤호가 죽인 건 맞잖아요. 변승민이 죽인 것 같진 않은데.”
“그건 확실하지. 숨어서 사진 찍고 있었으니까 그 현장엔 가담하지 않은 게 확실하고, 이후 시신 처리에 대해서도 변승민이 가담한 건 없었으니까.”
“그럼 걔는 그냥 집사가 죽는 걸 그냥 지켜보고 있었던 것뿐이고 처벌은 안 받는 거네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입법되지 않는 한 처벌받을 일은 없지, 이 일에서.”
하지만 이런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고 내 소설에 불과하지만, 변승민이 고윤호와 고윤석이 집사를 죽이게 만들었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나온 상황만 봤을 때, 고윤호와 고윤석은 집사를 죽게 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변승민은 자신이 직접 죽일 수는 없으니, 그 둘을 이용해서 집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떤 장치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전제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변승민이 처벌받기를 바라는 내 입장이 너무 많이 가미된 가정이지만 말이다.
“……그럼 보험금도 수령할 수 있는 거잖아요.”
“글쎄. 그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 연락 오면 공유할게.”
“알겠습니다. 하, 이제 정말 재판 얼마 안 남았네요. 파이팅해요, 우리.”
* * *
김화영 2차 공판 기일
14시 56분.
서울중앙지방법원.
“별장 관리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영화배우 김화영 씨의 두 번째 공판이 곧 시작됩니다. 김화영 씨는 혐의 사실을 부정하고 있어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화영에게 한마디라도 들어 보겠다고 마이크를 들이밀며 달라붙는 기자들 사이에서, 뉴스 송출 멘트를 하는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화영 씨! 김화영 씨, 여기 좀 봐 주세요! 김화영 씨!”
정신이 없었다.
기자들이 김화영에게 달라붙을수록 강민재는 김화영을 더욱 품으로 감싸며 그들을 뚫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방청권 경쟁에서 승리한 기자들이 마치 자신들은 깨끗하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고개를 숙인 채 법원으로 들어가는 김화영을 바라보는 모습이 꼴불견이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저 중에는 김화영의 정신 상태를 무너트리기 위해 고용된, 기자인 척하는 기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1차 공판은 판사의 결정에 따라 비공개 재판으로 결정되었지만, 2차 공판은 공개로 진행한다는 것부터 우신의 방해 작전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어차피 김찬영 때문에라도 김화영이 먼저 고상준과의 내연 사실을 공개하진 못할 테니, 비공개 재판으로 할 가치조차 못 느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상준이 옳게 생각했다고 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역시 김화영이 누명을 쓰고 살인자가 되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내연 사실이 공개되면 큰일 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번 재판에서, 우리는 진범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는 없다.
김화영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해 주면 그만이다.
밝힌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갑자기 등장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웬만해서는 김화영이 고상준과 내연 중이라는 말은 피해야, 김화영이 지금 이 시점에 존재하는 간통죄의 법망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김화영 씨! 별장 관리인을 살해한 게 사실입니까!”
“무죄를 주장하고 계신데 별장 관리인에게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실 말씀 정말 없으세요?”
“…….”
그녀의 범죄 사실을 이미 상정하고 하는 질문들에 대하여, 김화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김화영이 법정에 출석해야 하고, 기자들과의 대면도 불가피하다는 말에 이에 맞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고 한다.
흥분하지 않고 가라앉게 해 주는 약이고, 법정에서 돌발 행동을 할 일은 없을 거라고 하니 이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모든 건 법정에서 밝혀질 겁니다. 근거 없는 발언 삼가시길 바랍니다.”
강민재는 단호하게 말한 뒤 김화영을 감싸며 법원 안으로 들어섰다.
터지는 플래시 소리와 김화영을 애타게 부르는 기자들이 법원 안에서까지 소란을 피우자, 결국 법원 경찰들이 제지를 가했다.
“김화영 씨, 괜찮으세요?”
법정 개정 4분 전에 법원에 들어와, 2분 만에 법정 앞에 선 김화영은 물을 건네는 강민재에게 물병을 받아들며 희미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강 변호사님.”
“아닙니다. 이제 재판 들어가실 거예요. 한 번 경험 있으시죠?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엊그제 보고드린대로 증거도, 증인도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지금만 견디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강민재가 미리 한영 병원으로 가 김화영과 그녀의 오빠를 픽업해서 법원으로 왔고, 나는 태식이 변승민을 데리고 이곳까지 잘 왔는지 확인했다.
그새 정말 잘 먹고 잘 잤는지 얼굴이 반질반질해진 변승민은, 나를 보자마자 돈부터 보여 달라며 성화였다.
줄 생각은 없지만, 돈을 보여 줘야 증언을 한다고 했으니 나 역시 돈은 준비해 둔 상태였다.
4억.
나도 현금 4억을 내 손으로 담아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이번에 그런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 자금 땡기는 것도 쉽지 않겠다고.
“나 변승민 좀 만나고 갈게. 김화영 씨 모시고 법정에 들어가 있어.”
나는 강민재의 어깨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왔다.
법정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방청객 끄트머리에 태식과 준범의 사이에 꽉 낀 변승민이 있었다.
슬슬 줄 설 준비를 하려는 듯했다.
“대본 숙지 잘 시켰어?”
“네. 달달달 잘 외우던데요.”
태식의 대답에, 변승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재판 끝나면 바로 주는 겁니다.”
“아뇨. 김화영 씨 무죄 판결 나면 그때 줄 겁니다. 말했잖아요?”
“알았다니까요. 그게 그거지.”
공판기일과 선고기일 사이에 간극이 꽤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본인이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는데, 굳이 사람 많은 곳에서 교정해 줄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바로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변호인석에 착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청객들이 우르르 방청석으로 들어와 앉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여전히 태식과 준범 사이에 끼인 변승민도 있었고, 태광 측 변호사도 몇 있었다.
우습게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처였다.
나에게 내가 이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고 떠들던 그녀는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나는 그러다, 끄트머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황영찬을 발견했다.
이번 삶에선 별거 아닌 인연이 되어 버렸지만, 한때 내 검사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이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만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지금쯤 3차장 자리에 앉아 있을 그는, 듣기로 아직 부장 검사로 남아 있다고 들었다.
그는 예전에 양한석을 앞세워서 고윤성을 감싸 주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때 버림받았을까.
아니면 지금도 고윤호와 고윤석의 방파제로 남아 있을까.
굳이 방청을 하러 온 것을 보면,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판사가 법정으로 들어왔다.
“지금부터 재판 시작하겠습니다.”